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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과 창조말씀(2)
  -“뱀”이 인도한 잘못된 성경공부-
                        창 3:1-6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는 질문

1. “모든 열매를 다 먹되, 한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말은 사람이 먹을 마음이 생기면 먹을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닐까 (먹을 마음이 생겨도 먹을 수 없게 하신 것이 아니고)?
2. (먹지) “말라”는 말씀을 다른 만물에게는 하지 않으시고 사람에게만 하신 이유는?
3. 첫 “성경공부”는 어디서 언제 누구의 인도로?
4. “뱀”이 사람과 흡사한 점들은?
5. “뱀”의 가장 뛰어난 점은?
6. “뱀”을 신약에서는 무엇이라고?
7. “뱀”과 인간의 대화는 하나님의 하신 어떤 말씀을 두고? 그 말씀은 내용상 몇 마디로 되었는지?   
8. “뱀”의 질문과 해석은 이 중 어느 대목만을 두고?(빠진 대목은?)
9. 이 대화에서 “뱀”과 인간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인용할 때 추가하거나 달라진 말은?
10. 뱀은 하나님이 흙으로 된 인간에게 하신 그 창조    말씀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해석?
11. 결국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된 가장 결    정적인 것은 무엇?  (인간의 생각 중 어떤 생각?)
12. 어떤 말을 한 사람의 의도가 대화에서 오해될 확률과 바로 이해될 확률 어느 쪽이 많을까? 오해될 경우 그 원인은 무엇일까?
13. “뱀”이라는 말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행사할 때 쓰는 이성을 상징하는 말이 아닐까?
14. 창조이야기에서 “뱀”을 실제로 있는 생물인 것처럼  특별한 배역으로 등장시킨 것이 도움이 되는 점은?
15. “뱀”이 이미 에덴동산에 있었다는 말은 인간의 이    성이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처음부터 있었다는 말이 아닐까?
16. 이 성경이야기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악    이 무엇이라고?

자유의지와 제한조건 (“먹지 말라”)

만물에게 하신 창조말씀과 인간에게 하신 창조말씀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만물은 “무엇이 생겨라,” “무엇을 하라,” “어떻게 되어라”는 말씀이었는데, 인간에게 하신 창조말씀은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창2:16)는 세 마디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모든 열매를 다 먹되, 한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라고 되어 있어서, “뱀”이 말한 대로, 죽지 않는다고 생각되거나, 죽더라도 먹고보자하고 마음먹게 되거나, 욕심이 생겨 유혹에 빠지면, 먹을 수도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게 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먹고 안 먹고를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긴 점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하늘의 별은 자기 궤도를 갈 수도 있고 벗어날 수도 있게 창조된 것이 아니고, 그 궤도(軌道)를 갈 수밖에 없도록 정해진 것임에 반하여, 인간은 가야할 제 길을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게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나 만물도 사람도 제 길을 가야 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이렇게 제 길을 가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이고, 창조말씀의 의도인 것입니다. 하늘에 별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별도 있기 때문에 정해진 궤도가 필요한 것처럼,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도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자유의지를 가진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 길이 정해져야 하는 것입니다(혼자 살아도 몸이 유기체이기 때문에, 몸이 제 길을 가지 않으면 병이 생깁니다). 인간의 제 길 정함이, 제 길을 벗어나지 않게 함이, “무엇만은 하지 말라”라는 제한인 것입니다.

하늘의 별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하나의 별에게 정해진 궤도가 하나밖에 없는 외길이어서 서로의 충돌이 없듯이, 사람의 제 길도 외길이라야 하는데, 창조말씀에서는 “무엇은 먹지 말라”이고, 예수님은 다른 어떤 길도 아닌 사랑의 길뿐이라고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인간의 다른 사람을 위한 “말라”를 예수님은 사랑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먹으면 죽는다”는 말은 다른 사람을 위한 “말라”가 없으면, 이 외길을 벗어나면, 천체의 충돌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결국에는 서로 잡아먹는 죽음이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곧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말라”가 필요한 것입니다. 땅과 모든 생물을 다스려야 하는 소임을 맡은 인간은 먼저 흙으로 된 인간 자신을 다스려야만 인간이 제 길(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이 자기 다스림이 무엇은 먹지(하지) 말라 인 것입니다.

“말라 나무”

이런 실화가 있습니다. 한창 나이의 딸이 거리에서 자동차 충돌 사고로 죽었습니다. 쌍방의 운전사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었습니다.

네거리에는 반드시 교통 신호등이나 신호판이 있습니다. 생사에 관계되는 중요한 것은 스톱 사인입니다. 스톱 사인은 운전사가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려 주는 경고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운전하더라도 이 조건 하나만은 절대로 지켜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경찰이 교통사고 현장을 조사해 보았더니, 종전에 거기에 늘 세워 있었던 스톱 싸인 판이 그 날에는 없었답니다. 눕혀져 안 보이게 되어 있었답니다. 그날 그 네거리에만 아니고 인근 다른 곳에도 누군가가 스톱 싸인 판을 쓰러뜨려버린 것이었습니다.

한 차가 응당 가도 될 곳이어서 들어갔는데, 다른 차도 응당 들어가도 될 것으로 되어 있어서, 마땅히 스톱하고 들어가지 말았어야 할 교차점을 향해 그대로 달려 들어간 것이 귀한 자식이 죽는 비극을 낳았던 것입니다.
먹지 말라고 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네거리의 스톱 싸인 판과 같은 것입니다. 선악과나무를 “말라 나무”로 기억해 두심이 이 이야기의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고의로 하든, 실수로 하든,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될 때는 자신은 물론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불행이 오게 마련입니다. 동서고금, 지위나 빈부, 남녀노소, 누구를 막론하고 자유의지가 주어진 사람은 누구에게나 행복의 조건으로 반드시 무엇인가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제한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곧 “말라 나무”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마땅히 할 일과 마땅히 하지 말 일

십계명에도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 다섯 가지를 말한 다음에, “마땅히 하지 말아야할 일” 다섯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고 말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라는 말대로 함이 제 길을 가는 바른 일이고, 말라는 말대로 하지 않음이 제 길을 떠나는 틀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하라”는 말씀과 “말라”도 강조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심판하지 말라”(마7:1)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5:38-40)(마5:39), “네 칼을 칼집에 다시 꽂아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마26:52)라고 칼을 쓰는 일만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5:43-44)고 하신 것도 이는 원수를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의 길만이 사람이 가야할 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가르치심이 어려워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런 말씀을 실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일만큼 혼돈 속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탐내는 것이 있어서 쳐들어가는 침략 전쟁을 하면서도 상대방을 “악”이라고 해놓고 살인 행동을 합니다. 한쪽이 절대 선이고, 다른 쪽이 절대 악이라는 판단 자체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이런 경우는 절대 선을 주장하는 편에서는 자기들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 되니), 비록 상대방이 악인 경우에도, 칼을 드는 것은 “칼을 들지 말라”는 제한조건대로 하지 않는 잘못 이라는 것이, 우리가 싫던 좋든 예수님의 입장이신 것입니다.

첫 “성경공부”와 실낙원(불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첫 “성경공부”는 에덴동산에서  “뱀”이 인도한 것이었습니다. 흔히 인간이 에덴동산의 행복을 잃은 것은 뱀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이야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낙원의 이유는 뱀이 인도한 “성경공부” 때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복의 근원이 못되고 화의 근원이 된 것은 성경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고, “뱀”이 인도한 그 “성경공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성경공부가 없었더라면, 또는 뱀의 해석을 따르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아직도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도대체 이 이야기에서 “뱀”은 무엇이고, 그의 성경공부(성경해석)에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일까요?

첫 “성경공부”의 인도자 “뱀”?

창조이야기가 들어 있는 구약성경은 본래 히브리어로 쓰였는데, 희랍시대에 희랍어번역을 통해서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이 희랍어번역에서 히브리어의 “낙하쉬”라는 말을“뱀”이라고 했는데, 그 후 모든 번역본들이 다 “뱀”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물론 “뱀”이라고 번역된 이 생물이 어떤 동물인지는 지금 아무도 모른다고 하겠습니다. “뱀”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낙하쉬”라는 말은 “속이는 자,” “유혹하는 자”등으로 알려졌는데, 신약에서 예수님이 유혹을 받으셨으나 넘어가지는 않으셨다는 이야기에서는 “악마”(마4:1-11) 라는 말이 나옵니다. 또 예수님을 죽이려는 종교지도자들의 음모를 아시고도 피하지 않으시려는 것을 보고, 수제자 베드로가,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고 간청했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마16:22-23)”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탄,” “악마,” “뱀”은 다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로 보아도 좋습니다.

이렇게 뱀을 악마 또는 사탄과 같은 것으로 보면, 살인강도 등 극악무도한 악행을 감행하는 자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에덴동산 이야기에서는 “뱀”에 대한 말은 그가 간교함에 있어서 뛰어났다고 했을 뿐입니다(창3:1). 그리고 “뱀”이 한 일은 하나님의 창조말씀을 두고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 대화에서 하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의도가 무엇이라고 그의 의견을 말한 것뿐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그의 해석을 말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해석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었다는 말이니, 세상에서 가장 악한 행동은, 가장 큰 죄는, 잘못된 성경해석이라고 이 성경이야기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뱀”이 무엇이고, 그의 잘못된 성경해석이란 어떤 것이라고 하고 있을까요?

“뱀”과 사람의 이성

이 “뱀”에 대해서 성경이야기가 말해주는 바 그 내용을 보면,
1) 이 “뱀”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짐승들 중 가장 간교 하였다”(창3:1)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2) 사람과의 대화에서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론    을 전개하고,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설득시킬 수 있는(창3:6)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사람과 흡사하다는 말입니다.

3) 저주받은 다음에는 배로 기어 다니고 흙을 먹게 되었다(창3:14)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이 생물도 처음에는 서서 걸어 다니고 사람과 같은 것을 먹었다는 말로, 역시 사람과 흡사하다고 하겠습니다. 

4) 저주 후에 대대로 사람과 원수가 된다(창3:16)고 했는데, 이 말은 본래 이 생물이 사람과 이웃관계에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대화 시작에 “정말로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고 물은 것을 보아도, 이미 대화를 나눈 사이였음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이 그를 보고도 전연 놀라는 기색도 없었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과 흡사할 뿐 아니라 매우 친숙한 관계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 생물이 사람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점으로 봐서 이 이야기에서 “뱀”이라는 배역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성경이야기로는 수제자 베드로가 “걸림돌”이 될 뻔했을 때, 예수님도 그를 “사탄”이라고 하신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물론 에덴동산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에덴동산이야기는 그때 기록해 놓은 이야기가 아니고,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인간이 당하는 모든 문제 곧 불행의 기원을 밝혀주는 이야기로 전해져 온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거기에 맞게 판단을 좌우할 수 있는 간교함이 있습니다. 곧 간교한 “뱀”이라는 말은 인간생각(이성)의 간교함을 두고 하는 말로 보아도 좋습니다. 인간만의 특징인 자유의지가 불행을 가져온 것은 자유의지를 행사할 때 판단하는 사람의 생각(이성)이 어떤 욕망(유혹)에 사로잡히기 때문인데, 이렇게 흐려진 이상(생각)을 “뱀”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뱀”이 이미 에덴동산에 있었다니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이성은 처음부터 흐려져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 창조이야기가 “뱀”을 실제로 있는 생물인 것처럼 특별한 배역으로 등장시킨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창조 이야기가 복의 근원이 될 가능성을 상실하고 화의 근원인 인간의 불행을 다루면서 동시에 그 해결의 길을 제시하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인데, 불행의 원인 역으로 나온 뱀이 그 문제 해답을 암시하는 역할도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13. 창조 이야기가 말하는 행복의 조건 - “네가 어디 있느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성이 순수하게 진리만을 찾고 진리에만 순종하려는 경지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성경에는 이런 경우보다는 이성이 흐려진 경우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것은 의외의 사실입니다.

인간이성의 간교함
-“이성”을 가지고 하는 대화나 성경해석의 문제-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대화에서 사람의 간교함이 어떻게 드러나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곧 이성을 가지고 하는 대화나, 이성을 가지고 하는 성경해석이 인간의 간교함 때문에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진리만을 찾아보려는 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뱀”과의 대화는 창조말씀의 타당성을 부인하려는 “뱀”의 의도에서 시작된 대화이고 이런 “뱀”의 목적을 달성시키려는 대화라는 데 대화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첫 대화는 창조말씀의 진리를 찾는 것이 되지 못하고, 창조말씀을 부인하는 것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창조말씀은 “모든 열매는 먹으라,” 그러나 “한 가지 열매는 먹지 말라,” 그리고 “이것을 먹으면 죽는다” 세 마디 말씀이었습니다.

1) 그런데 간교한 “뱀”은 창조말씀의 첫 마디는 다 빼 버리고, 둘째 마디만을 가지고 질문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  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창3:1)라고. 그리고 “뱀”은 이렇게 첫 마디를 빼 버린 것만이 아니고, “한 가지는 먹지 말라”는 둘째 마디에서 한 가지라는 말을 빼버리고, 그 자리에 “모든 것을 먹으라”고 한 첫 마디에 있는 “모든”이라는 말을 넣어서,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고 질문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모든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말을 돌려 넣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지나치다고 보는 생각이 일어나고, 말씀의 타당성에 대한 의심을 굳히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어떤 말에 한 두 마디를 빼버리거나 한두 마디를 추가 할 경우에 그 말의 본 의도가 전연 달라집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뱀”(인간 이성)의 간교함인 것입니다. 

2) 이에 대한 대답이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창3:3)였습니다.
여기 본래 없는 “만지지도 말라”는 말이 추가 된 것도 마음속에 “지나치다”는 생각과 말씀의 타당성에 대한 의심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던지, 아니면 “뱀”의 질문에 의해서 생겨났든지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3) 앞에서 본대로 이 창조말씀은 인간도 제 길을, 외    길(궤도)을 가야 한다는 뜻의 말씀이었는데, “뱀”은 창조말씀의 본뜻을 알려주는 말씀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하고, 한 부분만을 떼 내어서, 이 창조말씀이 마치 음식에 대한 한갓 금기인 것처럼 생각하게 하고, 그 금기는 잘못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의도가 옳지 못하다는 이론을 전개합니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3:4-5)라고.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신 말이라고 창조말씀의 의도(본뜻)를 전면 부인합니다. 더 나가서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지 못하기 때문에(불완전하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고, 먹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완전하지 못한 것이니, 먹으면 하나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뱀”(인간이성)의 이론입니다.

4) 다음으로 사람의 생각(이성의 판단)을 결정적으로 좌우한 것(유혹에 빠지게 한 것)은 사람의 생각 속에 있는 욕망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창3:6)라고. 사람의 욕망 때문에 사람의 생각(이성)이 잘못 되게 되고, 이런 잘못된 생각(이성)에 좌우되는 대화나 성경공부는 잘못 되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제한이 있는 자유의지가 아니고 제한 없는 “완전 자유”가 탐스럽고 가능한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현실에서 서로 엇갈리는 주장을 할 때, 쌍방이 다 합리적인 이론을 전개하지만, 이럴 때 동원되는 “이성”은 자기편 이익을 목적으로 삼은 어떤 욕망을 정당화하려는 잘못된 이성인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이성의 간교함을 두고“뱀의 간교함”이라고 한 것입니다.

“뱀”과의 대화(“성경공부”) 이전까지는 모든 열매는 다 먹되 한 가지 열매만은 절대로 먹지 않은 그 길만이 바른길로 알고, 이 외길 만 있는 것으로 알고, 이 외길을 가고 있었는데, “먹지 않은 길 말고, 먹는 길도 있다. 외길 말고 다른 길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마치 하늘의 별이 운행하는 궤도가 하나만인 외길이 아니고, 다른 길도 있다는 식의 생각이 틀린 것임을 보지 못하게 하는 대화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수제자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신 것도, 예수님이 마땅히 가셔야 할 길이 외길이 아니고 다른 길도 있다고 했을 때였습니다. “뱀”이나 “마귀”나 “사탄”은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제 길을 벗어나도록 하는 사람의 잘못된 생각을, 잘못 된 이성을 두고 하는 말인 것입니다. 화의 근원이 되는 가장 큰 악은 이렇게 “뱀”이 인도한 대화, 곧 잘못된 이성에 좌우된 “성경공부”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말과 대화는 의사소통을 위한 것인데 말의 본뜻(의도)을 전달하지 못하는 말이나 대화는 사람됨을 파괴하는 악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말을 한 사람의 말에 악의가 없는데도, 말을 할수록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오해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이간질하는 무엇인가(“뱀”)가, 하고 듣는 말 속에 숨어 있는 것과 같이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보낸 말과 받은 말이 같지 않다”는 말도 있는데, 말속에 이간질 하는 무엇인가(“뱀”)가 숨어 있어서 “한 말과 들은 말이 같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야고보서에 “보십시오. 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큰 숲을 태웁니다. 그런데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입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부분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고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마지막에 혀도 지옥 불에 타버립니다. 들짐승과 새와 기는 짐승과 바다의 생물들은 어떤 종류든지 모두 인류가 길들여서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혀는 누구도 길들일(다스릴) 수 없습니다. 혀는 걷잡을 수 없는 악이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약3:5-8)고 했습니다. 여기 혀라는 말은 혀로 말하는 사람을 말하고, 혀를 움직이는 사람 안에 잘못된 무엇인가(“뱀”)가 있다는 말로 보아도 좋겠습니다. 이 잘못된 무엇이 잘못된 생각, 타락한 인간의 이성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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