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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2011.03.31 05:19

다른 곳엣 단 댓글인데 여기 다시 퍼왔습니다. 비슷한 것같아서요.

 

예수 운동 (Jesus Movments)의 초기 사상은 철저한 종말론적 관점에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 자신이 곧 세계 파국이 오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바울 역시 그의 생애 전에 파국이 오리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는 역사적 예수 역시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신약성서의 최초 문서는 바울이 쓴 데살로니가 전서 (약 50 CE )이고 사복음서는 그것보다 20에서 심지어는 50년 후에 기록된 것이라서 이 복음서에 바울사상의 영향이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한국에서는 민중신학자 안병무 교수에 의해서 많이 이뤄졌습니다. 안 교수는 기독교의 제도화의 사회학적 측면보다는 교리적 변화에 더 관심을 많이 가졌고, 이에 바탕하여 바울을 비판하였습니다.

바울의 한계라면 그가 로마 시민이었다는 것과 그의 선교 대상이 주로 흩어진 유대인 (diaspora)이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에 있던 유대인의 수가 로마 제국에 흩어진 유대인의 수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제기억으로는 1/3 정도로 소수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흩어진 유대인을 대상으로 주요 선교를 했다는 것이며, 당시 유대적인 요소로 베드로 등에게 남아 있던 할례 제도도 탈팔레스틴 측면에서 폐기시켰으며, 제사음식의 섭취 여부도 역시 이런 맥락에서 무시한 측면이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운동을 왜곡시켰다기 보다는 모든 종교가 갖는 운동=>제도로로의 전이에 갖는 한계를 드러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같습니다. 바울의 공헌이라면 부족 또는 민족신앙으로 남아 있을 유대종파인 예수 운동을 보다 더 보편적인 종교인 기독교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바울의 한계라면 그가 당시 기독교 운동 중에서 가장 앞섰던 이론가라서 당시 베드로 등등의 이론가가 아닌 실천 위주의 사람들을 평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는 자기 이론에 상당히 우월한 의식을 갖고 있었고, 그러한 이론이 당시의 주류 담론으로 되길 바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서신서에서 쓴 이단 등등의 말은 바로 자기와 다른 이론을 견제하려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좀 교조주의자였습니다. 세계종말과 파국을 그 역시 예상했다는 면에서 교조주의자가 아니었었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기독교가 문제는 어쩌면 아리우스파가 이단으로 몰리고 아타나시우스가 승리한 탓일 수도 있습니다.

콘스탄틴 이후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수가 이단 문제가 아닌 자유 경쟁 관계에 있었다면 세계 기독교 역사의 지형은 완전히 달랐을 것입니다. 최근에 잊혀진 기독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테 이것을 통해서 최기 기독교를 재건하는 노력도 필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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