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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화난 마음의 계획은 다스려야
  -형이 동생을 죽인 이야기 (1)-    창 4:1-8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는 질문

1. 에덴 바깥세상에서 생긴 첫 사건은?
2. 가인과 아벨 이야기는 제물로 무엇을, 어떻게 바쳐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이야기일까?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 있다면 무엇?
3. 사람의 생활양태가 다른데서 문화가 달라지고 따라서  종교양태(예배의식도)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다양성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4. 아벨이 동생을 죽인 것은 예배의식의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형제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
5.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네가 마음을 잘못 먹었으니”(창4:5)라는 말이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라고도 번역되었는데, 여기 “잘못 먹은 마음”이나 “올바르지 못한 일” 이라는 말은 “잘못 드린 제사”를 두고 하는 말일까? “몹시 화가 난 일”을 두고 하는 말일까?
6. “죄가 네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지배하려하니,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한다”(창4:7)는 말이 있는데, 이 이야기에서 이 “죄”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가인의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잘못 드린 제사와 관련된 마음? 동생에게 품게 된 화난 마음?

부모가 당한 첫 불행

창세기 3장까지는 에덴동산 안에서의 첫 이야기였습니다. 4장은 에덴 바깥세상에서의 첫 이야기인데, 형제살인사건 이야기입니다. 부모가 당하는 가장 큰 불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에덴동산 이야기가 혼돈과 어두움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에덴바깥세상 이야기는 형제살인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신문이 있었다면 크나큰 뉴스였을 것입니다.

다양성이 인정되지 못하는 성전종교

이 살인사건을 말하는 이야기 내용을 보면 여섯 대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1. 첫 대목은 아담과 하와가 엄마 아빠가 되고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태어납니다. 형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고 아우는 양을 치는 목자가 되어 살았답니다. 이들의 생활양태가 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2. 둘째 대목은, 세월이 지나면서 생활문화도 달라졌답니다. 마치 어부들과 농부들과 상인들이나 공업노동자들의 생활양태가 달라지면서, 입는 옷차림도 달라지고, 직업에 쓰는 기구들도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일이었겠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경우를 이야기하는 데서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고 있는데 저들이 바치는 제물이 달랐다고 합니다. 같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사이지만 제물은 달랐다는 것입니다. “형은 땅에서 얻은 곡식을 제물로 바치고, 아우는 양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다”고 했습니다. 생활양태가 달리 발전해가는 과정에서는 모든 면에 다양성이 생긴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은 원이라는 한국 돈을 바치고, 미국이나 캐나다에 사는 사람은 달러를 바치고, 독일에 사는 사람은 유로라는 돈을 바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제물로 달러를 바친 사람은 정성을 다한 것이고, 원을 바친 사람은 정성 없이 아무렇게나 바친 것이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야 말로 어처구니없는 잘못입니다.

헌금하는 방식도 자꾸 달라져 갑니다. 옛날 곡식이나 짐승을 바치던 데서 주일마다 돈을 바치다가, 수표를 내기도 하고, 아예 은행에서 매달 정규적으로 교회로 송금되도록 하는 방식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아직 극소수이지만 어떤 신흥교단 교회에서는 주일날 신용 카드로 헌금 하게한 결과 젊은 층들의 헌금액이 급증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다른 방식에 대해 각자의 느낌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런 일로 형제 살인이 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인과 아벨 형제살인사건이 마치 저들이 바친 제물과 관련된 것처럼 이해되기 쉽게 되어 있지만, 더 현실적인 이유가 달리 있었던 것 아닐까요?

3. 셋째 대목은, 생활문화가 달라지면서 제물도 달라  진다는 이 당연한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닌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주께서는 아우와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창4:4하-5상)라는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이는 서로 다른 생활 문화권이나 서로 다른 종교예식에 있을 수밖에 없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갈등이 생긴 것을 말해 줍니다. 신이 무엇을 더 좋아했다기보다는 제사종교에 대해서 사람들이 자기들의 제사방식만이 “정통”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종교 양태에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성전중심, 제사장중심 종교라고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성경중심, 예언자중심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중심 제사장종교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무엇을 어떻게 드려야 바른 제사가 되는지 자세한 절차를 따라 제사장이 집례 했습니다. 제사장의 일은 동물을 잡는 일에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제사장 제도는 세습제였습니다. 엘리라는 제사장 때에 그 아들들이 제사보다는 제물에 욕심을 내는 일 등 종교의 타락현상이 생기자 이를 바로잡는 종교혁신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혈통에 의하지 않고 곧 아들이 아닌 사무엘이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예언자(삼상1:-4:1)가 되었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제사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의가 앞서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곧 예배의 격식보다는 예배자의 바른 정신과 행동을 더 강조했습니다. 

“주께서는 아우와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창4:4하-5상)는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강조하는 예언자종교가 발전하기 이전, 제물을 중시하는 제사장종교 시대를 반영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이야기의 본 줄거리로 보는 데서 해석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곧 형의 제사가 잘못된 것이고 아벨의 제사가 바른 것이라는 제사장 종교 전통에 따른 해석을 강조하기 위한 이야기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향이 지금도 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들면, 교인들에게 헌금을 정성스럽게 바쳐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인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이야기의 본 의도는 다른데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제물은 정성스럽게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인과 아벨 이야기의 본뜻은 이런 정성스런 헌금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형제관계가 악화되어 형제가 형제를 쳐 죽일 정도로 되는 화를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을 찾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곡식제물은 감사제물이고, 동물제물은 죄 사함 받는 희생제물이어서 동생의 제사를 받으신 것이고 형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방식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른 문제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제사방식 자체보다는 제사 드리는 사람들이 형제를 어떻게 대하는지, 곧 서로가 사랑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지? 미움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지 하는 형제관계문제가 더 큰 일일 것입니다. 형이 아우를 죽인 동기는 이 제사양식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형이 동생에게 화를 내게 된 사연이 다른데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악화된 형제관계에 살인의 동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화난 마음의 계획은 다스려야

4. 넷째 대목은 “가인이 몹시 화가 나서 얼굴색이 변하였다. 주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색이 변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을 펴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공동 번역에는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잘못 먹었다면,”) 죄가 네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릴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 죄를 다스려야 한다’”(창4:4 -7)는 이 말에 이 이야기의 핵심이 있습니다. 

5. 다섯째 대목은 “가인이 아벨에게 말하였다. ‘우리 들로 나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였다”(창4:8).

이 넷째와 다섯째 대목에서 보면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제사 문제가 아니고, 홧김에 살인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 대목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 “네가 마음을 잘못 먹었으니”라고 번역된 내용을 어떤 번역에서는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올바르지 못한 일”이라는 말을 “올바르지 못한 제사를 드렸으니”라는 뜻으로 보기 쉽고, 따라서 살인의 원인이 마치 제사 양식에 대한 것으로 잘못 해석하게 되었던 것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마음을 잘못 먹었다” 또는 “올바르지 못한 일”이라는  말은 제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홧김에 생각한 마음의 계획, 곧 동생을 어디서 어떻게 죽 일까 하는 살인 계획을 두고 하는 말로 봄이 타당할 것입니다.

“들로 나가자”는 형의 말을 아우는 자기를 죽이려는 계획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른 일로 나가자고 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치밀하게 마음에 생각한 계획을 두고 “네가 잘했다면 왜 얼굴을 펴지 못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잘못 먹었다면, 죄가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릴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 죄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화난 다음에, 또는 화남과 동시에 품게 되는 마음의 계획을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그 사람을 노리는 죄”와 같은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죄”를 다스려야 한다는 말은 이 화난 마음의 계획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악화된 형제관계와 형제싸움

우리가 사는 세상은 화내지 않고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이럴 경우에 치솟는 화 자체를 다스릴 수도 없습니다. 또 화나게 하는 원인을 이 세상에서 다 제거할 수 있는 길도 없습니다. 더욱이 화나게 하는 사람을, 곧 미운 사람을 없애 버릴 수는 더욱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살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소리 안 나는 총이 있으면 쏘아 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그런 생각이 안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인 것입니다. 곧 화를 안낼 수는 없지만 화난 다음에 품게 되는 마음의 계획은 다스릴 수 있고, 다스려야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형이 화낼 수밖에 없게 된 데는 동생의 잘못이 있었을 수도 있고,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를 편애한 부모의 잘못 때문에 그를 시기하고 미워할 수도 있었겠습니다. 이런데 대한 말은 이 이야기에 없으니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주께서 아우와 그가 바친 제물은 받았다는 말은 그에게는 모든 일이 순풍에 돛을 단 격이어서, 부러움의 대상, 시기의 대상,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은 되겠습니다.

아무튼 가인과 아벨과의 형제관계에는(쌍둥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쌍둥이가 아니더라도) 마치 쌍둥이 형 에서와 동생 야곱 사이에 있었던 불화와 같은 어떤 사연(창25:19-27:45)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교활한 동생 야곱이 형 에서에게 용서받기 어려운 잘못을 범함으로 극도의 증오를 일으켰던 것처럼, 동생 아벨에 대해서 형 가인은 극렬한 증오심의 불길을 끌 수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불을 보듯 분명한 잘못이 상대방에게 있고,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도, 화난 마음의 계획은 다스려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마음의 계획은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계획이 아직 문 앞에 앉아서 노리고 있는 그때에 이 마음의 계획을 다스려야지, 이 때 다스리지 못하면 “동생을 들로 데리고 나가 쳐 죽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에덴동산이야기는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 하나는 무엇인가를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보는” 마음을, 곧 욕망을 다스리는 일이라고 했는데, 에덴 바깥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화난 마음의 계획을 다스리는 일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의 잘못이든 간에 형제 중 한 사람이 화를 내게 되면, 이 형제관계에 금이 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깨진 그 형제관계를 다시 회복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홧김에 상대방을 쳐 죽여 버리면, 그 형제관계는 영영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1-3 장에서 행복의 조건 셋 중 첫째가 경제적인 기반을 포함한 알맞은 환경, 둘째 조건이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 4장 이야기에서는 형제가 미움의 대상으로 될 뿐 아니라, 그 미움의 대상을 죽여 버렸으니 불행밖에는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홧김에 생각한 마음의 계획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는 동안에”이런 마음의 계획대로 하지 말라는 또 하나의 “말라 나무(선악과나무)” 이야기인 셈입니다. <아우를 죽인 살인자 가인을 어떻게 한다는 대목의 이야기는 여섯째 대목으로 나오는데,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경쟁자가 보는 입장과 사랑하는 자가 보는 입장

앞에서 이 이야기는 제사방식에서 생긴 문제가 아니고 형제관계가 피차 사랑하는 관계가 되지 못하고 경쟁자관계로 전락한 데서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경쟁자의 입장에서 해결하려는 경우와, 경쟁자가 아닌 사랑하는 자의 입장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 그 결과는 전연 달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민속에 있는 이야기를 대조해 보겠습니다.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날이 좋아도 걱정, 날이 궂어 비가와도 걱정을 했다. 사연은 한 아들은 집신장사인데, 비가 오면 짚신이 팔리지 않을까 걱정. 또 한 아들은 나막신(통나무를 깎아 만든 비올 때 신는 신) 장사였는데 날이 좋으면 나막신이 팔리지 않을 것을 걱정.

그러다가 걱정이 아니고 기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곧 비가 오면 나막신이 잘 팔릴 걸 기뻐했고, 날이 좋으면 짚신이 잘 팔릴 걸 기뻐했다는 이야기.

가인과 아벨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크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지, 형제간의 이야기라는 데서 같은데도 크게 다른 이야기가 됐습니다. 아벨과 가인 이야기는 형제간의 문제를 경쟁자의 입장(그것도 주로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미워하는 형의 입장)에서 보고 있는데, 이 신발장수 형제이야기는 경쟁관계가 될 수 있는 형이나 동생의 입장에서가 아니고, 어머님의 입장에서 보고 있는 점이 다릅니다. 

이 이야기는 비기독교 전통문화에서 생긴 이야기이지만 보다 더 성경적인 진리가 담겨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걱정도 자식 사랑에서 나온 것이고, 기쁨도 자식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기 어머니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보다 더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머니 사랑의 입장에서 전개되었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지만, 만일 경쟁자의 입장에서 전개되었다면, 형제간에 불화가 생길 수 있고, 또 화를 참지 못하게 되는 경우였다면, 비극으로 끝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에 전해지는 흥부와 놀부이야기도 형제애가 없는 놀부의 입장에서 전개되던 이야기가 형제애가 있는 흥부의 입장에서 전개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가인과 아벨이야기에서는 마치 하나님이 경쟁자 중 한 사람 편을 들어 주는 편파적인 신인 것처럼 보이게 되어 있는데, 이점은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17. 왜 살인자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하셨을까?> 경쟁자의 입장이 아닌, 사랑하는 자의(하나님의, 또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는 이야기로 밝혀지면서 시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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