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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巨匠]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




"종교는 문화다" 정치의 종교화를 우려하는
반권력주의자


“우리 시대는 정치가 종교화돼 스스로 절대적 자리에
서려는 게 문제죠. 사람이 왜 오늘날에도 정치에는 맹목적이
되는지, 또 정치가 왜 가장 비합리적인지의 문제는 곧
종교학의 근본 문제로 환원됩니다.” 대선이라는 국가적
이벤트를 갓 치러낸 지금의 한국처럼 고도로 정치화돼 있는
곳에서는 남다른 울림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지적이다.

종교학자 정진홍(65)에게 2002년 12월이 주는 의미는 여늬
세밑 같지 않다. 12월 19일 치러진 대선에 참가하기 위해 아침
6시 30분에 이촌동 투표소로 향했다. 한강변 동부 이촌동에
살고 있는 덕에 6년 전부터 4시 30분이면 일어나 잠수교에서
성산대교까지 변속 기어 자전거로 달리는 일상에 특별한
일이 하나 추가된 셈이었다.

투표 후 부인과 들른 찻집에서도 화제는 단연 투표였다.
누굴 찍었느냐는 질문에 스님을 찍었다는 답이 들렸다. “그래도
종교인은 믿을 만하지 않느냐”는 말과 함께 똑같은 질문이
되돌아 갔다. 그러자 “7번을 찍었다”는 엉뚱한 답이 돌아
갔다. 말해주기 싫다는 흉중이 그대로 읽혔다. 그렇듯
언어로 육화(肉化)될 수 없는 것,



은유로만 남은 이시대의 종교

 

2003년 2월 정년 퇴임에 앞서 12월 10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고별 강연을 펼쳤다. 정진홍 이전에는 종교학이란 일반에게
‘당신네의 소일 거리’에 가까웠다. 믿는 사람들의, 그것도
교육 받은 자들의 관심사이기 십상이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종교 연구자에게는 취직 자리가 점점
좁아 드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았다. 고대 언어에서 첨단
인문ㆍ사회 이론까지, 공부는 엄청나게 많이 하지만 취직
자리는 갈수록 좁아 드는 종교학이란 학문이 맞고 있는
난국이기도 하다. 대형 서점에 가 보면 종교학 관련 서적은
인문학 분야가 아니라 종교 도서 서가에 꽂혀 있는 상황은
종교학에 대한 오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요즘은 여러 분야의 학문이 종교학의 발언에
경청하는 분위기예요.” 건축학은 갖가지 상징물을 건축물
내에 배치하고 그 자리를 성화(聖化)하는 작업에서 종교학의
도움을 비는 경우가 증가일로다.

‘정권=도그마, 구원=이념적 출구, 사제=정치인, 순교자=반체제
인사’ 등의 비유로 정치적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정치학이
종교학의 도움을 빈 예이다. 알맹이는 가고 메타포로만 남은
이 시대 종교의 한 모습이다.

국내 종교학이 정치적 현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이후. 그것은 군사 정권에 왜 종교가 참여하는가에 대한
의식 있는 종교학자들의 학문적 탐구였다. 정치와 종교의
문제와 관련, 그는 ‘정치의 종교화’ 양상을 우려했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가장 특징적 갈등 양상은 세대
갈등이죠. 남북 갈등이나 동서 갈등은 과거죠.” 인터넷
세대 대 비인터넷 세대의 갈등 양상은 이번 선거에서 확인된
가장 두드러진 변화 양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선거
양상을 통해 우리 시대가 이미지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는
조짐을 강하게 확인했다. 그는 “언어의 세대가 개념적
명료성과 논리적 일관성을 추구했다면 현재의 이미지
세대는 이미지가 남겨준 잔상 혹은 상상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이미지를 조작하는 자들이 권력화되는 새로운
지배 양상으로 귀결된다. 즉 두 세대 간에 ‘문화적 단층’이
형성돼, 이미지를 구사할 줄 아는 자들이 이미지에 대해
익숙치 못한 세대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최초로 정치 권력화한 것이 이번 선거”라고
그는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 투표 이래, ‘체육관 투표’
빼놓고 그는 역대 대선은 모두 참가해 온 그가 이번 대선을
보는 소회는 그래서 남다르다.

그는 반권력주의자다. 위에서 아래로의 지배 규범인
보수주의든, 아래에서 위로의 지배 규범인 진보주의든 모든
권력은 문제를 갖고 있다는 시각이다. 성숙된 시민
의식이라면 둘 모두를 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DJ의 등장을 선의 실현인 양 환호했던 최근 경험을
예로 들며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를 강조했다. “DJ
정권에서 경험한 것이 바로 권력의 속성 아니었나요?” 그를
통해 국민은 DJ도 부패했다는 사실에 분개할 것만 아니라,
국민이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는 데 대한 깊은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낙관론적 현실주의자”

 

그는 세 종류의 인간에 대해 말했다. 터널을 앞두고
인간들이 보이는 반응을 기준으로 나눈 분류다. 시커먼 터널
속에 뭣이 있는지 겁나 못 들어가는 자는 비관론자다.
둘째는 거침없이 뚫고 나오는 낙관론자다. 셋째는 일단
나왔다가 들어가 확인하기를 반복하는 자다. 그가 말하는 바
현실주의자다. 그렇다면 자신은? “나는 낙관론적
리얼리스트죠.”

우리 사회가 정진홍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쉽지 않은 세상살이에서 그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세상과 항상 긴밀하게 접촉해 온 상아탑의
양심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학생들과의 교류와 활발한
저술 활동 이외에도 신문 칼럼 등을 통해 당대 이슈의
핵심을 유려한 문체로 풀어 오고 있다.

그는 “현재의 성경이란 역사적 집적물”이라며 “일부
성직자들이 극렬 반대하겠지만, 논어 혹은 전태일 자서전을
성경에 끼워넣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종교를
만들어 온 것은 그러한 ‘종교적 비전’들”이라며 “종교학이
가르쳐 주는 것은 종교도 망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붉은 악마 현상은 물론, SOFA 개정 문제까지 자체 언어로
해석하려는 노력을 그는 종교학이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뿌리깊은 나무’는 창간에서 폐간까지, 이후 ‘샘이
깊은 물’까지 접하기 쉽지 않은 종교적 칼럼으로 세인들의
시선을 잡아 주었다. 긴 세월 동안 그만은 교체 없이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유려한 필력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는
우리 사회의 복잡다단한 현상들을 종교의 관점에서 사심
없이 해석해 준 명료함 때문이었다.


조계사 분규 소식을 듣고는 바로 다음날 달려가 살벌한
현장 상황을 자신의 눈으로 전한 것 등은 그의 글에 왜
시의성이 두드러져 보이는가에 대한 하나의 예화이다.

월드컵 때 골을 성공시킨 선수들이 뜨거운 기도를 올리는
것은 특정 종교의 선교 행위가 아니라, 패배와 승리 앞에
직면해 사는 운동선수 특유의 인간적 모습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칼럼을 써 공감을 표하는 독자들의 전화를 받느라
그의 전화통에 불이 날 정도였다.

12년 전 상처한 그는 3년 뒤 시인 이사라(49ㆍ서울 산업대
교수)와 결혼해 변함없이 새벽 한강을 함께 호흡해 오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 인구문제 연구소에 재직중인 사회학
박사 창영(36)을 큰아들로, 서양 종교 음악의 고향인 중세
이탈리아 음악을 연구하는 경영(34)을 작은 아들로 두고 있다.

올해는 12월 29일 자택에 후학들을 초청, 저녁 식사로
망년회를 대신할 계획이다. 맥주 두 잔 이상은 치사량에
가까운 주량이지만, 그의 조촐한 잔칫상에는 인간, 자연,
우주가 도란도란 이야기될 것이다.

그것은 그가 사회의 어른으로서 맺고 있는 많은 관계들 중
하나다. 그는 여전히 발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현재
당대출판사에서 교정 작업중인 ‘경험과 기억(부제:종교문화의
틈새 읽기)’은 종교는 종교만이 아니라 문화임을 부단하게
강조해 온 그가 한국 사회에 보내는 긴 편지이다.



종교적 관점으로 본 정치ㆍ사회

 

시사 칼럼집 ‘대통령과 메시아’ 등, 시집 ‘마당에는
때로 은빛꽃이 핀다’ (회갑기념) 등, 여행기 ‘신을 찾아
인간을 찾아’ 등 그가 띄워 올린 저서들은 각박한 삶을
비추는 등불이었다. 특히 ‘신을 찾아…’는 타히티,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종교의 기원이 여러
모습으로 남아 있는 곳들을 방학을 이용해 발품을 판 현장
기록의 모범이다.

고별 강연은 문자 그대로 그의 마지막 강연이었다. 앞으로
그는 캠퍼스와는 연을 끊는다. “내 의무는 끝났으니, 이제
후배와 제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들이 나보다 공부도 더 많이 하고 나보다 현실 문제에
더 밀착해 있어 현대어로 문제를 설명하는 능력은 나보다
낫다”며 자신을 짐짓 뒤로 밀쳤다.

그러나 거기에는 인문학, 특히 종교학이 위기에 처한 21세기에
대선배의 안타까움이 그대로 겹쳐졌다.

그는 새삼 강조했다. “인테넷 등을 통한 이미지 창출이
정권 창출로까지 이어지는 때에 왔지만, 권력은 여전히
감시받고 제어돼야 한다” 여기에는 권력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신념이 뒷받침돼 있다. 그는 경고했다.

“독선과 배타성을 두 축으로 하는 권력은 그 속성상
필연적으로 부패하게 돼 있습니다. 권력은 영원히 그
딜레마를 안고 갈 것입니다.” 이번 월드컵과 대선을 통해
만천하에 자신을 과시한 인터넷 세대라는 또 다른 권력이 그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지성’을 스스로
배양시켜나가야 할 것이라는 충고다.

사단법인 ‘한국종교문화연구소’(소장 정신문화연구소
강돈구 교수)의 이사장으로 있다. ‘종교 문화 비평’에
게재될 매월 세미나를 집전하는 것은 물론, 박사학위 논문
심사 등 퇴임후에도 후학들과 부대끼며 살고 있다. ‘종교의
의미’ 등 학술 서적에, ‘키워드 50개로 본 종교학’ 등
출판사에서 요청해 둔 일감에 노장의 노년은 분주하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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