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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3월25일 베이징에서 문익환 목사와 우리 일행이 주중 북한대사 주창준씨의 안내로 대기중인 특별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 오전 10시께였다. 도쿄 한국대사관은 물론 총련 중앙본부조차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은밀히 행동을 한 덕분에 무사히 평양으로 떠나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내에 오르자 승무원이 다가오더니 지금 순안비행장에서 내외기자단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으니 도착성명을 준비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베이징에서 평양까지 비행시간은 한 시간 반, 그동안에 문안을 작성해야 하는데, 그 작업은 물론 문 목사의 비서역인 내 몫이었다. 문 목사는 무엇 때문에 평양으로 향하고 있는가. 민족의 질곡인 분단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자 각일각(刻一刻) 골고다로 다가서고 있는 그가 아닌가!
붓을 들고 보니 같은 길을 걷다가 희생당하신 김구 선생, 장준하 선생의 모습이 눈에 가물거렸다. 그리고 일제에 꼬리를 떨던 기회주의자들을 꾸짖는 김구 선생의 말씀, 분단을 강요하는 강대국 앞에 무릎을 꿇고 권력 유지에만 급급한 사대주의자들을 규탄하는 장준하 선생의 목소리가 귓전으로 들려오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고통의 근원이 분단에 있음을 말하고, ‘나 문익환은 남쪽 민중을 대표해 어떻게 하면 하루속히 삼팔선을 걷어치울 수 있겠나. 김일성 주석을 만나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자 평양으로 가는 것’이라고 이번 방문여행의 뜻을 밝히고 나서 ‘모든 통일은 선이다’라는 말로 도착성명을 마무리했다.

문 목사가 성명서 초안을 읽고서 추고할 겨를도 없이 비행기는 착륙했고, 그는 한 자 수정 없이 그 도착성명을 낭독했다.

훗날 쇠고랑을 차고 법정에 선 문 목사를 괴롭힌 대목이 바로 ‘모든 통일은 선이다’라는 마지막 문구였는데, 남한 당국은 그 문구를 꼬투리 잡아 ‘그렇다면 적색통일도 선인가’라고 문 목사를 윽박질렀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그 문장을 기초한 나, 정경모는 ‘모든 통일은 선인가? 그렇다 우리에게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고 갈파한 장준하 선생의 말씀(<씨알의 소리> 1972년 9월호)을 그대로 인용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기묘하게도 평양 방문 다음날 일요일은 부활주일이었는데, 부활주일 예배에 참석하느라 봉수교회를 꽉 메운 청중들 앞에서 문 목사는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굡箚?사자후를 토하여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했다. 나도 울었다. 통일의 날이 올 때까지는 민족은 무덤에서 잠자고 있는 시체일 뿐이라는 뜻이 아닌가.

죽음을 무릅쓰고 삼팔선을 건너시면서 ‘오늘 내가 걷는 눈 덮인 벌판길(踏雪野中去),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니(遂作後人程)’라고 읊으신 김구 선생, ‘모든 통일은 선’이라고 거침없이 외치신 장준하 선생, 그리고 또 평양 봉수교회에서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라고 울부짖은 문익환 목사, 이들 세 분의 선각자는 상징적으로 말해 상해임시정부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분들이지만, 그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함으로써 정통성을 지니고 있노라고 주장하는 대한민국 권력에 의해 박해를 받은 사람들이 아닌가.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저질러진 역사적 오류를 씻어내고 이들 세 분의 정신을 앙양함으로써 국가 정통성을 굳혀 나갈 처지에 있으면서도, 오늘의 남북관계를 보면 오히려 그러한 실천으로부터 역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정경모 재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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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rley C. Park 2009.04.03 23:06
    진정한 애국애족 인사들은 암살당하거나 박해 받는 현실에서 아직도 진정한 해방과 통일이 멀게만 느껴짐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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