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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이 글을 마치며











머리말에서 “물리”에 흥미를 가졌던 어린 시절에 성경이야기해석이 “헛말”처럼 들리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헛말”뒤에 감춰졌을, 수 천 년 묵은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아보려는 것이 신학 공부의 동기였다고 했습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신학자체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죽음과 생명에 대한 물음에서였습니다. 초등학교 마지막 해였습니다. 제주도 4.3 “사건” 때, 담임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이 돌아가셨습니다. 두 형님과 매형이 돌아가시고, 두 조카가 죽고, 아버님마저 돌아가셨습니다. 동리에는 청년 남자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몰살당했습니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남자들이 많은 것을 보고 이상스럽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양민 사살에 쓰인 그 “총”이 어디서 온 것이었는지 그 땐 몰랐습니다. “제주 삼다(三多)”라는 말이 바람 많고, 돌 많고, 여자가 많다는 것인데, 옛 날에도 이런 “사건”과 이런 “총”이 있어서 남자가 귀했던 것인지?) 이렇게 신학 자체에 대한 흥미로 시작한 길이었으나, 나는 신학자라기보다는 외국에서 이민교회 목회자로 살다가 목회자로 은퇴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뜻하지 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간호사의 “자살”과 장례식

독일교회 장학금을 받고 선교학원(미숀스 아카데미)에서 생활하면서, 함부르크대학신학교에서 수학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기에 앞서 고 김정준 박사님이 함부르크 대학에 교환 교수님으로 잠시 계실 때, 몇 사람이 모여서 한국어 예배를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제 신학교 교수님이셨고, 그분 자녀의 가정교사 일도 한 일이 있어서,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귀국하실 무렵에 제가 함부르크에 있다는 소식을 아시고, 그분께서 시작하신 그곳 한국어 예배를 계승할 수 없겠느냐고 전화로 물으셨습니다. 저는 장학기한이 2년으로 한정된 것이고, 공부에만 전념해도 따라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에서, 미안스럽긴 했지만, 교수님의 부탁에 응해드리지 못했습니다. 1년 후에 제 가족도 초청되어 선교학원 사택에 살게 되었습니다. 장학 기간을 마치고 귀국할 예정이었는데, 당시 선교학부 주임교수님이면서 선교학원 책임자이신 분(한스 요한 마굴 박사님)이 선교학부 조수 자리가 하나 비게 되는데, 그 자리를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에 대학에서 월급을 받으며, 또 그분을 지도 교수님으로 모시고, 박사과정에도 들어갔습니다. 

이때 한국인 초기 이민자 중 한분(김대현 사장)이 어떻게 아셨는지, 대학교 사무실로 찾아와서, 한 달에 두 번 설교만을 맡아달라고 청하셨습니다. 목회도 아니고 설교만을 부탁하는 청을 사양할 수가 없었습니다. 설교에 대한 사례비를 주는 것을, 월급을 받고 사는 형편에서 봉사하는 것이라고 해서 사양했습니다. 그해 성탄절에 교회 임원이 찾아와서 봉투를 내놓으면서, 사례비가 아니고, 성탄절 선물이니 받아 주시라는 것이었습니다(1,000 마르크). 제 아내와 그 돈을 무엇에 쓸까 궁리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찍이 한국인 조선(造船)기능공들이 많이 도착했다는 함부르크 조선회사(호발트) “기숙사”에 들렸습니다. 침실 모습을 보았는데 독방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합숙소였습니다. 맥주병 등으로 어수선한 모습이 딱해 보였습니다. 좀 충격적이었습니다(미혼자도 간혹 있었으나, 절대 다수가 다 가정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내 소감을 제 아내에게 자세히 이야기하고, 교회에서 선물로 두고 간 그 돈을 이분들을 위한 일에 쓰기로 합의를 보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합숙소에 와있는 이들 중 매달 생일을 맞는 이들을 우리 집에 초대해서 생일축하 식사를 함께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많으면 10명 전후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사택부엌이 그런 일을 치를 만큼 넓었고, 또 교인 중 간호사들(아직 가정을 갖기 이전이어서 시간여유가 있었음)이 도와줘서 재미있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동참했던 이들 중 이름도 얼굴도 잊어버린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났을 때, 가끔 “이 목사님 댁에 들렸던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하는 인사를 받을 때는, 참 좋은 일을 생각해냈었다는 기쁨과 감사함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통해서 새 교인도 많이 늘었습니다(얼마 후 그 교회의 구성원은 간호사들과 조선공 및 광부 출신들로 거기서 자리 잡으신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현지 상사와 관련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저 교인으로 안면이 있을 뿐, 잘 알지는 못하는 간호사 한 분(지금은 고인이 된 이영자씨)이 제 아내를 찾아 왔었습니다. 말도 시작하기 전에 돈 봉투를 내놓았답니다. 영문을 몰라 사양했더니, 자기 과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어렸을 때 자기 어머님이 어느 시골교회 권사님이셨는데, 교회가 가난해서 목사님은 모시지 못했고, 전도사님을 모셨었으나, 생활비도 제대로 대드리지 못했었답니다. 자기 어머님은 집에서 제일 좋은 것, 밭에서도 제일 좋은 것은 무엇이나, 먼저 전도사님 댁에 갖다드리는 것을 보며 자라났었답니다. 아직 어렸을 때, 어머님이 병들어 눕게 되셨는데, 어린 오빠와 자기를 불러 유언을 남기셨답니다. “너희들은 커서 돈을 벌게 되거든, 목회자를 돌보는 아이들이 되라”는 말씀이셨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의지 없는 자기들은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고,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공부도 하고, 나중에 간호장교가 되었답니다. 제대하고 신학을 공부하려고 입학했다가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겨, 독일에 간호사로 자원하게 되었답니다(당시 한국 경제 사정은 어려웠고, 가정의 어려운 살림을 돕고자 독일에 간호사로 지원한 이들이 퍽 많았습니다). 자기 손에 돈이 생기자, 이제부터는 어머님의 유언을 들어드려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월급만으로도 넉넉하니 그럴 필요가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렸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유언을 지키는 좋은 딸이 되게 해달라는 간곡한 청에 못 이겨 그 돈을 받아는 놓았습니다. 무엇에 쓰면 좋을지는 아직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 두 번 더 찾아와서, 과거 고아원 생활 등 괴롭고 외로웠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직장에서도 수간호사(오버 슈베스터)와의 어려운 문제가 많았는데, 언젠가 목사님에게 말씀 드리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미국으로 갈 수속을 시작했다는 말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상담할 기회는 한 번도 갖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 사무실로 영사관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영사관에서 전화가 왔다는 일도 뜻밖의 일이었지만, 그 내용은 너무나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어떤 한국 분이 죽으면서 써 놓은 유서를 영사관에서 맡아 처리하게 되었는데, 그 유서 내용에 우리에게 남겨놓은 돈이 있으니, “와서 돈을 찾아가십시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유서는 1,000 마르크를 우리 생활보조비로, 1000 마르크는 우리 교회 헌금으로, 얼마의 돈은 자기가 자랐던 한국 고아원 후원금으로, 또 얼마의 돈과 전축 등 유품들은 한국에 있는 자기 오빠에게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답니다. 함부르크 한인교회 앞으로 된 것과 우리 앞으로 남겨진 것 합해서,  2,000 마르크로 교회에 “장미문고”라는 이름의 도서실을 마련하고, 책을 사기로 제직회에서 결정했습니다. 이국에 가서 젊은 목숨을 잃기 직전까지 모은 그 돈이 전부 한국 땅으로 떨어지게 한다는 뜻에서 책은 한국에서 주문해 오기로 했습니다. 독일 다른 지역에서도 책을 빌려다 볼 수 있도록 우편 대출도 할 만큼 널리 알려졌을 때, 우리는 독일을 떠났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그 유서의 내용보다도, 그녀가 죽게 된 사연과 사인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이 더 컸습니다. 기숙사 독방에서 “죽어있는” 것을, 며칠 후에 수간호사가  발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우리 집에 찾아 왔던 바로 그 간호사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내가 한 달에 두 번 설교만하지 않고, 더 시간을 내어 목회상담도 해 줄 수 있었다면, 그분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는데!” 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목회상담을 통해서 어려운 순간을 넘기고 마음을 고쳐먹는 경우를 자주 체험했기에, 지금도 그렇게 생각됩니다). 이렇게 죽어간 그 시신을 이국땅에 묻는 장례식 집례는 내 몫이었습니다. 내 일생 첫 장례식 집례였습니다. 그 분이 우리 집에  놓고 간 그 돈으로 목사 예복을 맞추어 입었습니다. 독일교회 목사가운으로 검정색에 하얀 댕기가 달린 것입니다. 그 후로는 예배시마다 꼭 그 예복을 입고 집례 했습니다. 캐나다에 와서도(캐나다 연합교회 목사들이 입는 예복을 입었으나), 장례식 때만은 언제나 그 예복을 입고 집례 해왔습니다. 은퇴직전 마지막 2년 동안에는 일생 목회에서 했던 것 보다 더 많은(21회) 장례식이 있었는데, 모두 그 예복을 입고 집례 했습니다. 은퇴 후 함부르크 교회에 3개 월동안 임시목사로 잠시 들릴 일이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떠나기 며칠 전, 그 교회 제직회장(고 손기영 집사님)이 불의의 직장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체재기한을 연기하고, 그 장례식(2003년 1월 10일)에 그 예복을 다시 한 번 더,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었습니다. 이민교회 목회자로 살다가 이민교회 목회자(한국 어느 신학교 교수자리가 아닌)로 은퇴하게 된 데는, 이 사건이 한 가지 동기가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 당시 직장에서의 어려움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말도 있었으나, 정확한 사연도 사인도 알지 못한 채 장례식을 치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는 당시 한국의 어려운 정세와 사회부조리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데 한 몫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신학과 목회, 그리고 그 목적은?

다른 한 가지는, 나 자신과 직접 관련된 생각으로, 지금까지 깊어지고 굳어지는 생각입니다. 가장 훌륭한 신학교는 “양떼를 먹이는” 사명을 띤 목회 현장이라는 생각과 함께, 성경의 바른 이해도 인간생명을 다루는 목회현장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목회현장을 교인들이 몰려오는 “교회”울타리 안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모여 오는 그곳이 아니고, 사람이 사는 생활현장이 목회현장입니다. 그래서 무덤을 찾아갔던 세 여인들에게 한 천사가 일러 주기를,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 말고, 갈리리로 가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막16:5-7). 예수님에게는 신학과 목회가 둘이 아니고 하나였다는 생각입니다. 그분은 “신학자”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닌데, “신학자”도 “목회자”도 다 그분 앞에서 자신들의 자세를 교정 받아야 할 그런 분이시라는 생각입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신학이 없는 “목회자”는 약장수이나, 양약이 아닌 독약을 주게 마련일 것이고, 목회 없는 “신학자”는 사회부조리라는 강도를 만나 상처 입은 사람을 피해가는 “제사장”이요 “레위 사람”에 불과하겠다(눅10:31,32)는 생각이었습니다.

진리 탐구의 신학과 사람을 보살피는 목회는 둘이 아니고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흔히 신학이 타종교보다 자기 종교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심지어는 자기 교단이 타 교단보다 “옳다” 또는 “정통이다”라고 변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신학은 그 목표가 잘못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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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신학이 신학을 위한 것이 되어도 안 되고, 목회도 목회를 위한 것이 되는 순간 그 목적이 잘못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신학도 목회도 그 바른 목적은, 무엇에든 희생당하고 있는 인간생명을 보살피기 위한 것이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인간을 희생시키는 “그 무엇”이라는 말에는 타 종교와 더불어 자신의 종교도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를 들여다보고, 자신들의 종교는 물론 자신들의 신학자체를 비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때에라야 만, 참 신학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각 종교의 신학은 각각 그 종교의 자아반성을 위한 올바른 척도를 제공하는 것을 첫 목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신학도 목회도 그 무엇엔가 희생당하는 인간생명을 보살피는 참된(바른) 공동체를 위한 행위라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신학이나 목회가 기독교를 위한다거나, 기독교 성경의 “권위”를 위한다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위한다거나 하는 것이 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무엇에든 희생당하고 있는 인간 생명을 보살피는 그런 공동체를 바라는 행위라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하나님)의 나라와 그(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바라라)”(마6:33)라고 하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의 나라”는 사람이 무엇에도 희생당함이 없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바라는 그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장례식과 산 사람의 “장례식”

은퇴 후 한 번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생 입었던 그 목사 예복이, 한 여인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그 예복이, 죽은 사람의 주검(시신)만을 장사지내는 데 사용되었다면, 너무도 허무하고 서글픈 일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신학도, 목회도, 교회의 사명도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산 사람의 생명을 보살피는 것, 살았으나 죽은 사람처럼 사는 사람을 살리는 것만이 허무와 서글픔을 극복하게 해 준다는 생각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도, 사람의 어떤 희생도 헛되지 않게 할 수 있는 행위만이 가치 있는 일이겠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님께서는 목회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같은 장로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권면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 그들을 잘 감독하십시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해서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러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변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벧전 5:1-4). 

“여러분 가운데 있는 양떼를 먹이라”(베전5:2)고 하신 이 말씀도 살아 있는 양떼를 먹이라는 것이지, 죽은 양을 돌보라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양떼를 먹이라는 말에는, 살아있는 양떼에게 생명의 위협을 주는 모든 잘못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 있다고 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1) 개인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일 수도 있지만, (2) 집단적으로 잘못된 제도나 정치(사회부조리)일 수도 있습니다. 이 전자(1번)에 희생되는 사람을 돕는 자선이나 구호에 대해서는 의도적인 교육이 없이도, 일반 교인들이 나면서부터 마음과 생각이 비교적 잘 준비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반면 (2) 두 번째, 집단적으로 잘못된 제도나 정치(사회부조리)에 희생되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심스러운” 상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교단 성격에 따라 일반 교인들의 사회의식화 양상이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오염 등과 같은 집단적인 원인에 의해 전 인류가 희생당하는 비극을 앞에 두고도 “개인구원,” “영혼구원” 또는 “천당 감” 만을 고집할 것인지?). 심지어 바로 이 문제를 두고 교회분열까지도 생기는 형편입니다(이민교회의 두드러진 성격 중 하나는 한국이 정치적으로 군사독제 하에 있을 그 무렵, 교회가“친 영사관”이냐 “반 영사관”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분열과 성경이해 문제

외국에서 목회했던 세 교회 중 교회 분열을 겪지 않은 교회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교회는 내가 떠난 후에, 두 교회는 내 부임 전에 이미 교회분열 싸움이 있었답니다. 그것도 여러 번. 내 부임 전에 분열되었던 이 두 교회 중 한 교회는 내 부임 중에도 분열이 한번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역시 몇 차례 더 연속되었습니다. 이민 교회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지는 데는 교회 분열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늘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짓은 얼굴 두꺼운 사람들이 그로 인한 피해를 못 보는 “장님 짓”입니다). 분열에는 “교권 장악”을 위한 일종의 “패거리”싸움과 흡사한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를 들면, 사회정의와 인권문제를 둘러싸고, “어느 길이 옳으냐?”하고, 교회의 입장을 정함에 있어서, 곧 성서적으로 바른 기준을 찾는데 있어서, 성경이해(해석)에 차이가 있는 데서 오는 분열이라고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기독교만이 아니고 모든 종교는 다 각각 그 종교의 경전이해의 차이에서 오는 “싸움”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서구 기독교(또는 캐돌릭) 국가에서는 이슬람교의 “근본주의적”인 “과격주의자”들이 화평을 위협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안에도 “기독교 과격주의”가 지배적인 교세로 “행패”를 부릴 가능성이 있다는 데 대해서는, 그리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이 어두워 있다고 봅니다.

처음 교회와 정권이 유착된 중세기 역사비평과 반성에서 “정교분리”를 외쳤다가, 그 후 정치 및 사회적인 불의에 대한 교회의 방조 내지 잘못된 무관심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서, 교회의 사회참여를 외쳐야 했습니다. 이제는 교세가 확장된 모든 종교와 함께 기독교회들도 정치 참여에 발 벗고 나서는 판국이 되어갑니다. 문제는 교세가 정권을 탐하는 참여냐, 정권에 희생되는 백성을 위한 참여냐 하는 입장이 문제입니다. 이 입장에 따라 경전이해가 귀걸이 코걸이 식으로 잘못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의 대화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나에게,

“그래, 네가 목회한 함브르크의 한인교회나, 캐나다의 한인교회들이 어떠하더냐?”하고 물으신다면,

“예수님이 목회하셨던 갈리리 지방이나, 예루살렘 지방의 목회 현장보다는 훨씬 낫고 쉬웠습니다”(아니면 제가 “목회”를 훨씬 더 “잘”한 것일까요 라고 할 수는 없겠으니 말입니다).

“더 쉬웠다고 보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고 물으신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지만, 저는 아직 이렇게 살아있으니까요”라고 할 것입니다.

또 예순님이 “앞으로 그 교회들에 희망이 있다고 보느냐 없다고 보느냐? 희망이 있고, 없음이 무엇에 달렸다고 보느냐?”하는 질문을 하신다면, 나는 “교인들의 성품이나 품격에 변화가 생길 것인지, 생기지 못할 것인지에 달렸다고 봅니다”하고 둘째 질문에 대한 대답만을 할 것입니다(첫 질문에 대해, 희망이 있어 보인다는 대답을 할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희망이 없어 보인다는 말도 할 수 없어서일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주님을 모르고 박해하다가 깨닫고, 곧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바로 알게 된 바울 사도님의 체험담에 보면,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롬5:3하-5)라고 해서, 희망은 사람의 품격에서 나온다고 보신 바울 사도님의 통찰이 옳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성품이 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더냐?”하고 물으신다면,

“그거야 저는 모르지요. 모를 뿐 아니라, 그 일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지 않습니까?”

한 가지만 더 너에게  물어보자 하시고,

“너도 내가 지금 사람들이 ‘천당’이라고 하는 그런 데 가있다고 생각하느냐?” “거기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먼저 다음과 같은 이야기 하나를 생각해 낼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말틴 루터 신부님이 성경을 가르치시는 시간에, 어떤 사람이 묻기를,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하고 묻자, “하나님은 그런 질문이나 하는 너 같은 놈을 칠 회초리를 만들고 계셨다”라고 대답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고 나는 예수님의 질문에,

“‘그런 데’ 가 계신다고 해도 주님은 거기 계실 수 없으실 것입니다. 거기서 회초리를 만드시고는, 바로 ‘거기’를 떠나,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팔며 허튼 수작이나 하는 놈들을 치러(요2:13-16) 이 세상으로 오셔야 했을 터이니까요”라고.

이런 대화를 마치고, 나도 언젠가는 목회현장인 이생을 떠나 “거기”로 갔다가, “거기”를 떠나, 예수님이 일하시고 계신, 삶의 현장인, 이생으로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여기서 “그런 데,” 또는 “거기”라고 표현하는 “곳”은 영어로는“somewhere” 라는 말보다는 “nowhere”라는 표현이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떠나서 태어나고 죽어서 돌아갈 “거기”는 “곳(장소)”라기 보다는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또는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생으로 다시 올 수 있고 없고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이생이 “그의 나라”가 되고, 이생에 “그의 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그 바람이, 죽어도 끝나지 않을 그런 제자가 될 수 있을지 될 수 없을지에 달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바람의 열정이 너무 커서”(요2:17),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요2:17에는 “주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주의 집”은 하나님의 나라 곧 의로운 공동체를 뜻합니다).

마지막 기도

양떼들을 먹이는 사명을 바로 감당할 수 있는 참된 공동체를 세울 수 있도록, 우리 사람들의 품격이 거듭나게 하옵소서. 그래서 먼저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바라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런 바람을 그만 두지 않을 수 있도록, 잘못된 무엇에든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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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05.03.09 By이재형 Reply0 Views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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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33 `축복`? (2)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화해-

    Date2005.02.08 By이재형 Reply1 Views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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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32. `축복`? (1) -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형제싸움 -

    Date2005.01.08 By이재형 Reply0 Views5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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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31. 기도 -며느리 선택(기준) 이야기-

    Date2004.11.25 By이재형 Reply0 Views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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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28. 의인 열명을 채울 사람은? -소돔을 위한 아브라함의 기도 이야기-

    Date2004.10.20 By이재형 Reply0 Views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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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27.“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부인 사라와 부인의 몸종 하갈,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 이야기-

    Date2004.09.18 By이재형 Reply0 Views6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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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5.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야 했던 이야기 -잘못된 세상에서 잘못한 다음에-

    Date2004.06.23 By이재형 Reply1 Views2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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