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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다름 넘어 ‘큰나’ 구하라

지옥같은 세상 부정하고 절대적 진리 ‘오직 하나’ 추구 예수도 부처도 끝나지 않은 지향

성경·불경·공맹·동학·간디 넘나들며 모든 철학을 자기말로 풀어낸 ‘큰 사람’

http://www.hani.co.kr/arti/BOOK/117354.html
 
커버스토리/철학자 다석 유영모 강의 엮은 <다석강의> 출간

다석 유영모의 강의를 그대로 수록한 책 <다석강의>(현암사 펴냄·3만8000원)가 나왔다. 그동안 나왔던 다석 관련 책들이 대부분 그의 제자들이 엮은 것들인 데 견줘 이 책은 다석의 육성을 그대로 담은 거의 유일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철학계에서 다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나온 이 책의 의미, 그리고 21세기 현대 철학자들이 다시 다석사상에 주목하는 이유를 철학자 김상봉 교수의 글을 통해 알아본다.


작년 말 전남대에서 박노자 교수를 초청해 철학 교수였던 박종홍에 대해 토론회를 열었을 때, 존경하는 홍윤기 교수는 이렇게 되물은 적이 있었다. ‘과연 함석헌을 가리켜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면서 홍 교수는 개인의 자의식을 그 기준으로 말했다. 자기를 철학자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그 기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염불을 왼다고 다 불자가 아니고, 기도한다고 다 기독교인이 아닌 것처럼, 철학자연 한다고 철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기를 철학자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해서 그가 철학자가 아닌 것도 아니다. 철학은 이름에 갇히는 활동이나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은 오로지 삶의 자기반성인 것이다.

철학이 한갓 직업이라면 함석헌의 스승이었던 다석(多夕) 유영모는 철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철학이 삶의 자기반성이라면 다석을 제외하고는 20세기 한국 철학을 말할 수 없다. 대학의 철학교수들이 단지 남의 철학 책을 풀이하고 있을 때, 그는 칸트가 말했던 철학함을 몸소 실천했다. 다석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자기의 삶과 현실을 비할 나위 없이 크고 깊었던 그의 얼 속에서 돌이켜 생각했던 것이다.


20세기 한국철학의 반석 유영모




그 돌이켜 생각함의 출발은 현실에 대한 절망이었다. 다석은 1890년에 태어나 1981년에 세상을 떠났다. 을사늑약과 함께 철이 들고 해방의 기쁨과 희망이 참혹한 동족상잔으로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보았으며 광주항쟁이라는 미증유의 사건 한 해 뒤에 세상을 떠났던 다석의 정신에 비친 삶과 현실은 한 마디로 절망적인 현실, 부정되어야 할 현실이었다. 일제 때 성서조선 사건으로 옥살이를 경험했고, 끝내 창씨개명을 거부했던 이 꼿꼿한 선비는 참된 철학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정직함으로 현실에 대해 절망했다. “진선미가 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이 땅위에는 없습니다.”(656쪽) 그리고 현실을 부정했다. “내 사상은 통히 부정하는 거다. 이 세상만이 아니라 태양계를 부정하는 거다. 이 세상은 더러운 데다. 거룩을 구하는 내가 머무를 곳이 아니다.”

 

 

이토록 철저히 삶을 부정한 그에게 인간으로서 땅위에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치욕이었고 저주였다. 오죽하면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를 가리켜 노여움을 타고났다고 말했겠는가? “분명히 노여움을 타고 난 것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그 짓을 하여 ‘나’라는 것이 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에 나오지도 않고 이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나왔다는 것은 떨어져 나온 것입니다. 노여움을 타고 무(無)에서 나온 것입니다.”(713쪽) 하여, 참혹한 세상에서 당하고 또 당했던 이 가엾은 영혼은 자기를 이 “더러운 데” 보낸 부모의 “그 짓”을 증오했다. 그는 연애를 경멸했으며(856쪽), 영화에서 남여가 키스하는 장면을 집요하게 비난했고(256쪽), 결혼하고 남녀관계를 가져 자식을 낳은 것을 후회했으며(270쪽), 철학자가 보여줄 수 있는 일관성으로 끝내는 아내와 해혼(解婚)을 선언했다(961쪽). 그리고 66세 되던 해에는 앞으로 일년만 더 살고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이토록 철저히 삶을 증오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 세상의 것은 다 내버려야 합니다.”(265쪽) 이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니체나 프로이트 학도라면 다석이 보여주는 이런 과도함에 대해 나름대로 할말이 없지 않을 것이다. 나도 치정(癡情)과 사랑을 구별할 줄 모르는 그가 몹시 불편하다. 하지만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는 자기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고, 따라 체험했고, 정직하게 절망했다. 절망의 끝에서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이 상대세계에는 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873쪽) 것이었다. “정신이 만족하는 것은 상대세계에는 없다.”(891쪽)

당신이 사소한 장애 때문에 친구들과 같이 학교에 갈 수 없는 어린이의 부모라면, 삼성그룹 X-파일을 폭로했다고 감옥에 갇혀 있는 삼성 일반 노조 위원장의 친구라면, 아직도 농성중인 KTX 여승무원들의 애인이라면, 하루아침에 삶터를 빼앗긴 새만금과 대추리 농어민의 자식이라면, 그리고 만약 당신이 군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른바 혼혈인이고, 이 나라에 머물고 싶어도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이주노동자라면, 당신은 그의 절망을 이해할 것이다. 이 땅은 지옥이다.


삶을 철저히 증오한 사람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았던 그가 모든 썩은 현실로부터 절대적 순수의 세계로 초월하려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근본에서는 다 좋은데, 이 세계에 나타남으로써 잘못되었다.(544쪽) 그런즉 우리는 이 상대 세계를 뛰어넘어 절대적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 절대의 진리가 무엇인가? 절대적 진리는 오직 ‘하나’이다. 상대성 속의 현실은 여럿이다. 하지만 참된 “존재는 하나”이다.(712쪽) 그 밖의 것은 다 찌꺼기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밖에 없다.”(459쪽) “모든 것은 절대인 ‘하나’에서 나와서, 마침내 ‘하나’를 찾아 하나로 돌아”간다.(742쪽) 이리하여 그는 만물의 차별상을 등지고 절대적 하나를 향해 자기를 던졌으니, 자기를 가리켜 오직 “하나라는 존재를 증거하는 사람”이라 하였다.(460쪽)

 

 

그 하나에 대한 열정이 모든 차이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게 만들었다. 이는 종교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석은 소년시절에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이었으나, 기독교가 여러 종교들 가운데 하나라는 당연한 사실을 직시한 뒤에는 더 이상 기독교를 절대시하지 않았다. 오직 차이와 여럿을 넘어선 곳에서만 참된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와 철학은 하나의 절대자를 가리키는 손가락들일 뿐이다. 예수도 부처도 절대자를 향한 끝나지 않은 지향인 것이다.(805쪽)

이런 깨달음이 그로 하여금 모든 진지한 종교를 차별없이 존중하고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는 1928년부터 63년까지 약 35년을 지속했던 YMCA 연경반(硏經班) 강의에서 성경뿐 아니라 불경을 강의했으며, 공자와 맹자를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간디와 퀘이커교에 존경과 공감을 표했으며, 동학과 원불교 같은 새로운 종교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노자>(老子)를 처음으로 순우리말로 번역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이 그어놓은 차이와 다름을 뛰어넘은 자유인이었던바, 오늘날 종교백화점과도 같은 한국에서 그나마 다른 종교에 대한 화해와 이해의 기운이 없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선구자들의 사색에 힘입은 것이다.

대학의 철학교수들이 대부분 제가 전공하고 가르치는 철학자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을 때, 다석은 그 모든 철학과 종교를 제 것으로 소화하여 자기의 말로 풀어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절대자를 향해 나아가는 보다 보편적인 철학과 종교의 새 지평을 예비했다. 그 지평이 바로 ‘나’이다. 진리는 오직 나 속에서 표현되고 실현된다. “이 사람은 항상 나와 일치하려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발견한 것이 나입니다. 내가 없으면 아버지를 발견하지 못합니다.”(203쪽) “우주 사이에서 하나의 절대자(絶對子)가 나입니다. 허공밖에 없는 이 우주에서 내가 허공의 아들입니다. 곧, 절대자입니다.”(453쪽)


보편철학·보편종교의 지평 열어


그는 절대적 하나를 한 아(我), 한 나, 곧 큰 나라고 생각했다. 육체에 갇힌 작은 나를 초월하여 큰 나인 절대적 하나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그가 평생을 두고 걸었던 구도의 길이었다. 생각하면 자기가 세상에 태어난 것을 혐오했던 철학자가 다시 자기를 절대자로 파악했다는 것은 크게 모순된 일이다. 그러나 철학이 부딪히는 모순이 현실의 모순을 정직하게 반영하는 것일 때, 그 모순은 크면 클수록 생각의 불합리가 아니라 도리어 존재의 진리를 계시하는 것이 된다.

한국인들에게 20세기는 자기의 존재를 순진무구하게 긍정할 수 없는 시대였다. 하지만 누군들 남에 기대어 자기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자 또한 오직 자기 자신일 뿐이다. 한평생 절망의 길과 해탈의 길이 만나는 교차로를 떠나지 못했던 다석은 거기서 그대로 바위가 되었다. 겸허하게 옷깃을 여미며 고개 숙이노니, 20세기 한국철학은 바로 그 바위 위에 터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봉/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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