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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20:47

[설교요약]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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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히브리서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36-38)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1. 행복의 시대

형식적으로 본다면 데카르트 이전을 믿음의 시대, 데카르트 이후를 의심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시작되고 나서 데카르트까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대를 좋은 말로 믿음의 시대라고 할 수 있지만 반 이성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믿긴 믿는데 믿으라고 해서 믿는 경우가 허다한 시대였습니다. 자신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주체적으로 사색하고 반성하지 못했던 시기입니다.

반면 데카르트 이후에는 두 단계의 의심의 시기를 지납니다. 첫째로 데카르트부터 20세기 중반까지는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모든 존재를 의심하는 시기였습니다. 단 오감을 종합하고 판단하는 인간의 이성은 유일한 믿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들이 만들어 나갈 유토피아에 대한 꿈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정신분석학이 등장하면서 인간은 이성보다 무의식과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급급한 존재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1968년 프랑스를 기점으로 시작된 68혁명은 인간의 이성마저도 길로틴에 참수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믿음도 의심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무엇을 깊이 믿거나, 무엇을 진지하게 의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믿음과 의심은 깊은 사색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깊은 사색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하기 바쁘고, 운전하기 바쁘고, 놀기 바쁘고, 스마트 폰 보기 바쁩니다. 그러다 보니 신세대들일수록 깊은 믿음의 성찰도, 반대로 의심과 회의도 점점 사라져갑니다. 간혹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은 “진지충”이라고 놀려댑니다.

목적도 없고 추구하는 가치가 없는 시대의 사람들이 유일하게 추구하는 것은 행복입니다. 이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나 성경에서 말하는 평안이 아닙니다. 쾌락을 말합니다. 그러나 쾌락은 한계효용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다 크고, 보다 비싸고, 보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합니다. 이것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결국 영상에서 보셨던 것처럼 돈의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2. 행복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

행복의 시대에는 육체적인 핍박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협박하고 고문하고 죽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행복의 시대이니만큼 교인들도 행복을 주는 교회를 찾아 다닙니다. 축복과 위로를 주는 설교, 재치 있고 유머러스 한 설교는 언제나 인기가 있습니다. 이런 목사들이 있는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레이크우드 교회의 조엘 오스틴 목사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긍정의 힘을 비롯해 잘 되는 나, 최고의 삶, 나를 응원하라 등의 책을 쓴 사람입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교회를 세습 받았습니다. 현재 레이크우드 교회는 매 주 오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를 한번도 이야기 한 적 없는 목사로도 유명합니다. 언제나 잘 된다고 확고하게 믿기만 하면 만사형통 한다는 번영신학만을 전파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목적과 가치를 잃고 사는 사람은 쾌락을 쫓아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더욱 큰 쾌락을 추구하라고 욕망을 부추깁니다. 물론 이러한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는 돈 없이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욕망과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오히려 욕망과 돈의 시종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쾌락을 쫓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와 성공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약속의 대가로 돈과 헌신을 뜯어 냅니다. 이들의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일들을 마치 보고 겪은 것처럼 바울의 디모데후서 3장 초반부에 쓰고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3. 행복의 시대에 키에르케고르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에 태어난 키에르케고르도 우리와 비슷한 환경에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대항해 시대의 절정기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덴마크는 키에르케고르가 태어나고 1년 후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경제가 발전하게 됩니다. 1949년에는 전제군주제가 끝나고 입헌군주제가 되면서 번영과 함께 자유를 누립니다. 이 당시 덴마크 국교 또한 국가와 함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기였습니다. 신이 주신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듯 보였던 이 나라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예레미야처럼 신랄한 독설을 퍼붓습니다.

그 시작은 이렇습니다. 마르텐센 신학교수가 민스터 주교에 대한 추모사를 쓰면서 그리스도의 사도라 극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글을 보고 즉시 반박의 글을 썼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를 위해 고난과 가난을 감내하고 순교에 이르기까지 헌신한 사람들인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을 다 누리고 죽은 고위급 종교공무원을 사도로 칭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내용입니다. 이 반박글이 나간 이후로 키에르케고르는 코펜하겐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국교 지도자들과 언론사들 그리고 시민들까지 키에르케고르를 조롱하고 야유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줄기차게 문제를 재기하고 사비를 들여 이를 신문에 게재했습니다. 결국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키에르케고르는 길을 걷던 중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 졌으나 한 달 만에 죽고 맙니다. 덴마크인들은 덴마크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성찰과 반성 없이 살다가 죽어서 기독교식으로 장사를 치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신 앞에서 단독자로 설 때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교의 훈련”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기 이 땅 위를 걸으신 것은 1,800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사건들과 같이 일이 끝나면 역사 속으로 옮겨지고, 이윽고 먼 과거의 사건이 되고, 드디어 망각 속으로 가라앉고, 마는 그런 사건이 아니다. 이 땅 위에 그분이 현존하셨다고 하는 사실은, 결코 과거지사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앙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렇다, 그렇다면, 예수가 생존하였다는 사실은, 그 즉석에서 먼 과거지사가 되고 만다. 반대로 한 사람이라도 믿는 자가 있다면, 이 사람은, 신앙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저 예수의 동시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예수와 동시에 있었어야만 하고, 또 믿는 자로서 항상 동시대에 있어야만 한다. 이 동시성이 신앙의 전제인 것이다. 보다 엄밀히 말한다면 신앙 그 자체인 것이다.”

그는 예수가 1800년 전의 죽은 역사로 머무르지 않으려면 신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신앙은 신 앞에서 단독자로 설 수 있는 믿음입니다.

 

4. 지금 믿음은 곧 바라는 것의 실체

오늘 본문에서 “믿음은”이라고 시작하고 있는데 영어성경을 보면 “Now faith”라고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입니다. 그래서 그와 대비해 믿음 앞에 지금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말하는데 헬라어로는 “휘포스타시스”, 영어로는 being 혹은 substance를 쓰고 있습니다. 즉 지금 믿음이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존재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은 바라는 것을 미래 어느 시점에 성취하거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믿음이 곧 존재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키에르케고르가 했던 말처럼 동시성으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번영신학을 가르치는 목사들은 이 믿음, 바라는 것을 자신의 욕망과 결부시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뒤로 보더라도 그런 것 과는 상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바라는 것이 실체가 된다는 것도 오늘 믿는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현존하신다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은 그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믿음 때문에 뒤따르는 물리적인 고난과 핍박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행복시대의 전도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믿음 좋지. 누가 무엇을 믿든 자유야. 난 네가 무엇을 믿든지 상관없어. 그건 너의 자유니까. 단 너의 행복을 위해 이걸 해보지 않겠니. 그리고 이걸 한번 사봐. 여기에 가보면 재미있는 것도 많아.”

저는 금욕주의나 엄숙주의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하나 믿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신자이신지 묻고 싶습니다. 예수를 바라는 믿음, 예수가 오늘 여기에 현존하고 동행하는 믿음,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믿음, 진주장수처럼 귀한 것을 모두 팔아 값진 진주를 살 수 있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여러분은 신자이고 나아가서 제자입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와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아울러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모두 신자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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