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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창조이야기가 말하는 행복의 조건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9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는 질문

1. 창세기 1장과 2장의 공통점은?
2. 2장과 3장이 다루는 하나의 주제를 인간 행복에 필    요한 조건이라고 볼 수 없을까?
3. 창세기 1장도 따로 떼어 보지 않고, 2장과 3장에서    다루는 인간의 행복에 필요한 조건을 마련한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요즘말로 무엇 이라고 할 수 있을까?
4. 창세기 2장에서 말하는 “짝”의 창조를 행복에 필요한 또 하나의 조건으로 본다면, 행복은 인간관계의 어떤 점을 그 조건으로 한다고 할 수 있을까?
5. 창세기 3장 9절에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행복을 잃고 불행에 빠진 인간의 위치를 밝혀내는 질문으로 본다면, 행복의 조건으로 무엇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뜻일까?
6. 행복은 어떤 경우에 얻어지는 것일까?
7. 얻어진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이 성경 이야기에서는 무엇이라고?
8. 나에게 사랑의 대상으로 된 사람들과 미움의 대상    이 된 사람들을 열거해 본다고 합시다. 행복과 불행의 경우는 어떤 경우?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결혼과 이혼의 차이는?
9. 창세기 3장에서 에덴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에서 “뱀”이 실지로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렇게 “뱀”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보는 사고방식이 우리의 행복을 지켜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점은?

창세기 1, 2, 3장은 행복과 불행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

앞에서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는 우주 생성 과정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아니고, 맨 처음에 혼돈에 질서를, 어두움에 빛을 창조하셨다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7. 맨 처음에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이> 그런데 창세기 2장에도 창조 이야기가 다시 나옵니다. 1장에는 엿새 날에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한데 반하여, 2장에는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는데, 먼저 남자를 만드시고 후에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뽑아서 여자를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2장의 창조이야기가 더 오래된 자료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서학계에서는 1장 이야기와 2장 이야기를 각각 따로 떼어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1장 이야기와 2장 이야기, 그리고 3장 이야기까지가 각각 다른 주제를 다루는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고, 한 가지 주제를 다루는 하나의 이야기로 보는 것이 이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장과 2장 이야기는 다른 점이 있으면서도 같은 점이 있습니다. 사람을 만드시기 전에 먼저 사람이 살 수 있는 자연 환경을 만드셨다는 점과, 이 자연 환경을 사람에게 맡겨 돌보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2장과 3장 이야기도 각각 다른 이야기가 아니고, 에덴동산의 행복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1장의 이야기도 이 에덴동산의 행복에 필요한 조건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으로 봄이 타당할 것입니다.

곧 1장에서 3장까지는 인간의 행복에 대한 하나의 “행복론”이고, 1장은 그 시작으로 보아서 좋겠습니다. 성경의 이 첫 이야기는 “우주 창조”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문제를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겠습니다.

이 말은 1-3 장까지의 이야기가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도 없고 잘 알 수도 없는 옛 이야기가 아니고, 지금 이곳에서 누릴 수도 있고 잃어버릴 수도 있는 우리의 행복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행복의 세 조건

이 성경 이야기는 인간의 행복에 필요한 조건으로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삶의 환경

1) 첫째, 창세기 1장에서 엿새 동안 창조된 세상에 사람을 두었다고 했는데, 이는 인간창조 이전에 먼저 가장 이상적인 삶의 환경을 하나하나 마련해 주심으로 행복의 조건을 갖추어 주셨다는 뜻이 됩니다. 2장에서도 먼저 나무도 풀도 있을 수 없는 “온 땅을 적셨고 (창2:5-6),” “동쪽에 있는 에덴동산을 일구셔서” 풍성한 자원도 갖추어놓으시고 난 다음에“사람을 거기에 두셨다”(창2:8,11-12)고 했습니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마련되어 있는 환경을 조건으로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환경”이라는 말은 자연적인 환경만이 아니고 정치, 경제, 사회, 가정적인 모든 환경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 이야기를 우리 민족사에 두고 생각해본다면, 한국전쟁과 같은 전쟁의 폐허를 겪은 삶의 현장은 마치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혼돈과 어두움과 같은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 후의 재건과 모든 분야의 발전상은 질서와 빛을 창조한 과정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경우 다음 세대들에게는 전 세대들 보다 좋은 행복의 조건이 갖추어진 것입니다. 또는 소수이지만 외국으로 이민해서 정착한 현상도 보다 나은 삶의 환경을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민의 경우에는 스스로 환경을 개척한 것만이 아니고, 이미 “질서와 빛”이 비교적 잘 갖춰진 이민 국가 사회의 보다 좋은 환경에 옮겨진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에덴동산을 사람에게 맡기시며 “돌보라”고 하셨다는 말은 이런 행복의 첫 조건인 보다 바른 환경은 그 환경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잘 “돌보아야”만 지켜진다는 뜻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땀 흘려 노력하는 것은 일상 삶에 필요한 의식주의 터전과 자녀를 키워나갈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함과 동시에 잘 지켜나가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행복의 첫 조건을 요즘 말로 표현한다면, 사람의 행복을 위해 경제적인 기반도 갖추어져야 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곧 이 행복의 한 조건이 “돈”이라는 말이 됩니다. 알맞은 환경을 돈으로 마련할 수 있다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돈의 중요성을 과소평가 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재물을 모을 힘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감사하라(신8:18)고 했습니다. 물론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힘에 의한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런 경우는 다른 사람의 행복의 조건을 파괴하는 착취이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마19:24) 또는 “재물과 하나님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6:24)는 예수님의 말씀은 재물 자체가 악이라는 뜻이 아니고, 재물을 가진 사람의 마음이 잘못 됨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재물축적만을 목적으로 삼고 그것을 섬기지 말고, 사람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써야하되, 나만의 행복이 아니고 나와 남,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바로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행복의 첫 조건이 바른 환경이라는 말은 잘못된 환경이 불행의 첫 요인이라는 말이고, 불행 속에서 행복의 첫 조건을 창조하기 위해서 중요한 일은 잘못된 환경을 잘못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사랑의 대상 사람

2) 둘째, 사람이 “홀로”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거들을 짝을”(창2:18) 만들어 주셔서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창2:23)이라고 할 만큼 사람이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아 둘이 하나가 됨으로 에덴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참 행복은 바른 환경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의 바른 관계가 더해져야만 체험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란 부부관계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의 모든 관계를 포함합니다.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을 때 행복을 체험할 수 있다는 이 말은, 사람이 사람 아닌 다른 무엇을, 예를 들어 돈, 명예, 권력, 취미, 일 등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을 때는 불행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행복의 첫째 조건인 바른 환경을 요즘 말로 표현해서 돈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심지어 이런 돈을 향해서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하는 식으로, 돈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거나, 또 신처럼 섬김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참 행복은 체험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간혹 돈이 생기자 불행해 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돈 때문이 아니고, 행복의 둘째 조건과, 뒤에서 말할 셋째 조건이 따르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겠습니다. 돈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이라면, 가난하면 행복해진다는 억지 이론이 성립되는데 그런 것은 아닙니다. 비록 가난해도 행복한 경우는 행복의 둘째 조건과 셋째 조건이 비교적 잘 갖추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둘째와 셋째 조건이 갖추어진 경우에는, 첫째 조건인 돈도 있으면 더 좋은 것이겠습니다. 문제는 첫 조건이 갖춰지면 둘째와 셋째 조건을 쉽게 허물어버리는 유혹이 생기기 때문에 행복을 잃게 되는 것이겠습니다.

행복의 둘째 조건이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 말은, 현실적으로 어떤 불행을 체험하게 될 때, 그 원인이 사람 아닌 무엇인가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임을 깨닫는 일이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일 중 하나는, 내가 미움의 대상이 아니고 사랑의 대상이 되는 일입니다. 이렇게 될 때 사람은 화의 근원이 아니고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의 하나는 사랑의 관계를 맺고 이 사랑의 관계를 지속시켜나가는 일입니다.

신뢰

3) 셋째로, 행복의 첫 조건과 둘째 조건이 갖추어져도 이 두 조건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제3의 관계, 곧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한 가지 언약을 지켜야 한다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은 “무엇이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되, 한 가지만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점이 일반 “행복론”과 다른 점입니다.

이 약속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믿으실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그 자리를 지켰어야 했는데, 이 언약을 지키지 못했을 때,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숨어 있는 불행에 빠지게 되어, “네가 어디 있느냐?”(창3:9)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질문은 옛날 한번만 있었던 질문이 아니고 지금도 계속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숨어 있어야만 했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시고,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빙빙 도는 불벼락을 두셔서 지키게 하셨다”(창3:23-14)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당하는 불행 중 가장 큰 불행은 있고 싶은 곳에 있지 못하는 것, 살고 싶은 곳에 살지 못하는 것, 바꿔 말하면, 있고 싶지 않은 곳에 있어야 하고, 살고 싶지 않은 곳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행복은 삶에 필요한 무엇을 하는데서, 또는 무엇을 소유하는데서 얻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얻어진 행복을 잃지 않고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한 가지만은 말아야한다”는 언약을 지켰어야 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이 성경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여기 행복의 셋째 조건으로 하나님과의 신뢰관계가 유지되었어야 한다는 이 점이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의 둘째 조건인 사람과 사람과의 사랑의 관계가 역시 신뢰관계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부 관계는 물론 모든 인간관계에서 체험되는 행복도 신뢰를 기반으로 해서만 유지되는 것인데, “뱀”은 신뢰관계의 중요성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돌리게 함으로, 사랑의 대상인 사람이 원망의 대상이 되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라는 기반이 무너지면 상대자가 원망의 대상만 되는 것이 아니고, 멸시의 대상도 되고, 경쟁의 대상도 되고, 미움의 대상도 됩니다. 예를 들어 결혼과 이혼의 차이는 같은 사람이 사랑의 대상이었다가 미움의 대상으로 바꿔진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비록 미움의 대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사랑의 대상은 되지 못하기에 행복한 관계는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사람이 불행에 빠지는 경우 그 원인으로 잘못된 환경이나, 미움의 관계가 되어버린 때문이라는 것은 비교적 쉽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행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하나님과의 불신관계에서 비롯한 인간과의 불신관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불신관계를 신뢰관계로 회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리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이 말은 배신한 사람이 신뢰를 회복하기가 어렵다는 것만이 아니고, 배신당한 사람이 불신을 극복하고 남을 신뢰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리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배신당했던 아픈 체험이 마음의 무의식 층에 두려움이라는 틀을 잡고 남아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렇게 남을 믿을 수 없는 죽을병에, 불신의 병에 이미 걸려있는 상태로 태어난 것과 같다고 해서 이 창조 이야기를 “원죄”이야기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신뢰관계에 있는지, 불신 관계에 있는지, 불신의 병을 앓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관계에 있는지, 미움과 원망의 관계에 있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된 것입니다. 곧 우리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두고 “그는 나에게 미움의 대상인가? 사랑의 대상인가?” 또 “나는 그 사람에게 미움의 대상인가? 사랑의 대상인가?” 곧 우리는 사랑의 관계에 있나 미움과 원망의 관계에 있나 하는 물음과 같은 질문인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우리들의 행복과 불행을 말해주는 척도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창조 이야기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과의 신뢰관계가 깨어지면서, 사람은 서로가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된 것만이 아니고, 미움과 원망의 주체가 되어 에덴의 행복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곧 누가 우리를 미워하는 것만이 아니고,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는 불행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응당 사랑의 대상이 되었어야 마땅한 예수님까지도 미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우리와 다른 점은 예수님은 미움의 대상이 되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까지도 미움의 주체는 되지 아니하셨고, 끝까지 사랑의 주체만 되셨다는 점입니다). 창조이야기는 이렇게 사람이 신뢰관계를 잃게 되면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게 되고, 동시에 미움과 원망을 받을 수밖에 없이 되는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과 “뱀”을 나눠보는 길

끝으로 이 “뱀”이야기가 갖는 현실적인 중요성 하나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곧 맨 처음부터 하나님과의 신뢰관계를 잃게 되면서 사랑의 관계도 깨졌다는 비극을 이야기하는데서 왜 성경은 “뱀”이라는 특별한 배역을 등장시켜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앞장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와 인간 서로간의 관계를 이간시키는 “뱀”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 속에도 있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하다”는 자신의 생각(타락한 이성) 속에도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0. “뱀”이 인도한 잘못된 성경공부> 그런데 이 창조이야기에서 이 “뱀”이 실지로 있는 생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문제를 말할 때 그 해결의 길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신뢰와 사랑의 주체도 못되고 대상도 되지 못하게 되면서, 미움과 원망의 주체가 되고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된 경위가 “뱀”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뱀의 역할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먹지 않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해서 먹든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 것뿐이었습니다. 곧 사람에게 주어진 선택과 결단의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데 사용하지 않고, 말씀을 어기는데 사용한 것은 사람이었지 “뱀”이 아니었습니다. 불행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데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는 잃어버린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고 행복을 되찾는 길도 이 자유의지를 바로 사용함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곧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일(미움과 원망의 주체가 됨)에 자유의지를 사용하지 않고,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사람이지만 사랑하는(사랑의 주체됨)데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길에 해결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게 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되어 있는 “뱀”은 반대로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 자유의지를 바로 사용하게 하는 역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곧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된 사람을 대할 때, “뱀”과 “사람”을 구별해서 보게 하는데, “뱀”의 역할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깬 “뱀”은 미워하지만, 그 사람은 사랑해야만 사랑의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일에 “뱀”의 역할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뱀”이 상대자 속에 있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경우에도 “뱀”과 그 사람을 구별해서, “뱀”만을 미워하고, 그 상대자는 사랑의 대상으로 남아 있게 되어야(동시에 그 상대자도 “뱀”과 구별되는 자신으로 변화되어야)만 사랑의 관계가 회복 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하는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해가 구약(민수기21:4-9)에 나와 있습니다. 곧 광야에서 백성들이 출애굽을 인도한 모세를 원망할 때, 뱀에 물려 죽게 되었었는데, 하나님께서 살 길을 가르쳐 주시기를 구리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어 달고, 그 “뱀”을 쳐다보도록 하셨습니다. 이 “뱀”을 쳐다본 사람들은 과연 죽지 아니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곧 모세나 하나님을 원망의 대상으로 보지 아니하고 “뱀”만을 원망의 대상으로 쳐다봄으로 죽음을 피하고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첫 아담”에 의해 잃은 행복을
“둘째 아담”을 통해서 되찾는 길

그러나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된 사람을 대할 때, “뱀”과“사람”을 구별해서, “뱀”만을 미워하고 사람은 사랑한다는 일은 이론적으로는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미움의 주체가 되지 아니하고 사랑의 주체만 된다는 일은 앞에서 말한 대로 예수님에게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뱀”이 “모든 짐승들 중 가장 간교하였다”(창3:1)라고 했는데, 이 뱀의 간교함에 대응해서 이기는 길은 이 “뱀”의 간교함을 능가하는 하늘의 지혜와 이성이 필요한 것인데, 예수님이 이 하늘의 지혜요 이성(로고스)이라는 것이 신약 성경의 증언입니다. <9.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과 창조말씀(1)> 그리고 예수님에게나 가능한 이런 일을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서 가능할 것으로 믿는 신앙의 길을 신약성경은 권유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바울 사도님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첫 사람 아담”과 대비시켜서,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고전15:45)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을 통한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셨습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므로 흙으로 되어 있지만,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났습니다”(고전15:47). 흙으로 빚은 그 사람의 형상을 우리가 입은 것과 같이, 우리는 또한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고전15:49). 이 말씀은 부활의 뜻을 말하는 대목에서 하신 말씀이지만,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 ?
    허정섭 2003.11.28 08:02
    창조이야기에서 행복을 이야기하는 목사님의 말씀에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합니다. 앞으로도 성서의 새로운 맛, 많이 맛보게 해주세요.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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