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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뇌를 먹어버린 멍게

(마태복음서 17:4) 때에 베드로가 예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여기에다가 초막을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20)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수가 없습니다.

 

  1. 자기 뇌를 먹어버린 멍게

멍게는 유충일 때 올챙이처럼 헤엄을 치며 자기가 정착할 바위나 산호를 찾아 다닙니다. 바다를 유영하면서 스스로 먹이를 찾습니다. 먹이를 찾고 움직이기 위해 안점, 후각계, 뇌, 근육, 지느러미, 신경, 척삭 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멍게는 태아시기의 척추동물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와같이 제법 고등한 멍게유충이 바위나 산호에 정착하게 되면 뇌를 비롯해 운동에 필요한 모든 기관들을 스스로 먹어 없애버립니다.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해수의 플랑크톤만 먹고도 살수 있으니 에너지 소모가 많은 뇌나 기타 기관을 스스로 제거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체가 된 멍게는 식물처럼 살아갑니다.

오늘 함께 읽었던 첫째 본문 마태복음 17장에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중에 예수님께서는 그 얼굴의 광채가 해와 같이 빛났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예수님 곁에 두 사람이 서서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자세히 보니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민족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사람이 모세이고, 역사상 모든 선지자 중에 가장 유명하고 능력이 큰 선지자가 엘리야입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영광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고는 만감이 교차합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주님께서 자신이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것도 말씀하셨습니다만 베드로의 귀에는 그 말씀이 들어오지 않았나 봅니다. 당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외쳤습니다. 자신의 스승이 고난당하고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매몰차게 베드로의 손길을 뿌리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예수님의 큰뜻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일주일 내내 근심이 많았던 베드로는 오늘 자신의 스승이 해같이 빛나는 모습으로 유대역사상 양대인물이라 할수있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베드로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여기에다가 초막을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스승과 모세, 엘리야를 모시고 평생을 수발들며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스승이 사람들에게 고난받고 조롱당하는 모습을 보자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시고 오늘 본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걸어가셔야 할 길을 아셨습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거나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길을 걸으셨습니다. 이후 제자들도 그 분의 뜻을 따라 죽는 날까지 부르신 소명을 따라 용감하게 나아갔습니다.

오늘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은 단순히 종족번식만을 위한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연과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 가운데 성장하라는 것입니다. 성장에는 물리적 성장뿐만 아니라 지적 성장, 영적 성장을 포함합니다. 사람은 지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자기’라는 좁은 세계를 벗어나 이웃과 자연으로 시선이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성숙할수록 자신의 성장뿐만 아니라 이웃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연의 섭리를 깨닫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진정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지상명령’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웃과 자연의 생명을 느끼고 그들의 성장과 안위를 돌보는 것이 곧 주님께 나아가는 여정이라 믿습니다.

여기서 멈춰서서 여기가 좋으니 여기에 머물겠다고 하면 안됩니다. 성장을 멈춘다는 것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헤엄치는 것을 멈춘다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거센 강물에 떠내려 갑니다. 멍게가 자리를 잡으면 자신의 뇌를 먹어 버리고 식물이 되듯이 사람도 안주하게 되면 식물인간처럼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죽은 자는 죽은 사람들이 장례를 치르도록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8: 22)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유목민이요, 순례자들입니다. 주님이 당신의 나라로 부르는 그날까지 순례의 여정은 끝이 없습니다.

 

 

  1. 특별계시에서 자연계시로

이런 여정 가운데 하나는 자연계시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먼저 자연계시와 특별계시가 무엇인지 간단히 복습하겠습니다. 일단 자연계시는 일반계시라고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나와 있듯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과 그 원리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계시를 뜻합니다.

(로마서 1:20)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수가 없습니다.

 

반면 특별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특별히 초월적으로 나타나 계시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환상이나 꿈, 이적 등도 특별계시지만 가장 핵심은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특별계시라고도 할수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오늘날 신약이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니 결국 말씀이 핵심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 동안 교회는 특별계시를 특별히 강조해왔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성직자를 성직자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특별계시에 대한 지식과 이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계시를 성도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성직자의 주된 소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원론적으로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모두 소개되지만, 일반계시는 그런것이 있다고 소개만 되고 끝납니다. 대부분 특별계시에 대해서만 이야기됩니다. 사실 그 동안 교회에서 특별계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말씀이라는 특별계시와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이라는 일반계시가 서로 상충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창조에서부터 전염병, 자연재해 등 많은 부분에서 성경이 전하는 이야기와 과학이 알려주는 사실들과는 괴리가 큽니다.

또한 특별계시만 강조하다보니 자신이 직통계시를 받았다는 이단이 등장할때 합리적인 대처가 어렵습니다. 이단뿐만 아니라 오순절주의와 같이 은사를 중요시하는 교단들에게서는 지금도 방언과 예언을 하며 직통계시를 인정합니다. 이런 경우 참과 거짓을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일부 보수교단에서는 특별계시가 성경시대를 끝으로 종료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의 직통계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원리를 따르면 이단을 구분하기 쉬워집니다.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냥 이단으로 분류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아쉬운 점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이천년전 예수의 시대에 머무르면서 그 시대의 생각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만 노력을 기울입니다.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에만 집착하다보니 오늘 현대의 여러가지 문제들에는 관심이 적습니다. 환경문제, 뇌과학의 발전과 인공지능의 대두, DNA분석을 통한 진화론의 발전, 양자역학 등장 이후의 미시물리학, 빅뱅이론 등장 이후의 거시물리학은 오늘 우리 세계를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보수기독교인에게는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보수 교회와 신학이 훈고학에만 머물고 있으면서 뇌를 먹어 버린 멍게가 되어렸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세계의 일반적인 상식조차 반영이 안되는 그들만의 리그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현대 과학의 성과를 반기독교라 낙인 찍고 배척만 해서는 안됩니다. 과학의 발달과 진보는 기독교인들에게 일반계시의 발전과 진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기독교인은 과거에만 묶여있지 말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현대의 시대정신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배우고 또 배워야 합니다. 낡은 부대는 새부대로 교체해야 합니다. 물론 이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안정적인 터전 아래서 베드로처럼 “여기가 좋으니 초막을 짓고 머무릅시다.” 라는 생각이 매순간 들 것입니다. 자기가 열심히 지은 집을 무너뜨리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학벌이나 학식이 높다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세계관을 새로 정립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합니다. 재건축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계관을 헐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학식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기부정이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새로운 여정에는 고난과 불안이 도사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리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오늘날 일반계시와 영역인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고대, 중세의 상식이 현대에서는 거의 통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이것을 위기로 받아들입니다. 전통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과학의 발전이 곧 일반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알아가는 여정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칩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가야 시행착오에서 벗어나 진일보합니다.

머무르지 않고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는 철학자 칼 포퍼가 말한 것처럼 반증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어야 합니다. 반증이 기존의 법칙을 무너뜨리고 혼란스럽게 할것 같지만 결국 더욱 크고 정교한 법칙으로 나아가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변증법적 발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일반계시를 끊임없이 수렴할때 특별계시 또한 더욱 강력한 힘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상식과 동떨어진 고대의 훈고학이 아니라 시대를 꿰뚫고 통찰하는 살아있는 말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말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주인이 아닌 유목민, 순례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본향, 우리의 시온은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나라로 가는 날까지 순례의 여정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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