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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랑의 우주 공동체



2001. 11. 11 신명기 6,5| 요한복음 15,12| 오강남 박사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늘 우리들의 삶의 정황에 적용하므로 한국 민주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이 향린 교회에 참석하여 여러 교우님들을 뵙고 또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 것을 그지없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런 특권과 기쁨을 주신 홍근수 목사님과 교우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향린교회와 홍근수 목사님에 대해서는 밴쿠버에 계시는 정대위 목사님을 통해서 말씀을 많이 들었고, 또 지난 6월에는 밴쿠버에서 정원진 목사님을 만난 일도 있고 하여 향린교회가 그렇게 낯선 교회는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향린 교회처럼 신학적인 면에서나 실천적인 면에서 앞서 가고 있는 교회에서 제가 무슨 말씀을 더 드릴 것이 있을까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홍 목사님께 순종하는 심정으로 제가 평소 생각하던 것을 말씀드리고 여러분과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지금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기독교 자체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굼벵이가 나비가 되는 것과 같은 일종의 "탈바꿈"(metamorphosis)이라고 할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옛날에 부르던 흑인 영가처럼 "Give me that old time religion; that's good enough for me."라는 노래를 계속 부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 John Cobb, Jr.라는 분에 의하면 이런 큰 변화의 주된 원인이 두 가지라고 합니다. 한 가지는 여성학의 대두요 다른 한 가지는 기독교와 동양종교, 특히 불교와의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후대 역사가들이 20세기를 돌아보고 20세기에 일어난 사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우주선이나 컴퓨터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공산주의의 흥망 같은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기독교와 불교가 의미 있게 만나게 된 일을 들 것이라 예견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기독교에는 지금 제2의 종교개혁 같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불고 있는 이런 변화의 바람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있어서 오늘은 먼저 그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그 중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면에 대해 좀 자세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얼마전 미국 루지아나 주 뉴올리언즈에서 열렸던 미국 종교학회에 참석했다가 도서전시장에서 산 책 중에 {기독교의 변혁}(Transforming Christianity, 1996)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하바드 신과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로스 가토스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글로즈토드랜크(Stephen Glauz-Todrank)라는 한 무명의(혹은 '긴 이름'의) 젊은 목사가 쓴 책인데, 오늘 기독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흐름을 검토하고, 그 개요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저자는 먼저 세상에 바뀌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고, 기독교도 어쩔 수없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기독교도 이제 우물 안에서 혼자 활개치던 태도를 버리고 '지구적 안목'을 갖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즘 말로 고치면, 기독교도 '지구시대'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패러다임 천이(paradigm shift)"를 이룰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패러다임 천이는 열 가지입니다.

첫째, "배타주의에서 다원주의로." 지금껏 기독교만 유일한 진리 종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모든 종교들을 진리와 구원의 길에 함께 가는 동반자로 생각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 배우고 같이 협력하는 관계를 수립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상하구조에서 평등구조로." 종래까지 있었던 목회자와 평신도 등 교회 내의 상하 계급구조가 민주사회에 맞는 수평구조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당연시하는 노예제도라든지 남녀차별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체의 인종차별이나 빈부차별 같은 것이 없는 평등 사회를 이루는데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저 위에 계시는 하나님 뿐 아니라 내 안에도 계시는 하나님으로." 지금껏 믿어 왔던 대로 저 위에 계시는 백인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고 이 세상에 임재하는 하나님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넷째, "교리 중심주의에서 깨달음 중심주의로." 전통적인 교리나 신조를 아무런 반성이 없이 그대로 진리라고 받아들이던 피동적 태도 대신에 우리 스스로 깊은 영적 통찰과 형안을 통해 우리의 가장 깊은 현실적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 실존적 진리를 직접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태도가 점증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죄 강조에서 사랑 강조로." 인간이란 우리 시조 아담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해 시작된 원죄를 뒤집어쓰고 나온 비참한 존재라는 것을 주제곡으로 하던 음산한 기독교 교향곡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밝고 건강한 교향곡으로 편곡한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육체 부정에서 육체 긍정으로."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고 육체를 죄악시하던 생각에서 육체와 영혼을 분리할 수 없는 하나로 보고, 적절한 음식, 적당한 운동으로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도 힘쓴다는 것입니다.

일곱째, "현실야합에서 예언자적 자세로." 조찬기도회다 뭐다 하면서 사회나 정치문제에서 강자의 입장을 변호하고 야합하던 태도를 버리고 진실과 정의와 사랑의 원칙에 따라 현실을 고발하는 예언자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여덟째, "종말론에서 환경론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함께 하늘로 올라갈 것만 생각하느라 지구가 어떻게 되던 상관할 것 없다고 하는 태도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병들고 있는 자연을 보살피고, 앓고 있는 지구를 치료하기 위해 힘쓰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아홉째, "분열에서 연합으로." 교회들이 자기들의 교리만 참된 진리라는 생각 등으로 다투고 분열하는 일을 그만 두고 사랑의 하나님을 중심으로 서로를 더욱 사랑하는 일에 연합한다는 것입니다.

열째, "예수님에 '관한' 종교에서 예수님'의' 종교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예수님은 인간인가 신인가? 그는 동정녀에게서 탄생했는가? 그는 언제 다시 오시는가? 하는 등 예수님에 관한 잡다한 교리를 믿는 믿음에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간 예수님의 믿음, 그 예수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갖는 것에 중점을 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패러다임 천이, 혹은 탈바꿈은, 지금 우리 앞에 닥친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살아 있는 생물이기에 이런 탈바꿈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환영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탈바꿈을 그는 '신종교개혁'(New Reformation)이라 하고 이렇게 탈바꿈을 거쳐서 생겨나는 기독교를 '신세계 기독교'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더욱 충실하면서 새 시대의 필요에 더욱 효과적으로 부응하는 기독교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기서 특히 아홉째의 변화, "분열에서 연합으로"라고 하는 변화에 대해 좀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연합'이 무엇입니까? '연합'이라는 말을 알아듣기 쉬운 말로 고치면 '어울려 있음' '더불어 삶'입니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해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종이에서 구름을 봅니까? 새 소리를 듣습니까?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려고 이런 이상스런 질문을 하는가 반문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종이가 있으려면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으려면 비가 있고, 비가 있으려면 구름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들고 있는 이 종이에는 구름이 있고, 비가 있고, 나무가 있고,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가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햇빛도 있고, 흙도 있고, 공기도 있고, 종이를 만드는데 필요한 시간, 공간... 종이를 만든 사람들, 그 사람들의 부모, 이런 사람들이 먹은 밥, 밥을 생산한 농부들, 농부들이 쓰는 농기구, 농기구에 필요한 쇠붙이를 캐낸 광부들... 결국 이 종이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우주가 들어있는 셈입니다. 종이는 결국 종이 아닌 것으로 이루어지고, 종이의 종이 됨은 전적으로 종이 아닌 것에 의존해 있습니다.

영어로 "interbeing"이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제가 번역하여 최근 출판사 모색에서 낸 {귀향}이라는 책의 저자 틱냣한 스님이 즐겨 쓰는 말입니다. 우리가 보통 "I am a girl."이라고 말하지만 엄격히 따지면, "I inter-am a girl."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소녀인 것은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요인들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없으면, 소년이 없으면, 햇빛이 없으면, 공기가 없으면 나는 소녀일 수가 없습니다. 내가 소녀라는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사물 때문입니다. 이처럼 나를 포함하여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이렇게 서로 "어울려" "더불어" 함께 "맞물려" 상호의존(相互依存) 내지 상호혜존(相互惠存)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인간'(人間)입니다. 다른 것이나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찾는 존재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읽은 말씀--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특히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이렇게 서로 어울려 있음, 더불어 있음을 체감하고 거기에 따라 살라는 것이라 보고 싶습니다. 서로 이런 불가분의 관계를 체득할 때 우리는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게 됩니다. 영어의 자비라는 단어 'compassion'은 서로(com) 아파함(passion)이라는 뜻입니다.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을 때 다른 종교나 교파는 모두 틀리고 나만 옳다고 하는 배타적인 심성, 세상이 어떻게 되든 나 몰라라 하고 나만 천당에 가겠다는 이기적 종말관, 이리 저리 울타리나 장벽을 치고 서로 차별하는 마음이 있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기독교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복 빌고 복채 비슷한 것을 걷어들이는 것이겠습니까? "믿슘니다"만 복창하여 내 개인이나 가족만 복을 받으면 된다는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이겠습니까? 물론 이것도 어느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인간관계가 뒤틀려 살벌한 세상에, 오늘처럼 자연을 함부로 대하므로 인류의 공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생태계의 위기 앞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이 정도에만 그칠 수 있을까요?

이 시대의 긴박한 상황에 책임을 느끼는 종교, 이 시대의 절실한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종교라면 사람들에게 사물의 더 깊은 차원을 보도록 도와주는 일, 그리하여 만물이 이처럼 서로 어울려 있다는 실상의 세계를 깊이 자각하도록 도와주는 일에 앞장서는 종교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런 자각을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이 서로 사랑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실천하며 사는 '새로운 우주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되는 사람들이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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