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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편 모세 이야기(1)
      -노예탈출-          출애굽기 1-40
           






   
“출애굽기”라고 번역된 이 책은 전체 40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 중 처음 14장은 히브리인 노예들의 탈출이야기이고, 나머지는 탈출 후 광야에서 새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는 데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야기에서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서는
1) 살던 데서 떠나서,
2) 하나님이 보여주실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두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화의 근원됨에서 떠나 복의 근원됨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떠나기만 하고 들어감이 없으면 현실 도피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기 히브리인 노예들도 노예 됨에서 탈출(떠나기)만하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지(새로운 공동체에 들어가지) 못하면, 복의 근원됨에 이르지 못한 도피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14장까지의 탈출(떠남)은 15장에서 40장까지의 새 공동체에 들어가는(새 공동체를 형성하는) 둘째 조건을 위한 첫 조건인 것입니다. 먼저 탈출(떠남)이야기를 보고 공동체 형성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창세기 아브라함이야기에서는 떠남과 들어감의 주체가 개인이었는데 반하여, 출애굽기의 노예 히브리인들의 이야기는 떠남과 들어감의 주체가 집단인 것이 다른 점입니다. 


















38. 군주의 폭력과 여인들의 힘
      -모세의 경험 (1)-      출 1:1-22, 2:1-10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는 질문

1)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떠날 수 있는 것일까?
  떠나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2) 떠날 수 없도록 하는 힘에 대응할 힘은?
3) 왕이 노예백성을 강제노동으로 혹사시킨 이유는?
  무엇을 위해서?
4) 노예백성의 사내아이를 죽이라는 명을 내린 이유는?  그러면서도 노예백성을 놓아주지 못한 이유는?
5) 이 성경이야기에는 어떤 인물들이 등장?
6) 왕은 어떤 힘을 행사했다고?
7) 여인들에게 힘이 있었다고? 없었다고?
8) 이 이야기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다면 어떤 것?
9)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도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고 했고 거역하면 심판을 받는다”(롬13:1)고 했는데, 어린이 학살정책을 쓴 왕의 힘도 하나님이 주신 힘일까?
10) 왕명을 거역하고 거짓말을 한 산파들은 심판을 받았다고? 축복을 받았다고? 왜 그랬다는 것일까요?
11) 왕의 학살정책을 막은 여인들의 힘과 왕의 힘의 차    이는? 힘의 크고 작은 양적인 차이만일까? 질적인 차이는? 왕의 힘과 여인들의 힘은 각각 어디서 생긴 것이라고? 
12) 모든 힘은 다 하늘이 내리신 것이 아닐까? 다만 이런 힘을 바로 쓰고 잘못 쓰는데서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힘을 바로 쓰고 잘못 쓰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13) 여인들이 힘을 쓰지 않았거나 쓰지 못했다면 이야    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14) 왕이 폭정을 쓸 때는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을    빼앗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하늘이 내리신 힘도 빼앗기게 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이렇게 빼앗기는 힘을 찾을 힘은 어떤 힘일까?
15) 왕권에 대항한 여인들의 이야기는 모세의 출생에    대한 한갓 흥미 있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떠날 수 없게 구속하는 힘

창세기의 아브라함이야기는 “살던 땅을 떠나서 하나님이 보여주실 땅으로 가면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창12:1 -3)는 말씀에서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의 모세의 노예해방운동이야기도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게 하겠다”(출3:10)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데서 시작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야기에는 잘못된 데서의 떠남이 하나님의 뜻으로 되어 있으면서, 그 떠남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이란 사람이 잘못된 데서 떠나려고 할 때는 반드시 떠날 수 없도록 붙잡아매는 힘이 동원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힘에 대항할 힘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마약중독에서 떠나기가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마약의 힘에 대항할 힘은 떠나야할 사람의 마음가짐이며 동시에 그가 처한 어떤 사연이기도 한데, 마약의 힘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노예상태에서 탈출해야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제대로 서지 못한 문제를 다루면서, 동시에 저들을 떠날 수 없도록 구속하는 이집트의 왕권의 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왕권의 생리 -확장, 두려움, 폭정-

창세기 마감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미래를 내다본 요셉의 지혜를 이집트 왕은 왕권을 늘이는데 사용했다고 했습니다.<36.장례식과 유언> 곧 앞으로 다가올 기근에 대비해서 풍년 7년간 쌓아 두었던 수확의 5분의 1을 굶주린 백성을 위해 구호미로 사용하지 않고, 백성의 토지를 왕의 재산으로 만들고, 결국에는 백성을 농노로 전락시키는데 이용했다고 했습니다. 권력은 언제나 지성의 힘을 권력유지와 확장을 위해 이용하는 생리를 가진 것처럼, 왕이 절대권을 장악한 이집트 사회의 권력구조에서는 요셉(또는 종교)도 이용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권력이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권력을 섬기는 셈이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집트 사회에서 요셉이 “귀족”층에 끼었으나, 결국 그는 이집트 귀족사회의  “노예”였고, 왕권과 왕의 재산권 확장을 위한 “노예”에 불과했던 셈입니다.

요셉의 세대가 지나고 새 왕이 등극하면서 히브리백성도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데, 이 노예를 다스림에 왕권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왕권확장을 위한 부력의 증대를 위해서는 노동력인 노예를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노예의 힘이 강해져서 저항운동으로 번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출1:10).

권력에 동반하게 마련인 이런 두려움은 결국 히브리노예백성 말살정책을 쓰기에 이르렀고, 두 차례의 학살명령을 내렸답니다. 첫째는 산파들에게 명하여 사내아이면 죽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출1:16). 산파에게 내린 이 명령이 실현되지 않자, 왕은 명을 내리기를,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아이는 모두 강물에 던지고, 여자아이들만 살려두라는 것이었습니다(출1:22). 그런데도 여인들에 의해서 애기 모세가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왕, 산파들, 공주, 그의 시녀들, 아기와 엄마, 누나입니다. 왕은 아기를 죽이려 했고 여인들은 아기를 살렸다는 내용입니다. 절대적인 왕권의 폭력에 대항한 이 여인들의 힘으로 살아남은 아기 모세가 노예탈출과, 탈출 후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을 주도했다는 것이 출애굽기의 줄거리가 됩니다. 이 이야기는 모세가 바로의 폭력에 어떤 힘으로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늘이 내린 힘”(권세)

왕권은 하늘이 내려 준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정권은 하늘이 준 힘이라는 말이 됩니다. 신약에도 국가원수의 권력은 하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도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롬13:1-2)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늘이 내린 힘”을 거역한 여인들

그런데 이 성경이야기에서는 이런 “하늘이 내린” 힘을 산파가 거역했고, 모세의 엄마와 누나도, 그리고 공주와 더불어 그의 시녀들까지도 거역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산파들은 분명히 왕에게 거짓말까지 했는데도, 20절에 하나님이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기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모세의 엄마와 누이, 공주와 시녀들도 분명히 왕명에 거역한 것이지만 이들에게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이 아니고 잘한 것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는 왕권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하늘이 이 여인들에게 주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왕가의 힘이 하늘이 준 힘이지만 그 힘이 잘못 쓰였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런 경우에는 여인들이 그 힘을 막았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하늘의 힘은 누구에게나

깨달아야 할 점은 하나님이 왕가에만 힘을 주신 것이 아니고, 국민 모두에게도 힘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왕이나 공주만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산파도 산파로서의 힘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히브리 여인이 아기를 낳을 때 여자면 살려 두되, 사내면 다 죽이라는 왕명을 거역한 것은 힘없어 보이는 산파들에게도 생명을 살리는 힘은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왕의 학살 명령에 맞서서 아기 모세를 살리는 일에는 공주와 산파들의 힘만이 아니었습니다. 아기의 생모로 하여금 왕실에 들어가 그 아기의 유모가 되게 한 것은 그 아기의 누나인 어린 소녀의 힘이었습니다. 자기가 난 아기를 강물에 띄워 보낼 정도로 아무 힘도 없어 보였던 그 엄마는 죽을 뻔했던 자기 아들로 하여금 노예 된 자기 민족을 해방시키는 영도자로 키우는 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어머니로서의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은 하늘이 주신 그 힘으로 왕의 소임을 이행해야 하는 것이고, 산파도 하늘이 주신 그 힘으로 산파의 천직을 수행해야하는 것입니다. 누나도 엄마도 역시 하늘이 내려 주신 힘으로 누나와 엄마의 구실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 쓰이고 바로 쓰이는 힘

하늘이 내린 힘이 언제 바로 쓰이고, 언제 잘못 쓰이는 것일까요? 생명을 해치는데 쓰면 잘못 쓰는 것이고, 생명을 살리고 키우는 데 쓰면 바로 쓰는 것입니다. 하늘이 왕가에 주신 힘을 왕은 잘못 행사했고, 공주는 그 힘을 바로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정권이 하늘이 내려 주신 것이냐? 아니냐?”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늘이 내려 주신 그 “힘을 바로 쓰느냐? 바로 쓰지 못 하느냐?”하는 문제입니다.

하늘이 내린 힘을 쓰지 않고 묻어둘 수도

왕이 힘을 잘못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인들도 자기들에게 주어진 힘을 전연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강자인 왕이 힘을 잘못 행사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고 죄인 것과 마찬가지로, 약자로 보이는 여인들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것도  하늘의 뜻이 아니고 죄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건강도 힘이고, 지식도 힘이고, 재산도 힘이고, 시간도 힘입니다. 기력도, 정신력도 다 하늘이 내려 주신 힘입니다. 어떤 힘이든지 힘을 잘못 사용하는 것만 죄가 아니고, 하늘이 주신 힘을 쓰지 않고 묻어두는 것도 죄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하늘이 내린 힘을 빼앗기면?

하늘이 내려 주신 힘을 누군가가 잘못 행사할 때는, 반드시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하늘이 내려주신 그 힘을 빼앗기게 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곧 인권 침해문제가 생기고, 인권침해가 생기는 경우에는 반드시 불행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왕이 왕권을 악용했을 때 산파는 산파의 힘을 잃게 되고, 엄마는 엄마 될 힘을 잃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폭력을 쓴다던가 해서 힘을 과용하면, 반드시 그 배우자는 힘을 빼앗기는 데서 생기는 불행을 체험하게 마련이고, 한 사람만 불행한 것이 아니고 둘 다 불행을 맛보게 됩니다.

이런 인권침해는 언제나 강자가 그에게 주어진 힘을 과용할 때 생깁니다. 하늘이 주신 힘을 빼앗기는 자는 언제나 약자입니다. 그리고 약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빼앗긴 힘을 찾으려고 강자를 대항해서 싸울 힘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약자가 강자에게 빼앗긴 힘을 강자 편에서 되돌려 주는 법은 없습니다. 언제나 약자가 찾아야하는 것입니다.

빼앗긴 힘을 되찾을  힘은?

이 성경이야기는 강자가 힘을 악용해서 약자의 힘을 빼앗을 경우, 힘없어 보이는 약자들이 빼앗긴 힘을 되찾을 수 있는 길 이 무엇이냐, 특히 빼앗긴 힘을 되찾을 수 있는 그 힘은 어디 있느냐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남은 힘

이 성경이야기가 말해 주는 바는, 하늘이 주신 힘을 강자가 빼앗아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약자에게 주신 그 힘을 남김없이 온전히 다 빼앗아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남은 힘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산파가 힘을 빼앗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생명을 죽이는 일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었고, 왕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생명을 보살피는 천직을 이행할 힘은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기 모세의 엄마가 왕의 군대를 대항할 힘도 없고 자유롭게 아기를 키울 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삼 개월 동안 숨겨서 아기를 키울 힘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더 이상 집에서 숨겨 키울 수 있는 힘이 없었을 때에도, 강물에 던져 죽도록 내버리지 않고, 갈대 광주리에 송진과 역정을 바르고 포대기에 싸서 물에 띄워 보낼 힘은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쓰고 하늘과 땅에 맡겼습니다. 만일 엄마와 누나가 마지막 남은 이런 힘을 다 쓰지 않았더라면, 살아야할 생명을 살리고, 해방의 주역을 맡을 사람을 키워내는 구원의 역사는 성취되지 못했으리라는 것이 이 성경 이야기에 암시된 내용입니다.

없는 힘으로가 아니고, 남은 힘으로 사는 것

종종 건강 문제이건 인간관계의 문제이건, 어떤 불행스러운 일에 힘을 다 빼앗겼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체력에서나 기력에서나 모든 면에서 기진맥진,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경 이야기는 그래도 남은 힘이 있다는 것이고, 그 남은 힘, 아직 가지고 있는 그 힘을 마지막까지 다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없는 힘으로가 아니고, 남은 힘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남은 힘이 없을 때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만, 남은 힘을 쓰지 않을 때도 죽는 것입니다. 중병에서 되살아나는 것도 환자에게 남아있는 힘이 쓰일 때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치유를 받는다고 해도 환자 자신 속에 있는 남은 힘이 쓰이지 못하면 죽는 것 아닙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 살다보면 잃어버리는 것이 있고,  빼앗기는 것도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소위 이팔청춘이라는 젊음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번도 태어난 일이 없지 않습니까? 20대도, 30대도, 40대도 가버리고, 50대도 60대도 가버리는 것 아닙니까? 이미 가버린 60대, 50대, 40대, 30대, 20대를 다시 살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남은 길은 앞으로 남아있는 햇수를 최선 것 살아가는 길밖에 바른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남아있는 햇수가 20년이면 20년, 10년이면 10년, 남은 날을 바로 살려는 길만이 행복의 유일한 길이겠습니다.

이 성경 이야기는 없는 힘으로가 아니고 남아있는 힘으로 살고, 그 남은 힘을 묻어두지 않고 최선 것 사용하면 그것이 복됨의 기적을 낳는다는 말씀도 해주고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도 가정에 없는 것으로 살려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으로 살 때만 체험되는 것입니다. 불행은 없는 것으로 살려하고, 남아 있는 것으로 살지 못할 때 체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모신 참된 기독공동체를 이루려는 사람들을 찾아 만나기는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소수일지라도 남은 자가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남은 사람들이 고난을 받으나, 이들을 통해서 새 세상이 창조된다(이사야28:5, 37:31,46:3-4)고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이들과 함께 내가 나의 남은 힘을 다할 결의와 실천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참된 기독공동체는 나나 우리가 빠지고 다른 사람이 창조해 주기를 바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모험도 남은 힘으로

이 여인들의 이야기에는 물론 이 여인들이 남은 힘을 쓰는 데는 생명을 내거는 모험이 있었습니다. 산파도 발각될 위험과 그에 따라 처형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아기 엄마도 비슷한 위험이 있었습니다. 공주에게도 위험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위험을 감행하는 데 남은 힘을 다 쓰는 길만이 잃은 힘을 되찾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이 보이는 현실로 드러나는 것은 마지막 남은 힘으로 모험이라는 과정을 뚫고 갈 때에만 남겨지는 결실입니다.

왕의 힘과 여인들의 힘의 차이   

여인들이 왕에게 힘을 빼앗긴 것은 사실이지만, 빼앗기고도 남은 힘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인들의 힘을 “남은 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왕에게도 남은 힘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탈출하는 노예를 뒤좇던 왕의 병거와 군대가 대파한 경우 왕은 남은 힘을 모아 계속 폭정을 감행할 수 있습니다. 약자 편에만 남은 힘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강자 편에도 남은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힘과 여인들의 힘의 차이를 말할 때는 “남은 힘”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곧 왕의 힘이 폭정도 감행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나게 큰 힘인 데 비해, 아무 힘도 없어 보인 여인들의 힘과의 차이는 힘의 크고 작음만이 아닙니다. 힘에는 질적으로 전연 다른 두 가지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왕의 폭력

왕의 힘은 국민의 소유권을 빼앗아 부를 늘리는 경제력에 기초한 권력유지와 권력 확장을 위한 힘이었는데, 이 힘이 폭력으로 변하게 된 동기를 말해주는 대목을 보면, “이 백성 곧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수도 많고, 힘도 강하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신중히 대처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수가 더욱 불어날 것이고, 또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그들이 우리의 원수들과 합세하여 우리를 치고, 이 땅에서 떠나갈 것이다”(출1:9-10)라고 했습니다. 노예백성의 사내아이를 죽이라는 왕의 폭력은 권력 유지와 확장을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출1:10)에서 나온 것입니다.

산파들의 힘

그런데 산파들이 왕명을 거역하고 거짓말까지 할 수 있었던 힘에 대해서 왕과 산파들 사이에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히브리 여인이 아이 낳는 것을 도와줄 때에, 잘 살펴서, 낳은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하지 않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다. 이집트 왕이 산파들을 불러들여, 그들을 꾸짖었다. “어찌하여 일을 이렇게 하였느냐? 어찌하여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느냐?”산파들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히브리 여인들은 이집트 여인들과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운이 좋아서,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립니다”(출1:16-19).

산파들이 저항할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창1:17)에 생긴 것이라고 했습니다. 왕의 폭력도 산파의 힘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생겼다고 했는데, 차이는 무엇을 두려워했는지에 있었고, 생명을 죽이는 데 썼는지, 살리는데 썼는지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산파들의 힘은 왕이 절대자가 될 수 없다는 확신에서, 곧 인간이 아닌 절대자(하나님)에 대한 확신에서 생긴 신앙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주의 힘과 아기모세의 힘

히브리인이 아니고 히브리인의 신앙도 없는 이집트 공주의 힘은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공주의 힘이 어떤 힘인지에 대한 말이 나오는 대목을 보면, 갈대밭에서 발견한 바구니를 열어 보았을 때, 거기에 남자 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 공주는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게 되었고,” “이 아이는 틀림없이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구나”(출2:6)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는 것입니다(출2:6,10).

히브리사람의 아이는 죽이도록 영이 내려진 사실을 알면서도, 그 아기를 양자로 삼은 것은 우는 아기를 보고 생긴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상처 입은 가냘픈 애기 새를 보고 조심스레 두 손으로 붙잡아 올릴 때, 손에 힘줘서 너무 꽉 쥐면 죽겠고, 너무 느슨하게 잡으면, 겁을 먹고 버둥거리다가 떨어져 상하겠기에, 조심조심 다루려는 심정이 저절로 생기는 것처럼, 아기를 대하는 순간, 아기 눈과 공주의 눈이 마주쳤을 그 짧은 순간 공주의 마음에는 아기를 살려 주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사람마음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공주의 가슴속에 불쌍히 여기는 사람마음을 일으킨 것은 가장 힘없는 아기였습니다. 아기의 생명을 지켜준 “구세주”는 공주였고, 공주에게 사람마음을 키워준 “구세주”는 힘없는 아기였습니다. 이런 마음을 잃어버린 왕은 사람 아닌 사람(비인)이었습니다. 아기를 학살하라는 왕명을 이행한 군인들도 사람마음을 잃어버린 비인들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도록 되어 있는 군인은 언제나(본의 아니게) 사람마음을 잃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히브리인 산파들은 히브리 신앙인이고 공주는 히브리 신앙인이 아니라고 했지만 공주도 성경이 말하는 살생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었습니다. 노아와의 새 세상을 위한 언약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같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면, 그에게도 보복하겠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창9:5-6)고 했는데, 공주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의 생명을 보존함으로 자신 안에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켜낸 것입니다. 창조이야기로 표현하면 공주는 모든 것을 다 하나, 사람을 죽이는 한 가지 일만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창조말씀을 지킨 것입니다. 이점에서 공주도 산파들과 같은 신앙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여인들의 사람마음에 하나님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왕의 힘은 약자의 힘을 빼앗는 데서 더 커지는 힘이었음에 반하여, 여인들의 힘은 약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힘이었다고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없는 이야기,
에덴동산이야기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

군주의 폭력을 군주의 딸과 다른 여인들이 폭력이 아닌 힘으로 이겼다는 이 수천 년 묵은 이야기가 얼마나 세상에서 흔하지 않은, 독특한 이야기인지를 보기 위해서 이런 예를 생각해 봅시다. 일본천황이 조선민족 말살정책을 펴면서 조선 사내아이들은 다 죽이라고 간호원들에게 명했는데도, 간호원들이 속이는 바람에 그 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가정해 봅시다(이런 가정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서 천황은 조선 사내애들은 다 바다에 던져 익사시키라는 영을 내렸다고 합시다. 그런데 천황의 딸이 그런 영을 어기고 조선 애 하나를 양자로 삼고, 애 엄마인 조선 여인을 유모로 데려다가 몰래 키워 후에 조선독립운동의 인도자가 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는 일일까요?

아름다워 보였던 에덴동산 이야기는 부조리에 쌓인 현실이야기로 지금도 반복되는 어두운 이야기입니다. 이에 반하여 출애굽기의 여인들이야기는 전쟁문화라는 부조리에 싸인 현실이야기 속에서 죽어갈 생명을 구해낼 수 있는 밝은 이야기입니다. 성경이야기에서 단 한 번 있었던 이야기이고, 가장 믿기 어렵고, 실현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도 익살스럽고, 통쾌하고, 재미있는 승리 이야기입니다. 저주받기 전 에덴동산이야기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노예해방운동 이야기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기모세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한갓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폭군을 속여서 한 아기를 구해냈다고 노예제도 자체를 없앨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히브리인 노예들은 더 포악한 박해에 시달리게 된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이야기는 히브리인 말살정책이 시행되는 어려운 상항에서 노예탈출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모세는 앞으로 노예해방운동을 어떤 힘으로 인도해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가는 것인지를 암시해주는 이야기입니다.<이에 대해서는 42. “노예탈출과 재앙이야기”에서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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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책이 나오기까지

    Date2007.12.21 By이재형 Reply0 Views4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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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47. 이 글을 마치며 -한 간호원의 죽음 앞에서 물은 신학과 목회의 목적-

    Date2007.12.21 By이재형 Reply0 Views7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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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46. 이상을 품은 사람들이 바라는 공동체 -둘째 돌판 이야기의 뜻-

    Date2007.10.26 By이재형 Reply0 Views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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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45. 새 공동체의 이상과 현실의 차이

    Date2007.10.26 By이재형 Reply0 Views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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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41. 떨기가운데 이는 불꽃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체험 -모세의 체험(4)-

    Date2006.12.17 By이재형 Reply0 Views2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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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40. 제사장 딸과의 결혼과 유목공동체생활 -모세의 경험(3)-

    Date2006.12.17 By이재형 Reply0 Views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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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39. 살인과 도피 -모세의 경험(2)-

    Date2006.12.17 By이재형 Reply0 Views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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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38. 군주의 폭력과 여인들의 힘 -모세의 경험(1)-

    Date2006.12.17 By이재형 Reply0 Views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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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30. 어린양에 손을 대지 말라 -양을 바치는 `번제`?-

    Date2006.01.15 By이재형 Reply0 Views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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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02. 요나 이야기 -`도중하차`식 성경해석의 문제 (예1)

    Date2005.10.27 By이재형 Reply1 Views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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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37. 장례식과 유언 (창세기이야기 마감)

    Date2005.06.08 By이재형 Reply1 Views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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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36. 꿈(3) -꿈을 죽인 형들과 꿈을 살린 동생의 화해 -

    Date2005.05.07 By이재형 Reply0 Views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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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35. 꿈(2) - 할 일을 알려주는 해몽-

    Date2005.04.11 By이재형 Reply0 Views3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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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34. 꿈(1) -요셉의 이상과 고난-

    Date2005.03.09 By이재형 Reply0 Views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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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33 `축복`? (2)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화해-

    Date2005.02.08 By이재형 Reply1 Views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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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32. `축복`? (1) -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형제싸움 -

    Date2005.01.08 By이재형 Reply0 Views5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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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31. 기도 -며느리 선택(기준) 이야기-

    Date2004.11.25 By이재형 Reply0 Views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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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28. 의인 열명을 채울 사람은? -소돔을 위한 아브라함의 기도 이야기-

    Date2004.10.20 By이재형 Reply0 Views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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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27.“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부인 사라와 부인의 몸종 하갈,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 이야기-

    Date2004.09.18 By이재형 Reply0 Views6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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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5.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야 했던 이야기 -잘못된 세상에서 잘못한 다음에-

    Date2004.06.23 By이재형 Reply1 Views2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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