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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01 22:40

예수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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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눈물                                          눅 23:26-31,  렘 8: 20-23
      선한목자장로교회, 3/23/03
시작하는 말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님의 모습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하로 종일 대사제들과 빌라도 총독에게 심문을 받고 채찍에 얻어맞아 지칠대로 지쳤는데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자니 기진맥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다가는 넘어지고 일어섰다가는 다시 넘어지는 그의 등에 로마 군의 채찍이 사정없이 붉은 줄을 긋는다.
하도 지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본 로마 병정은 시골에서 올라오는 시몬이라는 자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다. 그 뒤를 쩔둑거리면서 따라가는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많은 군중들이  떠들썩하면서 그이 뒤따랐다. 그들 속에서 여러 가지 조롱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느님의 아들이라 더니 꼴 좋군.”  “이제라도 천군 천사를 불러다가 로마 군을 물리쳐봐!”  “랍비라고 으스대더니 네 제자들은 다 어디로 갔어!”
그 군중들 속에는 갈릴리에서 붙어 따라온 여인들이 여럿이 있었다. 저들은 비참하게 끌려가면서 조롱을 받는 예수님을 보면서 가슴을 치면서 슬피 울었다. 이 처량한 울음소리를 들은 예수님은 뒤를 돌아보시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손들을 위해서 울어라” 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의 귀에서는 그가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그 곳에 모였던 무리들이 손을 흔들면서 “십자가에 못박아요. 십자가에 못박아요!” 하고 아우성을 치던 성난 목소리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마음을 그렇게도 아프게 했다. 그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저들을 위한 것인데.  밤을 낮으로 삼아 애쓴 것이 저들에게 참된 삶의 길을 깨우쳐주기 위한 것인데. 저들이 저렇게 나를 미워하다니.
예수님의 마음을 그렇게도 아프게 한 것은 저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벌서 붙어 죽음을 각오했었다. 밀 알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50배 100 배의 열매를 맺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한 것은 저들을 그렇게 외치게 하는 그릇된 사고였다. 그리고 그런 그릇된 사고가 그들에게 가져다 줄 비참한 결과를 명확히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와 너의 후손을 위해서 울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1. 야유하는 무리들의 동기

저들은 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는가? 왜 예수를 미워하고 조롱했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저들을 배신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들은 예수님이 저들을 로마의 학정에서 구출해줄 메시아라고 생각을 했었다. 예수님이 능하신 기사와 이적으로 무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능하신 말솜씨로 바리새파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것을 보고 그야 말로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의 뒤를 따랐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도 그런 기대를 가지고 따른 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말하고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저들은 크게 실망하게 되었다. 말끝마다 사랑하라, 용서하라,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저들을 억누르는 로마를 미워해야 하는 것인데, 원수를 갚아야 하는 것인데, 비수를 들고 한풀이를 해야 하는 것인데, 무력을 길러서 저들을 무찔러야 하는 것인데 사랑이라는 마약으로 모두를 연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 그를 따르던 무리들 중에 많은 자들은 그에게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를 제거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제자 중 가롯 유다가 그를 대사제의 무리들에게 팔아 넘긴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유다와 같은 심정을 가졌던 무리들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친 것이다. 유월절마다 죄수 한 사람씩 석방해주는 전통에 따라서 빌라도가 예수를 석방하려고 하자 저들은 예수가 아니라 독립운동을 하면서 사람을 죽이기도 한 바라빠를 놓아달라고 했던 것이다.

2. 예수님의 아픔

그러나 이렇게 미친 듯이 아우성을 치는 무리들을 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아프기가 그지없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라. 출애굽 공동체가 가나안 땅에 정착을 했을 때 칼을 썼더니 주변의 있는 종족들이 더 날카로운 칼을 들고 그들에게 달려들지 않았던가. 다윗 왕이 무력으로 주변 종족들을 무찌르고 통일 왕국을 이룩했으나 아시리아나 빠벨론 제국이 일어나서 저들을 무참히 짓밟지 않았던가. 무력으로 하는 정복이 땅 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서 명확히 보았다. 그랬는데 이 무리들은 또 무력으로 로마에 항거하려는 것이다. 그 결과란 비참한 종말이다. 그것을 생각한 예수님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땅 위에 진정한 평화를 초래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진정한 평화를 초래하는 길이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 밖에 없다. 서로 가진 능력을 길러서 약한 자를 도와야 한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고 섬기면서 살았다. 따라서 그가 가는 곳마다 평화의 공동체가 창출이 됐다. 그리고 이 공동체가 겨자나무 자라듯이 자라고 누룩 퍼지듯이 확산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기득권자들은 불안해 졌다. 따라서 이 새 운동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와 같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그가 하는 일은 하느님나라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 선한 일을 하다가 죽으면 하느님께서 그 죽음을 선히 쓰실 것을 믿었기 대문이다. 그래서 그는 주저하지 않고 고난의 길을 걸으신 것이다.     
피곤한 몸으로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시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아직도 힘의 철학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무리들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이 겪어야 할 비참한 미래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란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보고 이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예레미아를 보라. 패망의 길로 가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이렇게 눈물겨운 말을 했다.

“내 머리가 우물이라면
내 눈이 샘이라면
밤낮으로 울 수 있으련만
내 딸 내 백성의 죽음을 곡할 수 있으련만“    렘 8:23

그것이 깨닫지 못하는 무리들을 보는 예수님의 심정이었다.

3. 오늘도 판을 치는 힘의 철학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 힘의 철학의 마수에서 해방이 되었는가?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서로 축복을 하면서 사는가? 빈부 귀천의 벽이 무너지고 이웃과 이웃이 서로 한 가족처럼 사는가? 모든 가정에서 힘의 망령이 사라져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이 희희낙락하게 살고 있는가? 
오늘의 세상은 여전히 힘의 철학에 사로잡힌 자들을 통해서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다.  비행기를 가로채어 세계무역쎈터를 폭삭 주저앉게 하는 테로단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들을 “악의 축”이라고 하면서 가공할만한 신예무기를 총동원해서 가차없이 저들을 침공하고 파괴하는 것을 일삼는 자들도 다 폭력의 철학에 코가 끼인 자들이다.  그밖에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폭력이 난동해서 우리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지 않는가?
일전 New York Times 에 공군사관학교에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보도됐다. 어떤 공등학교에서 수석으로 졸업을 한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아버지의 전통을 이어받으려고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두 달도 못되어 자퇴를 했다. 입학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동료 남학생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했기 때문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사관학교에 있는 여학생들은 대부분 다 이런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고하고 수치심 때문에 이를 폭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같이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겠다는 동료 학생들 사이에 이런 폭행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니 실로 한심한 일이 아닌가?

맺는 말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보시면서 마음 아파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릴 것이다. 그는 오늘도 그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힘을 가졌다고 이방 사람처럼 위로 올라가려고 하지 말고, 아래로 내려가서 형제의 발을 씻어라. 그것이 평화를 이룩하는 길이다”라고 타이르신다.
며칠 전 KBS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방영이 되었다. 목수, 기계공, 미장이, 도배하는 사람들이 팀을 만들어서 주말마다 판자촌에서 외롭게 사는 사람들의 집을 깨끗이 수리해 주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는 아기를 안은 과부, 혹은 나 많은 할머니의 글썽거리는 눈에서 나는 하느님 나라가 누룩처럼 퍼지는 것을 보았다. 이것을 보시는 예수님의 눈에는 미소가 피어났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정성껏 기르자. 그러고 이 힘을 남을 지배하는데 쓰지 말고 섬기는데 쓰자.  예수님의 눈에서 눈물을 걷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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