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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룻기”이야기
  -“도중하차”식 성경해석의 문제 (예2)-
                      룻기 1:-4: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는 질문

1. 룻기 이야기에서 주역은 누구누구? 룻만이 이 이야    기의 주역?
2. 룻기는 모압 지방을 무대로 한 이야기(1장 1-18절)와 베들레헴을 무대로 한 이야기(1:19-4:22) 둘로 나누어지는데, 등장하는 인물이 어떻게 변하는지? 첫 이야기와 둘째 이야기에서 다루는 문제의 차이는?
3. 첫 이야기에 두 며느리에 대한 말이 나오고, 후반    부에서 두 친족에 대한 말이 나오는데, 여기 비슷한 점은?
4. 룻기에서 여인에 대한 구절(1:1-18)만을 본문으로 삼고 해설하는 설교(성경해석과)와 율법대로 행한 보아스에 대한 이야기까지(1:19-4:22)를 함께 보고 하는 설교(성경해석)에 차이가 있을까? 없을까? 있다면 어떤 차이?
5. 보아스 없이는 룻이 아들을 낳을 수 없었을 텐데,    왜 보아스에 대한 말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것이 통례일까? (이 이야기를 룻의 이야기라고 하기보다는 룻과 보아스 이야기라고 봄이 옳지 않을까?)

성경에 나오는 과부 이야기 둘

성경에 나오는 과부에 대한 이야기의 대표적인 것은 구약 룻기에 나오는 여인 나오미, 룻, 오르바에 대한 이야기이고, 신약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로 한 여인이 성전에서 헌금하는 것을 예수님이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대목입니다. 룻기 이야기는 3,200여 년 전 이야기이고, 복음서 이야기는 2,000여 년 묵은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가 시대적으로는 1,000년 이상이나 떨어진 이야기인데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쉽게 알 수 있는 공통점은 둘 다 과부의 아름다운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는데, 이 점은 쉽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두 이야기의 본뜻도 바로 보지 못하기 쉽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시모와 며느리의 아름다운 마음씨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배경은 이러합니다. 고향 땅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어, 나오미라는 여인이 남편을 따라 모압 땅으로 잠시 피난 갔었는데, 남편이 죽습니다. 남은 두 아들을 홀로 키워서 모압 여인과 결혼시켰는데, 10 년쯤 산 다음 두 아들마저 죽습니다.

남은 세 과부가 살아갈 길이 막막하게 되었는데, 마침 이때, 고향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문을 듣고, 모압 지방을 떠나 고향으로 갈 채비를 차립니다. 두 며느리도 함께 길을 떠납니다. 도중에서 시어머니는 과부가 된 며느리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저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서 새 남편을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라고 타이릅니다. 그러나 저들은 울면서 어머님의 겨레로 함께 돌아가겠다고 나섭니다. 그러자 시모는 다시 저들이 돌아가야만 할 사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들아.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려고 하느냐? 아직, 내 뱃속에 아들들이 들어 있어서, 그것들이 너희 남편이라도 될 수 있다는 말이냐? 돌아가 다오, 내 딸들아. 제발 돌아가거라. 재혼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늙었다. 설령, 나에게 어떤 희망이 있다거나, 오늘 밤 내가 남편을 맞아들여 아들들을 낳게 된다거나 하더라도, 너희가, 그것들이 클 때까지 기다릴 셈이냐? 그 때까지 재혼도 하지 않고, 홀로들 지내겠다는 말이냐? 아서라, 내 딸들아. 너희들 처지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너무나 괴롭구나. 주께서 손으로 나를 치신 것이 분명하다”(룻기1:11-13).

과부인 시어머니가 과부된 며느리들의 사정을 알고 하는 말을 듣고, 한 며느리 오르바는 눈물로 작별 인사를 드리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다른 며느리 룻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시모는 다시 권합니다. 동서처럼 자기 겨레와 신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러나 룻은 듣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 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 나오미는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을 보고,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고 합니다(룻기1:16-18).

룻이 이방 여인으로서 시모의 고향으로 가려고 결단한 일은 고생과 희생을 각오한 일이었습니다. 모압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있었기 때문입니다(창19:30-38에 보면 롯이 소돔이 멸망할 때 피신하는 중 부인을 잃고 산속에 숨어 살았었습니다. 이 때, 그의 딸이 취중인 아버지와 동침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그가 모압인의 조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모압인을 낮춰보는 고사였을 것입니다).

시모에 대한 룻의 사랑은 종교와 민족의 차이를 넘는 것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시모의 고향 베들레헴에 도착한 다음에도 룻이 이삭을 주어다가(요즘말로 표현해서 먹을 것을 얻어다가) 시모님을 공경하는 그 정성은 소문날 정도였답니다. 과부가 된 시모와 며느리의 미덕을 칭송할 만한 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성경에서 쓰이는 “과부”라는 말의 뜻

성경에서 “과부”라는 말은 “홀로 된 여인”이라는 말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고아”나 “나그네”등과 함께 쓰이는 말로, 의지할 데 없는 사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 다 끊긴 사람,” “가장 작은 자”와 같은 뜻을 갖는 말이었습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가장 작은 자들에게 인간의 아름다운 참 모습이 남아 있음을 말하는 장면이라고 하겠습니다.

과부의 미덕을 칭송하는 이야기?

그래서 우리는 이 이야기가 과부의 미덕을 찬양하는 이야기이면서 이런 미덕을 본받아야한다는 교훈을 담은 이야기라는 정도로 기억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하는 설교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 이야기 마감에 이방 여인 룻이 다윗의 조모가 되었다(룻4:17, 22)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 저들의 아름다운 마음가짐과 행동에 하나님이 크게 상을 주신 것으로만 이 이야기의 뜻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런 해석은 룻기 1:19 이하 4장까지의  긴 이야기는 보지 않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을 해 보십시다. 이 이야기(다음에 볼 마가복음의 이야기도)는 이런 미덕을 본받아 그렇게 살라는 뜻 만일까? 아니면 더 중요한 다른 뜻은 없을까요? 다음에 볼 마가복음의 헌금 이야기와 함께 이 두 이야기에는 성경의 핵심이 담겨있기 때문에, 이 질문은 성경 이야기 해석에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도중하차”식 성경해석

이 이야기들을 과부의 미덕을 칭송하기 위한 것만으로 보고 여기서 끝내버리는 성경해석은 목적지에 이르기 전에 하차해 버리는 “도중하차”식 성경해석으로 잘못 된 것입니다. 또는 이야기가 왼손에서 시작해서 오른손에 가서 끝이 나는 것인데, 왼손에 있는 것까지만 보고, 오른손에 있는 것은 보지 않고 해석하는 “반쪽” 해석으로 잘못 된 것입니다.

무대를 달리한 두 이야기의 주역과 주제의 차이

이 이야기 시작(룻1:1-18)에 고향에 기근이 들었다든가, 외지에서 남편과 아들들이 죽었다든가 하는 말은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되는 어려움을 뜻하는데, 이런 어려움을 당사자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문제가 이 이야기의 줄거리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이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1장 19절에서 4장 끝까지의 긴 이야기는 이런 어려움에 당사자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문제만이 아니고, 이런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신앙공동체가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야기 시작에서는 기근을 피해간 곳에서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남편들을 잃고 삶의 길이 막히는 어려움 속에서 서로를 위하는 세 과부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세상 어디서나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첫 이야기에서

1) 이방 여인 룻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높이 들어 올리면서,
2) 살 길이 막힌 과부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둘째 이야기에서는

1) 이방인을 천시하고 자신들을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곧 이방인 룻과 맞먹는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이 선민이라는 사람들 중에도 있는지를 대조시켜보게 하는 내용이면서,
2) 살길이 막힌 작은 자를 선민이라는 백성들은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대가 바꿔지고 다루는 문제가 달라지면서 등장하는 배역들도 달라집니다. 가장 가까운 친족들 중 룻을 첫째로 책임져야할 사람과 그 다음으로 가까운 친족인 베들레헴의 지주 보아스라는 사람이 중요한 역을 맡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사실을 간과하기가 쉬운 것은 이 이야기에서 주역은 룻이라는 선입관 때문이겠습니다. 주역은 룻과 보아스인 것입니다. 보아스가 룻을 어떻게 대했느냐 하는 대목까지 읽어야 이 이야기의 핵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백성들이 나오미와 룻과 같이 의지할 곳 없는 가장 작은 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이 이야기의 중요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려움에 처한 약자를 대하는 길

세상이 룻과 같은 신세에 처한 작은 자를 대하는 방식에 세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길입니다.

(1) 사람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그와 관련된 재산에만 관심을 두는 길입니다. 친족 중 한사람은 룻과 관련된 그 가문의 재산에는 관심을 보였으나 룻의 장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려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룻4:4-6).

(2) 경제적인 이익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길입니다. 이    삭을 주울 수 있을 만큼 노동력이 있는 룻을 가까운 친족인 지주 보아스가 헐값의 종으로 착취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3) 성욕의 대상으로 이용하는 길입니다. 나오미는 이    미 나이 늙어 아무 “소용”도 없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나, 룻은 아직 젊은 여인이었습니다. 타작마당에서 밤에 잠든 보아스 발치에 룻이 그의 몸을 눕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그 지주가 그녀를 성욕의 대상으로만 삼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두 며느리와 두 친족의 언행을 대조시킨 이야기 형식

모압 지방을 배경으로 한 첫 이야기에서 두 며느리의 행동을 대조시켜 이야기했었습니다. 한 며느리 오르바는 의지할 곳 없이 된 시모 나오미의 미래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길을 택합니다. 오르바가 잘못한 바는 없습니다. 시모의 간청대로 행한 것이었고, 당시 관례법대로 행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베들레헴을 배경으로 한 둘째 이야기에서도 두 친척의 행동을 대조시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친척은 룻의 장래를 책임지는 일은 거절합니다. 거절 할 수도 있는 일이어서 그렇게 한 것으로, 관례법상 못할 짓을 한 것은 아닙니다.

첫 이야기에서 룻은 시모의 미래를 책임지는 헌신의 길을 택했다고 했는데, 사회법이 그러라고 해서가 아니고 자기 마음의 법을 따른 것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둘째 이야기에서 보아스도 두 과부의 연명에 필요한 곡식을 얻는데 최대의 편의를 보살펴 주었고, 절차를 밟아서 미래를 책임지는 혼인을 하고 아내로 맞았다고 합니다. 다른 친족이 마다한 일을 보아스는 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친족처럼 그도 이 일을 거절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다는 법조문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그도 룻처럼 자기 마음의 법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율법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율법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

모세님이 시내 산에서 계시 받은 십계명과 기타 하나님의 법을 선포하는 중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 율법조문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 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 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너희는 과부나 고아를 괴롭히면 안 된다. 너희가 그들을 괴롭혀서,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반드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겠다. 나는 분노를 터뜨려서, 너희를 칼로 죽이겠다. 그렇게 되면,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될 것이며, 너희 자식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 ... 너희가 너희 가운데서 가난하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꾸어 주었으면, 너희는 그에게 빚쟁이처럼 재촉해서도 안 되고, 이자를 받아도 안 된다. 너희가 정녕 너희 이웃에게서 겉옷을 담보로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가 덮을 것이라고는 오직 그것뿐이다. 몸을 가릴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는데, 그가 무엇을 덮고 자겠느냐? 그가 나에게 부르짖으면 자애로운 나는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출22:20-27).

하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어야

룻과 보아스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나님도 하나님으로서의 일을 하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없이는 하나님은 일을 하실 수 없다는 점입니다.

보아스가 룻을 처음 만났을 때, 다음과 같은 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룻은 엎드려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하면서, 보아스에게 말하였다. ‘저는 한낱 이방 여자일 뿐인데, 어찌하여 저 같은 것을 이렇게까지 잘 보살피시고 생각하여 주십니까?’ 보아스가 룻에게 대답하였다. ‘남편을 잃은 뒤에, 댁이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자세히 들어서 다 알고 있소. 댁은 친정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고, 태어난 땅을 떠나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알지 못하던 다른 백성에게로 오지 않았소? 댁이 한 일은 주께서 갚아 주실 것이오. 이제, 댁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룻2:10-12).

여기서 “하나님께서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라고 한 그 일을 보아스가 행하지 아니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대신 보아스가 “넉넉히 갚아 주시는 일”을 행했기에 하나님의 뜻이 이뤄졌고, 룻과 보아스가 구세주님의 선조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모세율법의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말씀은, 공동체의 성원들이 약자든 강자든, 공동체가 그 성원들의 안녕을 위한 하나님의 마음을 실천하라는 것인데, 보아스라는 지주가 룻을 사람답게 대했고, 사람으로서의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맞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삼등 인생과 같은 룻을 “아들 일곱보다 나은 여인”(룻4:15)이라고 할 만큼 높은 위치로 올려놓았을 뿐 아니라, 다윗 왕의 조상이 되었고, 예수님의 계보에 선조가 되게 함으로, 그 공동체에 구세주가 올 수 있게 하는 일을 보아스가 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약자의 희생만이 아니고 강자의 헌신과 사랑도

룻기 이야기를 그저 효성이 지극하고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 과부를 하나님이 크게 상을 주셨다는 식으로 넘겨버리는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하나님이 상을 주셨다는 말을 할 때, 하나님은 보아스와 같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시기를 바라신다는 말을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자의 정성만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고, 강자의 헌신도 요구하시는 분이시라는 이야기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약자의 희생만으로 하나님의 상이 주어지지 못합니다. 그에 상응하는 강자들의 책임적인 행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약자들이 아름다운 정성을 바치는 것에 못지않게, 강자들도 가진 힘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약자와 강자가 사랑의 혼인을 할 때에 탄생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룻기 이야기인 것입니다.
  • ?
    유현숙 2004.04.29 11:08
    이번 말씀의 마지막 부분 처럼 ,의로운 이들의 희생이 요청되는 사회가 아니고 그런 희생이 필요없는 사회를 위해 저희 밴쿠버 한인연합교회에서 8년이나 저를 깨워주시던 목사님을 불현듯 생각합니다. 그리고 끝의 기도를 드리시는 목사님의 꿈꾸시는 천국 이 언제쯤 이루어 질까요? 저희들 마음에 심으신 꿈과 말씀들이 언제쯤 이루어 질까요. 무디어진 저를 번쩍 깨워주셨습니다. 오늘도 잠자던 영혼을 흔드시는 귀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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