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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바벨탑 이야기
    -힘과 혼돈-        창세기 11:3-9(8:21)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는 질문

1. “홍수”심판 후 하나님이 새 세상을 위한 언약을 세우시고 “무지개”로 그 표를 삼으신 것은 앞으로 인간이 악을 범하지 않는다는 보증이 있어서 하신 것?
2. “바벨탑”은 저절로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져서 허물어졌을까? “바벨탑”을 세우는 일에서 혜택을 입지 못할 뿐 아니라,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항거에 의해서 허물어졌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으로 상상해본다면?
3. 무지개를 표로 해서 언약을 세우신 후의 새 세상은 무지개처럼 아름답고 에덴동산과 같이 행복스러운 세상이 되었을까? 사람들도 새 사람이 되었을까?
4.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창11:4)는 사람들의 계획을 하나님이 막으셨다고 했는데, 그 까닭이 무엇일까? 이런 계획이 왜 잘못이라는 것일까?
5. 사람들의 계획을 저지하시기 위해서 “하는 말을 뒤    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하시고,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창11:6-8)고 했는데, 온 인류가 서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언어가 통일되고, 온 세상이 하나로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말일까? 언어와 문화가 서로 다른 민족국가들의 난립에 따른 “혼돈”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일까요?
6. “바벨탑”은 무엇을 상징하는 말일까?
7. 근세역사에서 “바벨탑”이야기와 흡사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로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 이런 일에 대해 이 성경 이야기가 보여주는 뜻은 무엇일까?

새 세상에도 폭력이

“홍수”심판 후 하나님께서 새 세상을 위한 언약을 세우시고 “무지개”로 그 표를 삼으신 것은 앞으로 인간이 악을 범하지 않는다는 보증이 있어서 하신 것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창8:21)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이 날 때부터 악하기 때문에, 새 세상도 옛 세상과 같이 폭력세상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지개를 두고 언약을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힘이 사용되는 경우들

사람이 힘을 행사할 때, 세 가지 다른 경우가 있겠습니다.
첫째는 남을 특히 약자를 누르고 해치는 폭력을 쓰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둘째는 이런 강자의 폭력 앞에서 약자도 폭력으로 대항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 소모하게 되거나, 결국 강자의 폭력 앞에 죽고 마는 최악의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드물지만 폭력으로 강자를 죽이고 다시 강자로 군림해서 첫째의 경우로 되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폭력에 폭력으로 싸우는 이 둘째 경우도 하나님의 뜻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경우는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고 도와주기 위해서 힘을 사용하고, 도움을 받는 약자들도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에 힘을 합하는 이상적인 경우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셋째 경우와 같은 것이겠습니다. 성경은 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폭력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벨탑 이야기의 배경은 첫째 경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힘이 어떻게 사용되었느냐는 배경에서 보면, 왜 하나님이 바벨탑을 완성시키지 못하게 하셨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힘의 잘못된 상용에 의한, 곧 폭력에 의한 목적달성을 저지시킨다는 이 이야기는 인간 역사에서 늘 요청되는 일인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뜻을 캐내기 위해서 몇 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공사가 잘못 되어 바벨탑이 저절로 허물어졌다거나, 또는 어떤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허물어졌을 경우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도 이 성경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이 허무신 것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또는 바벨탑을 세우는 강자의 폭력행사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항거에 의해서 허물어졌을 경우를 가정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성경이야기는 이런 경우에도 하나님이 허물어뜨린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약자들이 탑을 허무는 항거에 일단 성공했다면, 그 다음에 바벨탑을 세우던 강자 편에서는 어떻게 했을까요? 허문 사람들을 요즘 아주 익숙한 말로 표현한다면, 무엇이라고 일컬었을까요? 

예를 들어 군국주의 일본이 한국민족과 문화를 말살하고 한반도에도 일본문화를 심으려고 했을 때, 이를 항거하는 독립 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탄압이 극심해지면서 “폭력”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었습니다. 이런 이들이 잡히면 “사상범”으로 혹독하게 다루었는데, 이런 운동이 지금 일어났다면, 아마 요즘 흔한 말로는 “테러리스트"라고 했을 것입니다. 곧 일본은 바벨탑을 쌓으려고 했던 편이고 한국 독립군은 바벨탑을 허물려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테러리스트”들의 폭력에 따른 혼돈에 대해서는 폭력으로 질서를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는 견해가 절대적으로 우세하게 되어, 강자의 더 큰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회복된 질서는 결국 강자의 질서가 되게 마련이고, 또 다른 폭력저항을 일으키게 될 가능성도 내포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이런 저항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연 없도록 철저히 탄압을 하는데 성공하고, 하늘에 닿는 바벨탑을 쌓는 데 성공한다고 합시다. 세계 지도에서 “조선”이라는 이름이 말살될 정도로 조선 땅도 일본 땅으로 만들고,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조선백성도 “일본인”으로 만드는 일에 성공하는 듯 보인 때가 있었습니다. 곧 바벨탑을 완성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바로 이런 경우, 이렇게 쌓아올린 탑이 허물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 성경이야기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현실

여러 가지 다른 색깔들이 함께 병존할 때만 생기는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사람이 쳐다보아야 한다는 말은 힘이 폭력으로 행사되지 않고, 강자든 약자든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새 세상을 이상으로 삼고 쳐다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상은 이상일 뿐, 에덴바깥세상의 현실은 아닌 것입니다. 서로 다른 백성들이 있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있는 한 이상은 언제나 위협을 당합니다. 힘이 폭력으로 행사될 가능성은 언제나 잠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말이 뒤섞여서 사람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다는 바벨탑 이야기(창11:3-9)는 바로 이런 현실을 암시해 주는 말이겠습니다.

강자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창11:4)는 사람들의 계획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런 계획을 저지시키시면서, “만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이런 일을 시작했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11:6-7)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선 사람들의 계획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게 마련인”사람이(창8:21)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려는 계획은 사람에게는 “하지 말아야 할 한계”가 있음을 부인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이름을 날리고, 온 땅에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계획은 강자만의 이름을 날리려는 계획이기 때문이며, 강자는 저들만의 이익을 위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폭력을 행사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가 일본의 이름을 날리려는 것이었고, 일본의 이익을 보장하려는 것이었음과 같은 일입니다. 이런 계획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제국주의 일본의 예는 20세기 초반의 일이었는데, 21세기 초반 이야기를 예로 든다면, 창립 60년이 되는 유네스코의 33차 총회에서 (2005.10.20.폐회, 8명의 국가 원수, 200 명의 장관들이 모인 창립 후 가장 큰 모임이었다고 함)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 협정”이 142대 2라는 (반대표는 미국과 이스라엘, 기권 4) 절대 다수로 통과된 일입니다. 강국인 미국의 할리우드 문화가 온 지구촌을 뒤덮게 되는 것을 막고, 모든 민족과 지역 문화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키워나가려는 142개 국가들의 의지가 국제 법으로 정립된 일은 분명히 현대 “바벨탑”에 대한 저항이라고 하겠습니다. 절대 다수 국가 대표들이 “사물을 보는 시각이 하나밖에 없다”(“There is only one way to look at things?”)는 식으로 되어가는 “바벨탑” 현상을 허무는 일에 함께 한 것입니다.

온 인간이 서로 알아듣고 온 세상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고, 강자가 군림하는, 강자만을 위한 획일적인 세상을 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을 섞어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고, 인간을 온 땅으로 흩어지게 하셨다”는 말은 결국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민족 국가들이 생긴 것도 힘을 행사하는 강자의 세상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뜻에서 되어진 일이라는 말입니다. 눌린 자가 누르는 자의 생각과 계획대로 빚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 목적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강자도 약자도 다 하나님의 뜻대로 빚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조 이전과 같은 혼돈으로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는 말과, “주께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창11:7-8)는 말은 결국 인간이 “창조” 이전의 “혼돈”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간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런 혼돈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누르는 자가 폭력을 행사하여 하나가 되게 함으로 혼돈과 질서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옛 세상의 “혼돈”이 “홍수”로 마감되고, 새 세상의 질서를 바라는 이상이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하늘 높이 펼쳐졌었으나, 세상은 다시 강자의 폭력세상의 혼돈으로 되돌아갔고, 강자는 폭력으로 질서 아닌 질서를 세우려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폭력으로 혼돈을 극복하고 질서 아닌 질서를 세우려고 했던 이 강자의 시도를 “바벨탑”이라고 한 것이겠습니다.

세인은 강자가 이런 “바벨탑”을 쌓아 올리는 것을 볼 때, 혼돈에서 “질서”를 세워나가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강자의 시도를 바로 혼돈 자체로 보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바벨탑”은 허물어져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역사상 침략 전쟁을 정당화할 때, “세계질서”를 내걸지 않은 경우가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요? 곧 “바벨탑” 건설로 찬양의 시선을 모으려는 정책을 실시하지 않은 경우가 한번이라도 있었을까요?

이 “바벨탑” 이야기는 약자의 언어와 문화가 인정되면서도 혼돈이 아닌 하나 됨의 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 문제 해결의 길을 위해서는, 예를 들면, 과학 기술이 공헌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학 기술의 힘도 강자의 누르는 힘으로가 아니고 약자를 돕는 바른 힘으로 사용되게 할 수 있는 그 힘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바벨탑이야기로 “인간은 맨 처음부터 잘못된 현실인 혼돈 속에 살고 있었다”는 “창조”이야기는 그 막을 내립니다. 강자의 폭력에 의한 시도인 “바벨탑”이 허물어졌다고 해서, 힘이 폭력으로 행사될 가능성도 허물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아브라함 이야기는 바로 이런 세상을 배경으로 해서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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