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860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클릭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라도 좋고 남성이라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 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하게 맞장구쳐 주고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나라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자산이 되었을걸.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는

않고, 내친구도 성현같아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리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눈 속 참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제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많은 아름답게 지니니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 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구름을

바라보다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은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은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보다 품위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 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곱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이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

Title
  1. 글쓰기 및 편집 방법

  2. No Image 06May
    by 운영자
    2003/05/06 by 운영자
    Views 9070 

    미국 매카시즘 `마녀사냥` 확인- 한겨레

  3. No Image 03May
    by 운영자
    2003/05/03 by 운영자
    Views 8120 

    보수언론과 지식인의 글쓰기

  4. No Image 23Apr
    by 운영자
    2003/04/23 by 운영자
    Views 11718 

    학문의 즐거움-한겨레 유학생한마당 퍼온글

  5. No Image 22Apr
    by 운영자
    2003/04/22 by 운영자
    Views 8141 

    평화의 근원적 의미를 생각한다 -문화망명지

  6. No Image 22Apr
    by 운영자
    2003/04/22 by 운영자
    Views 11197 

    화염과 소화분말에 얼룩진 4.19 t-김정일 타도! 미 합중국 만세-오마이뉴스

  7. No Image 21Apr
    by Jasper~
    2003/04/21 by Jasper~
    Views 8001 

    마음을 여는 32가지 방법~

  8. No Image 21Apr
    by 운영자
    2003/04/21 by 운영자
    Views 54903 

    80년전 영국의 `실패`를 되풀이해선미국의 중동정책 잘될 가능성 없다` 오마이뉴스

  9. No Image 19Apr
    by Jasper~
    2003/04/19 by Jasper~
    Views 8302 

    부활절 상징...

  10. No Image 18Apr
    by 페다고지
    2003/04/18 by 페다고지
    Views 9165 

    또 하나의 각도

  11. No Image 18Apr
    by 운영자
    2003/04/18 by 운영자
    Views 8244 

    제국의 품격과 미국의 운명 - 한겨레

  12. No Image 16Apr
    by 운영자
    2003/04/16 by 운영자
    Views 8758 

    내 억울함 교육부·교육청도 외면- 오마이뉴스

  13. No Image 16Apr
    by 운영자
    2003/04/16 by 운영자
    Views 12859 

    Scientific Jargon, translation 2

  14. No Image 16Apr
    by 운영자
    2003/04/16 by 운영자
    Views 8529 

    학자들의 은어

  15. No Image 15Apr
    by 운영자
    2003/04/15 by 운영자
    Views 10885 

    문성근 초청강연: 영화에서 정치까지

  16. No Image 15Apr
    by 클루
    2003/04/15 by 클루
    Views 8283 

    It`s A Beautiful World (플래쉬)

  17. No Image 15Apr
    by 운영자
    2003/04/15 by 운영자
    Views 8241 

    ChomskyArchive: Recent updates...

  18. No Image 15Apr
    by 운영자
    2003/04/15 by 운영자
    Views 8667 

    Noam Chomsky Interviewed -영문판

  19. No Image 15Apr
    by 운영자
    2003/04/15 by 운영자
    Views 8813 

    노엄 촘스키 `미국은 세계를 무력으로 지배할 것` -프레시안

  20. No Image 10Apr
    by 운영자
    2003/04/10 by 운영자
    Views 9221 

    석유, 마시고 싶은 만큼 마셔라`

  21. No Image 09Apr
    by 운영자
    2003/04/09 by 운영자
    Views 8355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한겨레

  22. No Image 08Apr
    by 운영자
    2003/04/08 by 운영자
    Views 8820 

    움베르토 에코의 평론: 감정과 이성

  23. No Image 07Apr
    by Jasper~
    2003/04/07 by Jasper~
    Views 8483 

    `꽃`의 의미...

  24. No Image 05Apr
    by 운영자
    2003/04/05 by 운영자
    Views 9038 

    노무현과 완전한 나라 -한겨레

  25. No Image 02Apr
    by 운영자
    2003/04/02 by 운영자
    Views 12358 

    이라크전, 2차대전후 최대위기 부를 수도` -프레시안

  26. No Image 30Mar
    by 운영자
    2003/03/30 by 운영자
    Views 8505 

    파병 찬반을 떠나 생각해야할 것 - 한겨레

  27. No Image 14Mar
    by 운영자
    2003/03/14 by 운영자
    Views 8708 

    스피노자의 신, 스피노자적 재발견-한겨레

  28. No Image 13Mar
    by 운영자
    2003/03/13 by 운영자
    Views 9588 

    노엄 촘스키 `제국과의 대결` 강연 링크 [필독)

  29. No Image 13Mar
    by 클루
    2003/03/13 by 클루
    Views 8601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플래쉬)

  30. No Image 12Mar
    by 운영자
    2003/03/12 by 운영자
    Views 8319 

    부시는 `바보`가 아니다- 오마이뉴스

  31. No Image 11Mar
    by 운영자
    2003/03/11 by 운영자
    Views 9588 

    [발의] 귀족검사 권력보장을 위한 특별조치법-딴지일보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Next
/ 20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