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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2011.03.05 07:59

이 분의 삶을 보면 조우 한다는 것 (encountering)의 기적을 보여 줍니다. 조우 한다는 것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뜻밖의 만남, 예기치 않은 만남입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의대생이었다가 사제가 되는 결단, 그리고 신학생 시절 수단의 톤즈로의 여행, 그리고 거기서 생을 보내기로 한 결단, 새롭게 친구가 된 그의 환자들 그리고 아이들, 이 모든 것도 뜻밖의 조우일 수 있습니다. 이 조우는 예기치 않은 새로운 삶을 만듭니다.

조우란 갈등을 빚는 것일 수 있고 아름다운 세계를 그려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수단은 내전, 기독교와 이슬람 갈등으로 가난과 기아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곳에 이태석 신부는 그곳에 작은 사랑의 불꽃을 유산으로 남기셨습니다. 47의 불꽃같은 인생을 새로운 이웃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섬겼습니다.

제가 수단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인류학자 에반스 프리챠드의 책 [The Nuer]라는 데서, 그리고 1971년 하바드의 Robert Gardner 가 찍은 흑백 다큐멘터리 film을 통해서였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preview

이것은 지리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film입니다. 그리고 몇 년전 캘거리에서 정치학을 하는 난민 출신의 Jacob이라는 수단 학생을 만났습니다.  위의 1960년 대 film을 같이 보면서 (저는 두번째), 거기에 나온 사람들이 자기들과 같은 부족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마치 아득한 옛날과 현대의 만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에 대한 [톤즈야, 울지마]라는 이 film을 보니 참 감동적이면서도 마음이 착잡하군요. 첫째는 수단이 종교 부족 분쟁으로 신음하여 앞으로 어떻게 평화의 나라로 정착할지 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 신부님이 남기신 아름다운 유산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구나 하는 교차되는 마음 때문입니다. 


암으로 마지막 생을 다할 때까지 톤즈를 걱정하는 이 신부님의 모습은 영화 이야기에서 표현된 사랑은 깊을 수록 아프다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죽음은 인간이 짊어져야 할 숙명일진대, 사랑은 숙명이 아니라 늘 새롭게 부활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잊지 않음을 안고 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신부가 암을 선고 받고도 톤즈의 아이들을 위해 쓴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는 끝까지 톤즈를 잊지 않은 이 분의 깊은 사랑이 느껴집니다.  사랑은 실천하는것이고, 선교는 그 부산물임을 이 신부님은 보여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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