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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본 한국의 종교 8- 유교의 종교성 논쟁

95년 종헌제정…성균관 600년만에 "종교화 선언"

국내 7대 종단이라면 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 민족종교를 든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에는 이들 7대 종단이 가입돼 있으며, 유교는 최창규 성균관장이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유교는 이렇게 보면 종교로 대접받고 있다. 그래서 '유교가 종교냐? 아니냐?'는 논쟁은 애초부터 성립될 여지가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유교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정기적 예배나 종헌, 특히 일반 종교와는 달리 종교적 행위가 없다.

유교 내부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유교의 종교화선언'을 모색하기도 했다. 한국 유교 1600여년 역사의 특별한 사건으로 기록될 종교화선언을 한 배경에는 유교가 '공자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윤리가 바로 서고 도덕이 실현되는 사회를 이룩하는 것을 목표로 창시한 종교'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유교계 안팎에서 만만치 않은 저항과 반발이 있었지만 이렇게 유교진영 스스로 '종교로서의 유교'를 선언한 배경을 보면 아직 유교가 종교이지만 종교적 행위가 없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늦었지만 일반종교와 같이 종교성을 회복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유교의 종교성회복 노력= '유교가 종교냐, 아니냐'하는 것은 우문(愚問)일 수 있다. 대부분 유교는 동양의 종교로 알고 있고, 사회적으로 그렇게 대접받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균관 유도회는 1995년 11월 28일 임시총회를 갖고 종단의 수장격인 총전직을 신설하고 원로원과 평의원을 구성하는 등 유교를 종교로 재출범시키는 종헌 제정안을 의결했다. 법적 효력을 발휘하는 재단법인 성균관도 30일 이사회를 열어 종헌을 정식 승인했다.


종헌을 제정한 것은 성균관건립 600년만에 일어난 획기적인 일로 그동안 유교가 종교냐, 아니냐를 두고 벌이던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도였다. 유교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마련한 종헌에 따르면 종명은 '성균관 유교회'로 하고 기존의 성균관은 종무를 총괄하며, 유도회는 신도회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재단법인 성균관은 재산의 보존 관리를 맡게 된다. 총전은 성균관유교회 종단의 최고 지도자로 성균관장, 유도회장, 재단법인이사장 등으로 구성된 종무회의를 통해 이들 3단체의 종무집행에 대한 조정권을 갖는다. 조계종의 종정, 한국가톨릭의 추기경과 비교될 수 있다.


또 원로원은 교의와 전례를 해석하고 총전 및 종단 각 기관이 제기하는 현안 심의를 맡는다. 평의원은 각 기관에 대한 감사와 예산안 심의 의결, 종단내 분규나 해교행위에 대한 사찰 등을 수행한다. 종헌은 이밖에 종사를 공부자로 하고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시경 등 사서삼경을 경전으로 삼는다고 규정했다. 또한 경전이 가르치는 교의를 종지로 삼고 성직자의 서열로 총전을 수장으로 전인, 전의, 전례, 전학, 사의, 사예 등 7등급의 성직자를 둔 것도 종단체제를 갖추기 위한 포석이다.


종헌 제정과 함께 유교전례의 가장 혁신적인 것은 석전대전일의 변화. 음력 2월과 8월 삭망(음력 1일과 15일)에 지내던 분향일을 양력으로 지내기로 했다. 춘계는 공자 기일인 기원전 551년을 역산한 양력 5월 10일을, 추계는 공자탄신일(음력 8월27일)을 역시 양력으로 환산한 9월 28일로 고정했다. 성균관유교회는 성직자교육기관으로 성균관대 유교대학원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유교교육원을 확대개편하여 천안에 유교교학원을 신설할 계획도 발표했다.


유교계에서는 종교로서의 유교위상 정립을 강조하는 의견이 수차례 제시됐다. 서울대 금장태(종교학) 교수는 유교의 종교적 세계를 분석한 연구서 '유교사상과 종교문화'(서울대 출판부 발행)에서 "유교를 비종교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20세기 초 서구의 기독교적 종교관이 대거 유입되면서 나타난 것"이라며 "유교 이해의 전체적 균형을 위해서라도 종교성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 교수에 따르면 유교는 원래 경전은 물론 성리학에서도 상재(天) 태극 등의 궁극 존재(神)에 대한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실제 유교사상의 핵심인 제례 등이 천과 조상의 신을 하나의 근원속에 통일시켜 신앙화한 종교적 성격이 강한 만큼 '종교로서 유교의 사상체계'는 명확한 것이라고 말했다. 천인합일의 유교적 이념도 인본주의의 합리적인 철학체계가 아니라 유교의 가장 경건한 신앙인 것으로 새롭게 분석했다. 금교수는 결국 "유교를 서구의 종교개념으로 접근하려는 것은 무리"라며 "오랜 전통속에서 면면히 내려온 유교의 종교성을 동양문화의 틀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교의 종교화운동은 곧 유림내부의 격렬한 반대에 봉착했다. 외형적으로는 종헌 제정의 합법성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현대화를 둘러싼 상이한 관점과 유림내부의 정치적 세력관계와 맞물리면서 심한 대립으로 발전했다. 결국 몇년동안 법정공방까지 오간끝에 종교화 노력은 일단 정체상태에 빠지게 됐다. 종교화를 통한 유교의 현대화를 강하게 추진했던 최근덕 관장은 1998년 10월 23일 성균관 총회에서 2차 투표를 포기했고, 그 결과 제3의 인물이었던 최창규(崔昌圭)씨가 신임 관장으로 선출되면서 종교화운동은 빛을 잃고 말았다.


◇유교의 포괄성이 가져온 종교성 논란= 유교는 사실상 조선의 공인받은 국교였지만 종교화운동은 한말에도 있었다. 당시 유학자들의 유교 종교화운동은 단순한 개화.개혁의 동기에서가 아니라, 유림을 장악하려는 일제의 종교정책에 대한 반발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일제는 무력적 차원만이 아니라 문화, 종교적 차원에서도 조선지배를 치밀하게 전개했다. 총독부는 직접적으로 종교에 개입.통제했고, 그 결과 한국종교 대부분은 총독부의 의도에 따라 종속당했다. 그 과정에서 유교는 특히 많은 탄압과 침탈을 당했다. 식민지시대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유교를, 유사종교 차원도 아니고 '생활윤리'차원으로 분류한 총독부의 의도는 조선인의 정신적 중심을 해체하려는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인격적 절대신, 기도나 예배같은 종교의례가 약하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그 실상은 유교의 의리정신에 입각한 항일운동에 대한 무력화와 조선민중이 유교로 자신을 조직해 독자적 사유와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에 대한 차단 의도가 깔려 있었다.


1911년 일제는 조선총독부령 제73호 <경학원규정(經學院規程)>을 반포했는데, 그 내용은 성균관을 경학원으로 개칭하고, 그 성격을 사회교육기관으로 분류하는 것이었다. 이는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로부터 몇년 후 경학원 원무에 대한 부훈령은 지방 향교의 재산을 총독부 통제아래 관리하고, 문묘와 향교를 일본신사로 만들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리고 1917년 포교규칙 1조에서는 종교를 신도(神道)와 불교, 그리고 기독교로 한정하면서 유교를 완전히 종교항목에서 삭제한다.


한말 유교 종교화운동의 좌절 원인은 △민중속에 뿌리내리지 못한 한계 △성리학만을 고집하고, 형식의 과도한 고수를 포기하지 않은 보수 유림에 대한 설득의 실패 △일제의 탄압으로 인한 어려움 등을 들 수 있다. 종교화운동의 좌절은 유교의 좌절이기도 했다. 제국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 양편으로부터 유교는 조선을 망하게 한 책임자로 문책받았고, 광복이후 전쟁으로 인한 가치관의 붕괴앞에 무력했으며, 산업화와 독재의 병진 앞에 침묵했고, 관습으로서만 그 형식적 생명을 유지해왔다. 오늘날 한국유교는 선비의 의리정신도, 종교성도, 철저한 예 정신도 없이, 그저 권태롭게 부유(浮游)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교가 종교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은 이미 19세기말, 20세기초에 등장했고, 특히 이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 것은 중국에서 공교회(孔敎會)운동과 유교 국교화운동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었다. 1898년이래 공교회운동을 주도했던 캉유웨이(康有爲)는 "유교를 종교로 재조직하여 국교로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1913년에 이르러서는 유교를 국교로 채택하고자 하는 국회청원운동이 벌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이른바 '유교국교화'를 둘러싼 논쟁이 전개되면서 '유교가 과연 종교인가'하는 문제가 첨예한 논쟁거리로 부각됐다. '종교로서의 유교'를 주장한 캉유웨이는 종교를 인도(人道)와 신도(神道)가 모두 포괄되는 것으로 이해했고, 이를 전제로 유교가 종교가 아니라는 주장은 신도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즉 공자를 철학가나 정치가, 도덕가, 교육가로서 파악하는 것은 기독교적 편견에서 치우쳐 있는 것이라고 공박했다. 이에대해 국교화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던 천두슈(陳獨秀)를 포함한 일각에서는 종교의 필수요소를 신과 사후생활, 종교의식으로 규정하고, 이를 근거로 유교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결여됐기 때문에 종교가 아니며, 단지 윤리적 덕목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종교들 중에서 '종교이다, 종교가 아니다'는 논란 대상이 되는 것은 오직 유교뿐이다. 그 논란은 유교 바깥에서 뿐만 아니라, 그 내부에서도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며 지속되고 있다. 전자는 서구적 종교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유교의 독특성 때문이고, 후자는 유교체계의 포괄성 때문이다. 특히 유교의 종교성 여부에 있어서 무척 당혹스러운 문제는 현재도 그것이 유교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말 유교 종교화운동의 장애중 하나는 당대의 수구적 유학자들이었으며, 80, 90년대 재개된 종교화, 현대화 운동을 가로막고 있는 것 또한 보수 유림이다. 그것은 '유교란 무엇인가?'의 문제에서 비롯한다. 유교는 '무엇'인가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학문의 영역에 따라 다양하다. 즉 정치학, 경제학, 철학, 윤리학, 문학, 종교 등의 영역들이 모두 유교라는 이름을 각각 가질수 있는 것이다. 그 각각의 영역들이 2500여년을 지나면서 다양하게 분화, 발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교내부에서 유교의 정체성을 정치이데올로기이다, 윤리다, 종교다 하는 것이 모두 적합한 근거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교 종교화운동은 유교의 내적 위기를 종교적 신념과 표현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시도이다. 그런 점에서 유교의 종교화운동에 대한 유림의 시각이 전향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인구를 포섭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유교에 대한 정의를 종교에서 생활윤리로 바꾸려고 했던 제국주의자들의 치밀한 의도를 상기해 볼 일이다. 오늘날 현대화.세계화의 그늘에서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유교가 자체 생존을 위해서라도 종교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것인지, 아니면 생활철학으로 남을 것인지 스스로 좌표를 설정할 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종교신문 2003년 4월23일
( 2003/04/24 1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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