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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120171549&section=04


"이름 듣고 '백인' 짐작했던 이들이 피부색 본 뒤엔…"

[기고] 입양인이 소설로 띄우는 긴 편지, 브륀율프 정 티옌의 <중국남자>

박정준 스웨덴 소데르턴쉬 대학 방문연구원


오늘날 한국 출신 입양인들의 수가 해외로 입양된 이들 중 무려 1/3 이상을 차지한다. 예컨대, 스웨덴에는 한인 교민이 약 천 명 안팎인 데 반해, 한인 입양인들의 수는 약 9,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우리가 여전히 '입양아'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미 적지 않은 입양인들이 성인으로 자라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 출신 입양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데서 비롯되는 일일 테지만, 여러 선진국들에는 한국 입양인들의 모임이 다채롭게 꾸려지고 있다. 이러한 모임에서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려 하는 입양인들을 돕기도 하고, 서로 친숙하게 어울리며 한국음식을 나누어 먹거나 한국문화를 배우면서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있기도 하다.

국내입양이나 국제입양 할 것 없이 입양은 누구나 생각하듯이 숭고한 뜻을 품고 있다. 온갖 이유로 보호자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고아원을 비롯한 각종 시설에서 보모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는 것보다, 가족 형태로 양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이의 성장이나 인지 발달, 행복에 일반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입양은 국내입양에 비해서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들을 산적하게 깔고 있다. 자신과 완전히 다른 인종의 양부모에게 자라나는 성장과정, 소수인종으로 백인 다수사회에서 살며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나 일상적 인종주의, 그리고 좀 더 나이가 들어서 입양된 아동들의 경우에는 버려지는 과정에서부터, 아무런 준비 없이 하루아침에 집과 가족, 언어, 문화가 비약적으로 바뀌는 과정이 남긴 후유증 등을 장기적으로 겪으며 살아갈 수 있다. 비록 대부분의 입양인들이 비교적 잘 적응해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입양인들이 비입양인들에 비해서 우울증이나 상대적 빈곤, 자살, 이혼 및 독신생활 등을 겪는 비율이 더욱 높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보통 입양인들이 화려하게 성공하거나, 천인공노할 짓을 당해서 사건사고의 피해자가 될 때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입양인들에 대한 관심이 왜곡된 것의 일환으로, 우리들에게 입양인들은 불행한 이미지와 결부되어서 와 닿는다. 일찍이 토비아스 휘비네트(Tobias Hübinette)가 명징하게 분석한 바대로, 한국의 대중문화와 언론보도에 그려진 입양인들은 영화 <수산 브랑크의 아리랑>에 나오는 스웨덴 입양인처럼, 양부모의 지독한 학대, 한으로 점철된 삶, 자살 시도, 한국을 향한 뿌리 깊은 그리움과 애착을 집착처럼 달고 사는 가련한 인물들로 그려지고 있다.

입양 문제 개선에 일등공신인 입양인 활동가들

입양인들에 대한 인식이 한국 안팎에서 일그러진 것을 바꾸는 데 가장 헌신적인 노력을 펼친 이들은 단연코 입양인 자신들이었다. 몇 십 년 동안 여러 입양인들이 펼친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서 괄목상대한 개선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예컨대, 입양인 관련 문제점들을 제도적으로 개혁하려는 법제화 노력과 결실들, 근본적으로 국제입양을 확산시킨 구조적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는 각종 캠페인과 연구 작업들, 입양과 관련된 여러 주체들(비혼모들, 입양인들, 양부모들 등)을 엮어서 연대시키는 과정들, 그리고 토비아스 휘비네트와 제인 트렌카 정(미국), 킴 수 라스무슨, 리네 명 피터슨, 엘리 박 소운슨, 한분영 씨(덴마크 입양인들) 등의 입양인 학자들의 입양 관련 연구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결실을 만들어내며 입양에 관한 올바른 시각을 정립하도록 이끌었다.

무엇보다도 입양인들은 직접 자신들의 생각과 삶을 문학적 언어로 형상화시켜서, 타인들에 의해서야 말해진 자신들의 소수자성의 한계를 당당히 극복하고 나서고 있다. 이미 미국과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스웨덴,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지로 입양된 이들이, 자국에서 소설이나 시를 출판해서 이른바 '입양문학'이 새로운 문학 범주에 포함되도록 이끌었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현지에서 상당한 문학적 주목을 받으며 정상급 작가로 우뚝 서 있어서 고무적이다.

입양인 작가들을 억압하는 각종 기제들

입양인들은 작품을 쓸 때 예기치 않은 검열에 노출될 수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국제입양은 비교적 주목을 받는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 만큼 입양인들이 책을 출판했을 때는 비단 출판계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한껏 주목하는 경우가 다분하다. 이때 입양인 작가들이 특정한 시각을 갖도록 은근히 강요받기 쉽다.

선진국 독자들은, 만일 입양이 안 되었더라면 빈곤한 저개발국가에서 최하류층으로 방치되었을 불쌍한 아동들이 국제입양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시각을 더욱 선호한다. 성장소설의 틀을 자주 사용하는 입양인들의 자전적인 작품들에서는, 으레 성인이 된 이후 출신국가를 방문하는 내러티브가 대동소이하게 등장한다. 입양인들은 부유하고 평화로운 서구 시민사회와 질적으로 다른 한국의 무질서와 상대적 궁핍,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시스템, 그리고 친부모와의 상봉이 불협화음으로 귀결되는 줄거리를 더욱 읽고 싶어 한다. 아스트리드 트롯찌(Astrid Trotzig)의 작품 <피는 물보다 진하다>(Blod är tjockare än vatten)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짤막한 한국 체류를 통해서 자신의 한국인 정체성을 상당 부분 사장시키고 선진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대폭 강화하는 여행으로 귀결되는 마무리를 짓는다.

반면, 한국의 독자들도 입양인들에게 특정한 시각을 기대하는데, <수산 브링크의 아리랑>에 재현된 입양인의 신산스러운 삶이 대표적이다. 입양인에 대해서 선의의 마음을 품은 한국인들이 자주 보이는 입양인에 대한 끝없는 동정심과 부채감은, 이러한 대중문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입양인이 직접 말하는 해외입양

▲ 입양인 작가의 책이 전시된 서가.
그러나 최근 들어서 몇몇 입양인들의 작품에서는, 입양인으로서 극단적인 삶을 과장되게 극화해서 주목을 받는 방식을 과감하게 피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미국 입양인인 제인 트렌카 정(Jane Trenka Jeong)과 노르웨이 입양인 브륀율프 정 티옌(Brynjulf Jung Tjønn)이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처녀작을 마지막으로 후속작을 내지 않는 것과 달리, 티옌은 네 편의 장편소설을 이미 출판했으며, 제인 트렌카 정 역시 세 편의 책을 냈다.

티옌의 신작 <중국남자>(Kinamann)는 2011년 노르웨이에서 내로라하는 출판사인 카펠렌 담(Cappelen Damm)에서 출판된 이후, 문단의 주목을 한껏 받으며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올라서 있다. <중국남자>를 읽는 독자들은 단지 입양인들과 양부모들만이 아니다. 여러 독자들이 그의 소설을 감동적으로 읽으며, 다문화주의에 접어든 노르웨이에서 국제입양의 현주소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의미 있는 문학적 소통을 꾀하고 있다.

한국 입양인의 겪는 '조금 다른' 삶

왜 이 소설이 노르웨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까. 이 작품은 '예르문드 브레께'라는 지극히 노르웨이적인 이름을 지닌 30대 입양인의 고요한 호수 같은 이야기로 잔잔하게 채워져 나간다. 이 소설은 단지 내러티브에서만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정치한 플롯과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그리고 수많은 연상을 촉진시키는 시적인 문장으로 수놓아진 작품이다. 눈여겨볼 점은, 책의 어디를 펼쳐 읽어도 섬뜩한 증오범죄로 보이는 괴롭힘이나 심각한 인종차별, 노르웨이 사회에 대한 찬미와 한국에 대한 부정적 묘사, 모든 문제들을 입양과 인종주의로 돌려버리는 환원론을 찾아보기 힘들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어느 누구 못지않게 노르웨이 어를 잘 구사하며 건실한 중산층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를 처음 대면하는 이들은 예르문드라는 이름을 가진 백인남성을 만날 것을 기대(당연히 생각)했다가, 돌연 나타난 동양인의 출현으로 인해 아연실색해 한다. 또한, 그가 백인여성과 결혼했다는 것이 마치 범죄인 양 눈을 흘기는 동유럽 노동자들도 있고, 할머니의 장례식에서는 일곱 명의 손자들 중에서 유독 그만 관을 운반하는 역할에서 배제된다.

나는 입양되었다. 내 이름은 예르문드 브레께이다. 나는 29살이다. 학창시절 노르웨이 어 성적이 아주 좋았다. 내가 전화상에서 누군가와 노르웨이 어로 이야기를 나누면, 나는 노르웨이 인으로 인식된다.

왜냐하면 나는 예르문드 브레께라고 불리고, 29살 먹은 노르웨이 인으로 보이며, 노르웨이 어를 또박또박 잘 구사하고, 양질의 교육을 받았으며, 아내와 아들이 있고, 곧 둘째 아기를 낳을 것이며, 오슬로에서 테라스가 딸린 집에서 살며, 대학교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금명간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6개월간 인문대학을 떠나서 휴가를 낼 것이며, 고로 작가이고, 내 의식을 불어넣은 세 편의 작품을 이미 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평범한 노르웨이 인들보다 더욱 노르웨이 어를 잘 구사할지언정, 나는 결코 노르웨이 인으로 대접받지 않는다.

결코 내가 여느 노르웨이 인들과 똑같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거리에서 처음 본 사람들은, 당연히 예르문드 브레께라는 이름을 지닌 노르웨이 백인 남자를 만날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내가 실제 만나려는 사람이 맞는지 의아해하는 경험을 자주 한다. 때때로 그들은 당황하기도 하고, 아주 가끔 명시적으로 놀라움을 표현하거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놀랐다가 곧 진정되기도 한다. 나는 실제 예르문드 브레께로서, 내가 입양되기 전 농장을 운영하시다가 한참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로부터 이 이름을 물려받았다. 할아버지는 언젠가 중국인처럼 생긴 어린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쓰게 될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인종주의가 덜하다고 평가되는 노르웨이에서조차, 여전히 노르웨이성은 백인에 국한된다는 인식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른바 "인종 색맹(colour blind)"이라는 용어가 캠페인에서 구사될지언정, 실제 수많은 사람들은 타인들의 인종에 대해서 편견의 눈으로 응시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약자들에게 감정이입하는 입양아

예르문드는 어린 시절 가차 없이 새끼고양이들을 도살하는 양아버지를 목격한 후 공포에 빠져든다. 보호자와 집이 없어서 잔악무도하게 죽어가는 새끼고양이들의 가련한 운명은, 머나먼 노르웨이에 입양된 자신의 불안한 처지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자신도 자칫 버려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말미암아, 어린 예르문드는 습관적으로 불면증과 악몽을 치르며 의기소침한 유년기를 보낸다. 다른 입양인들의 작품과는 사뭇 다르게, 예르문드는 한국의 전통적인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정 많고 희생적인 어머니를 만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고독과 불안은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관심 커밍아웃하기

예르문드는 성장기간 내개 한국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한국팀이 출전하는 축구경기를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힘주어 응원한다. 한국의 가족을 찾고 싶은 숨겨진 바람은, 심지어 허정무 감독과 이름의 한 음절(정)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친아버지이기를 학수고대하는 것에서 증폭된다. 또한, 자신이 우유를 마시면 소화하기 힘든 것이, 아시아인들이 주로 호소하는 유당불내증과 관련돼 있다는 점을 듣게 된다.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그는 자연스레 한국인 정체성을 영원히 거부할 수 없다는 통찰에 이르게 된다.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를 둔 어엿한 중산층으로서, 세 편의 책을 낸 소설가이자 편집자로 일하는 직업인으로서, 여러 친구들이나 양부모와 원활한 관계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예르문드는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얼핏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 삶은 서서히 문제의식을 돌출시키며 다시금 불면을 몰고 온다. 자신이 1980년에 왜 버려져서 노르웨이로 입양되었는지, 자신이 행여나 성폭행의 결과로 태어난 운명은 아닌지, 친모가 자신의 얼굴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지를 알고 싶어진 것이다. 난생 처음 자신과 닮은 아들 씨규르를 보면서, 언젠가 씨규르가 출생배경에 대해서 궁금해 할 때 적절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책을 전혀 좋아하지도 구매하지도 않는 농민의 아들로 자라난 그가, 유독 글쓰기를 즐기며 수많은 책들을 소장하는 취미 역시 출생배경에서 유래되었다는 생각에 이르며, 그는 마침내 한국행을 처음으로 감행하게 된다.

인습적인 한국방문과 다른 입양인의 한국체류

한국에 방문해서 자신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입양인들과 사뭇 다르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수동적인 방식으로 한국체류기간을 보낸다. 한국에 온 것을 일면 후회하기도 하며, 그는 호텔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낸다. 정작 한국관광을 하면서 한국음식을 맛있게 먹기보다, 예르문드는 맥도널드에서 홀로 멍하게 햄버거를 먹으며 무엇을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한다. 마음속에서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거나 친부모와 상봉할 경우, 그가 이제껏 건실하게 쌓아올린 것들이 일순간에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정성껏 길러준 양부모를 생각해서라도, 한국에서 가족을 찾는 것이 쉽사리 용인되지 않는다.

여행이 허무하게 끝나갈 즈음, 그는 맥도널드에서 분주히 일하는 또래 점원을 바라보며 '상상'에 빠진다. 그는 상상 속에서, 그 점원을 입양되지 않았다면 자신이 살았을 분신으로 삼으며 '형'이라고 호칭한다. '형'은 고아로서 여러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지내다가 청소년이 되기 전부터 혼자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사회의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강인하게 살아간다. 가족 없이 지내며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한 지라, 좀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일을 찾을 여력 없이 패스트푸드점에서 힘겹게 일하며 가정을 꾸린다. '형'은 비록 탈선의 길이나 사회 부적응자로 전락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잠재능력을 펼칠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채, 고생으로 점철된 삶을 살고 있다. '형'은 어릴 적 해외로 입양되었기를 바라면서도, 적어도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안다는 이율배반적인 장점을 갖고 있다. 형은 일종의 치유로써 점원을 그만두고 소설쓰기에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상상으로 만나는 한국에서의 삶

예르문드는 자신이 입양되지 않았을 경우를 꿈처럼 경험한 후, 두 세계의 다른 삶들을 모조리 끌어안는다. 한국에서 보냈으면 살았을 자신의 또 다른 삶에 대한 연민 어린 애정은, '형'의 고단한 삶을 소설로 형상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며 노르웨이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쓰게 될 소설은 적게는 형이 고독하게 견뎌야 했던 삶에 대한 처연한 문학적 헌사이자, 크게는 비슷한 삶을 살아야 했던 수많은 한국의 고아들을 위한 바침이기도 하다.

<중국남자>는 브륀율프가 한국인들에게 띄우는 기나긴 편지

브륀율프 정 티옌(한국명: 정서수)을 노르웨이 인들은 브륀율프 융 티옌이라고 부른다. 가운데 이름이 독일에서 건너온 조상과 관련돼 있다고 지레 짐작하며 독일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한국 성을 줄곧 사용하고 있다. 대단히 노르웨이적인 이름 사이에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조차 힘든 한국성을 쓴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의 이름은 한국에서 입양된 노르웨이 시민으로서, 거리에 나서면 중국 출신의 유학생이나 여행객으로 취급을 받기도 하는, 그의 범상치 않은 정체성과 삶을 압축적으로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중국남자>를 집필하기 위해 셀 수도 없이 많은 한국 관련 자료들을 샅샅이 뒤지며 공부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서 이 작품의 2부에 등장하는 한국의 사회상에 대한 묘사는, 한국인들이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티옌은 자신이 "노르웨이 인이지만, 한국인의 육체와 한국 부모,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사람"이라고 받아들인다. 입양되어서 가끔 크고 작은 문제를 앓았다는 것을 트라우마나 결점으로 보는 대신에, 그는 상처를 문학으로 명징하게 승화했을 뿐만 아니라, 아파봤던 기억에 힘입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섬세하게 연민을 품게 되었다.

두 아이들의 양육을 아내와 공평하게 나누어서 하는 아빠이자, 주중에는 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 그는 분주한 시간을 쪼개서 후속작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는 금명간 삼 십 년 넘게 가보지 못했던 한국 땅을 밟기 위해 서서히 준비를 하고 있기도 하다. 자신의 작품 <중국남자>가 아이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사연 많은 엄마들에게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서 읽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기도 하다.

▲ 브륀율프 정 티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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