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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꿈(3)
  -꿈을 죽인 형들과
  꿈을 살린 동생의 화해-
                창 42:3-21, 43:3-31,
                  44:1-34, 45:1-15,
                  50:15-21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는 질문

1. 형들이 “그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창37:20)라고 말하며 요셉을 죽이려고 했을 때, 그 꿈대로 될 것으로 생각하고 무서워했을까? 터무니없는 꿈이라고 생각했을까?
2. 처음 생각대로 요셉을 죽여 버렸으면 그 꿈이 어떻게 되었을까? 요셉이 살아있어도 노예가 되고 죄수로 갇힐 때, 자포자기 했었다면 그의 꿈은 어떻게 되었을까? 꿈을 죽이지 않고 살려낸 것은 무엇일까?
3. 형들이 동생 요셉에게 절을 하게 된다는 것이 꿈의 내용이었는데, 절 한다는 뜻을 형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이야기에서 절의 뜻은 무엇?
4. 이 이야기에서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을(아버지, 형들, 요셉 중) 누가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꿈을 꾼 요셉은 자기가 (1) 노예로 팔려갈 것을, (2) 감옥에 갇힐 것을, (3) 총리가 될 것을 알았을까?
5. 이 이야기에서 미래의 주역은 누구? (그는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을 알았을까?)
6.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일까? 요셉이 총리가 되고 형들이 그 앞에 절을 했다는 것?  이 이야기에서(이집트 역사에는 이런 기록이 없다고 해도), 성경적인 뜻이 있는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7. “창세기”에 이 요셉 이야기(형들과 요셉의 형제 싸움과 형제화해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창조 이야기와 이 이야기에서 비슷한 점이 무엇일까?
8. “창세기”에 (1) 가인과 아벨의 형제싸움, (2) 에서와 야곱의 형제싸움, (3) 형들과 요셉의 형제싸움이 들어있는데, 이 세 이야기에서 용서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로서 같은 점은? 다른 점은?
9. 이런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보시고 “좋다”고 할만한  일은 무엇이고, 위 세 이야기 중 어느 이야기에 있는지?
10. 용서와 화해의 다른 점은?

꿈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품격

요셉의 긴 이야기는 “자,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들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창37:20)고 형들이 말한 대로, 과연 요셉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려는 이야기입니다. 

형들이 곡식을 사러 요셉 앞에 가서 절을 할 때, 요셉은 그들을 보자마자, 곧바로 그들이 형들임을 알아보았으나 짐짓 모르는 체하면서, “형들을 두고 꾼 꿈을 기억했다”(창42:9)고 했습니다. 꿈대로 되었다는 뜻이겠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노예로 팔려감으로 그의 꿈이 죽은 것으로 단정했습니다. 형들은 동생의 꿈도 죽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요셉을 죽이지 않고 살려는 두었기에, 그의 꿈이 죽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비록 살려 두었다고 해도, 요셉이 형들의 살인마와 같은 짓에 원한을 품었다거나, 노예 된 신세와 그 힘든 고난을, 또는 누명의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포자기 했었다면, 그는 살아 있어도 그의 꿈은 살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이 살아 있어야만 꿈도 죽지 않고 사는 것임을 이 이야기는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겠다”(시118:17)는 시편 말씀이나,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표준 새번역 롬5:4하-5)라고 하신 바울 사도님의 증언도 같은 뜻입니다(흔히 인내는 “연단”을이라고 번역되어 있으나, 일어 신개역 번역에는 “품성”, 우리 표준 새번역 개역에는 “단련된 인격”, 영어 NASB, NIV, NRSV 등에는 다 “character”라고 번역했습니다).

요셉은 꿈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품격을 갖추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꿈과 희망이 주위 형편에 따라서 살고 죽는 것이라고 보기 쉬운데, 이 이야기는 꿈과 희망은 품격에 의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요셉의 품격이 그의 꿈과 희망을 살려 복의근원이 되게 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셉이 살려낸 꿈의 내용과 그 뜻 -절-

형들이 곡식을 사러 요셉에게 가서 절을 할 때, “형들을 두고 꾼 꿈을 기억했다”(창42:9)고 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30이었습니다(창41:46). 그가 기억해낸 그 꿈은 그가 아직 어린 17세 소년 때(창37:2)에 꾼 꿈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나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였어요”(창37:6)라는 것과,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절을 했어요”(창37:9)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 다 형들이 동생 요셉에게 “절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쟁의식의 분위기에서 자란 형들은 “절을 하게 된다”는 말을 자기들이 동생에게 져서 굴복하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동생을 미워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꿈의 뜻은 누가 지고 누가 이기느냐하는 힘겨루기 이상의 다른 뜻이 있었습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절을 한 것은 곡식을 사러 가서 처음 만났을 때였습니다. 이때의 절은 그저 외국의 “높으신 분”에게 하는 당연한 인사였습니다. 그러나 다음부터의 절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면서 드린 절이었습니다.

그들은 간첩이라는 의도적으로 뒤집어씌운 혐의를 받게 되자, 자기들의 지난 날 지은 죄 값을 받는 것(창37:21-22)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각자의 자루에 몰래 집어넣은, 곡식 값이었던, 돈을 발견하고 겁을 먹습니다(창37: 28,35). 이차로 곡식을 사러 갈 때는 돈을 배로 준비합니다. 간첩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막내 벤야민을 데려 가면서, “높으신 분”의 자비와 선처를 비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보낸 선물을 가져가 바치면서 절을 하고,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말에 대답하면서 다시 절을 합니다(창43: 26,28). 만찬을 대접하면서 형제를 나이 순서로 앉힌 것에 놀랍니다. 모든 일이 잘된 것으로 알고 돌아가는데, 일부러 곡식 값을 다시 몰래 자루에 집어넣게 하고 벤야민의 자루에는 요셉의 은잔을 집어넣었다가, 관리인들을 시켜, 돌아가는 일행을 따라잡아서, 일행 중 누가 은잔을 훔쳤다고 호통 치게 합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자신 있게 항의하면서, 모두 뒤져서 은잔을 훔친 것이 드러나면 그 자는 죽여도 좋고, 모두가 종이 되겠다고 장담을 했었는데, 벤야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옵니다. 울면서 끌려가 요셉 앞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네 번째의 절인데, 여기까지는 다 요셉을 알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리고 죄책감과 두려움에서 절을 합니다.

그 후 아버지가 돌아가 장사를 지내고 나서, 형들은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요셉이 자기들을 미워하여, 자기들에게서 당한 온갖 억울함을 앙갚음하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요셉에게 아버지의 유언이 있다는 전갈을 보냅니다. 그 유언은 형들이 몹쓸 일을 저질렀지만, 형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합니다. 요셉은 이 말을 전해 듣고서 웁니다. 곧 이어서 형들이 직접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서 절을 하며 “우리는 아우님의 종입니다”(창50:18)라고 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한 마지막 다섯 번째 절입니다. 이 마지막 절은 말 그대로 참회와 속죄의 절이었습니다. 

이야기 시작에서 형들이 동생을 얕보고 미워할 때는 형들이 절을 했다는 동생의 꿈을 비꼬는 듯, “네가 우리의 왕이라도 될 성 싶으냐? 정말로 네가 우리를 다스릴 참이냐?”고 해서 절의 뜻을 왕권과 같은 힘에 대한 굴복으로 이해했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저들은 죄책감에서 살길을 구하는 심정으로 절을 한 것입니다. 왕이 아니고, 동생인줄 알면서도 마치 하나님 앞에 사죄와 긍휼을 간구하는 것과 같은 절을 한 것입니다. 형들에게 지난날의 잘못을 두고 괴로워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요셉도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고 하여, 자기가 권좌나 심판자의 자리에 앉은 자가 아니고, 동생 요셉일 뿐이라고 합니다. 동생을 죽이려다가 노예로 팔아버릴 정도로, 그리고 짐승에게 물려갔다고 아버지를 속일 정도로, 증오의 형제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회복된 것이 꿈대로 된 일입니다.


알 수 없는 미래의 주역은? 

이 성경이야기의 특징은 요셉의 꿈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동생을 죽이려다가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은 노예로 팔려갔다는 것만을 알뿐,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동생이 죽은 것처럼 거짓말을 했던 것을 알뿐, 그 다음 동생 요셉이 어떻게 되는지는 전연 모릅니다. 폭력을 쓰는 저들이 주역인 것 같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아버지는 더욱 모릅니다. 맹수에게 잡혀 먹혔다고 속고 있기 때문에, 노예로 팔려갔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요셉을 특별히 총애하는 등 집안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아버지 야곱이 그 집안일에서 주역을 맡는 것 같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는 전통도 주역을 맡지 못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미워해서 저지른 일들을 알기는 했으나, 그 후 뜻밖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힐 일이나, 더욱이 외국에서 노예였던 자기가 “총리”가 될 일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갇혔던 감옥에서 벗어날 것만을 기대했었다고 합니다(창40:14-15).

그런데, 경호 대장에게 노예로 팔려간 다음의 일을 말하는 대목에서 처음으로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창39:2)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그 꿈을 실현시킨 주역을 맡으셨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요셉을 도우셔서, 요셉으로 하여금 그 꿈을 실현시키는 일에 주역을 맡도록 하셨다는 뜻도 됩니다. 요셉이 알 수 없는 미래의 주역을 맡을 것을 알고 행한 일이 아니고 믿음으로 행한 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형제싸움과 형제화해 이야기도 창조 이야기임

창조 이야기를 하는 맨 앞에서 <7. 맨 처음에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이> 창세기를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생성과정을 기록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관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창세기의 내용을 보면, 1장에서 50장까지의 긴 이야기 중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1장과 2장 첫 부분에 조금 나올 뿐이고, 나머지 전부는 다른 이야기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다른 이야기들 중에는 (1) 가인이 동생을 쳐 죽인 이야기, (2) 이삭의 아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장자권을 두고 형 에서와 다투어 원수가 되는 형제 싸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또, (3)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배다른 형들이 동생 요셉을 미워한 형제싸움이야기가 창세기의 전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창세기는 세 번에 걸쳐 잘못된 형제관계를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맨 처음에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이 있었다는 창세기 1장 1절과 같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 가인과 아벨의 첫 형제싸움은 동생이 죽음으로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의 상태 그대로 남아 있게 됨과 같은 것입니다. 화해라는 질서와 의미와 밝음이 창조되지 못한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2) 둘째(에서와 야곱간의) 형제싸움과, (3) 셋째(형들과 요셉 간의) 형제싸움은 화해로 사랑의 형제관계가 회복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2) 둘째 에서와 야곱간의 둘째 형제싸움에서는 희생자인 형이 원한을 품고 살인하려고 했으나, 잘못했던 야곱이 참회와 화해를 위해 전부를 바침으로, 그리고 형이 용서함으로, 화해를 거쳐 사랑의 형제관계가 회복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3) 형들과 요셉 간의 셋째 형제싸움에서는 잘못한 형들 편에서는 참회와 화해의 노력을 전연 하지 않았는데도, 희생자 편에서 고난을 이기고 죽지 않고 바르게 살아남아서, 형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는 과정을 거칠 수 있게 하고, 형제애가 소생할 수 있기를 기다려서, 형들을 용서함으로 화해의 계기를 만들어 사랑의 형제관계가 회복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용서는 희생자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나, 화해는 가해자나 피해자 어느 한편이 일방적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가해자의 참회와 피해자의 용서(야곱과 에서의 경우)가, 또는 피해자의 용서와 가해자의 참회(요셉과 형들의 경우)가 만나는 쌍방의 바른 응답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창세기 처음에 나온 창조 이야기와 상통하는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창조가 끝날 때마다, <8.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좋았다”고 하신 것은 창조가 시작될 때 이미 있었던 혼돈에 질서를, 이미 있던 어두움에 빛을 창조하시는 등, 생명을 키우고 보존할 수 없는 상태를 생명을 키우고 보존할 수 있는 상태로 창조하신 다음에 그것을 보시고 좋다고 하셨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곧 좋지 못한 것을 좋은 것으로, 잘못 된 것을 바로 된 것으로 창조 하신 다음에 하신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무엇이든 “좋다”고 할 수 있는 상태로 창조함이 창세기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곧 창세기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은 물론 형제싸움 이야기들도 “좋지 못한 것”을 “좋은 것”으로, “잘못 된 것”을 “바로 된 것”으로 창조한다는 이야기들인 것입니다. “형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창50:20)는 요셉의 말은 악에서 선을 창조하셨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 이야기에는 잘못된 형제관계가 살인으로 끝나 미완성된 이야기로 되어있고, 에서와 야곱의 잘못된 형제관계는, 그리고 요셉과 형들의 잘못된 형제관계는 둘 다 화해를 통해 바른 형제관계가 창조 되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 자랄 수 없는 잘못된 환경이 인간이 본연의 모습으로 성장해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바른 환경으로 창조된 것이 요셉의 꿈이 실현된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역사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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