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8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사람의 계산과 하느님의 계산                            창 11:1-9, 막 14:43-52
     
- 문동환 목사
선한목자장로교회, 19/10/03

시작하는 말

한 세상 사는 인류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계산을 하게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더 신나는 내일을 창출할까?” “어떻게 하면 크게 성공할까” 하고 수판을 놓게 마련이다. 자녀 교육의 설계를 하고 그들의 배우자도 바르게 찾고 무엇보다 그들의 직업 설정을 지혜롭게 하기 위해서 각가지 계산을 한다. 우리 사회 생활도 그렇다. 모든 것을 계산해야 한다. 그래야 이 경쟁 사회에서 무엇이고 이룩할 수 있다. 정치하는 사람은 더 그렇다. 돈을 계산하고 지지자 수를 계산하고 자기 적수의 세력까지 계산한다. 그리고 어떻게 표수를 더 얻을 가를 계산한다. 그래도 안심이 아니 되면 많은 사람은 무당을 찾아간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들의 계산법은 우리들에게 무서운 패망을 초래한다. 나라들이 망하고 제국들이 쓰러지는 것이 그것을 말한다. 우리들의 계산법은 하느님의 계산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의 장래가 인간의 그릇된 계산법 때문에 파탄에 직면하게 될 때 하느님의 놀라운 계산법이 작동해서 인류를 그 패망의 나락에 구출하신다. 인류 역사는 이 두 대립되는 계산법의 일대 변주곡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변주곡을 통해서 인류역사는 한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한다.  우리는 이 변주곡의 비밀을 깨닫고 하느님의 계산법을 우리의 삶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1. 사람의 계산법

우리는 사람들의 계산법을 바벨탑 이야기에서 본다. 사람들은 동쪽으로 이동해 가다가 시날 광야에 이르러 그 비옥하고도 넓은 들을 보면서 머리가 번개처럼 돌아갔다. 마침내 그들은 벽돌을 만드는 기술을 발견했다. 이렇게 벽돌을 만드는 기술을 발명한 저들은 머리를 맞대고 계산을 했다.

“우리는 엄청난 기술을 발명했어. 이 기가 막히게 묘한 벽돌을 우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이 벽돌로 우리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이렇게 해서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은 하늘에 닿는 탑을 쌓는 것이었다. 벽돌을 무한정 만들 수 있으니 하늘에 닿는 탑을 쌓는 것은 문제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무한한 능력을 가진 저들은 하느님을 쫓아내고 그들의 이름을 탑에다 새겨서 영구집권을 하자는 오만 불손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계산법이다. 먼저 물질이 풍성해야 한다. 그리면 인간의 지혜가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를 만들 수 있다. 그 문명의 이기를 축적하면 무한대의 힘을 기를 수 있다. 그리면 우리는 무엇이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절대권을 행사하는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비극은 이와 같은 계산법에서 태어난다. 애굽의 바로 왕의 계산법이 그랬다. 그들이 세운 피라미드를 보라. 국토를 다 자기의 땅이라고 생각하고 국민들을 다 자기의 종이라고 주장하는 저들은 스스로 신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힘에 도취한 저들은 땅 위에 온갖 참극을 창출했다.

다윗 왕은 본래는 겸손한 자였다. 그러나 싸움에 능한 부하들을 통하여 사방으로 국토를 넓혀 세력을 기르더니 오만 불손해져서 자기의 향락을 위해서 못하는 짓이 없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른 모든 왕들도 꼭 같은 과오를 범했다.

예수님 당시 로마제국도 그랬다. 힘을 길러 지중해 연변을 통째로 점령한 가이사 왕은 자신을 신이라고 부르면서 온갖 향락을 독점하드니 마침내 그는 자신을 신이라고 자처하면서 그를 예배하지 않는 자들을 사자의 밥이 되게 했다.

오늘도 부한 나라일수록 꼭 같은 계산법을 한다. 그들의 막강한 힘을 동원해서 부를 독점하는가 하면 그 물자로 가공할만한 무기를 수 없이 만들어 누가 무어라고 하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그 무기를 휘둘러 인류를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는다. 그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스스로 절대자인양 행동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람의 계산은 하느님의 계산법과 위배되어 인류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게 되고 결국은 준엄한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바벨탑을 보라. 하느님이 내려오셔서 그들의 거짓된 생각을 치시자 힘에 도취한 저들은 갈가리 갈라져서 유혈 참담한 비극을 연출했다는 것이다.


2. 하느님의 계산법

이런 참극 속에서 하느님의 계산법이 작동한다. 하느님의 계산법은 사람의 계산법과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멀다. 그는 큰 무리에게서 시작하시지 않는다. 하나라고 하는 단수에서 시작하신다. 강자를 택하시지 않으신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버림받은 떠돌이를 찾아가신다.

그리고 그에게 약속하신다.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민족들이 서로 축복을 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라고 약속하신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새 내일을 꿈꾸는 순례자가 되게 하신다.

하느님은 이 꿈이 그의 후손들의 마음속에서 자라게 하신다. 많은 떠돌이 사이에  누룩처럼 퍼지게 하신다. 그들 사이에 정의와 평화를 바라는 공동체가 탄생한다. 힘 가진 자들이 이를 파괴하려고 하는데도 이 공동체는 계자 나무 자라듯이 자란다. 그래서 마침내 어두운 세력을 쫓아내고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신천 신지를 창조한다. 한 사람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누룩처럼 퍼져 가나안의 평등 공동체를 이룩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가나안 평화 공동체를 이룩하신 과정을 보라. 바로 왕의 횡포가 극심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우성을 치게 되었을 하느님은 바로의 손에서 피신을 하여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는 실의에 빠진 모세에게 나타나셨다. 그에게 하느님의 놀라운 뜻을 계시하시고 그를 격려하여 출애굽 사건의 기적을 이룩하시고 가나안 땅의 평등공동체를 이룩하신다. 그것이 하느님의 계산법이다.     

다윗 이후로 왕이라 하는 왕들은 다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탐욕에 찬 자기들의 야망을 이룩하려 불의를 행하다 하느님의 징계로 망하고 말았다. 따라서 애매한 백성들은 이방 땅에 두루 헤쳐져서 한 맺힌 삶을 살고 있었다. 거기에 로마가 엄청난 무력으로 저들의 목을 졸라매어 빈사의 지경에 이르렀을 때이다.

그 때 하느님은 나사렛에 가난한 한 목수 청년을 자기의 뜻을 이룩할 아들로 선택했다. 그는 주변에 있는 목자 없는 양과도 같은 농민들을 보며 가슴아파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그들의 살길을 찾던 그는 나이 30이 되어 득도하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저들을 돕고 가르쳤다.

이렇게 되자 기득권자들은 그를 향해 우는 사자처럼 달려들었다. 결국 그는 저들에게 잡혀 희생양처럼 끌려갔다. 그 끌려가는 모습을 보라. 제자라는 자들은 다 도망쳐버렸다. 벗은 몸에 홑이불만을 두르고 예수의 뒤를 따랐던 한 순정의 어린이까지도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는 완전히 외톨이가 되어 홀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갔다. 가고 오는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처량하게 아버지를 부르면서 운명하셨다.

그러나 그 밀 알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자 백 배 천 배, 아니 억만 배의 열매를 맺었다. 그리고 그 열매들이 로마제국을 뒤엎었고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었다. 

이것이 하느님의 계산법이다. 새 내일을 갈망하는 한 가난한 심령에 하느님은 그의 뜻이 이룩되는 새 내일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그에게 이를 믿는 믿음을 주신다. 이 믿음을 붙잡고 성실하게 산 그의 후손에게 이 믿음이 전달이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이 새 내일을 갈구하는 많은 무리들에게 확산이 된다. 때가 이르면 그 무리들을 통해서 하느님은 샬롬의 세계를 이룩하신다. 이것이 하느님의 계산법이다.


3. 계속되는 하느님의 계산 법

이 하느님의 계산법은 역사를 통해서 계속 반복이 되었다. 주 후 4 세기 기독교가 여러 가지 이교 철학에 감염되어 혼란에 빠졌을 때이다. 그 때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사랑하는 아들이 주색에 포로가 되어 바른 길로 가지 못했었다. 그녀는 이것이 안타까워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 이렇게 애타하는 어머니를 본 그곳의 한 주교는 “눈물의 자식은 멸망하지 않습니다”하고 위로했다. 그녀는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다. 그녀의 기도로 어거스틴은 회개하고 돌아와 당시 공교회를 정로로 이끌었다.

구교가 권력과 타협을 하여 타락할 대로 타락을 하여 크게 하느님에게 욕을 돌리게 되었을 16 세기에 당시 미개국이라고 천대를 받은 독일의 한 젊은 승려 말틴 루터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려 교황청의 무서운 탈선을 보게 했다.  이렇게 깨달은 말틴 루터는 그 깨달음을 목숨을 내 걸고 선포하자 그의 외침이 전 구라파에 확산이 되어 타락 일로로 달리고 있던 기독교가 새롭게  부활하기 시작했다.

1955 년 미국 남쪽에 아직도 인종차별이 극심해서 흑인들은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다.  이런 때 알라바마에서 인권을 위해 일하던 로자 팍이라는 한 흑인 여인이 “우리도 꼭 같은 인간이다”라는 강한 심정 때문에 백인들만 앉을 수 있게 된 좌석에 앉아서 일어나지 않은 것이 흑인 해방운동에 크게 불을 질러서 결국 미국의 흑인 해방운동이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되었다.

이조 말 메뚜기처럼 많은 양반들의 횡포가 극심해서 일반 서민들의 삶이 비참하게 되었던 때이다. 간 곳마다 땅을 잃은 유랑민들이 떼를 지어 방황하면서 살길을 찾아 헤매 일 때이다. 한 영락 선비의 서자로 태어난 젊은이가 유랑의 길을 떠났다.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잃은 그는 십 여 년 동안 그들 속에 뒤섞여서 세상 물정을 살피면서 그들의 살길을 찾았다. 그 후 집에 돌아온 그는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대결을 했다. 백성들이 살 수 있는 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고. 그리다가 결국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렇게 하여 깨우침을 받은 진리란 “지극한 하느님의 영은 천대받는 모든 무리들 속에 내재해 있기에 그들을 하느님 모시듯 하라”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느님과 나와 이웃이 존경과 인정으로 기화가 될 때 질병에 걸린 지난날은 다 가시고 생명이 차 넘치는 새 날이 올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이 민중들 사이에 요원의 불처럼 확산이 되어 새 날이 동트게 되었었다. 기관총을 가진 일본군의 침략이 없었던들 한국 역사는 새로워 졌을 것이다.

해방 후 한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졌을 때 이본군의 장교로 있었던 박정히가 무력으로 정권을 박탈하고 자신 영구 집권을 하려고 했을 때이다. 이를 위해서 그는 소위 유신 헌법이라는 것을 폭력을 동원하려 제정한 다음 이에 항거하는 시민들을 무차별 감옥에 집어넣던 서슬이 퍼렇던 때이다.

그 때 청계천 평화시장의 한 어린 재단사가 그 밑에서 심부름을 하는 ‘시다’들의 인권을 위해서 노동조합을 형성하려고 각 가지로 투쟁하다가 마지막에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무관심한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그가 잊을 수 없는 전태일 이다. 그랬더니 하느님의 영이 그와 같이 불타 올라 1970년도의 끈질긴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갔고 마침내는 그 기고 만장했던 박정희의 몰락을 초래했다. 이것이 다 하느님의 놀라운 계산법이 초래하는 역사의 기적들이다.

 
맺는 말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깨우침은 무엇인가? 첫째는 역사 안에서 사람의 계산법이 어떤 것이요 그것이 무엇을 초래하는지, 그리고 하느님의 계산법이 어떻게 우리를 이에서 건져주시는 지를 명확히 보는 일이다. 그리고 증언하는 일이다. 우리는 역사의 변주곡을 바르게 이해해하고 이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산법을 바르게 보고 깨달아 이에 합세하는 일이다.

둘째로 하느님의 계산법은 아무 보잘 것 없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시작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뜻에 따라 성실하게 삶으로 하느님의 계산법의 도구로 자신을 바치는 일이다. 아브라함처럼 그의 뜻이 이룩될 것을 믿으면서 성실하게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나와 내 이웃이 같이 하느님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를 이룩하는 자는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주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되어야 한다.

Title
  1. 예수님은 생명에 이르는 길

    Date2003.12.10 By문영환 Reply0 Views95
    Read More
  2. 부활의 의미

    Date2003.12.01 By문영환 Reply0 Views80
    Read More
  3. 예수님의 환희

    Date2003.12.01 By문영환 Reply0 Views82
    Read More
  4. 예수님의 선언

    Date2003.12.01 By문영환 Reply0 Views85
    Read More
  5. 예수님의 눈물

    Date2003.12.01 By문영환 Reply0 Views79
    Read More
  6. 예수님은 생수

    Date2003.12.01 By문영환 Reply0 Views89
    Read More
  7. 예수님은 생명의 빵

    Date2003.12.01 By문영환 Reply0 Views93
    Read More
  8. 예수님의 기원

    Date2003.12.01 By문영환 Reply0 Views86
    Read More
  9. 동역자의 심성 [문동환 목사]

    Date2003.11.02 By운영자 Reply0 Views83
    Read More
  10. 땅 위에 하느님의 뜻이 창 [문동환 목사]

    Date2003.11.02 By운영자 Reply0 Views79
    Read More
  11. 사람의 계산과 하느님의 계산 [문동환 목사]

    Date2003.11.02 By운영자 Reply0 Views87
    Read More
  12. 가장 용서하기 힘든 일 [문동환 목사]

    Date2003.11.02 By운영자 Reply0 Views87
    Read More
  13. 문동환 목사님 설교 코너 개설

    Date2003.11.02 By운영자 Reply0 Views8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