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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편 창조이야기

7. 맨 처음에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이     
  -잘못된 것에서 바로 된 것을 창조-
                    창세기 1:1-6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는 질문

1. “창세기”라는 책이름의 뜻은?
2. 창세기는 모두 몇 장이고 그 중 창조에 대한 말은 몇 장에 나오는지?
3.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우주의 생성과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천지창조는 같은 것?
4.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는 말이 있는데, 창세기 1장과 2장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5. 창1:2절과 창2:4-5절에 보면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무엇이 있었다고?
6. 하나님은 지금도 계속해서 창조하시는 것인지?
7. “육일간의”창조 이야기도 창조과정의 진행을 말하는 것이 아닌지?
8. 궂은일과 좋은 일 어느 것을 먼저 체험하는 것인지?
9. 지금 불행스러운 일을 체험하고 있다고 합시다. 성  경의 창조 이야기에서 말하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씀일까?

“창세기”? 

“창세기”라는 책이름에 대하여 생각해 봄이 도움이 되겠습니다. “창세기”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세상 창조에 대한 책”이라는 뜻으로 보게 됩니다. 주일학교 시절을 지난 다음 과학 교과서를 접하면서부터는 성경 이야기와 과학적인 설명이 서로 다른 데서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아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답니다. 아들 대답이 “학교에서는 우주 생성과정에 대해서 진화론을 배웁니다. 그런데 성경에 쓰여 있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이 틀렸으니, 성경을 글자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주입시키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는데, 성경 이야기의 본뜻을 바로 이해하고 하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성경 이야기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과학교과서가 옳고, 성경 이야기가 틀렸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과학교과서 설명이 옳다는 말은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과학 교과서도 수정되어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야기가 틀렸다고 하는 것은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모르고 하는 말인 것입니다.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바로 깨치고 나면 과학교과서의 설명도 맞고, 성경 이야기도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 이야기의 본뜻을 모르기 때문에 과학이 틀렸다는 완고한 입장과, 성경이 틀렸다는 천박한 입장이 불필요하게 대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이 책이름이 잘못 번역된 데에도 있다고 봅니다. “창조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인 “창세기”라는 이름에서,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생성과정을 기록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관이 창조 이야기의 본뜻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됩니다. 

책 내용을 대충 점검해 보십시다. 우선 이 책이 1장에서 시작해서 몇 장까지 있는지 보십시오. 50장까지입니다. 50장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주 생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요셉이야기의 마감 부분입니다. 40, 30, 20, 10, 3장까지 소급해 가면서 보면 3장에서 50장까지 한 장도 우주 창조에 대한 것은 없습니다.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 1장과 2장 첫 부분에만 조금 나올 뿐입니다. 나머지 50장에 걸친 긴 이야기는 “창조”이야기가 아니고, 인간이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범하는 불완전한 존재였다는 이야기, 이마에 땀을 흘려야 연명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이야기, 홍수와 무지개 이야기, 바벨탑 이야기, 아브라함에서 이삭에 이르는 동안의 정착과정에 있었던 잘못에 대한 이야기,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인 잘못에 따른 이야기,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배다른 형들이 동생 요셉을 죽이려다가 노예로 팔아버린 후 극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등이 전체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맨 처음에(태초에)

이 책이름을 우리말로 바로잡는다면, “태초에” 또는 “맨 처음에”라고 함이 더 좋을 것입니다(책이름으로는 흔히 “모세 오경의 첫 책,” “율법서의 첫 책”이라고도 합니다). 영어로 “Genesis”라는 말은 “기원”이라는 뜻으로, 창세기1:1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 하셨던 그 맨 처음(태초)에, 땅은 혼돈하고...”라는 데서 “처음에”(“태초에”)(“In the Beginning”)라는 말을 딴 것이지, “창세기”(“The Book of Creation”)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곧 “창세기”는 그 이름과는 달리 우주가 어떻게 생겼다는 우주 생성과정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서가 아닙니다. 맨 처음부터, 또는 태초부터 인간이 처한 환경은 잘못 되어 있었고(혼돈, 공허, 어두움 등의 표현대로), 인간도 맨 처음부터 잘못 된 불완전한 존재였다는 이야기를 담은 책인 것입니다.
   
두 단계의 창조

흔히 창세기 1장 이야기를 “없는 데서 있는 것을 창조한” 이야기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야기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선입관과는 다른, 그 이상의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전 번역의 내용 (1)

1절과 2절 번역에 종전 번역과 새로운 번역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국어 번역은 다 종전 번역을 따르고 있습니다. 종전 번역은 창세기 1장 1절과 2절을 두 문장으로 나눠서 보는 번역입니다.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하늘과 우주)를 창조하셨다”이고, 2절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두움(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위(수면)에 움직이고 계셨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종전 번역을 따른다면 그 내용을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한 가지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한 1절을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천지를 창조하신 것이라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첫 단계의 창조라고 하겠는데, 이 첫 단계의 창조를 어떤 절차를 거쳐서 하셨는지에 대한 말은 없고, 다만 이 첫 단계로 창조된 천지가 어떤 상태였는지에 대해서 2절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고 어둠이 깊음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위에 움직이고 계셨다”라고 설명해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2절에서 묘사된 혼돈 상태의 것에서 엿새 동안에 둘째 단계의 창조 과정(3절에서 31절까지 써있는 대로)을 마치셨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해가 이미 성경에도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의 일은 이러하다. 주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실 때에, 주 하나님이 땅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땅에서 물이 솟아나서, 온 땅을 적셨다”(창2:2-6)라고 했습니다. 곧 사막과 같은 첫 단계에서 그 다음 물댄 동산과 같은 둘째 단계로 창조 과정이 진행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종전 번역의 내용 (2)

2) 다른 한 가지 해석은 보통 있는 해석인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1절은 2절과 3절 이하의 모든 창조 과정에 대한 머리말처럼 보는 이해입니다. 곧 1절의 말은 3절 이하에서 말하는 엿새 동안의 모든 창조과정을 두고 하는 머리말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둘째 해석에서도 창조 과정에 두 단계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곧 2절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위에 움직이고 계셨다”라고 한 첫 단계의 상태에서 3절 이하의 상태로, 곧 엿새 동안 창조된 둘째 단계로 진행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 번역의 내용

최근에 나온 새로운 번역에서는 이 1절과 2절이 두 문장이 아니고 한 문장으로 번역할 수도 있는 것으로 원어에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두 절을 한데 붙여서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우주)을 창조하셨던 그 맨(한)처음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형체가 없고 아무 것도 없어 황량했고), 어두움이 깊음 위를 덮고 있었는데, 물위에는 하나님의 바람(영)이 휘돌고 계셨다”

[참고로 새 개역 표준 영어 성경을 (NRSV) 보면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In the beginning when God created the heavens and earth, the earth was a formless void and darkness covered the face of deep, while a wind from God swept over the face of the waters.]

종전 번역을 따르든 최근 번역을 따르든 엿새 동안에 모든 것(빛, 낮과 밤을, 윗물과 아랫물, 하늘, 바다와 땅, 땅위의 식물, 별과 해와 달, 물속의 생물과 하늘과 땅에 새와 동물과 곤충을,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이미 “혼돈한 땅” 또는 “형체가 없고 아무 것도 없어 황량한 땅”과, “어두움 밑에 있는 깊음 또는 깊은 물,”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휘돌고 있는 그 밑에 있는 물”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에서의 창조”?

그래서 이 창조 이야기에서는 그저 단순히 “무에서 창조하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였는데 어떤 상태로 창조과정을 진행시켰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곧 엿새 동안의 창조 이전에 이미 땅이 있었는데, 혼돈하고, 또는 형체가 없고 아무 것도 없어 황량함이 마치 금성의 표면과 흡사한 것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금성 이야기와 다른 점(금성에도 물이 있었지 않았는가 하고 가능성을 묻기도 합니다마는)은 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있었던 이 물이 윗물과 아랫물로 갈라졌고(창1:6), 하늘 아래 있는 물이 다시 한 곳으로 모여 땅이 드러나고 바다가 되었다(창1:9)고 쓰여 있는 것입니다.

첫 단계의 불완전한 혼돈과 어두움의 상태에서 둘째 단계의 보다 나은 상태로 창조가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해서 첫 단계의 창조에서 둘째 단계의 창조로 창조과정을 “진화시키셨다”고도 말할 수 있도록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창조이야기는 없던 식물과 생물을, 없던 해와 달과 별 등을, 그리고 없던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뜻으로 무에서의 창조라고는 할 수 있지만,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이런 것들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없던 사람도 이미 있던 흙을 빚어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무에서의 창조”라는 교리는 (the doctrine of creation out of nothing)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의 “절대권”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데 대해서는 다음 9.“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캐나다 연합교회 새 신조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는 고백에서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계속 창조하시는”(We believe in God: who has created and is creating)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이 창세기 1장의 내용과도 맞는 고백이라고 하겠습니다.

과학적 설명도 기원신화도 아님

성경의 창조이야기는 과학이 규명하려는 우주의 생성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이 이야기의 본뜻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것을 어떤 사람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써 놓은 기록인 것처럼 읽으면(historical narration), 이 이야기의 본뜻을 바로 알 수가 없게 됩니다. 모든 성경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이 창조 이야기도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다가 지금과 같은 내용의 글로 쓰인 것은 바벨론 포로 시대였다고 합니다. 겨우 2,500여 년 전에 쓰인 것입니다. 이런 포로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쓰인 이 이야기에는 혼돈에서 질서를, 어두움에서 빛을 갈망하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고, 공포에서 신뢰를 찾는 창조주 신앙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은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을 다스리셔서 생명을 키워주시고 보존해 주시는 분이시고, 전에 없던 보다 나은 새 환경을 창조해 주시는 분이라는 신앙이 담긴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 신앙인 것입니다.

모든 문화권에 만물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기원신화가 있습니다. 성경의 이 창조이야기도 하나님이 창조과정의 기원이라고 (source of creative process) 믿는 신앙이 담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의 “창조”이야기가 기원신화와 다른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물 창조과정과 인간 창조 과정 이야기에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곧 만물창조 과정은 다 “말씀으로” 이루셨다(창1장)고 한데 반하여 인간 창조는 “말씀으로” 이루셨다고 하지 않고, “흙을 빚어” 만드셨다는 또 하나의 다른 창조 이야기(창2장) 로 초점이 옮겨진 점입니다. 곧 모든 창조 과정이 “말씀대로” 이루어졌는데 반하여, 인간만은 말씀대로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점입니다. <이점도 다음 9.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과 창조말씀(1)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장의 창조 이야기는 앞에서 말한 대로 우주 생성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기록으로 보아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일종의 기원신화처럼 보아서도 안 되고, 창세기 2장과 3장에 이어지는 인간창조 이야기의 독특한 뜻과 함께, 곧 인간은 말씀대로 창조되지 못했다는 시각에서 읽어야 성경의 창조이야기의 성경다운 본뜻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혼돈과 어두움을 다스려 질서와 빛을

“혼돈” “어두움”등의 표현들은 사람에게 “두려움”을 일으키는 불안전한 삶의 현장을 말합니다. 삶의 현장은 맨 처음부터 언제나 늘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1절에 나오는 “물”이라는 말도, “혼돈”이나 “어두움”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파괴적인 힘을 뜻합니다. 노아 홍수 이야기에 나오는 물도 마찬가지 뜻입니다.

집에 불이 나는 경우 불도 파괴적인 힘을 행사하듯, 물이나 불 등 자연계의 모든 것은 다 두 가지 상반되는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다스려서 사용될 때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되지만, 다스려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람을 해치는 파괴적인 힘으로 나타납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영은 물위에 있었다”(창1:2)는 말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아직 다스려지기 이전 상태, 곧 파괴적인 힘으로 있던 상태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의 땅, 어두움, 물을 향해서 “빛이 생겨라”(창1:3절),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창1:6), “하늘 아래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을 드러나라”(창1:9),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창1:11), “물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창1:22)고, 명하셨다는 말은 다스려지기 이전 상태의 파괴적인 것들을 하나님이 다스리셔서, 생명을 키워주고 보존해 주는 것이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런 창조과정이 여섯 단계로 진행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어두움에 빛이, 그리고 낮과 밤이,
2) 물을 윗물과 아랫물로 갈라지게 하고 그 사이에 하늘이,
3) 바다와 땅이, 땅위에 식물이,
4) 땅을 비추는 별들과 해와 달이,
5) 물속에 생물이, 하늘과 땅에 새와 동물과 곤충들이 생겨나게 하셨고,
6) 사람을 만드셨다고 되어 있는데(창1:3-31),

이런 창조절차가 끝날 때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셨다는 것도 이렇게 다스려지기 이전의 파괴적인 힘의 상태가 생명을 키워주고 보존해 주는 다스려진 상태로 되는 것을 보시면서, “좋다”고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8.“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불행스러움에서 행복스러움을

우리의 삶에 좋은 일이 먼저 있다가 후에 궂은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아니면 반대일까요? 다시 말해서, 행복스러운 일이 먼저 있다가 불행한 일이 후에 생기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사람마다 체험이 다르고 생각도 달리 할 수 있겠지만, 흔히는 행복한 일이 먼저 있다가 불행한 일이 나중에 따르고, 좋은 일이 먼저 있다가 궂은 일이 나중에 따른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볼 때는 처음에 행복하게 살던 사람도 나중에 불행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로 여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체념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성경의 “창조”이야기에서는 “맨 처음에 혼돈과 어두움이”있었고, 하나님은 바로 여기서 창조를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혼돈에서 질서를, 어두움에서 빛을 창조하시기 시작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불행한 일에서 행복한 일을 창조하시고, 궂은일에서 좋은 일을 창조하시는 분이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곧 먼저 행복이 있었는데 다음에 불행이 따랐고, 처음에 좋은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궂은 일이 따랐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순서를 바꿔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점이 성경의 창조주신앙과 기원신화와 다른 점이겠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나오는 성경 이야기에서도 보면 처음에 인간 타락이 있었고, 처음에 형제 살인이 있었고, 처음에 “홍수” 심판이 있었고, 처음에 바벨탑 허물어짐이 있었고, 처음에 바벨론 포로가 있었고, 처음에 이집트 노예 생활이 있었던 것으로 해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혼돈과 어두움의 상태에서 없던 질서를, 없던 빛을 창조하신 것처럼, 지금 불행에 빠져있다면, 바로 여기서 시작해서 없던 행복을 창조하려는 것이 이 성경이야기가 말하는 창조주 하나님 신앙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불행 속에서 아직 보이지 않은 행복의 상태를 내다보는 믿음으로, 불행에 대응해서 없던 행복을 창조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궂은일 속에서 아직 보이지 않은 “좋다”는 상태를 내다보는 믿음으로, 궂은일에 대응해서 없던 “좋은 일”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 구약성경의 “창조”이야기에 담긴 창조주 하나님 신앙인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맞으면서도 없던 영원한 삶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 신약의 창조주 하나님 신앙인 것입니다.

창조 이야기를 보지 않고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 이야기만을 따로 보면, 행복이 먼저 있었고, 불행이 나중에 따른 것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만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부의 행복이었고, 이 조건을 어길 때는 반드시 죽는다는 불행을 내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는 모든 인간에 적용시켜 보면, 에덴동산의 행복을 체험한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고, 에덴동산에 내려진 저주를 받은 후에 태어난 인간이 있을 뿐입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바로 저주받은 생태에서 불행을 먼저 체험하게 되는 인간이 어떻게 행복을 창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로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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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범식 2003.08.21 17:51
    목사님, 창세기에 관한 목사님의 enlightening 한 글 감명 깊게 읽고 있습니다. 목사님 글에 이어 별로 깊이도 없는 저의 생각을 말씀 드리는 것은 주제 넘는 짓이지만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어 써 올립니다. 저는 창세기의 핵심은 "God is the creator"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세계의 많은 종교에서 우선 creation에 대해 묻고 그 다음 바로 하느님이 creator 다 라고 한 종교는 Hebraism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기독교) 밖에 없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God is the creator"라는 사상은 Hebraism 의 foundation이고 거기서 자연히 하느님은 유일 하다는결론도 나오고 우리 인간도 하느님이 창조하셨다느 믿음이 나오는게 아닌가생각합니다. 창세기 1 에 나오는 그밖의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중요한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구구 절절 글자 하나하나씩 그대로 해석하면 무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다가 사슴 쫏는 사냥꾼이 산을 못 보는 격이 되겠지요. 어둠과 빛, 해와 달과 별, 하늘과 땅과 바다, 새들과 짐승들, 그리고 인간, 이런 것이 구약성경을 엮을 당시의 히부리 사람들에게는 우주의 전부였겠지요. 몇 천년에 걸처 인지가 발달되며 하느님의 창조물이 그밖에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고있는 인간들에게는 얼른 수긍이 가지 않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어떤 한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dichotomy 를 고집하면 알력만 생기고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겠지요. 한편 어느 한 구절이 수긍이 가지 않는다 해서 "God is the creator"라는 명제를 포함해서 창세기 전채를 부인한다면 그것도 위험한 짓이겠지요. 하느님이 창조주이시며 창조는 어둠에서 빛이 생기게 하는데에서 시작한다는 Hebraism은 참으로 월등한 사상이라고 강조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객담 입니다만 Bertrand Russell은 first-cause 즉 creation 에 대해 묻지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글의 저반 입니다. 후반은 목사님 다음 강좌 아래에 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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