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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2010.11.06 03:28
한가지 더 추가한다면, 저는 "죄"라는 말보다는 소외 (alienation)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소외는 인간을 근원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인데요. 재벌이나 지배계급이 노동자를 착취해서 신을 믿을 수 있는 자리를 박탈한다면 그보다 더 큰 죄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의 사역은 당시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지배자들과 반하였고 정치적 반란이나 종교적 해체를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분의 사역은 당시의 종교적 정치적 지배계급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봐야 옳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분의 비판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종교 기득권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대신에 예수님은 이른바 종교적으로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교류를 했습니다. 마태복음의 백미는 사탄의 자식이 아니라 산상수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작은 한마디 말에 상처를 받고 그것이 평생을 가기도 합니다. 강박장애 (Obsessive-Compulsive Disorder)로 고통받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어릴적 상처나 큰 불행 (즉 교통사고나 이별)등에 원인이 있다고 하더군요. OCD는 축적장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http://kucc.org/cgi-bin/ez2000/ezboard.cgi?db=kucc1&action=read&dbf=229&page=0&word=ocd&oldword=ocd&findstart=144&ftype=subj+cont+name&depth=1
며칠전에 OCD 책자를 한 권 구했습니다.

이와 아울러, 공동체는 그런 아픔을 치료하는 곳이어야 하는데, 교회가 그런 상처를 주는 교회가 되어서는 아니되겠죠. 우리가 길을 함께 간다는 것은 서로를 배려하고 인정하고 또 수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쉬운일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크지면 그런 꿈은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보다는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 그런 마음의 진정성이 있다면 잠시의 소통 부재는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작은 것에 아픔을 느끼고 그 아픔이 깊어지는 것은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으로부터 올 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을 용납할 뿐아니라 지금은 아니고 두고 기다려야 되는 것도 있기에 우리 삶에서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용서는 시간이 참 많이 걸리는 것같습니다. 저도 집에서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지 못하는 것같아서 많이 부끄럽습니다. 마음에 닿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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