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8866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1989년 3월25일 베이징에서 문익환 목사와 우리 일행이 주중 북한대사 주창준씨의 안내로 대기중인 특별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 오전 10시께였다. 도쿄 한국대사관은 물론 총련 중앙본부조차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은밀히 행동을 한 덕분에 무사히 평양으로 떠나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내에 오르자 승무원이 다가오더니 지금 순안비행장에서 내외기자단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으니 도착성명을 준비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베이징에서 평양까지 비행시간은 한 시간 반, 그동안에 문안을 작성해야 하는데, 그 작업은 물론 문 목사의 비서역인 내 몫이었다. 문 목사는 무엇 때문에 평양으로 향하고 있는가. 민족의 질곡인 분단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자 각일각(刻一刻) 골고다로 다가서고 있는 그가 아닌가!
붓을 들고 보니 같은 길을 걷다가 희생당하신 김구 선생, 장준하 선생의 모습이 눈에 가물거렸다. 그리고 일제에 꼬리를 떨던 기회주의자들을 꾸짖는 김구 선생의 말씀, 분단을 강요하는 강대국 앞에 무릎을 꿇고 권력 유지에만 급급한 사대주의자들을 규탄하는 장준하 선생의 목소리가 귓전으로 들려오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고통의 근원이 분단에 있음을 말하고, ‘나 문익환은 남쪽 민중을 대표해 어떻게 하면 하루속히 삼팔선을 걷어치울 수 있겠나. 김일성 주석을 만나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자 평양으로 가는 것’이라고 이번 방문여행의 뜻을 밝히고 나서 ‘모든 통일은 선이다’라는 말로 도착성명을 마무리했다.

문 목사가 성명서 초안을 읽고서 추고할 겨를도 없이 비행기는 착륙했고, 그는 한 자 수정 없이 그 도착성명을 낭독했다.

훗날 쇠고랑을 차고 법정에 선 문 목사를 괴롭힌 대목이 바로 ‘모든 통일은 선이다’라는 마지막 문구였는데, 남한 당국은 그 문구를 꼬투리 잡아 ‘그렇다면 적색통일도 선인가’라고 문 목사를 윽박질렀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그 문장을 기초한 나, 정경모는 ‘모든 통일은 선인가? 그렇다 우리에게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고 갈파한 장준하 선생의 말씀(<씨알의 소리> 1972년 9월호)을 그대로 인용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기묘하게도 평양 방문 다음날 일요일은 부활주일이었는데, 부활주일 예배에 참석하느라 봉수교회를 꽉 메운 청중들 앞에서 문 목사는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굡箚?사자후를 토하여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했다. 나도 울었다. 통일의 날이 올 때까지는 민족은 무덤에서 잠자고 있는 시체일 뿐이라는 뜻이 아닌가.

죽음을 무릅쓰고 삼팔선을 건너시면서 ‘오늘 내가 걷는 눈 덮인 벌판길(踏雪野中去),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니(遂作後人程)’라고 읊으신 김구 선생, ‘모든 통일은 선’이라고 거침없이 외치신 장준하 선생, 그리고 또 평양 봉수교회에서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라고 울부짖은 문익환 목사, 이들 세 분의 선각자는 상징적으로 말해 상해임시정부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분들이지만, 그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함으로써 정통성을 지니고 있노라고 주장하는 대한민국 권력에 의해 박해를 받은 사람들이 아닌가.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저질러진 역사적 오류를 씻어내고 이들 세 분의 정신을 앙양함으로써 국가 정통성을 굳혀 나갈 처지에 있으면서도, 오늘의 남북관계를 보면 오히려 그러한 실천으로부터 역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정경모 재일 언론인
?
  • ?
    Charley C. Park 2009.04.03 23:06
    진정한 애국애족 인사들은 암살당하거나 박해 받는 현실에서 아직도 진정한 해방과 통일이 멀게만 느껴짐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Title
  1. 12
    Jun 2016
    20:59

    글쓰기 및 편집 방법

    By다중이 Reply2 Views48676 file
    read more
  2. 09
    Apr 2003
    14:07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한겨레

    By운영자 Reply0 Views8355
    Read More
  3. 31
    Mar 2012
    05:03

    마야 문명

    By플로렌스 Reply0 Views13393
    Read More
  4. 21
    Apr 2003
    21:56

    마음을 여는 32가지 방법~

    ByJasper~ Reply0 Views8001
    Read More
  5. 30
    Oct 2012
    09:10

    마이클 샌델 초청토론 공생발전과 정의

    By플로렌스 Reply0 Views14107
    Read More
  6. 25
    Jun 2011
    02:07

    마인드 프로그램

    By플로렌스 Reply2 Views19061
    Read More
  7. 21
    Nov 2010
    04:32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 영문판

    Bych Reply1 Views44926
    Read More
  8. 20
    Oct 2007
    19:27

    만세반석 열리니

    By로즈마리 Reply0 Views37213
    Read More
  9. 01
    Nov 2010
    01:25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를 읽고.

    By뚜버기 Reply2 Views9562
    Read More
  10. 22
    Feb 2016
    21:14

    많은 분들과의 대화와 소통의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By나더미 Reply0 Views246
    Read More
  11. 27
    Jan 2012
    19:24

    맞춰 보세요.

    By먼동 Reply7 Views9094
    Read More
  12. 28
    Jan 2012
    20:01

    맞춰보세요 2

    By먼동 Reply10 Views18459
    Read More
  13. 06
    Apr 2016
    07:19

    매주 수요일 목요일 남편들이 집에서 지켜야할 행동 수칙

    By나더미 Reply2 Views362
    Read More
  14. 04
    Aug 2004
    20:43

    매주 수요일마다 다운타운에서 일어나는일..

    By아름다운청년 Reply0 Views8405
    Read More
  15. 14
    Nov 2003
    00:16

    맥도날드, 너 정말 무섭구나! - 오마이

    By운영자 Reply0 Views8444
    Read More
  16. 26
    Apr 2016
    11:45

    메리언 앤더슨 그리고 숭고미

    By플로렌스 Reply2 Views535
    Read More
  17. 18
    Mar 2004
    01:04

    메일 열기만 해도 감염..웜 급속확산(상보)

    By운영자 Reply0 Views8922
    Read More
  18. 18
    Feb 2009
    00:32

    모든 이를 위한 삶 추기경 김수환

    By마틴 Reply0 Views9335
    Read More
  19. 31
    Jul 2012
    13:22

    목숨걸고 편식하다

    By플로렌스 Reply1 Views8957
    Read More
  20. 17
    Oct 2016
    20:02

    몰입에서 사색으로

    By키에르 Reply0 Views846
    Read More
  21. 15
    Mar 2012
    06:54

    무시하지 맙시다

    By플로렌스 Reply1 Views13152
    Read More
  22. 14
    Mar 2006
    16:27

    무엇이 이단인가?

    By좋은글 Reply0 Views9317
    Read More
  23. 02
    Apr 2009
    07:41

    문 목사 방북 20돌을 회고하며 / 정경모

    ByQuote Reply1 Views8866
    Read More
  24. 24
    Mar 2016
    06:20

    문동환 목사님, 시인 윤동주님에 관하여 한겨레 신문과 인터뷰

    By플로렌스 Reply4 Views834
    Read More
  25. 24
    Sep 2009
    00:32

    문동환 박사 자서전 출판 축하모임

    By마틴 Reply1 Views8788
    Read More
  26. 15
    Apr 2003
    18:16

    문성근 초청강연: 영화에서 정치까지

    By운영자 Reply0 Views10885
    Read More
  27. 26
    Dec 2003
    03:14

    문성근의 [인물현대사]-KBS

    By운영자 Reply0 Views8596
    Read More
  28. 12
    Jan 2005
    18:20

    문의드립니다..^^

    By김만진 Reply0 Views8950
    Read More
  29. 21
    Jun 2003
    14:23

    문익환 목사가 사랑한 오페라 가수 - 오마이뉴스

    By운영자 Reply0 Views10121
    Read More
  30. 02
    Apr 2009
    07:45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 20주년의 큰 뜻을 길이면서 / D.J.

    ByQuote Reply1 Views8100
    Read More
  31. 22
    May 2003
    12:02

    문익환과 문호근의 편지 그리고 [수천] - 오마이뉴스

    By운영자 Reply0 Views1193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20 Next
/ 20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