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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가 26살 어린 고봉에게 잘못을 시인하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서평
김동수 (kimds6671) 기자

ⓒ 소나무 퇴계


퇴계. 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쉽게 말할 이가 그리 많지 않다. 고봉. 조금은 알 것 같지만, 말하라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단편지식에 머물 뿐 깊이 알지는 못한다.


1558년 명종 13년 10월, 퇴계는 지금의 국립대학 총장격인 성균관 대사성이었고 고봉은 대가에 막 급제한 청년이었다. 당대 최고의 유학자로 존경받던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이 1558년 문과에 갓 급제한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1527∼1572)과의 만남을 기뻐하며 편지를 썼다. 두 사람의 편지는 1570년 11월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퇴계가 육신을 내려놓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지극히 사적인, 치열한 지적 사유 논쟁까지 포함한, 13년 동안 오간 편지를 모은 책이 있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두 분 사이에 오간 '일상 편지들'이고 2부는 두 분이 '사단칠정' '태극' '상례나 제례' '국가와 왕실의 전례' '묘갈명'을 논한 것을 모았다.


이기이원론으로 유명한 퇴계와 이기일원론으로 퇴계의 이론을 논박한 고봉이 편지형식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마음을 구성하는 이-기, 그리고 성-정, 사단-칠정 등의 논의를 읽을 수 있다.

조선 성리학의 두 거두가 나눈 지적사유논쟁은 내 지식이 미천한지라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오늘날로 치자면 국립대 총장격인 퇴계 선생이 나이가 한참 어린 26살 연하의 고봉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제 견해가 잘못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부분이다.

이는 단순히 겸손이 아니다. 고봉의 지적 깊이가 어떤 부분에서는 퇴계를 능가했다는 것이며, 퇴계는 자신과 견해가 다를지라도 논리와 타당성이 있다면 고봉의 지적 사유를 인정했다는 의미다. 지식과 사상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늘날 자신의 제자가 '스승님 견해가 잘못되었습니다' 라고 논박할 때 스승은 어떻게 대답할까? 스승과 제자 사이에 지적 사유 논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 세태다. 조선 시대보다 사상과 철학이 더 진보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지적 논쟁이 없지만 교수와 교수 사이에도 이념적 틀이 다르면 지적 논쟁이 성립되기 어려운 시대다. 사상과 철학이 천박한 시대이다. 퇴계와 고봉이 지적 사유 논쟁을 논할 때까지만 해도 조선은 정말 살아 있는 시대였다.

“옛 배움을 익히고 연구해 처음 세웠던 뜻을 저버리지 않고자 합니다만, 잡다한 일이 저를 얽어매어 종일 겨를이 나지 않습니다. 또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곳도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고봉)


“언제나 빼앗을 수 없는 의지와 꺾을 수 없는 기개와 속일 수 없는 식견을 지녀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학문의 힘을 나날이 담금질한 뒤에야 발꿈치가 단단히 땅에 붙어서, 세속의 명예나 이익 그리고 위세에 넘어지지 않기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퇴계)

배움과 연구를 통해 학문을 알아가고자 했지만 벼슬길에 들어선 고봉은 잡다한 일로 학문을 알아가는데 안타까움을 말한다. 어디 배움을 구할 때가 없다고 말한다. 세속 일이지만 나라일이고, 나라 일을 하려고 하는데 잡다한 일이고, 학문을 해야 할 시간을 빼앗긴다는 안타까움에 퇴계는 학문은 나날이 담글질해야 하는 일이라 한다. 담금질해야 세속의 명예와 이익에 넘어지지 않는다 말한다.

조선시대나 이 시대나, 고봉과 퇴계나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다. 세속의 이익과 명예는 끊임없는 도전이다. 우리 시대 대학은 이미 학문을 잃어버렸다. 초등학교부터 학문은 관심대상이 아니다. 세속의 명예와 이익에 학문이 천박해졌다. 학문을 처세의 방편으로까지는 삼는 시대다.

"저는 늘 말하기를 처세가 어려운 경우 나는 내 배움이 완전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다. 내 배움이 만약 완전하다면 반드시 처세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했습니다." (고봉)


"이른바 미진했다 함은 다름이 아니라 학문을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자신을 높이고, 시대를 헤아리지 못했으면서 세상을 일구는 데에 용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패한 까닭이니, 큰 이름을 걸고 큰 일을 맡은 사람은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퇴계)

큰 이름을 걸고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이 학문을 이루지 못하고 큰 일을 도모하는 우리 시대다. 퇴계는 학문만이 아니라 정치를 알고 있다. 정치란 처세가 아니라 학문이 바탕이며, 학문 없는 처세가 나은 정치는 비극임을 갈파한다.

우리 정치는 정말 껍데기다. 학문에 바탕한 정치가 아니라 처세에 밝은 이들이 오로지 '정권'을 잡기 위해 하는 잡다한 말싸움, 기세싸움만 하고 있다. 처세만 있는 정치는 비극이다. 나라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지적 사유의 깊이를 통한 바탕 없이 처세를 통한 정권 잡기에만 붙잡혀 있으니 우리 정치가 비극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 퇴계와 고봉이 지적사유논쟁을 어떻게 이루어가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자기완성이라는 영원한 숙제를 풀고자 그들도 고민하고 논쟁했다. 서로에게 묻고, 답했고, 논박하고 비판했다. 수긍과 인정이 반복된다.

퇴계와 고봉, 대사성과 급제한 신출내기, 26살 차이, 이기이원론과 이기일원론 지적사유 사이가 있었지만 그들은 13년간 편지를 통해 생각을 나누었다. 우리 시대는 이런 논쟁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논쟁이 있어야 학문도 발전하고 정치도 발전한다. 없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논쟁을 시도하면 된다. 퇴계와 고봉이 논쟁했던 13년간의 '조선'이 부럽다.


덧붙이는 글 |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이황, 기대승 편지 / 김영두 역 / 소나무 / 2003년 1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71677&PAGE_CD=N0000&BLCK_NO=7&CMPT_CD=M0011&NEW_GB=#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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