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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01 22:33

예수님은 생명의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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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생명의 빵    요 6: 41-51 약 2: 14-20
      선한목자장로교회, 23/11/03

시작하는 말

    5 병 2 어로  5 천명을 먹이신 다음날 다시 모여든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다 굶주려 있다는 말이다. 육신의 빵이 아니라 참 생명을 주는 영적인 빵에 굶주려 있다는 말이다.
    땅 위에는 육신을 위한 빵은 충분히 있다. 우리 육신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하느님이 이미 풍부하게 창조하셨다. 여기에서 말하는 굶주림은 영적으로 굶주림을 말한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힘있는 자나 힘없는 자나 다 느끼는 굶주림을 말한다. 이 굶주림이란 무엇인가?  예수님 만이 충족시켜 주실 수 있는 이 굶주림이란 무엇인가?

1. 의에 굶주린 자들

    마내복음서 5 장 6 절에 보면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의에 굶주리고 있는 자들은 배부를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인간을 무엇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서로를 하느님의 아들딸로 천하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아끼고 용서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인간 사이는 물론이요 우리와 하느님 관계도 올바르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기쁨과 보람으로 차 넘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자기 중심적이다. 자기 앞만을 차린다. 이웃을 천하보다 더 소중한 존재로 느끼지 못한다. 서로를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생각한다. 기업을 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직원들이란 돈 버는 일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필요할 때는 고용하나 필요가 없을 때는 쓸모 없는 부속품처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짤라버린다. 집권자들을 보라.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젊은 생명들을 주저 없이 희생시킨다. 영웅 호걸들이란 다 많은 생명들을 짓밟고 그 위에 올라선 무리들이다. 이것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귀면서도 항상 계산을 한다. 남녀 관계를 보라. 서로를 향락과 이해 관계로 계산한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남을 믿기란 그렇게도 힘들다. 모두 외로운 고도에서 산다.  믿고 내 마음을 줄 사람이 없다. 이 쓰라린 외로움이야말로 영적으로 허기진 병의 징후이다.
    이런 고독을 우리는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는 약자들에게서 흔히 본다. 이런 쓰라린 고독이 시기와 질투로 그들의 영을 병들게 하고 급기야는 그들의 육체까지 병들게 만든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수탈 당하고 짓밟힌 갈릴리 농민들에게서 본다. 그리고 오늘도 세계 방방곡곡에서 본다. 이런 외로운 싸움을 살다가 기진맥진하면 이 세상을 저주하면서 목숨을 끊는다.
    일전 한국에서 방글라데서에서 온 ‘비쿠’라는 불법 노동자기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그는 동생을 한국에 오게 하려고 천 만원을 꾸어 그것 갚기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정부는 불법 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을 시작했다. 기한이 지난 불법 노동자들은 16 일 까지 자진 출국하지 않으면 구속하여 강제 출국을 시킨다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일하던 자리에서 해고를 당한 그는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진 것이다. 동생과 더불어 품고 있던 “코리안 꿈”이 완전히 박살이 났기 때문이다.
    그 전 날 스리랑카에서 온 다라카는 한 달에 받는 100 만원 중에 80 만원을  당뇨병으로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 보내곤 했는데 “인 젠 이 이상 너에게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공장장의 말을 듣고 친구에게 “죽어도 한국에서 죽고 싶다”고 하더니 밤에 공장 안에 들어가서 목매어 죽었다. 저들은 천하에 아무에게도 호소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몰인정한 세상을 원망하면서 저들은 외롭게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이런 고독이란 수탈을 당하는 약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귀영화를 다 누리는 자들 마음속에도 있다. 밤에 예수를 찾아온 니고데모를 보라. 그는 공의회 의원으로 남이 가지지 못하는 특권을 향유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앞만을 보살피는 의원들 사이에서 기가 통하는 사람을 하나도 만날 수 없어 고도에 사는 것과도 같았다.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생을 물은 부자 청년을 보라. 모두 그를 하느님에게 축복을 받은 자라고 칭찬을 했다. 그러나 질시의 눈으로 쳐다보는 가난한 자를 만날 때마다 그의 마음은 선득하기만 했다. 그리고 삶의 허전함을 느꼈다.
    뽕나무 위에 올라가 가까이 오는 예수를 바라본 사깨오의 마음을 생각해 보라. 사정없이 세금을 거두어 치부는 했으나 말할 수 없는 고독이 그의 마음을 좀먹고 있었다. 아무도 그의 친구가 되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자살을 한 한국의 거부 정몽헌을 보라. 아버지의 유업을 받아 북한의 경제까지 한 손에 넣을 수 있은 그가 자살을 했다. 그에게는 그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었다.  땅 위의 모든 영웅 호걸들이 다 이런 고독을 짓씹으면서 살았다 이렇게 인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다.

2.  하느님에게서 온 생명의 빵

    이런 허기진 인류의 삶을 다시 소생시켜 줄 수 있는 것이란 딱 한 가지다. 그것은 창조주의 무한한 사랑이다. 그의 사랑의 영이 우리를 감쌀 때 우리들의 허기짐이 가신다. 그리고 우리는 기쁨에 찬 하늘 나라의 잔치를 맛보게 된다. 이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경험할 수가 있을 까?
    춥고 어두운 시베리아에 산 우리 선조들은 이것을 봄이 되어 꽁꽁 언 동토를 녹이고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따뜻한 태양에서 느꼈다. 이 태양이야말로 모두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의 근원이라고 보아 이에 감사하면서 서로 사랑하면서 살았다. 히브리인들의 선조들도 꼭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느님은 햇빛을 선인과 악인들에게 골고루 내려 주신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인간은 날로 더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서 이 하느님의 사랑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모두 자기 앞만 가리다가 마음이 둔해져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영의 세계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감각하게 되었다. 이런 인류이게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깨우치시려고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다. 이 일을 이룩하시려 오신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빵”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왜 자신을 빵이라고 하셨는가?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하시지 않으시고 그 흔해빠진 빵이라고 하셨는가? 그것은 사랑이란 물질적인 것을 통해서 전달이 되기 때문이다. 말로 사랑한다고 해서 사랑이 통해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사랑으로 전할 때 그것을 통해서 사랑이 전달된다. 야고보 인서를 보라. 헐벗고 먹을 것이 없는 이웃을 향해서 가서 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고 잘 쉬시오 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묻는다. 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에서 사랑이 표현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우리들에게 필요한 구체적인 것을 공급함으로 전달이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라는 것은 그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들의 삶에 필요한 것을 주심으로 우리들의 삶에 넘치는 생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배고픈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병든 자들에게 건강을 주시고 외로운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사지에 처해 있는 자들을 건져주심으로 그들의 삶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어주셨다. 이것을 “빵”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사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성육신이라는 말이 바로 이것을 말한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가 보고 만지고 더불어 주고받을 수 있는 육체를 입으셨다는 말이다.

3. 의에 굶주린 자 만이 사랑을 느껴

    그런데 예수님의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그 빵을 얻어먹었음에도 불고하고  예수님이 자신을 그 생명의 빵이라고 하자 “우리가 어떻게 예수를 먹는다는 말인가?”하고 반발을 했다. 예수님의 삶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들은 물질적인 것에 사로 잡혀서 영적인 것은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탐욕으로 눈이 멀어서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사랑은 느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저들은 영적으로 빈곤하면서도 부한 줄로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다 자족한 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자처하고 있다. 따라서 새삼스럽게 하느님의 의를 구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에 갈릴리의 한 많은 떠돌이들은 굶주려 있었다. 배고프고 병든 저들은 하느님의 의를 갈망하고 있었다. 자기들도 하느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일용할 약식에 걱정할 것 없이 서로 위하고 아끼는 삶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 저들은 예수님이 몸으로 섬기는 삶에서 무한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다. 그 사랑에 감격해서 기쁨에 찬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의에 굶주린 자 만이 예수님을 생명의 빵으로 받아드리고 감격을 한다. 

맺는 말

    이제 우리는 스스로 반성을 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정말 의에 굶주린 자들인가? 그래서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이에 감격하는가? 아니면 자족한 자들인가. 그가 우리들의 생명의 빵이라는 말이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인가? 
    만일 예수님의 삶이 우리의 생명의 빵이라는 것이 감격스럽게 느껴진다면, 그래서 우리들의 삶에 기쁨과 보람으로 충일 하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한 새로운 사명을 주신다.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생명의 빵이 되라고. 우리 주변에 있는 한 많은 무리들에게 우리를 사랑으로 주라고. 의에 굶주린 무리들에게 생명의 빵이 되라고. 그래서 그들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늘 나라 잔치에 참여토록 하라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생명의 빵

1. 이 세상은 생명의 기근-하느님의 사랑만이
2. 하느님의 사랑은 빵으로
3. 기근을 느끼는 자만이
4. 주변에 기근을 느끼는 자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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