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812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보수언론과 지식인의 글쓰기


<조선>에 실린 김석준 교수의 글을 비판하며

강인규 기자

지식인들의 현실 참여를 바라보는 시각은 문화권마다 다른 것 같다. 예컨대 유럽의 지식인들이 대중적인 글쓰기를 통해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것이 보편화된 반면, 미국의 지식인들은 이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건 미국의 지식인들이 특별히 무능하거나 게을러라기보다는, '학계'와 '사회,' 그리고 '직장'과 '집'(혹은 일과 휴식)을 엄격히 구분하는 사회문화적 특성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부르디외는 이런 미국대학의 탈정치화를 대학의 지정학적 특성과 연관짓는다. 많은 유럽의 대학이 치열한 삶의 현장인 대도시에 위치해 있는 반면, 미국 대학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한적한 교외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도시에 있는 소수의 대학마저 '위험지대'로 불리는 슬럼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는 참여해야 할 곳이 아니라 피해야 할 곳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간의 이런 인식의 차이는 흔히 오해를 낳는다. 움베르토 에코는 미국인들의 이런 질문을 해 올 때 도저히 그 질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당신은 기호학 교수이면서 소설가이기도 하고, 또 신문에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기도 합니다. 어떻게 세 가지 '다른 일'들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지요?"

에코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교수들이 글쓰기나 강연을 통해 학교 밖의 대중들과 소통하는 것이 전혀 '과외'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문화적 차이로 인해 유럽사람들에게 미국의 지식인은 '무책임한 작자들'이 되기 쉽고, 미국인들에 유럽의 교수는 '오지랖 넓은 인간들'이 되기 일쑤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지식인은 어떨까. 한국의 지식인의 성향은 미국보다는 유럽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그 어느 문화권보다 사회와 '소통'하려는 왕성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교수들은 예외없이 '전문가'나 '여론지도층인사'로 등장해서 해당문제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한국과 유럽 지식인들의 사회적 발언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식인들의 '사회참여'의 수혜계층이 다르다는 점이다. 유럽 지식인들의 발언이 변혁을 지향하고 소수자를 배려해 온 반면, 한국의 지식인들은 현상유지를 지향하고 기득권층을 옹호해 온 것이 보통이다.

이 사실은 '개혁'이 사회의 화두가 되었을 때마다 대학교수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갈 갈 필요도 없다. 인터넷에서 "언론개혁"이라는 검색어를 통해 소위 '전문가들'이 최근 어떤 발언들을 했는지 한 번 확인해 보라.

스스로가 기득권에 속한 한국의 거대 상업언론은 사회적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회가 변화를 요구할 때 언론은 '전문가의 견해'라는 억압적이고 위계적인 담론을 생산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의 지식인들은 언론에 의해 이용당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로써 지식인들은 매체를 '통해서' 발언하는 것이 아니라, 매체를 '위해서' 발언하게 된다. 한 사회의 담론을 합리적으로 다듬어 나가야 할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임무를 망각하고, 기득권층의 이익 수호에 앞장서는 '프롤레타리아 룸펜'으로 스스로를 전락시키는 것이다.

고기를 잡지 않는 어부를 어부라고 부를 수 없고, 곡식을 가꾸지 않는 농부를 농부라고 부를 수 없듯, 합리적인 지식을 생산해내지 않는 지식인은 더 이상 지식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인'들은 사회의 담론을 합리적으로 가꾸어가기는 커녕,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굴절되고 왜곡된 담론을 유포시켜 온 불명예스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결국 지식인들의 현실참여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어떻게 참여하느냐'일 것이다.
최근 <조선일보>에는 "'운동정권'의 역색깔 씌우기"라는 글이 실렸다. 김석준 교수가 기고한 이 글은 현정권이, "급진적 이미지를 지닌" "운동정권(Movement Regime)"으로서 "개혁 코드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언론과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으며, 개혁을 원하지 않는 집단을 "수구 보수세력"이라는 "역색깔론"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 공격함으로써 그들을 무력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세의 배경은 "특히 4월 총선을 통해 운동권 세력이 권력의 핵심으로 대거 진입하고 본격적인 운동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역색깔론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주어와 술어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는 알 수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역색깔론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김석준 교수는 "운동정권"이라는 낯선 개념을 설명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운동정권(Movement Regime)이란 운동권 출신들이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고 실용주의 대신 이데올로기를 최우선으로 삼아 대중 운동성을 통치수단으로 활용하는 정권을 지칭"하며, "이들 정권은 중동지역이나 일부 남미 국가에서 그 유형을 찾아볼 수 있"고, "이들 정권 대부분의 말로는 비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석준 교수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운동정권"이라는 개념이 앞의 용법대로 사용된 문헌자료를 좀 알려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운동정권"이 구체적으로 "중동지역이나 일부 남미 국가"의 어느 정권을 지칭하는지도 알고 싶다. 영어로 토까지 달아놓은 걸로 보아, 스스로 고안한 개념 같지는 않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다.

사실 '운동'이니, '운동권'이니 하는 개념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언어용법이다. 도대체 무슨 운동이란 말인가? 우파운동? 새마을운동? 한국에서는 특이하게도 '운동'은 항상 왼쪽으로만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사회가 아무리 오른 쪽으로 달려가도 움직임이 보이지 않지만, 그 반대로는 조금만 움직여도 난리를 치는 한국정치의 보수성이 바로 '운동'이라는 언어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특수한 맥락을 떠나서는 '운동'이라는 개념 앞에는 반드시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 나치즘이라는 극우운동도 있을 수 있고 대처와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운동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만 '운동'이 아니라 보수회귀도 엄연한 '운동'이다.

여기서 김석준 교수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노무현 정권은 어떤 '운동'을 지향하는 정권이라고 생각하시는가? 그리고 민노당이나 사민당이 노무현 정부의 보수성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한나라당이 집권했다면 그건 "운동정권"이 아닌지도 궁금하다.

김석준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실용주의"보다는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운동정권"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혼란스러운데, 필자 역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실용주의"가 "이데올로기"의 상대개념으로 사용된 예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개혁과 진보는 "이데올로기"고, 현상유지와 기득권층의 보호는 "실용주의"란 말인가? "이데올로기"는 오직 '개혁세력'만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긴, 이데올로기란 원래 입냄새와 같아, 항상 남만 가지고 있는 법이다. 김석준 교수는 계속해서 말한다.

"민주화 이후 선거 과정에 색깔론을 동원한 쪽이 결국 패하면서 색깔론은 사라지는 듯했지만, 지금은 역색깔론까지 등장하면서 한국정치를 과거로 되돌리는 양상이다. 과거의 색깔론이 집권세력이 '좌경 친북 세력'을 공격했던 이념공세였다면, 오늘날의 역색깔론은 소위 '수구 보수세력'을 무력화하여 해체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 공세의 수단이다."

요컨대, 과거가 진보세력의 수난시대였던 반면, 현재는 보수세력의 수난시대라는 것이다. '수구보수세력'이라는 이른바 "역색깔론"은 "한국정치사를 과거로 되돌리는" 만행이라는 것이 김석준 교수의 주장이다. 김석준 교수는 정말 한국의 과거가 어땠는지 모르시는가?

"좌경 친북 세력"이라는 딱지 때문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고, 심지어 목숨을 잃었던 것이 - "과거" 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 딱지를 붙인 채 여전히 사람을 가두어 두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다.

보수세력이 "역색깔론"으로 인해 과거의 진보세력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하는 김석준 교수께 마지막 부탁을 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그 고약한 "역색깔론" 때문에 감옥에 갇히거나 수배자로 쫓기는 사람들은 물론, 그로 인해 감봉조치라도 당한 사람이 있으면 좀 알려주시기 바란다.

최근에 야당의원들은 한국방송공사 사장에 임명된 언론인을 "친북세력"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오늘 <조선일보>에는 "친북좌익척결본부"라는 단체명의로 "노 정권은 국정원을 노동당 대남공작부에 편입시킬 작정인가?"라는 광고가 실렸다. 한국정치가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김석준 교수의 판단은 결국 옳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거회귀"를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변함없이 과거를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회귀"에 대한 걱정은 우리가 "현대"에 도달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2003/05/03 오후 5:58
ⓒ 2003 OhmyNews

[시론] ‘운동정권’의 逆색깔 씌우기
<조선일보> 2003. 5. 1


운동정권(Movement Regime)이란 운동권 출신들이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고 실용주의 대신 이데올로기를 최우선으로 삼아 대중 운동성을 통치수단으로 활용하는 정권을 지칭한다. 이들 정권은 중동지역이나 일부 남미 국가에서 그 유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정권 대부분의 말로는 비극적이었다.

급진적 이미지를 지닌 노무현 대통령이 386운동권을 청와대와 권력의 핵심에 배치하고 정부출범을 준비할 때 제발 노 정권이 운동정권이 되지 말기만을 기원했다. 다행히 취임식 이후 실용주의를 수용, 한•미동맹을 최우선으로 하고 대북관계나 이라크전 파병 및 전교조의 반전평화교육에 대한 대책지시 등으로 운동정권과는 거리를 두는 듯했다. 이는 대통령 자신이나 국가를 위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개혁 코드’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언론과 갈등을 조장했으며, 파병결정과 전교조 대책에 실용주의 정책과 이데올로기적 노선의 명분 사이에 명확한 해명이 없어서 아쉬움은 있었다. 이상과 현실 간의 거리를 조정하는 데 집권세력 내부에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심 여유있게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재•보선에서 집권당이 완패하고, 정계 개편 움직임이 두드러지면서 다시 정권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있다. 정권출범 이후 지속된 색깔론과 역(逆)색깔론이 여기에 크게 작용, 실용주의를 대신하는 운동정권의 위험성을 부추기고 있다.

이라크전 파병과 전교조의 반전평화교육 그리고 국정원 원장과 기조실장 임명을 둘러싸고 정치권은 남남갈등을 통합하기보다는 더욱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는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화 이후 선거 과정에 색깔론을 동원한 쪽이 결국 패하면서 색깔론은 사라지는 듯했지만, 지금은 역색깔론까지 등장하면서 한국정치를 과거로 되돌리는 양상이다.

과거의 색깔론이 집권세력이 ‘좌경 친북 세력’을 공격했던 이념공세였다면, 오늘날의 역색깔론은 소위 ‘수구 보수세력’을 무력화하여 해체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 공세의 수단이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누군가 정권이나 집권당을 비판하거나, 국회와 언론이 새로 등장한 인물들을 상대로 공직자로서 자격 검증을 하기만 하면 ‘색깔 씌우기 공세’라며 역공세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지지세력을 역색깔론으로 결집하고 이들을 정계개편의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인지 모른다.

대표적인 사례가 외교안보팀에 비교적 보수적인 인사들을 충원하여 국정을 운영하다가 유독 국정원 원장과 기조실장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반대한 인사를 임명한 것이다. 국회가 반대한 인사들을 기용하면서 관변 매체 등을 통해 ‘색깔씌우기’라며, 비판론자들에게 ‘수구보수’라는 딱지를 붙여 정면 공박하고 있다.

아마도 노 대통령은 이데올로기 문제를 정면에 부각시키는 역색깔론을 내세우고, 이를 정계개편과 정국주도권 장악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 같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통해 운동권 세력이 권력의 핵심으로 대거 진입하고 본격적인 운동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역색깔론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국정원 개혁은 국회나 여야가 동의하는 그 분야 전문가들에 의해 가능하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사람들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국가 인재풀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어서,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지금은 대통령이 오기를 부릴 때가 아니다. 북핵문제나 어려운 경제상황을 여야합의와 국회와의 협력을 통해 풀어가야 할 때다. 그 성적표는 내년 총선에서 나온다. 역색깔론이 선거패배의 책임 정치를 회피하고 개혁을 명분으로 대통령당 창당과 정계개편의 방편으로 악용된다면 국민과 역사의 심판이 멀지 않을 것이다. 운동정권이 아니라 정상국가와 바른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개혁의 목적이어야 할 것이다.

(김석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이화여대 교수)
?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글쓰기 및 편집 방법 2 file 다중이 2016.06.12 48528
321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운영자 2004.01.22 8253
320 새삼스럽던 록키의 아름다움 1 엘보우리버 2009.06.28 8835
319 새로운 시작 3 홍반장 2016.02.16 282
318 새끼 코끼리 구출작전 1 플로렌스 2011.06.29 23460
317 사막으로 되어 가는 스페인 1 ch 2010.11.27 11849
316 사랑의 인사? 5 Greta 2011.03.28 81745
315 사랑은 모든 것의 해답 구정희 2006.05.27 9540
314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이 기적이다 기적수업 2006.04.01 9993
313 불편한 진실 6 플로렌스 2011.06.09 20314
312 불의에 대한 침묵의 대가 (펌) Charley C. Park 2009.05.05 92258
311 분리 신념 (죄-죄책감-두려움) Jung 2010.11.09 10426
310 북한의 실정 4 lsh 2010.12.10 14213
309 북한노래 세곡 플로렌스 2012.08.02 9260
308 부활절 상징... Jasper~ 2003.04.19 8302
307 부탁드립니다 류한필 2007.08.30 7945
306 부인과 투사 그리고 분노 2 Jung 2010.11.09 8799
305 부시에 대하여 운영자 2003.12.23 8642
304 부시는 `바보`가 아니다- 오마이뉴스 운영자 2003.03.12 8319
303 부시, 2001년말부터 이라크 침공 계획` 운영자 2004.04.26 8257
302 봄의 뜨락에서 운영자 2004.03.25 8218
301 볼수록 ... 1 홍반장 2016.02.16 398
» 보수언론과 지식인의 글쓰기 운영자 2003.05.03 8120
299 벼랑 끝으로 내몰린 서민들이 크게 늘어나 Soonchang 2009.02.18 8910
298 베토벤과 쇼팽의 피아노곡 2 플로렌스 2011.03.22 16113
297 베이토번의 달빛쏘나타 플로렌스 2011.08.29 17933
296 버마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로즈마리 2007.10.08 8062
295 백만송이 장미 이야기 2 플로렌스 2016.07.07 849
294 배우자 중병 걸리면… 아내는 남고 남편은 떠난다 1 마틴 2009.11.10 8020
293 반지의 제왕 별전? Born of Hope - Full Movie 3 ch 2011.01.03 21761
292 박혜경의 레인 운영자 2003.07.17 860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20 Next
/ 20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