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846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은유로서의 질병

"어원학적으로 보자면, 환자는 고통받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환자들이 가장 깊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고통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예술평론가인 수전 손택의 이 말은 질병이 '육체적 죽음'이 아닌 '사회적 죽음'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동시에 환자에게 사회적 고통과 죽음을 안겨주는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이러한 현상은 질병을 단순히 '치료해야 할 그 무엇'으로 인식하지 않고 거기에 여러 이미지와 은유를 덧붙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질병에 붙어 있는 갖가지 이미지와 은유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깨우쳐주면서 질병과 환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수정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저자는 대표적인 질병으로 결핵과 암을 비교 분석한다. 결핵은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을 죽인 끔찍한 병이었다. 그렇지만 기이하게도 결핵은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난 천재들이 걸리는 병으로 인식되었고 심지어는 정신적 고양에 큰 도움이 되는 '신비한 병'으로 여겨졌다. 반면 마찬가지로 치명적 질병인 암에 대한 인식은 판이하다. 암은 충동을 억제하거나 정신적 수양이 부족한 사람에게 '침입'하는 질병으로 간주됐다. 따라서 사람들은 암환자를 기피하곤 했다.

"결핵이 의식을 영적으로 승화시켜주는 것처럼 표현됐듯이, 암은(의식이 없는 이드를 통해) 의식을 가라앉히거나 말소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마디로 "결핵이 병든 자아의 질병이듯이, 암은 타자의 질병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빚어진 데에 예술가들이 한몫 했음을 지적한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앙드레 지드의 [배덕자], 스탕달의 [아르망스] 등에 묘사되는 결핵 걸린 인물들은 한결같이 특이한 인물이며 사람에게 위로 혹은 동정을 받는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오든의 시 [기양]에 나오는 암 걸린 인물은 평범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삶의 패배자'로 묘사된다. 키츠-포-체호프 등 결핵으로 사망한 예술가가 신격화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인간을 비하할 때 흔히 쓰는 표현 '암적인 존재'도 저자는 사회가 만들어낸 은유의 횡포라고 꼬집는다.

치유 가능성의 유-무도 한 요인이 되었다. 결핵은 치유 가능성이 있었다.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곳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안정을 취하면 희망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암은 죽음과 직결됐다. 그것도 처절한 고통이 뒤따르는 죽음이었다.

저자는 또 하나의 '무시무시한 질병' 매독은 "은유로 쓰이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매독은 사망 원인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단 하나뿐이라고 여겨져 공포로 가득 찬 질병일 따름이었다. 매독은 문란한 성관계를 벌주는 신의 응징이어서 동정의 여지조차 없었다.

결핵과 암의 관계는 암과 에이즈의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암이 치유 가능한 질병으로 정복되어가는 와중에 치유 불가능한 질병으로 에이즈가 등장한 것이다. 과거 암이 그랬듯이 에이즈는 너무나도 뚜렷하게 죽음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낭만화된다거나 어떤 감상을 유입시킬 수 없다.

그러나 결핵에 대해선 여전히 '신비로운 그 무엇'인가가 은밀하게 포함돼 있으며 암에 대해 일삼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와 나쁜 은유 사용은 쉽게 퇴치되지 않고 있다. 다만 저자는 세월이 더 흐르면 이미지와 은유들도 바뀔지 모른다고 조심스레 추측한다.

이처럼 잘못된 이미지와 은유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환자를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게 만들며 조기 치료 내지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수전 손택은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해 자국 내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1966년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각종 저서에서 기존의 잘못된 해석과 관념의 틀을 깨고자 노력하고 있다. [은유로서의 질병] 역시 그동안 저자의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다.

손택은 이 책의 목적에 대해 명쾌하게 압축해놓았다. "지금의 세계, 이 신체에 가해진 해석에 반대하는 것이 내 책의 목적이었던 셈이다." 수전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이후 15,000원.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글쓰기 및 편집 방법 2 file 다중이 2016.06.12 48722
441 “고국이 이렇게 부끄러웠던 적 없습니다” 운영자 2004.03.13 8554
440 “저 강금실인데요…” `응 뭔데?` ---nate 뉴스 운영자 2003.03.06 8833
439 ▶◀ 그를 보내고 1 Charley C. Park 2009.05.25 8095
438 ★ 기독교 자료를 찾고 계시나요?★ 이종림 2007.04.24 7929
437 思夫曲 운영자 2005.08.19 9003
436 故 노무현 前 대통령 서울광장 노제 마틴 2009.05.30 8519
435 故 노무현 前대통령 추모영상 마틴 2009.05.30 8509
434 가족 여행 비디오 테잎 의심받아 -YTN 운영자 2003.03.08 9483
433 간송 전형필 플로렌스 2013.03.23 11455
432 감동을 주는 이야기와 TV 동화 3 마틴 2010.05.04 8765
431 개와 늑대의 차이 플로렌스 2012.12.30 14188
430 객이 식구로 Charley C Park 2008.11.16 8118
429 거대한 예고편 [매트릭스2 리로디드] 운영자 2003.05.20 8591
428 거리에서 - 유익종 로즈마리 2008.01.27 8592
427 거짓 목회자들이여 회개하라 주님 심판이 가까왔다 거짓 목회자들이여 회 2006.12.02 8219
426 걱정하지 마세요 2 마틴 2010.06.01 8816
425 게루니카-함께 느끼기 (Guerunica-Feeling With) 플로렌스 2016.05.11 456
424 게시판 많이 컸네- 한겨레 운영자 2003.09.24 8647
423 게시판에 Youtube 링크 입력 되게끔 수정 완료 하였습니다. 4 뚜버기 2011.03.04 15734
422 게시판을 본래대로... 1 교우 2010.04.29 11358
421 겨울기도 운영자 2005.11.26 9720
420 결핍원리와 특별한 관계 Jung 2010.11.14 9930
419 고 문형린 장로 생전 동영상. 2 뚜버기 2011.03.14 14272
418 고속도로에서 부상당한 개를 구한 동료 개 2 플로렌스 2011.05.16 21360
417 고향생각- 펌 운영자 2004.02.09 8504
416 과학자 맹성렬의 UFO 이야기 신동아 인터뷰 2 새로운 셰계 2010.12.28 12478
415 교우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 Andy 2007.02.24 9327
414 교회 이전 구정희 2007.07.16 8657
413 교회 이전 약도입니다. 참고하세요. 최의승 2007.07.20 9066
412 교회의 참된 터는 The Church's one foundation 마틴 2010.06.03 3072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0 Next
/ 20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