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558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32. “축복”? (1)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형제싸움- 
                  창25:19-34, 27:1-46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는 질문

1. 이 이야기는 쌍둥이 형제싸움이 부모의 편애 때문 이라는 것일까?
2. 임종하기 직전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아냈다는 이 이야기에서 성경다운(하나님 보시기에 좋다고 하실) 점이 있는지?
3. 장자권이나 장자축복은 형제관계를 어떤 관계로 만드는 것이었을까?
4. 리브가는 복의 근원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성품과 행동을 한 여인으로 선택 받았다고 했는데,<31.기도 -며느리 선택 이야기-> 여기서는 그가 악녀가 되었다는 이야기일까? (리브가가 남편을 속이려고 한 것은 형제관계가 어떻게 되는 것을 막으려고 한 것이었을까?)
5. 눈이 어두워 동생을 형으로 잘못 알고 축복했다는데, 이런 경우도 과연 하나님의 축복일 수 있을까?
6. 형제 중 하나를 축복하면 다른 형제에게는 저주가 따르게 마련이라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축복일 수 있을까?
7. 형이 맏아들의 권리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의도일까? 그렇다면 동생이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받아낸 축복이 과연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일까?
8.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창25:23)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동생이 강자가 되어 섬김을 받게 된다는 뜻일까? 강자인 형이 약자인 동생을 돌보게 되어야 한다는 뜻일까?
9. 부모의 편애처럼 보이는 대목이 나오는데,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기성질서에 대한 아버지의 입장과 어머니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것으로 본다면, 아버지의 입장과 어머니의 입장은 각각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10. 동생이 형의 분노를 피해 도망치게 된다는 이 이야기에서 성경다운 점(하나님이 보시고 “좋다”고 하실 일)이 없다면, 성경다운 점은 언제 나올 것으로 봐야 할까?

길고긴 형제싸움 
         
에덴 바깥세상의 첫 이야기는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창4:1-8) 이야기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도 형제싸움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손자들(야곱의 아들들) 이야기도 요셉과 그의 형들과의 싸움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창세기의 대부분이 형제간의 우애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형제싸움이 중요한 줄거리로 되어있습니다.

태 안에서 시작된 형제싸움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이야기에서는 그 동기에 대한 말은 없고, 홧김에 동생을 쳐 죽였다고 되어 있었습니다(창4:1-8).<16.형이 동생을 죽인 이야기1>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형제싸움에 대해서도 그 동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저 태 안에서 시작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두 태아의 움직임을 “싸웠다”고 한 것은 한 생명체의 잉태 자체가 수많은 경쟁에서의 승리인데, 한 태 안에 승자가 둘이 들어있어서 시작된 싸움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리고 태어날 때, 나중 나온 아이가 먼저 나온 아이의 “발뒤꿈치를 잡았다”(창25:26)고 했는데, 이는 이 싸움이 태안 싸움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태 바깥 싸움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형제 싸움은 마치 불가피한 “운명적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싸움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암시해 주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그 동기가 무엇일까요? 또 이 이야기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형제 싸움이 부모의 편애에서?

두 아들의 다른 성품을 이야기하면서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오는 고기에 맛을 들여 에서를 더 사랑하였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하였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25:28), 이 형제 싸움은 부모의 편애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곧 부모의 편애를 경계하는 것이 이 성경 이야기의 목적이라고 보는 이해입니다.

물론 부모의 맹목적인 편애가 형제관계에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쌍둥이의 싸움은 부모의 편애 이전 태 안에서 이미 시작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장자권과 형제관계

이렇게 부모의 편애 이전에 이미 태안에서 시작되고, 태 밖으로 이어진 이 형제 싸움은 장자권을 둘러싼 싸움이었다고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에게서 받을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것 때문에, 야곱에게 원한이 깊어갔다. 그는 혼자서 ‘아버지를 곡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그 때가 되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다”(창27:41). 리브가는 맏아들 에서가 하고 다니는 말을 전해 듣고는, 작은 아들을 불러다 놓고서 말하였다. “너의 형 에서가 너를 죽여서, 한을 풀려고 한다. 그러니 나의 아들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이제 곧 하란에 계시는 라반 외삼촌에게로 가거라. 네 형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너는 얼마 동안 외삼촌 집에 머물러라. 네 형의 분노가 풀리고, 네가 형에게 한 일을 너의 형이 잊으면, 거기를 떠나서 돌아오라고, 전갈을 보내마. 내가 어찌 하루에 자식 둘을 다 잃겠느냐”(창27:42-45)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이 나오기 전, 앞에 나오는 긴 이야기를 요약하면, 동생이 형의 장자권을 죽 한 그릇으로 샀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임종하는 아버지를 속여서 맏아들이 받을 축복을 가로챘기 때문에 원한을 사고 도망쳐야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장자권이 형제 싸움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축복”을 가로챈 사기

이 이야기에는 성경다운 대목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문제되는 대목들을 열거해 보면;

1) 아버지와 야곱과의 대화에서 “얘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사냥거리를 찾았느냐?”(창27:20상)고 의아해서 물으시는 아버지에게 “아버지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이, 일이 잘 되게 저를 도와 주셨습니다”(창27:20하)라고 둘러 넘겼다고 했는데, 여기 “하나님”이라는 말이 빈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2) 야곱과 어머니의 대화에서,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고, 나는 이렇게 피부가 매끈한 사람인데, 아버지께서 만져 보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버지를 속인 죄로, 축복은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을 것이 아닙니까?”(창27:11 -12)라고 염려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저주는 이 어머니가 받으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창27:13성)라고 했다는데, 이는 “눈먼 남편을 속이는 일에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 “저주는 무슨 저주냐?”는 생각에서 하는 말로 보입니다. “우리가 눈먼 아버지를 속이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아니다”는 식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말이 됩니다. 설혹 “하나님이 계시더라도 “눈먼” 하나님이시니 괜찮다”는 생각이겠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으로 하여금 형의 원한을 피하여 도망치게 하면서도) 고향에 가서 아내감을 고르게 하자는 말로 남편 이삭을 설득시킵니다(창27:46). 이삭은 리브가의 말에 속고 야곱을 축복해서 길을 떠나보냅니다. 리브가가 “눈 어두운” 남편을 속이려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밀고 나간 이런 일들 중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은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리브가의 성품이 악해서 생긴 일이라고 이해해 버리기 쉽습니다.

장자권에 의한 잘못된 힘의 질서와 리브가의 역할

그러나 이런 이해에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리브가의 성품에 대해서 앞 장에서 <31. 기도 창24:1-20)> 말한 바와는 너무도 상반됩니다. 그는 복의 근원이 될 아브라함 가문의 다음 대를 이어갈 며느리 감이며, 이삭의 배필로서 누구보다도 가장 적합한 성품을 가진 여인으로 선택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짐을 지고 가는 이들(낙타)의 아픔을 알아보는 고운 성품을 가지고 행동한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여인의 역할이 한 갓 사기에 불과한 것으로 이 성경 이야기가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이 이야기에서 이 여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봐야 이 이야기의 본뜻이 드러날 것입니다. 

쌍둥이의 태안 싸움에 대한 이야기의 서두를 보면, 그 싸움이 너무 심해서 리브가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워 그 싸움에 대해 주께 물어보아야 했답니다. 주께서 그에게 대답해 준 바는, 그의 태 안에 두 민족이 들어 있고, 그 태 안에서 두 백성이 나눠질 것인데, 그중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민족의 시조가 될 형제 사이에서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창25:19-23).

태 안에서 시작되어 태 밖으로 이어지는 형제 싸움에 대한 이 서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말해  줍니다.

첫째, 형제싸움은 어떤 싸움이건 엄마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형이 강하든 동생이 강하든 힘 싸움은 엄마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힘 싸움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둘째, 엄마의 마음은 형이 동생을 힘으로 지배하고 동생의 섬김을 받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형이 힘으로 동생을 돌보는 것을 바라는 것이 엄마의 마음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강자가 힘으로 약자를 지배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강자가 힘으로 약자를 돌보는 것을 원하신다는 뜻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셋째, 이 쌍둥이의 싸움 이전까지는 형이 강자가 되고 동생이 약자가 되어 동생이 형을 섬기는 것이 당연한 질서로 자리잡혀왔던 것입니다. 관례법인 “장자권”에 의해 유지되어온 질서였습니다. 이 말은 형제관계가 사랑의 관계가 되지 못하고, 장자권에 의한 섬기고 섬김을 받는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되어온 문제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옛 질서는 잘못될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으로 그 시정이 요청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넷째, 그리고 이 서두는 “이 두 민족의 시조가 될 형제 사이에서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된다”(창25:23)라고 마치고 있는데, 이는 장자권에 의해 유지되어온 종전의 기성 질서가 종전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전복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축복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리브가의 역할 

아버지와 두 아들간의 대화에서 보면, “어떻게 그렇게 빨리?”(창25:20절)라고 의심스러워 묻습니다. “만져볼 수 있게 가까이 오너라,”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로구나”(창25:21-22절), “네가 정말로 나의 아들에서냐?”(창25:24절)고 계속 의심하면서도 “야곱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서”(창25:27절) 축복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눈이 어두워” 축복의 대상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잘못 축복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이 “눈 어두움”은 하나님의 “축복”이 어떤 것인지도 바로 알지 못하는 “눈 어두움”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장자 에서와의 대화에서 보면, 에서가 “저에게 주실 축복은 하나도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까?”(창27:28하) 하고 질문한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마치 한정된 어떤 물건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기름진 땅”을 축복했기 때문에 에서에게는 “기름지지 않은 땅”이 주어지는 것이고(창27:39), 한 사람을 축복하면 다른 사람은 저주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형제를 형제답게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형제 중 하나를 택하고 하나를 버리는 배타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축복이 형제간의 사랑이 아니고, 형제를 주인과 종으로 만들어 지배와 무릎 꿇음과 싸움이 따를 수밖에 없고, 형제 중 한 사람은 섬김을 받고, 한 사람은 섬길 수밖에 없게 만드는(창27:40) 부적과 같은 것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고, 이런 “축복”에 대항할 수 있는 길은 칼에 의해 힘을 키우는 길밖에 없는 것(창27:40)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습니다.

본래 “장자권”이나 장자의 “축복”은 맏아들의 “특권”이나 “특혜”라기 보다는 맏아들의 “책임과 사명”으로 가문과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고정시키는 관례로 굳혀진 장자권이나 축복은 동생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도 쌍둥이로서의 동생인 그의 입장에서는, 그 관례가 자기를 약자로 묶어놓고 결국 희생자가 되도록 하는 “잘못된 힘”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집안과 공동체를 지켜주는 것이라기보다는 형제 중 하나를 “강자”로 만들어 섬김을 받게 하고, 하나를 약자로 만들어 “섬기는 자”가 되게 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강자가 되고 섬김을 받을 자가 될 형 에서의 입장에서는 “가볍게”여길 수 있고, 배고파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뭐 그리 대단한 거냐”(창25:29-34)고 할 수 있는 것이었겠지만, 약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될 동생 야곱의 입장에서는 결사적으로 빼앗아야만 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겠습니다.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할 형제관계를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고정시켜놓은 것이 사회관례법으로서의 장자권이었듯이, 종교적인 “장자의 축복”예식(“맏아들이 받는 축복”예식)도 잘못된 힘의 질서를 고정시키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이렇게 축복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면 종교는 사회에 공헌을 하지 못하고 해를 끼치는 것이 됩니다. 

리브가의 역할은 “장자권”이나 “맏아들이 받을 축복”이 형제를 돌보는 책임과 사랑이 아니고, 형제간에 “약자”와 “강자”를,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을 자”로 묶어놓는 잘못된 관례가 되어 있는데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장자권에 의해 약자가 된 아들 야곱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이 저항의 동기가 된 것이었습니다.

털이 많은 형처럼 보이기 위해서 양털로 가장할 때, 발각되면 “아버지를 속인 죄로, 축복은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을 것이 아닙니까?”(창27:11-12)라고 염려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저주는 이 어머니가 받으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창27:13성)라고 한 것도 잘못 이해된 축복에 대한 항의의 말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엄마 아빠의 입장이 달리 나오는데 이는 단순한 편애라기보다는 이 옛 질서에 대한 입장과 역할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맏아들을 축복해 주려고 한 것은 그의 편애만이 아니고, 당시 관례에 따른 당연한 처사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입장과 그의 역할은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는 옛 질서를 보존하려는 보수였고, 어머니의 입장과 역할은 지배와 섬김이 아닌 사랑의 관계를 갈망한 나머지 옛 질서를 부정하는 혁신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약자가 기존 질서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는 강자를 속이는 길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렇게 속아 넘어갔다는 대목들은 강자를 놀리는 해학적인 화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잘못된 옛 질서에 도전하는 싸움의 방법이 육체적인 폭력은 아니라고 해도 아버지와 형제를 기만하는 사기였다는 점은 역시 정신적인 폭력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도전하는 방식에서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고, 섬기고 섬김을 받는 사람이 바꿔진 것뿐, 도전하려고 한 그 옛 관례 자체는 그대로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 서두 마감에 나온 “두 민족이 너의 태 안에 들어 있다. 너의 태 안에서 두 백성이 나뉠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창25:23)는 하나님의 말씀을 리브가는 동생이 강자가 되고 형이 약자가 되어 강자 된 동생을 섬긴다는 뜻으로 이해한 것처럼 되었습니다. 역사상 많은 혁명 운동이 결국엔 종전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은 이런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형이 동생을 “섬길”것이라는 이 말씀의 본뜻은 강자가 약자를 “돌보아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남는 문제: 참된 축복은? 하나님이 사기꾼을 축복?
 
두 형제의 성품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형 에서는 날쌘 사냥꾼이 되어서 들에서 살고, 야곱은 성격이 차분한 사람이 되어서, 주로 집에서 살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형이 배고파 죽을 지경으로 허기져 돌아왔을 때를 이용해서 죽 한 그릇으로 형에게서 장자권을 사려고 했답니다.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맏아들의 권리가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하면서 동생에게 맏아들의 권리를 판다고 맹세했답니다. 그리고 형 에서는 맏아들의 권리를 가볍게 여겼다(창25: 27,29-34)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형이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것은 “장자 권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에는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1) 앞에서 본대로 속임수를 써서 받아낸 “축복”은 “부적”과 같은 것으로 잘못 이해된 것이었다는 문제가 남습니다. 곧 하나님의 참된 축복은 형이 받든 동생이 받든 형제 두 사람에게 다 축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문제입니다.

(2)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리브가와 야곱이 아버지를 속였다는 이 사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에 야곱이 속임을 당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창29:16-30). 이렇게 속이는 이야기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가 성경이야기로서 어떤 뜻이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3)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 장에 보면 도망치다 쓰러져 잠든 사기꾼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축복해 주신다(창28:10-15)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도망쳐야했던 사기꾼 야곱을 축복해 주신다는 것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답은 야곱과 에서 이야기의 끝에 가서야(창32-33)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창25장과 27장 이야기)는, 축복을 형이 받든 동생이 받든 잘못된 형제관계를 바로잡을 수 없이 된, 잘못된 상황을 문제로 드러낸 것뿐이고, 그 해결의 결말은 다음에 나옵니다. 성경다운 점은 결말에 가서야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장자권이라는 사회적인 관례법과 장자의 축복이라는 종교적인 예식으로 굳혀지는 힘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 것인지를 다루기 위한 긴 이야기(창33장까지)의 첫 대목에 불과한 것입니다.

Title
  1. 이 책이 나오기까지

    Date2007.12.21 By이재형 Reply0 Views4563
    Read More
  2. 47. 이 글을 마치며 -한 간호원의 죽음 앞에서 물은 신학과 목회의 목적-

    Date2007.12.21 By이재형 Reply0 Views7031
    Read More
  3. 46. 이상을 품은 사람들이 바라는 공동체 -둘째 돌판 이야기의 뜻-

    Date2007.10.26 By이재형 Reply0 Views3408
    Read More
  4. 45. 새 공동체의 이상과 현실의 차이

    Date2007.10.26 By이재형 Reply0 Views3315
    Read More
  5. 41. 떨기가운데 이는 불꽃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체험 -모세의 체험(4)-

    Date2006.12.17 By이재형 Reply0 Views2784
    Read More
  6. 40. 제사장 딸과의 결혼과 유목공동체생활 -모세의 경험(3)-

    Date2006.12.17 By이재형 Reply0 Views2942
    Read More
  7. 39. 살인과 도피 -모세의 경험(2)-

    Date2006.12.17 By이재형 Reply0 Views4146
    Read More
  8. 38. 군주의 폭력과 여인들의 힘 -모세의 경험(1)-

    Date2006.12.17 By이재형 Reply0 Views3119
    Read More
  9. 30. 어린양에 손을 대지 말라 -양을 바치는 `번제`?-

    Date2006.01.15 By이재형 Reply0 Views3352
    Read More
  10. 02. 요나 이야기 -`도중하차`식 성경해석의 문제 (예1)

    Date2005.10.27 By이재형 Reply1 Views4615
    Read More
  11. 37. 장례식과 유언 (창세기이야기 마감)

    Date2005.06.08 By이재형 Reply1 Views4120
    Read More
  12. 36. 꿈(3) -꿈을 죽인 형들과 꿈을 살린 동생의 화해 -

    Date2005.05.07 By이재형 Reply0 Views3940
    Read More
  13. 35. 꿈(2) - 할 일을 알려주는 해몽-

    Date2005.04.11 By이재형 Reply0 Views3664
    Read More
  14. 34. 꿈(1) -요셉의 이상과 고난-

    Date2005.03.09 By이재형 Reply0 Views3350
    Read More
  15. 33 `축복`? (2)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화해-

    Date2005.02.08 By이재형 Reply1 Views3857
    Read More
  16. 32. `축복`? (1) -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형제싸움 -

    Date2005.01.08 By이재형 Reply0 Views5588
    Read More
  17. 31. 기도 -며느리 선택(기준) 이야기-

    Date2004.11.25 By이재형 Reply0 Views4141
    Read More
  18. 28. 의인 열명을 채울 사람은? -소돔을 위한 아브라함의 기도 이야기-

    Date2004.10.20 By이재형 Reply0 Views3500
    Read More
  19. 27.“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부인 사라와 부인의 몸종 하갈,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 이야기-

    Date2004.09.18 By이재형 Reply0 Views6512
    Read More
  20. 25.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야 했던 이야기 -잘못된 세상에서 잘못한 다음에-

    Date2004.06.23 By이재형 Reply1 Views2384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