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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거나 죽거나

(베드로의 둘째 편지 3: 18) 여러분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입고 또 그분을 앎으로써 계속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이제와 또 영원토록 그분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창세기 17: 1~5) 아브람이 구십구 세 되던 해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신이다. 너는 내 앞을 떠나지 말고 흠없이 살아라.

나는 너와 나 사이에 계약을 세워 네 후손을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계약을 맺는다. 너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리니, 네 이름은 이제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 불리리라.

  1. 랍스터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올해 초 스위스는 동물보호법을 개정했습니다. 개정 내용 중 랍스터를 비롯한 갑각류를 산채로 찌거나 삶아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전기로 기절시킨 이후 조리하도록 개정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랍스터를 비롯한 갑각류들이 섬세한 신경조직을 가지고 있어서 산채로 삶거나 찔 때 큰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랍스터가 자랄 수 있는 이유도 이런 통증과 관련이 있습니다. 랍스터는 갑각류라 속살은 부드럽고 예민하지만 껍질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 집니다. 단단해진 껍질은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반면 속살은 점점 자랍니다. 자라지 않는 껍질 속에 점점 자라나는 속살은 불편함과 고통을 느낍니다. 한계에 이르면 랍스터는 바위 아래로 들어가 기존의 껍질을 벗고 보다 큰 새 껍질을 만듭니다.  

새 껍질이 딱딱해지기까지 랍스터는 매우 위험합니다. 자신을 보호할 방어막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과 위험을 잘 감수할 때 만이 랍스터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만약 랍스터의 속살이 자라 고통받을 때 진통제를 처방해 주고 성장 억제제를 준다면 랍스터는 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고난과 역경이 그 자체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고난과 역경 없이 정신적, 영적 성장이 어렵습니다. 결핍, 고난, 역경들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악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통해 성장하고 배웁니다. 특히 보다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는 질적 성장은 역경 없이는 매우 어렵습니다.

  1.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아브라함은 원래 아브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99세때 하나님을 만나면서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원래 아브람은 대범한 사람이 못됩니다. 아브람이 식솔들과 이집트를 지나 올 때 걱정이 많았습니다. 부인 사래가 너무 아름다워서 힘 있는 사람들이 사래를 데려가려고 자신을 해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물어보면 오누이인 것처럼 말을 하자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집트와 파라오의 신하들이 사래의 미모를 보고는 파라오에게 고했습니다. 파라오는 아브람과 사래를 불러들였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의 누이인줄만 알았던 파라오는 아브람에게 후한 선물을 주고 사래를 자신의 처로 삼으려 했습니다. 아브람은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 말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소심한 사람으로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이후 롯이 그돌라오멜 왕의 연합군에게 잡혀갔을 때는 318명을 이끌고 추격해서 그들을 물리치고 롯을 구해오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평생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마다 믿음과 용기로 대처하지 못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달아나거나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의 시련이 그를 더욱 큰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그를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 되게끔 한 것입니다.

보통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 되었다는 것이 단순히 많은 땅과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만 생각합니다. 사실 당시 시대를 볼 때는 그 해석이 맞습니다. 그러나 번영과 정복이 미덕이 될 수 없는 오늘날에는 다른 해석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 되었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보다 깊고 넓게 성장해서 다양한 민족과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1. 베드로,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베드로 또한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입니다. 바울처럼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성정이 부드러운 사람도 아닙니다. 다혈질에 성급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 오시자 자기도 걷겠다며 내려오다가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고 겁이 나서 빠져 버립니다. 예수님을 위해 그 자리에서 생업을 뒤로 하고 쫓다가도 변화산에서 모세, 엘리야와 함께 선 예수님을 보고서는 초막 셋을 짓고 여기에 눌러 살자고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을 때 베드로는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잡아가려는 시종 말고의 귀를 칼로 내리쳐 잘라 버릴 때는 언제고 여종의 고자질에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며 부인하기도 합니다. 성령충만 할 때는 방언으로 권위 있게 설교를 하다가도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보수적인 유대 기독교인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달아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 또한 많은 실수와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성장하고 자랐습니다.

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고난과 역경, 실수들이 고스란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통해 그들은 성장했습니다.

  1. 한국의 재벌 3세들은 무엇이 문제인가?

요즘 대한항공의 조양호 회장의 셋째 딸 조현민의 갑질이 한국 사회의 이슈입니다. 이미 그의 언인 조현아의 땅콩회항 갑질, 둘째인 조원태의 뺑소니 사건 등 자녀 셋이 모두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유독 대한항공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화 그룹 아들들의 폭행사건, 현대가 3세 정일선의 기사갑질 등 사건사고가 많습니다. 유독 재벌 3세들에게서 이런 사건이 많이 터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재벌 1세대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입니다. 많은 역경과 시련을 버티고 견뎌오면서 밑바닥부터 자라온 사람들입니다. 2세는 부모 세대의 고생과 발전을 함께한 세대들입니다. 그러나 3세에 오면 어릴 때부터 고생 모르고 왕족처럼 자란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참을성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귀한 대접만 받으면서 자라다 보니 뭐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화합하고 인내하고 수용하고 포용하는 능력이 업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인물들이 나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랬고, 사무엘의 아들들인 요엘과 아비야가 그랬습니다. 다들 귀하게만 자라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 자라거나 죽거나

우리는 아이들을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안전하게 키우면 잘 자랄 줄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배움과 성장은 결핍과 고통에서 시작됩니다. 부모로써 진정한 노력은 아이를 보호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고통과 결핍 가운데 힘들어 할 때도 쉽게 손 내밀지 않고 지켜보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또한 지금도 성장하고 자라야 합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자라거나 죽거나 입니다. 그냥 머물러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머물러 있다는 것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몸은 날로 쇠하더라도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계속 자라려면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업이나 일을 벌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끊임없이 모험하고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랍스터가 껍질을 벗고 나와서 새로운 껍질을 만드는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살아 있는 한 우리도 계속 기존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껍질을 만들어 나가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단순히 고생이 축복이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때 고생축복론이 악용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착취 당하고 억압 당할 때 종교가 자본가의 편에 서서 내세축복을 약속하며 고생축복론을 많이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본 것입니다. 인생이란 것이 고생 없이 순탄하기만 한 경우가 없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그것이 너에게 복이 될 거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어설픈 충고나 훈계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한 발짝 물러나고서야 돌이켜 볼 수 있습니다. 이 설교가 훈계나 충고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실과 역사를 통한 작은 교훈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읽고 이야기를 맺을까 합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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