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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khan.co.kr/view.html?category=1&med_id=khan&artid=201210122023425&code=900308

[책과 삶]‘짐이 된다는 느낌’과 ‘좌절된 유대감’이 자살 욕구를 싹틔우는 근원


▲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
토머스 조이너 지음·김재성 옮김 | 
황소자리 | 336쪽 | 1만7000원

아버지는 성공한 남자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는 열심히 일해 30대 중반에 남부럽지 않은 돈과 명예를 얻었다. 예쁜 아내와 잘 자란 두 자식도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새벽녘에 집을 나가 목숨을 끊었다. 

집에서 반마일쯤 떨어진 공터에서,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스스로 손목을 그었다. 점점 자해의 강도를 높여 나중에는 칼로 심장을 찔렀다. 왜 그랬을까? 저자인 토머스 조이너가 대학원생 시절에 겪었던 일이다.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던 그에게 ‘아버지의 자살’은 죄책감과 더불어 학자로서의 과제를 안겨준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왜 자살했을까?’ 하지만 저자에게 기존의 탐구는 공허했다.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과 칼 메닝거의 <자식을 배반하는 인간> 같은 유명한 저작들이 세상에 나와 있었지만 명쾌한 해답을 전해주진 못했다. 결국 그는 이 문제를 스스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 2005년이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던 1990년부터 계산하자면 15년간의 연구 성과를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유전학, 신경생물학, 정신분석학, 인문사회학 등 학제 간 영역을 넘나들면서 ‘자기 살해’의 안팎을 살핀다. 특히 임상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기존의 자살론에 비해 생생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이 풍부하게 등장한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욕망인 ‘자기 보존의 본능’마저 거스르게 하는 자살 욕구는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저자는 그것을 “짐이 된다는 느낌”과 “소속감 단절”로 압축한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가 유용한 존재임을 확인받고 싶어하는데, 그것이 좌절돼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껴졌을 때,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느껴졌을 때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얘기다. 자살을 택한 이들의 유서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것이 바로 그 좌절의 흔적이다. 

“코트니, 내가 없어서 훨씬 더 행복할 프랜시스와 그 아이의 인생을 위해 기운을 내주기 바라오.”(록그룹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아내에게 남긴 유서), “나는 아주 나쁜 인간이었어요. 이제 여러분은 모두 나 없이 살 수 있게 됐어요.”(감전 자살한 10대 소녀의 유서), “이제 나는 다리까지 걸어간다. 도중에 누군가 나에게 미소를 지어준다면 나는 투신하지 않을 것이다.”(금문교에서 투신한 남자의 유서)

저자는 “짐이 되는 느낌”을 “좌절된 효능감”이라는 말로도 표현한다. 집단에서 더 이상 유용한 존재가 아니게 됐을 때 자살로 직행하는 모습은 여러 문화권에서 관찰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것은 고대부터 이어져온 관습이기도 하다. 저자는 몇몇 사례를 언급한다. 고대 스키티아에서는 너무 노쇠해 유목민 생활에 동참하고 기여할 수 없게 되면 자살하는 것을 명예로 여겼다. 고대 그리스의 케오스 섬에서는 예순이 넘은 사람이 다음 세대를 위해 독약을 마시고 자살해야 하는 법까지 있었다. 저자는 고대로부터의 의식이 현대의 자살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바라본다. 그는 2004년 말레이시아에서 한 고령의 부부가 투신 자살한 사건을 거론한다. 노부부의 유서에는 “병들어 죽기를 기다리다가는 너희들 모두에게 큰 불편만 끼칠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짐이 된다는 느낌이 자살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에밀 뒤르켐의 이타적 자살 개념과 연관”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사회집단에 긴밀히 연관될수록 자기 희생이 더 발생한다”는 뒤르켐의 이론에 반대의 뜻을 표한다. 오히려 그는 “낮은 사회적 유대감, 혹은 소속된 곳이 없다는 좌절된 유대감이야말로 자살충동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인간이 신체적 고통을 느낄 때 뇌의 전대상피질이 활성화되는 것처럼, 사회적 배제라는 고통을 받을 때도 동일한 뇌의 활동이 관찰된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이 “좌절된 소속감”은 자살하는 이들이 ‘마지막 동행’을 설명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2003년 일본에서 “스물네살의 남자와 각각 스물세살, 스무살 된 두 여자가 어느 기차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 함께 자살한 사건”을 거론하면서 “자살하는 순간조차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강렬한지를 설명한다. 그렇게 자살한 남자의 유서에는 “그냥 함께 죽고 싶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쓰여 있었다.

물론 짐이 된다는 느낌과 소속감 단절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자살을 선택하진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이 지점에서 “치명적 자해를 가할 수 있는 습득된 능력”을 강조한다. 책에 따르자면 그것은 치명적인 자살 촉매제로 작용한다. “짐이 된다는 느낌과 소속감 단절은 가족과 의료진의 중재 노력을 통해 치유되기 쉬운 반면, 치명적 자해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장기간에 걸쳐 학습될 뿐 아니라 치료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살 기도에서 여성의 3분의 1에 불과한 남성이 오히려 훨씬 높은 자살 성공률을 기록하는 것, 수술이나 마약중독을 지닌 사람이 훨씬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하는 이유, 스카이다이빙이나 격투기처럼 격렬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것, 의사에게서 자살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것” 등을 예로 들면서 “이 습득된 능력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현재 플로리다 주립대 교수인 저자는 대중적 글쓰기에도 매우 능란해 보인다. 본인의 이론과 경험뿐 아니라 자살기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육성, 문학작품과 역사적 사실들, 자살을 부추기는 인터넷 사이트 등을 인용해가며 ‘읽는 재미’를 불어넣고 있다. 하버드대학 출판부가 펴낸 학술서로서는 보기 드물게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까지 올랐던 책이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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