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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17 16:04

은유로서의 질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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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질병




지은이 소개

1933년 1월 28일 뉴욕에서 태어난 수전 손택 Susan Sontag은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최고의 에세이 작가이자 뛰어난 소설가이며 예술평론가다. 1966년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다"라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담은 평론모음집[해석에 반대한다]를 내놓아 서구 미학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의 구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을 재개 발랄하게 비판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로 현재까지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문화비평가, 사회운동가 등으로 끊임없이 변신해 나아가며 새로운 문화의 스타일과 감수성의 도래를 알리는 데 주력했던 손택은 오늘날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숱한 별명과 명성을 얻었다.
'예술에 온 정신이 팔린 심미가'이자 '열렬한 실천가'로 불리기를 더 바랬던 손택은 자신의 바람에 걸맞게 미국 펜클럽 회장(1987-1989)을 맡을 당시인 1988년에는 서울을 방문해 한국 정부에 구속문인의 석방을 촉구한 바 있으며, 1993년에는 사라예보 내전에 대한 전 세게인의 관심을 촉구하고자 전쟁 중인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가다리며]를 공연한 바 있다. 최근에는 9·11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해 미국 내에서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손택의 저서로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비평부문 수상작 [사진에 관하여](1977)와 <전미도서상> 소설부문 수상작 [미국에서](1999)를 비롯해 4권의 평론모음집, 6권의 소설, 3권의 에세이, 4편의 영화각본, 1편의 희곡 등이 있으며, 그녀의 책들은 현재 전 세게26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 수전 손택의 공식 홈페이지 http://www.susansontag.com

옮긴이 소개

이재원은 중앙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급진적 문화이론에 관심을 두고,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와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의 이론적 친화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도서출판 이후>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함께 지은 책으로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1, 2>(이후 1997~1998), <대학문화의 생성과 탈주>(문화과학사 1998) 등이 있으며, 함께 옮긴 책으로 <하이퍼텍스트 2.0: 현대 비평이론과 테크놀로지의 수렴>(문화과학사 2001), <신좌파의 상상력: 전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년>(이후 1999), <하위문화는 저항하는가?>(문화과학사 1998) 등이 있다.

차례

1 은유로서의 질병 11
Illness as Metaphor

2 에이즈와 그 은유 125
AIDS and the Metaphors

부 록 수전 손택과의 대화: 에이즈라는 은유 · 케니 프라이즈 241

옮긴이 해설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기 - 이재원 254

더 읽어볼 만한 책들 273
인명·기타 용어 찾아보기 284
작품 찾아보기 289

편집자의 말

질병을 신비화하는 모든 언어를 쫓아내려는 수전 손택의 노력은 '투명성 Transparency'을 찾으려는 자신의 노력과 맞닿아 있다.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손택은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에게 투명성을 요구한 적이 있다. 손택에게 투명성이란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술 자체 그리고 예술에서 유추해낼 수 있는 우리의 실제 경험을 우리가 훨씬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투명성이다. 따라서 투명성이란 무절제와 걷잡을 수 없는 혼잡함, 과잉생산과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물질적 풍요를 낳은 현대 사회에서 파괴되어버린 인간적 감수성을 회복케 해주는 그 무엇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듯 예술 작품과 비평에서 투명성을 추구했던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를 통해 투명성이라는 개념을 좀더 발전시켰다. 손택은 이 책에서 이미지가 우리의 실제 경험이나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사진의 이미지들은 우리가 직접 체험한 것과 그 체험에서 느낀 감정들을 좀더 추상적인 형태로 만들고, 그런 느낌들을 현실 생활에서 대부분 지각할 수 없게 만든다." 즉, 이제 투명성은 현실을 추상화해 현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로 발전된 것이다. 요컨대 <해석에 반대한다>의 투명성이 우리의 잃어버린 감수성과 연관된 개념이라면, <사진에 관하여>의 투명성은 현실 인식을 가로막는 이미지와 연관된 개념인 것이다.
질병을 둘러싼 은유와 이미지를 쫓아내려는 <은유로서의 질병>은 이처럼 투명성을 찾으려는 노력의 '중간 결산'에 해당하는 저작이다. <은유로서의 질병>이 두 번이나 암을 극복했던 수전 손택 자신의 단순한 투병기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손택 자신도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은유로서의 질병>은 "극히 논쟁적인 전략을 활용해 돈키호테 마냥 지금의 이 세계, 이 신체에 가해진 ‘해석에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책이다. 즉,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뭔가 추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은유의 함정"을 폭로함으로써 질병은 질병일 뿐이며, 질병은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책인 것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현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가리는 이미지를 걷어치워야 한다는 "투명성"의 추구는 그런 이미지를 부추긴 사회를 향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은유로서의 질병>이 최종적으로 건네주는 선물이 바로 이런 비판 정신이다.
<해석에 반대한다>, <사진에 관하여>,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일관되게 투명성이라는 개념을 추구하며 발전시켜온 수전 손택의 노력은 곧 발간될 예정인 <타자의 고통에 관하여>(2003)에서 집대성될 전망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가 차지하고 있는 역할을 분석할 것이라고 예고된 이 책의 내용은 <은유로서의 질병>이 열어놓은 이미지 비판의 결산이 될 것이다.
수전 손택은 자신의 이미지 비판을 둘러싼 세인들의 의혹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물론, 사람들은 은유 없이 사고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제하고 피하려 애써야 할 은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모든 사고는 해석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석에 '반대한다'는 것이 언제나 옳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디어 리뷰

한국일보

질병에는 공포를 자극하는 각종 은유가 들러붙어 있다. '역병'은 악, 천벌을 의미하는 말로 오랫동안 사용됐고 아돌프 히틀러는 "유태인이 국민들 사이에 인종적 폐결핵을 낳는다"며 타민족에 대한 증오를 부추겼다. 에이즈는 가장 확실한 욕설이다. 프랑스 극우정치인 르펜은 '에이즈 같은 sidatique'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정적을 물리치는 데 톡톡히 재미를 봤으며 반자유주의 논객 루이 포웰은 86년, 고등교육 개혁안에 항의해 파업을 벌이던 프랑스 국립중등학교 학생들을 "정신적 에이즈에 걸렸다"는 말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처럼 질병은 저주이며 신이 내린 심판과 같은 이미지를 담고 있다.
<해석에 반대한다>, <사진에 관하여> 등 일련의 저서를 통해 일관되게 '투명성' 개념을 주장해 온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을 통해 질병을 둘러싼 불필요한 은유와 이미지에 대해 지적한다. 실상 질병은 치료해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진정 환자를 괴롭히는 것은 신체적 고통보다 사회가 자신의 고통을 비하하는 데서 오는 아픔이다. 손택은 질병을 은유로 사용하면서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가는 편집증적 사회를 비판하고 질병을 질병 자체로 투명하게 봐 줄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손택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골드스미스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등 총 77편에 달하는 소설, 희곡, 에세이, 각종 의학서적 등을 훑어 질병과 관련한 불합리한 은유를 골라낸다. 때문에 이 책은 딱딱한 논설이 아니라 문학적 에세이에 가깝다. 어느 평자의 말처럼 스스로 유방암 진단을 받고 치료받은 손택이 "질병으로 고통 받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던지는 공감 어린 권고"이다.
[2003. 1. 25]

동아일보

한때 프랑스 지성계를 주도하였던 사르트르의 자전적 소설 <말 Les mots>은 언어에 대한 평범한 생각을 뒤집어 놓는다. 두 살에 아버지를 잃고 외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란 어린 사르트르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가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확인하는 수단으로써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어린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말로 정확한 사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말을 찾아내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생각을 빌려서 정리하자면, 언어란 어떤 현실 사물을 명시적으로 지칭하는 기호라는 우리의 평범한 생각과 달리, 언어는 본래부터 타자에 대한 욕망의 표현이며 그것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질병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지만 제목에서도 암시되듯이 질병에 대한 의학적 설명이나 고찰에 관심을 두고 있는 책이 아니다. 사람들은 여러 질병들, 예를 들면 결핵, 암, 에이즈 같은 질병들에 대해 발병의 의학적 원인과 별도로 병명 자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그런 선입견이 바로 질병의 은유인 것이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에서 사용되는 은유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타난 고전적 의미를 계승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은유란 어떤 것을 그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나타낸 것이다. 예컨대 장티푸스는 의학적으로 볼 때 특정 병원균에 의한 질병일 뿐이다. 우리는 흔히들 그것을 염병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 속에는 그 질병에 대한 저주와 사회적 편견이 들어 있다. 에이즈 역시 의학적으로 볼 때 그저 하나의 질병일 뿐이다. 그러나 에이즈라는 단어는 사회적으로 동성애, 접대부, 매춘, 비정상적 성관계, 격리수용 등과 같은 부정적 언어와 결합된다. 질병은 단지 질병일 뿐이며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넘어선 것이다.
바로 이 책은 그런 질병을 넘어선 질병에 대한 생각들에 의해 만들어진 질병에 대한 은유들을 탐색한다. 역사적 시기마다 질병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마치 이데올로기처럼 사람들에게 유통된다. 한때 결핵은 셸리나 키츠와 같은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걸리는 병처럼 낭만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결핵은 피해야 할 저주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결핵의 질병 원인은 변하지 않았음에도 그것에 대한 담론은 변한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유방 절제와 자궁암이라는 직접 경험, 그리고 에이즈로 인한 친구의 사망이라는 실존적 체험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염병에 걸렸다가 극적으로 회복했지만 그 사실을 쉬쉬해야 했던 기억이 있는 나에게 이 책의 주장은 호소력이 크다. 하지만 이 책은 병의 은유가 갖는 폭력적 성격을 세세히 드러내는 데서 끝난다. 만약 이 책에서 혹시 질병에 대한 푸코 식의 고고학이나 계보학적인 인문학적 방법론을 기대한다면 그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2003. 1. 25]

한겨레

미국의 소설가이자 문화비평가인 수전 손택(70)은 43살이던 1976년 유방암 4기 진단을 받는다. 3년 만에 그는 유방암이라는 질병을 완전히 이겨냈지만, 그 투병의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이 질병을 대하는 태도, "질병에 들러붙어 환자의 재활 의지를 꺾는 낙인, 은유, 이미지"와의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그 사유와 투쟁의 결과가 바로 <은유로서의 질병>(1978)이다. 손택에 따르면 '은유'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어떤 다른 사물에다 다른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전용하는 것이다. 어떤 사물을 그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또는 그것이 아닌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부르는 것이다.
예컨대 손택은 다섯 살이던 1939년 결핵으로 아버지를 잃었는데, 당시 손택의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의 원인을 딸에게 속였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결핵은 '뭔가 수치스러운 질병'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핵'이라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뭔가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은유가 손택의 어머니를 괴롭혔던 것이다. 극단적으로 히틀러는 유대인을 '인종적 폐결핵'으로 은유했다. 오늘날에 와서는 에이즈가 '현대의 역병'이라는 식으로 은유되고 있다. 요컨대 <은유로서의 질병>은 질병을 둘러싼 은유를 비판함으로써 질병을 신비화하는 언어들을 걷어내려는 책이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며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라는 것이다. 손택은 말한다. "질병은 늘 사회가 타락했다거나 부당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고발해 주는 은유로 사용되어 왔다." 그는 이 책에서 질병을 둘러싼 은유를 직시하고 사색하기 위해 <이반 일리치의 죽음>(톨스토이), <외침과 속삭임>(베리만) 등 소설, 영화, 의학서 등을 종횡하며 자신의 논리를 펼쳐나간다. 옮긴이가 지적했듯이 손택의 '은유에 맞선 투쟁'은 그가 <해석에 반대한다> 등에서 이야기했던 '투명성'이란 개념과 잇닿아 있다. 투명성이란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사물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다. 가령 손택은 에이즈를 '역병'이라 은유하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 그런 은유가 에이즈를 현대문화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천벌이라는 식으로 인식되게끔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질병이란 그 원인을 찾아내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인데, 마치 "질병을 앓고 있음을 뭔가 추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은유의 함정을 까발리고 있는 셈이다.
손택 자신도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은유 없이 사고하거나 은유 없이 사물을 해석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제하고 피하려 애써야 할 은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암적 존재', '편집증적 사회'라는 식의 말을 쓰고 싶을 때면 그 말문을 열기 전에, 자신의 언어습관, 태도에 어떤 편견이 배어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가령 우리가 '편집증적 사회'라고 이야기할 때 '편집증'은 그 사회가 극복해야 될 그 무엇을 은유한다. 그 말을 씀으로써 '편집증', '암'뿐만 아니라 특정 소수자(가령 편집증 환자, 암환자)를 배제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몰아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은유로서의 질병>에는 <은유로서의 질병>(1978)과 <에이즈와 그 은유>(1989)가 함께 묶였다.
[2003. 1. 25]

조선일보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질병이 아니다. 질병이 가진 낙인, 질병이 가진 이미지, 질병에 선험적으로 학습된 부당한 공포다. 한마디로 질병의 '은유'다. 이 책은 뉴욕 출신의 손꼽히는 소설가, 평론가, 에세이스트 손택(70) 여사가 결핵, 암, 에이즈를 중심으로 재래식 문학이 질병에 덧씌운 상상력을 해체하려는 시도다. 심하게 말하면 문학은 질병을 '악용'(?)해왔다는 것이다. 가령 '결핵에 걸린 주인공이 머무르는 아름다운 요양소'라는 배경 설정은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이 되어 '파괴적인 열망'의 모습으로 신화를 만들고, 이를 '문화적 경건함'으로 발전시켰다. 결핵 환자가 하얀 손수건 위에 뱉어놓는 선홍빛 객혈 보다 더 '문학적인' 장면이 있을 수 없었다. 손택은 45세에 결핵으로 숨진 D. H 로렌스, 한스 카스토르프가 스위스 다보스의 결핵요양소에 7년이나 머무르는 내용을 담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 가족 모두가 환자인 유진 오닐의 자전적 희곡 <밤으로의 긴 여행>을 예로 든다.
손택이 다섯 살 때 그녀의 아버지도 결핵으로 숨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을 세 번 속였다. 처음은 아버지의 죽음을, 다음엔 죽음의 원인을, 마지막엔 무덤의 위치까지 속였다. 이유는 단 하나, 당시엔 결핵을 수치스러운 질병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손택은 37세에 유방암을 선고받고 파리에서 유방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녀는 이후 '질병과의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질병 그 자체, 그리고 환자의 재활의지를 꺾는 질병의 은유가 공격 목표였다. 질병은 또 주로 이방인과 관련돼 있는 것처럼 꾸며졌다고 손택은 분석한다. 그것을 문학적 알레고리를 뛰어넘는 근거없는 욕설이었다. 매독은 영국인들에게는 '프랑스 발진'이었고, 파리 사람들에게는 '독일 질병'이었으며, 플로렌스 사람에게는 '나폴리 질병', 일본인에게는 '중국 질병'이었다. 질병보다 '질병의 은유'가 더 불합리하고 폭력적이었던 셈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의 <백색 역병>이 파시즘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희곡에 나오는 질병은 '당연히' 아시아에서 왔다고 추정된다.
손택은 "질병은 재앙도 천벌도 아니며, 이즘(-ism)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목적은 "문학과 철학에서 질병을 신비화하는 언어를 쫓아내고, 우리가 질병, 더 나아가서는 삶과 죽음을 제대로 대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2003. 1. 25]

세계일보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남긴 수기에는 공통적으로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물욕이 없어지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연민을 갖게 되며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도 기존의 생각이 많이 바뀐다. 수전 손택도 유방암과 자궁암을 앓았다. 물론 그가 받았을 고통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는 질병에 대한 사회적 억압에 눈을 떴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다른 부분이다. <은유로서의 질병>(이재원 옮김/이후)은 질병은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라는 간단명료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질병이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즉 에이즈 환자를 다룬 영화 <필라델피아>는 질병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의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손택의 문제의식도 이와 비슷하다. 대중매체들은 에이즈 환자들을 보도할 때 격리 수용, 잠적 등의 범죄자 이미지를 양산한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라는 그의 주장은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혐오감을 비판하는 데서 가장 두드러진다. 그러나 손택의 가정사를 보면 에이즈 환자의 인권침해는 특별히 새로 생긴 사회 병리현상은 아니다. 손택의 아버지는 1939년 결핵으로 죽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결핵을 앓았다는 것과 아버지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마저도 딸에게 숨겼다. 손택은 한참 후에 어머니가 그토록 쉬쉬하던 이유를 알았다. 당시 결핵은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병이었기 때문이다.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손택은 환자가 사회적 압력 때문에 병에 맞서지 못하는 점도 있지만 더욱 비판받아야 할 것은 삶과 죽음을 제대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이라고 꼬집는다. 그러나 현실비판에 나선 손택이 책을 써 내려가는 방식은 문학적이다. 그는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독창적 사유를 통해 소설, 영화, 오페라 등에 포함된 사회적 은유를 들춰 보여 동시대 사람들에게 공감 어린 권고를 보낸다. 손택의 책들은 '투명성 추구'를 일관되게 견지한다. 그에게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란 칭호를 안겨줬던 <해석에 반대한다>도 예술가들이 예술작품을 해석하려 들지 말고 있는 그 자체로 봐야 한다고 다시 말해 투명하게 감상하라는 지적이었다. 질병에 대한 사회의 시각도 투명해져야 환자의 고통을 줄어든다.
이 책은 투명성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온 지은이의 책들의 연장선 상에 자리잡고 있다. <타자의 고통에 관하여>라는 책이 올해 말 완성되면 현대사회에서 이미지가 차지하고 있는 역할을 분석하는 작업이 일단락될 것으로 기대된다.
[2003. 1. 25]

경향신문

미국의 문화평론가이자 작가인 수전 손택(70)의 저서 <은유로서의 질병>(이재원 옮김/이후)이 번역, 출간됐다. 질병은 질병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메시지. 질병과 장애를 신의 저주, 죄의 결과로 몰아붙였던 과거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늘날 에이즈를 언급할 때 사용되는 비유들, 공포, 환자판명, 관리대상자 지정, 접대부, 윤락, 잠적, 잔여수명, 색출 등을 떠올려보면 질병에 부여된 은유의 부당한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손택의 개인사로부터 탄생했다. 그는 다섯살 때 결핵으로 아버지를 여의었다. 당시 손택의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을 딸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결핵은 뭔가 수치스러운 질병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손택 자신도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한창 전방위의 평론, 창작활동을 펼치던 43세 때 유방암 4기 판정을 받는다. 이때부터 손택은 질병에 들러붙은 사회적 낙인, 은유, 이미지와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정념과 광기의 질병'인 결핵, '억압과 돌연변이'의 결과인 암에 대한 은유가 형성, 유통, 정착되는 과정을 소설, 희곡, 에세이, 영화, 오페라, 의학서적 등 광범위한 텍스트 속에서 추적한다. 이 책의 1부에 해당하는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은 저자의 암 투병 와중인 1977년 쓰였다. 손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친구를 데려간 에이즈란 질병에 씌워진 오명을 벗기는 데 다시 도전한다. 현대판 흑사병, 동성애, 혼외성교라는 음탕한 성행위에 내려진 천벌에 비유되는 에이즈는 신체 내부에서 발병한 암과 달리 '외부로부터의 공격'이란 이미지 때문에 종말론적 환상, 체제전복에 대한 공포, 정치적 보수성에 대한 합의를 낳는다. 19세기를 대표하는 결핵과 20세기의 암에서 시작된 질병에 대한 사유를 포스트모던 시대의 에이즈까지 확장시킨 88년작 에세이 <에이즈와 그 은유>가 이번 책의 2부에 실려 있다.
손택에 따르면 은유란 철학이나 시만큼 오래된 정신작용이며 과학적 지식과 표현력을 포함해 각종 이해방식을 낳은 기초이다. 그러나 현실을 추상화하고 해석한 결과로서의 은유는 세계를 투명하게 이해하는 데 역효과를 미친다. 손택은 타인에게 손가락질 받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동시대인을 위로하는 동시에 질병의 은유를 통해 "국가의 생존, 시민사회의 생존, 세계의 생존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로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편집증적 사회를 공격한다. 그는 98년 또다시 자궁암 절제수술을 받았으며 현재 <해석에 반대한다>(1966년), <사진에 관하여>(1978년), <은유로서의 질병> 등을 통해 추구해온 '투명성'이란 사유를 집대성한 저서 <타자의 고통에 관하여>를 집필중이다.
손택은 미국 펜클럽회장을 지내던 88년 서울을 방문해 김남주, 이산하 등 구속문인의 석방을 한국정부에 촉구한 바 있으며 93년 사라예보 내전의 참상을 알리고자 전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기도 했던 실천적 지식인이다.
[2003. 1. 25]

중앙일보

그 자신이 암을 이겨낸 환자였던 미국의 작가 수전 손택(70)은 1978년에 펴낸 이 책에서, "질병은 사회가 타락했다거나 부당하다는 사실을 고발해 주는 좋은 은유"라고 말했다. 손택은 서구 문학사에서 결핵과 암이 모두 정념 또는 방종의 질병으로 여겨져 왔음을 실증적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두 질병에 걸린 환자들은 격정적이면서도 억압된 사람으로 낙인 찍혀 공동체에서 고립됐다. 암은 내면의 야만성을 지닌 적을 은유하는 정치적 단어로도 쓰였다. 손택은 88년에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로 죽어 가는 친구들을 지켜보며 그 후속 편으로 <에이즈와 그 은유>를 써 합본했다. 20세기 들어 악과 동일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신종 질병, 에이즈가 나타나 결핵과 암이 은유하던 역병의 대명사 자리를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66년에 내놓아 주목받았던 책 <해석에 반대한다>의 논지를 이어 말한다. "질병은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가 아니므로, 그런 은유로 사회적,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해석에 반대한다'."
[2003. 1. 25]

국민일보

어린 시절 결핵으로 아버지를 잃은 수전 손택(미국의 비평가이자 소설가)은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죽음의 원인에 대해 함구했을 뿐 아니라 무덤의 위치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결핵은 질병이자 수치였기 때문이다. 결핵의 지위를 물려받은 것은 에이즈. HIV 바이러스는 단순히 에이즈를 발병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포와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에이즈는 성적 소수자의 등에 찍힌 '주홍글씨'이며 낙인찍힌 이들은 차별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암에 걸린 이들도 신의 저주와 심판이라는 심리적 장애물에 좌절하곤 한다. 질병을 둘러싼 은유는 종종 인종적 히스테리로 번진다. 히틀러가 주장한 '유대인이라는 폐결핵'이 대표적인 예. 저자는 "질병은 그저 치료해야 할 대상일 뿐"이라며 "질병에 덧씌워진 상징과 은유를 벗겨내고 병 자체를 투명하게 응시할 때 인간다운 삶과 죽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2003. 1. 24]

연합뉴스

미국의 예술평론가인 수전 손택(70)은 자신에게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안겨준 저서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대해 가하는 복수"라며 비평가들에게 투명성을 요구한 적이 있다. 이같이 경험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손택의 생각은 최근 번역 출간된 저서 <은유로서의 질병>(원제 Illness as Metaphor.이후刊)에서도 확인된다. 손택은 이 책에서 신체, 특히 병든 몸에 가해지는 해석을 거부하고 있다. 말하자면 손택은 "유대인이 국민들 사이에 인종적 폐결핵을 낳는다"는 히틀러의 말처럼 질병에 대한 은유가 질병과 질병을 앓는 환자에게 '낙인'을 찍는 현실을 겨냥하고 있다. 과거 결핵과 천연두, 암이 낙인 찍혔었고, '현대의 역병'으로 불리는 에이즈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실제로 프랑스의 극우주의자 르팽은 지난해 총선에서 "에이즈 같은"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정적들을 물리치는 데 톡톡히 재미를 봤다. 손택은 "어원학적으로 보면, 환자는 고통을 받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환자들이 가장 깊이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다"라고 지적한다. 질병을 둘러싼 은유는 환자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겪게 하고, 자신들의 질병에 혐오감과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든다. 결국 환자는 조기치료 혹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 손택은 권유한다. "나는 병을 앓고 있는 나머지 공포에 질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라고, 질병은 저주도 아니며 신의 심판도 아니고 곤혹스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손택은 76년 암 판정을 받은 이후 환자의 재활의지를 꺾는 '은유'와 투쟁을 벌이기 시작해 이듬해 이 책을 냈다. 그는 98년 또 한 차례 암으로 고통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2003. 1. 23]

대한매일

질병을 둘러싼 은유는 환자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겪게 한다. 한 예로 에이즈와 관련, '현대의 역병'이라는 은유는 에이즈를 도덕적 타락에 대한 천벌로 받아들이게 할 뿐 아니라 종말론을 부추기기도 한다. 프랑스의 극우주의자 르팽은 '에이즈 같은'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정적들을 물리치는 데 톡톡히 재미를 봤다. 미국 최고의 에세이 작가로 꼽히는 저자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골드스미스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등 77편의 소설, 수필, 오페라 등에서 질병과 관련된 은유들을 골라 소개한다.
[2003.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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