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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떨기가운데 이는 불꽃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체험
      -모세의 체험 (4)-          출 3:1-29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는 질문

1. 하나님의 천사가 모세에게 무엇으로, 어디에 나타나셨다고?
2. “떨기”는 무엇을 뜻할까? 
3.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타지 않았다”는 말은 떨기에 타는 것과 타지 않는 두 가지 종류의 떨기가 있다는 말일까? 또는 태워버리는 불과 태워 없애지 않는 두가지 다른 불이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두 가지 경우에 다 해당되는 말일까? 그렇다면, 보통 인간은 어떤 떨기일까? 어떤 불에 타고 있는 것일까?
4. “불이 붙는데도 타지 않는 떨기”라는 말은 “정의가 이길(실현될) 때까지 그는 ...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을 것이다”(사42:3,마12:20참조)라는 이사야의 말에 “타 없어지지 않는 심지”라는 말과 같은 말이 아닐까?
5. 인간고의 원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종교는 이런 원인들 중 어떤 것을 주로 다루는 것이라고 할까? 이 이야기(출애굽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은 어떤 원인에서 오는 고난을 어떻게 하시려는 분으로 체험했다는 이야기일까?
6.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출3:10)라고 하셨을 때,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하고 묻자,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출3:11-12)라고 대답하셨다는데, 여기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말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7.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나는 나다”라는 대답에 이어서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뜻은? “모세의 하나님”이라는 말도 할 수 있을까? “이사야의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하나님”은? “히틀러의 하나님”은? “처칠의 하나님”은? “김일성의 하나님”은? “이승만의 하나님”은? “사담 후세인의 하나님”은? “조지 부쉬의 하나님”은?
8. 보통 하나님의 음성은 “하늘에서 들려왔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모든 음성이 “떨기 가운데서” 들려 왔다고 했습니다. 그 뜻은?

불이 붙는데도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

모세가 살인과 도피경험에서 갖게 된 “모든 것이 헛되다”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앞에서 <41. 제사장 딸과의 결혼과 유목공동체생활체험> 본대로 미디안에서의 첫 경험, 제사장 딸과의 결혼과 유목공동체생활 체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고, 꺼지지 않은 불과 같은 확신으로 히브리인 노예해방운동에 들어가게 된 것은 미디안에서의 둘째 체험, 떨기 가운데 이는 불꽃으로 나타난 천사의 음성을 들음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이 미디안에서의 둘째 체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의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거기에서 주님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이 놀라운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어째서 그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출3:1-5).

죽이는(태워 없애는) 불, 살리는 불(생명의 기)

집에 도둑이 들 염려도 있고, 불이 날 염려도 있습니다. 도둑이 들면 남겨 놓는 것이 있지만, 불은 남겨 놓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은 전부를 태워야 꺼집니다. 이집트에서 살인범이 되어 미디안으로 도피해온 모세는 광야에서 말라죽어 가는 떨기를 종종 보았을 것입니다. 거기에 불이 붙는다면 잠시 후 사라져 버립니다. 이런 떨기가 자기 일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인생은 다 불에 타버리고 말 떨기와 같은 점이 없지 않습니다. 사람의 열정은 인생떨기를 태워 사그라지게 하는 불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장사라 해도, 아무리 건강관리를 잘 한다고 해도 세월과 함께 사그라지지 않고 남을 몸은(인생 떨기) 하나도 없습니다. 명예와 권세와 물욕의 불, 경쟁심의 불, 정욕의 불, 걱정 공포 절망의 불, 죄책감의 불, 어리석음과 무지와 실수에 따른 후회의 불, 억울함과 울분의 불, 증오의 불, 맺힌 한의 불, 이런 것만이 인생을 태워버리는 것이 아니고, 의로운 의협심이나 정의감의 불도 인생을 태워버릴 수 있는 것을 모세는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다른 사람의 노동을 착취해 먹고사는 이집트사회를 떠나서, 자기 몸으로 일해서 먹고사는 미디안 광야공동체를 체험하면서부터는 다스려지지 못한, 죽이는 불이 있고, 다스려진, 살리는 불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그가 약자 히브리인을 때리는 강자 이집트인을 쳐 죽여 모래에 묻은 일은 자신이 약자가 된 의협심과 정의감에서 행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의를 실현하려고 한 그 방법은 폭력을 쓰는 강자 이집트인의 방법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모든 불이 다 그런 것처럼 약자를 위하는 열정의 불도 다스려지지 못하면 강자의 폭력과 같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폭력이라는 죽이는 불에 자신이 타 사라져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 체험

이렇게 시작된 광야생활에서 80을 바라보게 되면서 그는 죽이는 불이 아닌, 살리는 불, 모든 것에게 생명을 주는 불, 모든 생명의 원천인 생기(에너지)로서의 불(하나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 체험이야기에서 모세가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여러모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정의를 실현하시는 하나님 -떨기가 타지 않았다는 뜻-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떨기 가운데 “이는 불꽃”으로 나타났다는 말은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 “이는 불꽃”으로 나타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불꽃이 떨기를 태워 없애지 않았다는 말은 말라죽을 떨기와 다를 바 없는 모세나 노예히브리인들을 헛되이 사라지게 하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됩니다.

정의가 실현될 대까지

여기 “태워 없애지 아니한다”는 말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구약 이사야서(사42:3)를 인용해서 “정의가 이길(실현될) 때까지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을 것이다”(마12:20)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이 말이 기도에서 자주 인용되는데, 앞에 나온 “정의가 이길(실현될) 때까지”라는 말은 빼버리기가 일수입니다. 여기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심지”는 일반적인 뜻으로 사람 누구든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정의실현을 위한 역사의 주역을 맡았으나 아무런 힘도 없어 고난을 견디어야 하는 약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이런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이런 심지를 끄지 않으신다는 말은,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새 역사창조의 주역을 맡은 약자(상한 갈대 같고, 꺼져가는 심지 같고, 매 마른 떨기 같은 이들)가 포기하지 못하도록 붙드신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이집트 왕의 폭력 앞에 서야 할 모세는 풍전등화, 꺼져가는 심지, 상한 갈대, 매 마른 떨기이지만,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버티어내도록 붙드시는 하나님체험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꺼져가는 심지, 상한 갈대는 모세였고, 신약성경 이야기에서는 이 꺼져가는 심지, 상한 갈대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신약에서는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은 떨기는 예수님의 십자가였습니다. 곧 십자가에 사랑의 불꽃이 이는데도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타 없어지지 않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신약에서는 “꺼져가는 심지,” “상한 갈대,” “불붙은 떨기”가 아니고, “꺼진 심지,” “죽은 갈대,” “불에 타 사라진 떨기”도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 다시 “되살아나도록 하셨다”는 것이고, 이를 부활이라고 한 것입니다.

2. 정치 및 경제적인 불의에서 생기는
  인간고의 해방을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에 대해서 사람마다 여러 가지로 달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모습은 세상에 불의가 없어지고(정치, 경제, 사회의 불의를 개혁하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에 위배되는 “신앙”은 모세님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집트의 신이 강자만을 위한 신이었는데 반하여, 광야에서 모세가 체험한 신은 불의에 희생당하는 약자들(히브리인노예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약자가 “고통 받는 것을 똑똑히 보시고,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저들의 고난을 분명히 아시는”(출3:7,9) 분이시며, 약자인 히브리 노예들을 “나의 백성”(출3:10)이라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고난은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변이나 질병에서 오는 경우가 있고, 도덕적인 죄가 원인인 경우가 있는데, 종교는 주로 죄와 관련된 고난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출애굽기는 또 하나의 다른 고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곧 정치적인 원인에서 생기는 고난을 주제로 다루고 그 해결의 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정치적인 원인에서 생기는 고난도 결국은 인간의 죄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보고, “종교적”인 해결의 길을 찾으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출애굽기이야기에서는 이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정치적인 원인에서 생긴 인간의 고난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길은 노예해방운동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노예해방운동이 바로 하나님신앙운동입니다.<그러나 이 노예해방운동이 일반 정치운동과 다른 점에 대해서는 42. 노예탈출과 재앙 -모세의 체험(5)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의 개인 간의 죄와
출애굽기의 집단 간의 죄

창세기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 동생 아벨을 죽인 형 가인의 죄, 아버지와 형을 속인 야곱의 죄, 동생을 미워해서 노예로 팔아버리고는 아버지에게는 야수에게 잡아먹혔다고 거짓말을 한 요셉 형들의 도덕적인 죄의 문제를 다루고 참회와 용서를 통한 화해의 경지로 인도하는 것이 종교의 중요한 과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이야기에서는 인간의 잘못을 다루면서도 개인적인 잘못보다는 집단적인 잘못인 정치, 경제, 사회적인 불의문제(노예제도문제)를 주제로 다루면서 정신적인 참회나 사죄에서 끝나지 않고, 노예해방이라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개혁을 신앙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 독특한 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은 잘못된 인간역사와 무관하신 분이 아니고, 이런 잘못된 역사에서 생기는 고난을 구원하심으로 바른 역사를 창조하시려는 분이시라는, 역사의 주이신 하나님신앙을 처음으로 체험하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사실을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으로 데려가려고 한다”(출3:8)라고 했다는 천사의 음성이 확인해 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비록 모세가 살인을 범한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가 노예해방을 위한 주역을 맡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막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3. “내가 내려가서”? -새 역사창조의 주역-

여기 “내(하나님)가 내려가서”라는 말은 역사의 주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말이지만, 이말 바로 다음에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출3:10)라고 해서, 모세를 통해서 새 역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하고 묻자,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출3:11 -12)라고 대답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을 주로 함께하셔서 “보호하신다”는 말로만 이해하기 쉬운데, 여기서는 역사의 주역을 대신할 사람으로 부르신 모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지게 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노예해방, 정의 실현이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되도록 하심으로 그가 불의 앞에 서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신다는 뜻입니다. 살인범이 되어 불가불 피신했었지만 노예제도문제는 도피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됩니다. 노예제도문제는 누르는 자와 눌리는 자의 문제로, 노예해방에서만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그의 깨달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런 그의 깨달음이 히브리인 노예들에게 전해져서, 저들도 노예 된 고난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이런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고 계획임을 확신하게 됨이 하나님의 “내려오심”이고, “함께하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노예의 고난에 대해서 모세를 통해서 어떻게 하시려는지에 대한 천사의 말을 히브리인들과 장로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창3:16-17).

4. 하나님의 이름:
  -“나는 나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백성들에게 노예해방을 명하신 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리는 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곧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나’라고 하는 분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하여라’. 하나님이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출3:13-15).

“나는 나다”

여기 “나는 곧 나다”라고 번역된 이 말은 “여호와”(야훼)라는 말로, 최근 번역에서는 “주님”이라는 말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항상 계속 창조해 나가실 분이라는 뜻에서의 창조주입니다. 그런데 이 천사의 말에서 그 뜻을 보다 구체적으로 풀이해 주고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이름이며, 대대로 기억할 이름인 “여호와”(야훼)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조상의 역사가 있도록 하신 분, 곧 아브라함의 역사가 있도록 하신 분이시고, 이삭의 역사가 있도록 하신 분이시고, 야곱의 역사가 있도록 하신 분이라는 말이 됩니다.

창조이야기에서 혼돈과 어두움에 질서와 빛이 있도록 하신 분이시고, 변두리 인생 아브라함이 있던 곳을 떠나 복의 근원이 되는 길을 가는 역사의 주역을 맡도록 하신 분이시고, 이삭의 아들 쌍둥이 에서와 야곱 간의 장자권을 둘러싼 형제싸움의 역사에서 형제화해의 역사가 탄생하도록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는 언약을 지키신 그 분이, 이제 모세로 하여금 노예해방사의 주역을 맡아 노예 히브리인들이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모세의 하나님”? 

여기서 조상의 하나님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세 족장의 이름만 열거되었지만, 그 이전 세대로 올라가면, “노아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추가할 수 있고, 세 족장 이후로 내려와서는 “요셉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더 추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 다음세대에서부터 “모세의 하나님” 이라는 말도 추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이사야의 하나님,” “예레미아의 하나님,” “아모스의 하나님” 등 구약에 나오는 모든 “예언자들의 하나님”이라는 말로, 그리고 기독 신도들로서는, “예수님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물론이고, 남자 12제자들의 하나님, 예수님을 따르고 섬긴 여인들의 하나님, 사도 바울의 하나님이라는 말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간디의 하나님”? “말틴 루터 킹의 하나님”?
“만델라의 하나님”?

뿐만 아니라, 현대 역사에서 인류 평화와 정의실현에 이바지한 분들의 이름을, 예를 들어 “간디의 하나님”(힌두 교인이었지만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기본정신을 실천한 점에서), “마틴 루터 킹의 하나님,” “만델라의 하나님”이라는 말도 더 추가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나다”라는 말의 뜻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나다”는 말은 시대가 지나면서 그때마다 생기는 인간의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 주역들을 선택하셔서 새 역사창조의 일을 맡기시는 역사의 주님이 하나님이시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히틀러의 하나님”? “루스벨트의 하나님”?
“사담 후세인의 하나님”? “조지 부쉬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의 뜻을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경우들을 생각해봄이 도움이 되겠습니다.
최근 역사에서 주역을 맡았던 인물들의 이름을 넣고 “누구누구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자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이차대전시 양 진영의 인물들을 넣어서, “히틀러의 하나님,” “무쏠리니의 하나님,” “도조의 하나님,” “처칠의 하나님,” “스탈린의 하나님,” “루스벨트의 하나님,” “드골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쓸 수가 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그 후 냉전시대의 예를 든다면, “후르시초프의 하나님,” “장개석의 하나님,” “모택동의 하나님,” “케네디의 하나님,” “리건의 하나님” 이라는 말은? 한국의 예로, “김일성의 하나님,” “이승만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더 최근으로 내려와서 “사담 후세인의 하나님,” 또는 후세인을 친 “부쉬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쓸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물이 기독교나 천주교의 신도였느냐는 기준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세도 예언자들도 기독교나 천주교 신도들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기독교나 천주교 신도들이 이런 분들의 신을 신봉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기독교 또는 천주교 신도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또는 어떤 인물이 의로운 사람이었나, 불의한 사람이었느냐는 질문을 기준으로 삼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도 잘못한 일이 있었고, 이삭과 야곱도 잘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모세도 살인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성경이야기에서는 이런 이들의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는 이유는,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모세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조금도 주저 없이 쓸 수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이럴 때의 기준은 모세의 노예해방운동이 지역과 민족,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우주적인 진리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역대 왕조 중 몇 왕들이 소위 찬란한 문화의 유적을 남긴 것을 경탄하게 되지만, 그것이 당시 백성들을 착취한 죄악의 흔적임을 모세의 하나님이야기는 지적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인도한 노예해방운동은 이집트인에게는 해로운 길인 것 같았으나 결국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가 가야할 바른 길이었다는 점에서 복의 근원이 되는 길인 것입니다.

천주교인이나 기독교 신도들로서는, 이집트의 유명한 여러 왕들의 이름을 달고 “누구누구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듯이 “히틀러의 하나님,” “무쏠리니의 하나님,” “도조의 하나님,” “스탈린의 하나님,” “후르시초프의 하나님,” “김일성의 하나님,” “사담 후세인의 하나님”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처칠의 하나님,” “드골의 하나님,” “케네디의 하나님,” “리건의 하나님,” “이승만의 하나님,” “부쉬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할 수 있겠다고 보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쓰이는 기준이 옳은 것일까요?

또는 이런 판단은 우리가 할 것이 아니고, 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이 하셔야 하고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보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기준도 우리의 기준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5:45)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렇게 누구누구의 하나님이라는 말에 대해 여러 가지 점을 생각해 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성경이야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누구누구의 하나님이라고 알려주신 그 하나님은,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에 보면, 우리가 쓰는 일반적인 기준보다 더 크신 분이시고, “바로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는 것처럼 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바로 왕이 노예백성들의 해방을 계속 거절하도록 고집을 부리게 한 것은 하나님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겠는데, 이런 뜻에서 보면 하나님은 바로왕의 하나님일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 43.“노예들의 탈출과 열 재앙”에서 보겠습니다.> 모세가 노예해방운동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하나님신앙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모습은 볼 수 없고,
뒷모습만 볼 수 있는 하나님

역사의 주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나는 나다”라고 하고, “나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 뜻에는 이들을 역사의 주역으로 쓰신 하나님이라는 뜻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다른 뜻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신 일을, 그것도 그 일이 성사 된 다음에야, 볼 수(알 수) 있지만, 다음 대인 이삭을 통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는 오직 이삭 시대와 그 후대의 사람들만이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그 다음 대인 야곱을 통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는, 아브라함 대의 사람도, 이삭 대의 사람도 볼(알) 수 없고, 오직 야곱과 그 후대의 사람들만이 볼(알)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에 대한 한 세대의 이해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세대가 지나면서 보다 완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노예를 해방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이해는 창세기이야기에 나오는 세대들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으로, 모세 시대에 와서 처음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우리 다음세대에 가서 새로 생길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이 “나는 나다”는 말은 “나는 앞으로 될 나일 것이다”는 뜻을 내포한 말로, 우리의 하나님 이해는 아직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걸어가신 다음에 그 뒷모습만을 볼 수 있지, 하나님 앞에 서서, 걸어오시는 하나님의 앞모습을 볼 수는 없습니다(출33:23). <이에 대해서는 46.“이상을 품은 사람들이 바라는 공동체”에서 더 살펴보겠습니다.>

새 시대의 잘못을 바로잡으시는 창조역사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옛 세대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그러면서 보다 온전한, 하나님의 모습을 알(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치는 하나님 이해에서만이 아니고, 인생 모든 일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어떤 일을 당하게 될 당시보다는, 그 일이 지난 오랜 다음에야 그 일의 의미와 영향을 보다 분명하게 깨닫게 되듯 말입니다.

5. 속에서 들리는 소리이신 하나님

흔히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은 호렙 산에서였다고만 이해하는데,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불꽃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는(창3:4-21) 모든 음성은 “떨기 가운데서”(창3:4) 들려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온 것이 아니고, 타죽을 수 있는 “떨기” 가운데서 들려왔다는 것입니다. 불꽃으로 나타나신 하나님도, 그의 음성도, “떨기 안에 들어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떨기”는 헛되이 사라져버릴 수 있는, 설 곳을 잃은, 모세 자신(그리고 약자 히브리인)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울분과 격분의 불길에 싸여 살인까지 감행했던 그가 이제는 성령의 불꽃을 품고 사는 사람이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그는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볼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귀를 가지게 되는 경지에 보다 가까워진 것입니다. 이제 그의 생각의 틀이 하나님의 “생각의 틀”에 가까워졌다는 말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이 성령의 불과 음성으로 모세 안(떨기 가운데)에 들어와 계셨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생기로 채워진 사람, 영감으로 채워진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런 경지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이 자기 안에서 들리는 “속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렀기에 그가 한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입니다. 요한이 자기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요1:23)라고 한 것도 이런 경지에서 한 말씀이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도 이런 소리가 이미 백성들 마음속에 있으니 그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뜻에서 “씨알의 소리”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라고 봅니다. 모세는 귀족으로 있을 때가 아니고, 천민인 노예백성의 한 지체가 되었을 때,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살인하고 도피하게 된 것은 그의 나이가 “어른이 되어서”(출2:11)라고 했고, 천사의 불꽃체험을 하고나서 이집트로 돌아가서 바로 앞에 설 때 그의 나이 80(출7:7)이 되었다고 한 것을 보면, 이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미디안 광야 생활 사오십년간의 긴 세월이 걸렸다고 하겠습니다. 사오십년간 고독한 생활이 헛된 것이 아니고, 노예해방의 역사창조를 위한 수도생활이었습니다. 이 광야생활체험은 후에 히브리인들이 노예탈출 후 40여 년 간 광야에서 헤매게 될 때 죽지 않고 살아남는 생존법을 터득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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