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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없다>가 남긴 과제


정병진 기자


근래 서점가에는 기독교 비판서적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와 당당히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기독교 죄악사>, <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생사를 건 교회 개혁> <종교는 영원한 성역인가?><아웃사이더 12호- 한국 개신교 다시보기> 등등의 책들이 그것이다.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 또한 부제에서 "기독교 뒤집어 읽기"라고 밝히고 있듯이 본격 한국기독교 비판서로 손꼽을 만하다. 더구나 그는 오랫동안 "비교종교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의 비교종교학과 교수로 그 글의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책의 제목만을 놓고 보면 자못 센세이셔널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는 없다"라는 제목은 많은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에게 충격·반발·흥미·냉소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그가 무턱대고 "예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건 결코 아니다. 그가 말하는 진의는 단순히 예수 부정의 차원이 아니라, 제도와 그릇된 신앙이 양산해낸 '그런 예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의 책이 성공하면서 이게 유행처럼 번져 시중의 서적 중에 "있다""없다"는 제목을 단 책들이 나오고 있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사실상 오 교수가 그의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은 그 동안 한국 신학계에서 이미 여러 가지 형태로 제기되어 왔기에 그다지 크게 새로울 것도 놀랄 만한 것도 없다.

다만 주목할만한 점은 그의 책이 기존의 여타 전문 신학서적들과는 달리 어렵고 무거운 신학적 주제들을 우화나 재미있는 예화들을 사용하여 풀어냄으로써 누구나 부담 없이 읽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교회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비등한 이 시기와 맞물리면서 대중의 폭넓은 관심을 획득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교종교학자로서 독특한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곳곳에 반영하고 있어 기존의 신학적인 눈으로 기독교와 종교문제를 인식하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여하튼 오 교수의 이 책은 보수·근본주의 신앙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한국기독교의 현실을 놓고 볼 때 매우 시의 적절했고, 오늘의 한국 기독교를 성찰하고 개혁의 물꼬를 트는 데 신선한 자극 또한 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하지만 전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선교관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 교회는 이런 책 하나 나온다고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것이다. "제도는 소처럼 나아가고 인간세는 바람같이 달린다"는 말이 있듯이, 제도로서 자리를 굳히고 기득권 세력의 질서에 이미 깊숙이 편입된 한국의 기독교가 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현실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성찰할 수 있는 학자들이 변하는 건 매우 쉬울지 모르나, 교회라는 제도적이고 물리적인 공간에서 오 교수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란 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는 말이다.

더구나 그 대상이 '종교'의 문제일 때는 오 교수도 인정하고 있듯이 "체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에 어떤 명쾌하고 훌륭한 이론적인 설명과 타격이 가해진다 하더라도 현재의 입장이 쉽사리 변할 수 있는 성격의 것도 아니다. 여기에 우리의 현실적 고민이 있다.

"학자의 학문적 접근과 현실과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종교다원주의" 논의에서 무엇보다 더 첨예하게 제기될 수 있다. 저자가 폴 닛터(Paul Knitter)의 입장변화를 예로 들어 잘 설명하고 있듯이 결국은 "남의 종교를 이해하라, 남의 종교도 나의 종교와 같이 존중하라"는 등의 말이나 이론으로 되는 게 아니라, 생태계와 인간의 해방을 위한 종교간의 연대와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성불(成佛)하신 예수님"과 같이 무분별하게 타종교의 종교 개념을 끌어 들여와도 곤란하다고 보며, 저자 자신도 주장하는 것처럼 혼합주의가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실천을 위한 연대로 나아가는 형태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종교의 내일이라고 본다.

이 점을 더 확장시켜 생각해 본다면, 서구적 "종교" 개념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고 했던 하바드대 비교 종교사 교수 스미스의 주장처럼 무엇보다 먼저 "규격화되고 가시적으로 대상화된 종교" 개념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기독교만 놓고 보더라도 시초에 제도화된 교회보다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있었음을 상기할 때, 그 주장은 더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니까 무슨 새로운 종교 다원주의적 입장으로 패러다임 변화를 꾀함으로써 이를 통한 종교개혁, 교회개혁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예수의 "하나님 나라운동"을 복원시키고 이를 오늘의 현실에서 실현해 내기 위한 실천적 연대가 더 요청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신앙의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의 대립적인 이해를 둘러싼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논란거리들을 일정부분 남겨 놓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종교인 기독교를 넘어서 "생태와 인간의 해방을 위한 총체적인 변혁 운동"으로 나아가려면 이것이 최선의 길이라 여겨진다.

처음 오 교수의 책 제목을 접했을 때, 서남동의 <민중신학 탐구>에 나오는 어느 짧은 글이 떠올랐다. 그 글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농촌목회를 열심히 하는 목사가 암으로 투병하며 병원 한 번도 제대로 가보지 못한 가난한 농촌 품팔이꾼을 발견하고 그를 돕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그의 힘겨운 노력도 모두 허사가 되어 이 병든 촌부는 결국 가을 찬비가 뿌려지던 날 아내 홀로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한 임종을 맞이하고 만다.

촌부의 아내가 "목사님의 노고를 봐서라도 예수 믿고 눈감으라" 했을 때, 그는 "예수는 무슨 놈의 예수! 예수 없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서 십자가 탑도 웅장한 어떤 교회의 바로 밑 셋방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왜 이 글이 생각났을까? 아마 오 교수의 책제목과 촌부가 마지막 남긴 "예수 없어!"라는 말이 그 맥락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동일해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 없는 촌부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는 무엇일까?

잘은 모르겠으나, 민중의 현실과 괴리된 종교, 신학 그 어떤 것도 식자들의 말공부 이상 별 의미가 없다는 것. 민중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슨 거창한 종교 교리나 신학적 패러다임의 눈부신 변화보다도 참혹한 삶의 한복판을 극복하고 일어서도록 돕는 도움의 손길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 따라서 이에 복무하는 신학과 신앙 실천이 아니고서는 예수도, 신학도, 교회도 죄다 공허한 외침이 될 뿐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2003/06/13 오후 12:07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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