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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COVID19)는 하나님의 심판인가?

(누가복음서 13:1-5)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예수 께 일러드렸다. 예수 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져서 치여 죽은 열 여덟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먼저 이번 설교는 저의 개인적인 신학적 견해가 반영된 것입니다. 설교라기보다 특강으로 들어주시고 예배 후 함께 의견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1. 변덕스러운 하나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창조물인 인간을 만드시고서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매우 좋았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자신의 동생인 아벨을 죽이는 죄를 범합니다. 인구가 늘면서 죄악 또한 만연합니다. 드디어 노아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창 6: 6) 그리고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고 노아와 그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홍수 재앙을 내려서 땅에 있는 모든 인류를 절멸하십니다.

오늘날 창조와 노아 홍수의 이야기는 함께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주류 신학에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또한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만들어 졌다고 봅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사람을 만든 것을 후회하셨다고 합니다. 후회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결국 자신이 만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버리는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의 속성에 위배됩니다. 모든 걸 아시는 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만들고 매우 기뻐한 것으로 인해 후회할 일들이 생길 것을 모르셨다는 것도 웃기는 일입니다. 그리고 전능한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도 납득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인간들을 자신의 손으로 멸망시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비꼬아 하나님은 ‘악동’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만화영화 ‘토이스토리1’ 입니다. 주인공 장난감들이 사는 집에는 착한 소년이 삽니다. 그는 자신의 장난감을 아끼고 사랑해줍니다. 반면 옆집 소년은 말 그대로 악동입니다. 장난감을 사서 부수고, 불지르고 하면서 험악하게 놉니다. 그래서 인형들이 실수로 창에서 옆집마당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악동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고 시련을 주고 고통을 주면서 괴롭히며 노는 악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물음들은 합리주의가 발달하고 개인의 인권이 신장된 근대의 소산입니다. 고대에는 자연재해나 질병을 신의 분노 혹은 심판이라 생각했습니다. 더더구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모르던 시절의 전염병은 극한의 공포를 불러 일으킵니다. 태풍, 홍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도 무섭지만 질병이 무서운 것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옮겨가고 죽기전까지 많은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비디오로 영화를 보던 시절 비디오가 시작하기 전 “호환 마마 보다 불량 비디오가 더 무섭다.”는 광고를 보았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마마가 천연두를 뜻합니다. 지금 코로나는 치사율이 1% 대라고 하지만 당시 천연두는 치사율이 매우 높았습니다. 일반 천연두는 치사율이 약 30%~40%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연두에 걸렸다가 살아남더라도 부작용으로 시력을 잃거나 수포로 인한 흉터가 온몸에 남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질병이라 이것을 마마라는 존칭을 써서 질병을 달래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질병이 크게 돌면 한 국가의 존폐위기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임금은 이런 질병이 돌 때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 생각하고 진수성찬을 먹지 않고 소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윗도 말년에 인구조사를 하다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전염병이 퍼지게 됩니다.

갓이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말하여 알렸다. "임금님의 나라에 일곱 동안 흉년이 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임금님께서 왕의 목숨을 노리고 쫓아다니는 원수들을 피하여 동안 도망을 다니시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임금님의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지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제 임금님께서는, 저를 임금님께 보내신 분에게 제가 무엇이라고 보고하면 좋을지, 잘 생각하여 보시고,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다윗이 갓에게 대답하였다. "괴롭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자비가 많으신 분이니, 차라리 우리가 주님의 손에 벌을 받겠습니다. 사람의 손에 벌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하여 아침부터 정하여진 때까지,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백성 가운데서 죽은 사람이 칠만 명이나 되었다.

천사가 예루살렘 쪽으로 손을 뻗쳐서 도성을 치는 순간에, 주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신 것을 뉘우치시고, 백성을 사정없이 죽이는 천사에게 "그만하면 됐다. 이제 너의 손을 거두어라" 하고 명하셨다. 그 때에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었다.

그 때에 다윗이 백성을 쳐죽이는 천사를 보고, 주님께 아뢰었다. "바로 내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바로 내가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백성은 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나와 아버지의 집안을 주십시오."(사무엘하 24: 13~17)

이 시대에서 보면 인구조사를 한다고 하나님께서 처벌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직접 질병을 퍼뜨리시는 것, 퍼뜨리시고 후회하시는 것들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현대의 국가는 통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서 통계청을 따로 두고 조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구조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교만했다고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셨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천사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질병을 퍼뜨리는 모습도 동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가지 배울 것은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런 질병이 퍼질 때 당시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부덕이라 생각하고 돌이키고 뉘우쳤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이 백성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 자신을 처벌해 달라고 빕니다.

 

  1. 천지불인(天地不仁)

이와 같이 당시 사람들에겐 불가항력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신의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풍요나 번영도 신의 뜻일 뿐만 아니라, 재앙과 저주도 신의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의 뜻이 바뀌는데는 사람의 행동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덕을 쌓고 정의를 행하면 신의 축복이 임하고, 부족하고 악행을 저지르면 저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고대에는 보편적인 것이었습니다. 구약성경도 이런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께 갈릴리 학살사건을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을 한 사람들은 사람들을 죽인 빌라도에게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갈릴리 사람들에게 초점이 있습니다. 즉 갈릴리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많아서 저런 저주를 받았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생각을 꽤뚫어 보시고 너희들도 죽임을 당한 사람들과 별잔 다를바 없음을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상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덪붙여 자신의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는 재앙이 하나님의 저주인지 아닌지를 밝히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의 죄때문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예수님께서 언급하시는 다른 본문을 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마태복음 5: 45)

이 본문을 보면 신의 저주에 대해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반대로 신의 축복이라 할 수 있는 해와 비가 인간의 도덕적 행위에 대한 인과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꾸로 적용해보면 태풍, 홍수, 질병 등도 도덕적 인과관계와 별개라는 것입니다.

일찍이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천지불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직역하면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는 말이 되는데 본뜻은 하늘과 땅은 인격이 없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자연에 의해 덕을 보거나 피해를 당하게 되면 가치를 부여해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에게서 바이러스로

미생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오늘은 질병의 원인이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때문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질병이 걸리면 그에 맞는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를 먹거나 주사를 맞아야 됩니다. 천지불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이해하고 이용하는 경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우리가 아는 것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또한 이런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다 이해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의 첫번째 덕목은 겸손이라 생각합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하나님 자연계시를 이해하는데 한걸음 더 다가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걸음 가까이 가보니 남은 여정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멀다는 것을 동시에 느낍니다. 그래서 현대의 지식을 게으르지 않게 따라간 사람들은 보다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대의 길흉화복 사상에만 사로잡혀서 자신이 구약시대의 선지자라도 된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은 코로나 사태가 선교를 막는 중국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또 신천지에 대한 심판이라고도 합니다. 빨갱이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고도 합니다.

중국에 대한 심판이라면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해서 바이러스 컨트롤에 실패해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에 번진걸까요? 신천지에 대한 심판도 마찬가집니다. 빨갱이 정권을 심판하는데 빨갱이 정권에 가장 표를 적게 준 대구가 가장 심각한 이유는 뭘까요?

이런 주장들은 끊임없이 있어왔습니다. 에이즈가 동성애자들을 위한 신의 저주라고 말한 목사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미국에서 카트리나 태풍이 뉴올리언스를 휩쓸어 수많은 사상자가 났을때도 많은 목사들이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 떠들었습니다.

무책임함을 너머 잔인하기까지 한 이들의 정죄 발언은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2차 가해를 하는것입니다. 이들이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배경이 바로 제가 앞에서 인용한 구약성경을 근거로 합니다. 저는 이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아닌가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예수님께서는 재앙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그 죄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태어날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보며 이 사람의 불행은 그 부모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때, 예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뒤집으십니다. 그는 맹인에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시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불행을 당한 사람들에게 죄를 묻지 않고 오히려 불행한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잣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함부로 떠드는 사람은 예수님을 잘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한 고대의 지도자들은 불행이 닥쳤을 때 자신의 잘못을 먼저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목사들은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을 정죄합니다.

그리고 일부 목사는 코로나 사태에도 집회와 예배를 강행하며 하나님께서 다 보호해 주신다고 따릅니다. 이들은 특별계시만 알고 자연계시는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을것이라 미혹하던 사탄의 말고도 흡사합니다. 죽을 병에 걸려도 병원에 가지 않고 안수기도 하다가 사람을 죽이는 귀신파 이단의 논리와 다를것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지혜를 간구하는 사람일수록 깨달아 갈수록 우리는 자연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부족함과 무지를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재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보다 먼저 위로하고 권면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초월적인 권능과 섭리를 믿지만 그분이 창조하신 자연의 섭리를 부지런히 배워서 합리적이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도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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