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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떠나라” ? 
  -복의 근원됨에 필요한 첫 조건-  창 12:1상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는 질문

1. 아브라함이 하란이라는 땅을 떠난 것만으로 그의 “떠남”이 다 이루어진 것일까? 그 땅의 문화도 떠나야 하는 것 아닐까?
2. 어떤 특정지역문화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만큼 완전할 수 있을까?
3. 인간관계에서 과거에 가졌던 좋지 못한 경험은 어떤  결과를 남기는 것일까?
4. 인간관계에서 잘못된 경험의 희생자는 다음에 남을    희생시키는 가해자(화의 근원)가 될 가능성은 없을까?
5. 잘못된 과거가 남긴 악영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6. 떠남과 도피의 차이점은? 
7. 성경이야기에서 말하는 떠남과 정신의학의 도움으로  치유 받는 이야기에서의 떠남의 차이점은?
8. 아브라함이야기에서 “떠나라”는 말이 신약에 나오는 “거듭남,” “회개,” “성전을 허물라”는 등의 말과 비슷한 점은?

문화 전통에서도 떠나야
-복의 근원됨에 필요한 첫 조건-

하나님은 화의 근원되었던 아브라함을 앞으로 복의 근원이 되어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1)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2) “내가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2-3)고 하셨습니다. 이는 복의 근원됨에 두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첫 조건인 떠남에 대한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조건에 대해서는 다음 장 24. 보여주실 땅 에서 보겠습니다.>

네가 나서 살아온 곳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한다는 이 말은 지금까지 살아온 하란이라는 특정 지역을 떠나라는 뜻이라기보다는 태어나서 살아온 그 땅의 문화와 전통까지도 떠나라는 뜻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에덴 바깥세상의 모든 특정 문화전통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화와 전통에는 떠나야할 잘못된 무엇인가가 있는 법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아담의 후예로서 화의 근원이 되어 살아온 모든 과거와 현재의 잘못에서 떠나서 앞으로 제 길에 들어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얻은 잘못된 경험에 의해 짜인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야한다는 말입니다.

경험에 의해 짜인(굳어진) 생각의 틀에서 떠나야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 세상과 사람을, 그리고 자신을 알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곧 사물에 대해서 안다는 생각의 내용과 틀이 경험에 의해서 짜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서 무엇에 대한 앎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하얀 고양이를 체험했으면, 고양이는 하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까만 고양이를 체험했으면, 고양이는 까만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 고양이를 다 체험했으면, 고양이는 희기도 하고 검기도 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또는 절대자)은 어떤 분이라는 믿음의 내용도 경험에 의해서 짜이는 생각의 틀 속에 담기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세상과 인생에 대한 생각의 내용과 틀도 세상과 인생에 대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따라, 곧 바른 경험을 했으면, 바른 틀이 짜이고, 잘못된 경험을 했으면, 잘못된 틀이 짜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짜인 생각의 틀을 가지고 이 세상이나 인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과거에 세상과 인생에 대해서 잘못된 경험만을 하게 되었다면 그 잘못된 경험은 지나가는 세월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고, 그 잘못된 경험에 따라 짜인 생각의 틀이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어서 현재와 미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아 있게 되는 잘못된 생각의 틀 때문에, 지나간 과거가 지나간 과거로 되지 못하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 잘못된 체험에 사로잡힌 노예처럼 살아가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병들면 병에서 나으려는, 떠나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마약에 깊이 빠져 중독이 되면 떠나려는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떠나려는 결단(생각의 틀을 고쳐 짬)을 할 수 없게 됨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겠습니다. 과거의 잘못 자체는 아무도 고칠 수 없는 것이고, 한 가지 가능한 일은 이런 과거에 의해 짜인 그 생각의 틀을 고쳐 짜는 길뿐입니다. 이 길에 들어서기가 어려운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의학에서 치유는 떠남에서만 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난날과 오늘의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야 해결의 새 길이 트이는 것입니다. 떠남의 중요성에 대해서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야기 1

결혼생활 7년째 되는 어떤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성실하다는 평이 높았고, 부인 사랑에도 뒤짐이 없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쁜 딸아기 하나를 키우면서 다니기에 알 맞는 좋은 직장도 있었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산다는 정도가 아니고, 남들이 다 부러워할 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악이 괴물처럼 숨어 있다가 갑자기 터져 나오곤 했습니다. 남편과 딸아기를 향해서 걷잡을 수 없이 화를 터뜨리는 발짝을 일으켜 미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착해서 참고, 아기는 철없으니 그저 당하기만 하는데, 본인도 괴로워했습니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 몰랐습니다. 악령이 붙어 발광하는 것이란 표현이 가장 적합한 말이었습니다. 

정신 의학자의 진단을 받고 그 원인을 알게 됩니다. 이 여인이 어렸을 때, 아빠가 알코올 중독자였답니다. 그때 이 어린 딸은 아빠의 사랑의 관심을 받고 싶어 했으나, 아빠는 술병밖에 모르고, 사랑의 관심은 고사하고 늘 예측할 수 없이 화만 내곤 하는 환경에서 자라났답니다. 한 번도 자기가 화를 낼 대상은 없이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다운 시절을 잃어버린 채 성인이 된 것입니다. 아빠의 술주정 때문에 공부도 제대로 못해서 자기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화를 낼만한 대상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고, 지금도 직장에서 화를 내면 쫓겨날 것이고, 사회에서도 화를 받아 줄 이유를 가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 자기가 화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자기를 사랑하는 남편과 자기 몸보다도 더 사랑하는 자기 아기뿐입니다. 이 세상에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무도 없는데, 이 천진난만한 어린 아기가 그 희생의 대상이 된 것이랍니다. 

심각한 문제는 지난날 아빠를 향했던 화를 지금 죄 없는 남편이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주정 때문에 자신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어서 생긴 열등의식은 자신을 극도로 미워하는 자학증에 걸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네 자신을 사랑하듯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자기를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없는 병으로 커진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자신을 미워하는 이 정신병은 한 걸음 더 나가서, 남편까지도 그의 소질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기를 바라는 이중삼중의 복합적인 병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사실을 본인 자신이 모르고 지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신과 의사의 도움이 치료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데, 이렇게 모르고 걸려 있는 병의 정체를 알게 함으로, 아기가 당하는 희생, 남편이 죄 없이 당하는 고생을 깨닫게 하고,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남편을 마주 보도록 세워 놓고, 남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게 하면서, 남편을 과거의 미운 아빠로 보지 말고, 지금의 남편으로 바로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정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처방은 아빠에 대한 잘못된 (1) 과거의 체험에 대한 지금의 생각에서 떠나야하고, (2) 아버지를 용서 못하는 지금의 마음상태에서 떠나야 하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을 미워하는 자학증에서도 떠나야 하며, (3) 지금의 남편과 자식을 향한 사랑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야기 2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가 대단히 가까운 관계인데, 딸이 십대에 접어들면서 엄마를 미워하게 되는 경우가 퍽 많다고 합니다. 29세 된 젊은 엄마와 10대에 들어선 딸과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 딸이 가출 직전에 이릅니다.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딸이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딸은 엄마를 말 그대로 미워하게 됩니다.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간섭으로 보였고, 자유를 구속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기 때문이었는데,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 엄마가 14세 때에 임신했던 과거가 있었습니다. 자기 사랑하는 딸에게만은 자신과 같은 잘못이 없게 하려고 사랑과 보호가 무의식중에 병적으로 과잉되었던 데서 비롯한 불행이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의 도움으로 엄마자신의 문제를 자식에게 그대로 투사한 잘못을 깨닫게 되어, 딸이 가출하지 않고 다시 엄마와 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새롭게 보다 성숙한 사랑의 관계로 키워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떠남”과 현실도피

이 두 이야기는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고 잘못된 경험에 의해서 굳어진 생각의 틀에서 떠남(해방됨)으로 치유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술주정뱅이 아빠 때문에, 또는 일찍 임신하게 한 사람 때문에 희생자가 되었던 그들이 성장한 다음에, 과거경험에 의해서 굳어진 잘못된 생각의 틀 때문에 남편이나 자식을 희생시키는 가해자가 되었다가, 잘못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남으로 가해자 됨(화의 근원됨)에서도 벗어난다는 점에서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둘째 예화에서 희생자가 된 딸이 가출 직전에 이르도록 악화되었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자신이 희생자였다가 나중에 가해자가 된 엄마가 잘못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는 치유를 받지 못했다면, 딸이 가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첫째 이야기에서도 만일 떠남의 치유가 없었으면 부부간의 이혼과 그에 따른 자식의 불행이 따르게 마련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딸의 가출과 남편의 이혼도 일종의 “떠남”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런 떠남은 잘못된 떠남으로 현실도피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어떤 문제에서 “떠난다”고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 사실은 현실도피에 불과한 경우가 태반일 것입니다. 현실도피와 현실개선은 비슷하면서도 엄청나게 다른 것입니다.

잘못된 과거의 희생자 자신이 다시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기지 못하면, 다음대가 희생자가 되고 이 희생자 자신이 다음에 다시 가해자가 되게 마련인 것입니다. 맺힌 한에서 풀리지(떠나지) 못하면 불행의 고리가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창세기이야기에도 현실도피에 해당하는 예가 있습니다. 하갈이야기입니다. 몸종 하갈이 주인의 학대에 못 이겨 아들을 데리고 도망쳐 나가는 길에서 만난 천사가 도망치지 말고 돌아가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생존가능성이 없는 광야로 도망치는 발걸음을 돌려, 비록 주인에게 복종하면서 살더라도, 엄마가 되고 여인이 되는 길을 견디어냄으로 몸종제도의 잘못을 안에서 시정하는 길을 가도록 하려는 것이 그 의도였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27. 어디서 와서 어디로? 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가인과 아벨이야기에서 <16. 화난 마음의 계획은 다스려야 -형이 동생을 죽인 이야기(1)> 형이 동생을 죽임으로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다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살인은 “현실개척”이 아니고 “현실도피”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도 모세가 살인 후에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40년간 살았던 일은 일종의 도피였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히브리인 노예들의 고난은 여전히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그를 다시 이집트로 돌려보낸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엮어집니다. 그가 도망쳐서 생명을 부지한 것처럼, 잘못된 현실에서 잠시 떠나는 일이 필요한 일이긴 하겠습니다. 그러나 도피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돌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39. 살인과 도피 -모세의 경험(2)-에서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떠남”은 “현실 개척”이지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현실도피는 한 번으로 성사될(성공할) 수 있지만, 현실개척은 한두 번 시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노예해방이 열 차례의 재앙 다음에 성사되었다는 이야기도 현실개척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42. 노예의 탈출과 재앙이야기-모세의 체험(5)>

성경 이야기의 떠남
-제 길에 들어서기 위한 떠남-

성경에서 말하는 떠남이 앞에서 예로 든(결혼생활 7년째 되는 어떤 여인의 이야기와 엄마와 딸 사이 이야기) 두 이야기에서의 떠남과 같은 점이 있으면서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위 두 이야기에서는 희생자에게 잘못된 경험을 남긴 그 사건이 이미 지나간 과거의 사건인 경우여서, 희생자의 기억만으로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인데 이 기억의 영향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성경 이야기에서 말하는 떠남은 과거에만이 아니고 현재에도 가해자가 살아있어서, 또는 가해자가 개인이 아니고 집단이 불의한 제도를 통해서 현재에도 잘못을 감행하는 경우 이런 잘못에서의 떠남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모세가 노예해방을 인도한 경우의 떠남은 이집트 왕이 아직도 폭정을 베풀고 있는 그 현실 속에서 해방을 쟁취해내는 떠남인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런 떠남을 위 두 이야기 경우에 적용시키면, 두 엄마가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이 아니고, 저들이 학대를 받고 희생자가 되었던 그 시절, 그 현실에서 그 잘못을 시정하는 떠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아브라함이야기에서 “떠나라”고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떠나라는 말씀에 이어서, “내가 보여줄 곳으로 가라”고 하셨다고 한 것입니다. 떠나면 복의 근원이 된다는 말씀이 아니고, “떠나, 내가 보여줄 곳으로 가면, 복의 근원이 된다”는 말씀이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떠남은 잘못된 과거에서만이 아니고 현재의 잘못에서도 떠남이고,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땅으로 가라는 말은 이제부터 바른길을 가라는 뜻으로 보면, 그 의미가 보다 더 명백해집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다는 창조이야기의 표현을 빌어서 말하면, “좋다”고 할 수 있는, 바른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서, “좋다”고 할 수 없는, 잘못된, 현재의 상태를 부정하는 떠남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처음 나오는 이 떠남이라는 말은 전 성경의 주제가 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이야기도 이 떠남을 주제로 다루고 있고, 구약의 예언서들은 다 예외 없이 과거만의 잘못이 아니고 현재의 잘못을 혁신하는 것(떠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대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중요한 사상인 “회개,” “거듭남”등도 떠남과 같은 말인데, 여기서 다른 점은, 피해자가 기억에 남은 생각에서 떠남이 아니고, 가해자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잘못에서 떠나는 회개와 거듭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더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예수님께서 당시 기성종교의 잘못을 규탄하시면서, 이런 잘못된 종교를 상징하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요2:19)라고 말씀하실 때, 이 “허물어라”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런 허물음은 바른 것을 세우기 위한 허물음인 것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떠남은 가야할 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떠남입니다. 모세의 노예해방의 떠남은 노예제도가 용납되지 않은 새 공동체 창조를 위한 떠남인 것입니다. 궤도에서 이탈된 현실에서 제 길에 들어서는 떠남인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서 화의 근원인 아담의 후예 됨에서의 떠남인 것입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아브라함이야기들은 그가 과연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화의 근원됨에서 바로 떠날 수 있었는지 그 여부를 보여 주는 내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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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한 2004.03.17 02:47
    목사님, 오랜 만에 인사 드립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떠남이 미래를 보증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떠나든지 머물든지 이것은 우리의 “결단”의 문제일 것입니다. 두 귀로에서 하나를 선택함은 하나를 잃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처럼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자기 자격에 대한 탄식이 절망이 되는군요. 제 앞에 놓여 있는 두 길이 자꾸만 흐리게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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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범식 2004.03.24 12:48
    김목사님, 위에 쓰신글 누구나 경험했었고 다들 그렇게 막막하게 느끼며 살아 간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결단이 강요되는 때가 있지요. 그럴때면 좀더 자신있게 "Why not?" 해야 겠지요.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Geore Bernard Shaw 를 quote 하겠읍니다. You see things; and you say, "Why?" But I dream things that never were; and I say, "Why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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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4. `보여주실 땅`으로 가면 -복의 근원됨에 필요한 둘째 조건- 2 이재형 2004.04.1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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