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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북소리를 따라 걷는 사람들

(마태복음서 10:34-39)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다니엘서 3:16-18) 사드락 과 메삭 과 아벳느고 가 왕에게 대답하여 아뢰었다. “굽어살펴 주십시오. 이 일을 두고서는, 우리가 임금님께 대답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불 속에 던져져도, 임금님, 우리를 지키시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활활 타는 화덕 속에서 구해 주시고, 임금님의 손에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임금님의 신들은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굽어살펴 주십시오.”

 

  1. 피리 소리에 홀리는 쥐들

오래전 독일에서 민간전승으로 내려오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멜른이라는동네에 쥐떼가 극성이었습니다. 하루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나타나 쥐를 한마리도 남김 없이 없애주는 조건으로 천냥을 요구합니다. 마을에서 조건을 수락하자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피리를 붑니다. 피리 소리가 들리는 곳마다 쥐들이 나와서 피리 부는 사나이의 뒤를 쫓습니다. 피리 주는 사나이는 모든 쥐들을 몰아서 베저강에 빠뜨려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약속한 천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피리 부는 사나이는 다시 마을을 다니며 피리를 불었습니다. 이번에는 마을에 있던 아이들이 피리 소리에 이끌려 사나이를 따릅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동네 아이들을 이끌고 언덕으로 올라가서 아이들이 사라지게 만듭니다. 뒤늦게 마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면 천냥을 주겠노라 했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와 아이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피리 소리를 따라 죽는 줄도 모르고 강물로 뛰어드는 쥐떼들을 보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심리학에서는 사람들도 이런 쥐떼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상황과 권위에 얼마나 쉽게 굴복하는지 증명했습니다. 당시 4~50달러의 돈을 받고 실험에 참가한 사람 중 절반은 학생역할로 절반은 선생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정 시간동안 학생역할의 사람들은 단어를 암기해야 했습니다. 주어진 암기 시간이 끝난 후 학생역할을 맡은 사람은 선생역할을 맡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젹 너머에서 단어를 맞춰야 했습니다. 선생역할을 맡은 사람은 벽 너머에서 학생이 하나를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기의 스위치를 올리도록 지시받았습니다. 처음에는 15볼트에서 시작하지만 마지막엔 400볼트 스위치를 올려야 했습니다. 스탠리 밀그램은 400볼트까지 올리는 사람을 1%가 될까 예상했지만 무려 65프로의 사람이 400볼트까지 스위치를 올렸습니다. 물론 학생역할을 맡은 사람은 연기자였고 전기충격을 받는 것처럼 소리지르며 연기를 했습니다. 볼트가 올라갈 때마다 비명소리가 커지고 스위치를 올리도록 지시받은 실험자들은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실험 진행자가 “스위치를 올리세요. 이 방법 밖에 없습니다. 계속 진행하세요.” 라고 다그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400볼트까지 올린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나쁜 상황과 역할을 맡게 되면 악행을 저지르는 악인이 된다는 실험은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스탠포드 지하감옥 실험에서도 증명됩니다. 학생들 중 절반은 간수역할로 절반은 죄수역할로 만들어 놓으면 오래가지 않아 간수역할을 맡은 학생은 죄수역할을 맡은 학생들을 실제로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이외에도 많은 실험들이 이를 증명했습니다. 이 실험들을 보는 많은 사람들은 “나는 저러지 않을 꺼야.”라고 하지만 막상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예전 설교에도 언급한 바 있는 나치전범 아이히만도 악이 얼마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쉽게 침투할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재적인 사례라 할수있습니다. 필립 짐바르도는 평범한 사람들이 상황과 역할에 따라 악인이 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을 ‘루시퍼 이펙트’라고 불렀습니다.

모세가 시나이산에 있는 동안 금신상을 만든 이스라엘 민족들, 열두 정탐꾼이 돌아온 후 하나님을 원망한 백성들, 빌라도 앞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친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1. 다른 북소리를 따라 걷는 사람들

알베르트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보면 열악한 상황이 만들어 내는 어리석은 인간 군상들이 등장합니다.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유럽인들에게 공포와 동의어인 전염병 페스트가 만연했습니다. 최근 트럼프의 돌팔이 약장수와 같은 발언처럼 알콜로 내장을 시작하면 테스트를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술에 만취해서 돌아다닙니다. 위기와 공포를 기회로 장사하는 기자들, 사이비 종교인들이 등장합니다.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관료들도 보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는 현재 세계의 부정적인 모습이 꼭 닮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속에서도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사 리유, 기자 랑베르, 파늘루 신부, 보건대를 조직한 타루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페스트와 맞서 싸웁니다. 공포 불안, 절망이라는 전염병과도 맞서 있습니다.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다른 북소리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라 말합니다. 이들은 피리 소리를 따라 강가에 뛰어드는 쥐들이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다른 북소리를 따라 걷는 사람들입니다.  나쁜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용감하게 나아간 사람들을 조명합니다.

백성의 원망 중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나선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렇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도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맞선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그렇습니다. 이들은 바벨론 왕의 만찬을 거부하고,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권력인 왕의 권위 앞에서도 자신들은 절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뜨거운 도가니 속에 던져져 불타 죽더라도 절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모두들 왕의 북소리를 따르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북소리를 따라 걷는 사람들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회유와 억압에 굴복해 신사참배를 결정한 교단들이 많았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저항한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교회는 나치에 충성을 맹세하지만 끝까지 저항한 본 회퍼와 같은 고백교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평화를 주로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로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에서는 평화가 미덕입니다. 그러나 악이 만연한 사회에서의 평화는 악덕을 용인하고 강조하는 비겁함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만연한 사회에서 정의롭게 사는 것은 용기없이 불가능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모나게 살지말라고 질책을 듣고 회유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려거든 목숨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를 죽음의 길로 인도하는 피리소리는 무엇일까요? 가장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판데믹입니다. 그러나 판데믹을 이용해 인종과 민족간의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인들과 나쁜 언론이 더욱 치명적인 피리소리입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모임이나 집회 취소하라는 방역당국의 권고를 주일성수와 예배를 가로막는 권력자의 핍박으로 호도하는 종교인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하나님의 경고이자 심판이라며 겁을 주는 종교인들이 목소리가 피리 소리입니다.

더 거시적으로는 돈이 최고의 미덕이라 부추기는 자본가들의 목소리입니다. 더욱 많은 소비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달콤한 속삭임이 피리소리입니다.

한국에서 있을 때 보았던 아파트 광고가 생각납니다. 이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집으로 뛰어갑니다. 예쁘고 자상한 이영애 엄마가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돈 잘 버는 멋진 아빠는 잘 빠진 고급수트를 입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멋진 아빠, 예쁜 엄마,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아이는 이 아파트에 삽니다.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멋진 집에서 사는 연예인의 사생활을 보여줍니다. 연예인들이 사는 집값을 가지고 순위를 매기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에서도 아이들끼리 어디에 사는지, 월세, 전세, 임대, 자가주택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차별을 합니다.

돈이 계급을 나누고, 신분을 결정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돈이 전부라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돈이 전부인 세계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북소리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다른 북소리를 따라 걷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최근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그 동안의 주장과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스탠포드 감옥 실험에서 왜 다수가 상황에 굴복하는 가가 아니라 왜 특정 소수는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바른 소리를 내는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미 상황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믿음과 명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는 상황을 극복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단단한 믿음으로 무장하고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다더라도 상황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순교자가 될 수는 있지만 개혁가가 되기는 힘듭니다.

뜻을 같이 하는 세 사람 이상이 함께 한다면 세배의 힘이 아니라 상황을 바꾸는 큰 힘이 됩니다.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고 의지가 됩니다.

그래서 잠언 4장 12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있다.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예전에 EBS에서 사회 심리학자들의 실험을 유사하게 재현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교차로에서 실험인1 하늘을 올려다보며 막 하늘을 가르킵니다. 물론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고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끔 실험인1의 행동을 보면서 하늘을 보지만 이내 그냥 지나가버립니다. 다음으로 실험인2 가 투입되서 실험인1과 같이 하늘을 바라보고 손가락으로 가르킵니다. 주변에서 하늘을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들이 종종 생겼지만 금세 자기 갈 길을 갑니다. 마지막으로 실험인3이 투입됩니다. 세 사람이 바람을 잡자 어느새 사람들이 가는 길을 멈추고 서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 수가 점점 늘더니 교통이 마비가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하늘을 바라봅니다. 이와 같이 세 사람 이상이 모이면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할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악인들은 이런 힘을 이용해서 거짓 선동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처형을 유도 살아도 집단의 힘을 이용했습니다.

반면 그리스도인의 무리인 교회는 선한 영향력으로 선한 상황, 선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졌습니다. 다만 하나님 안에서 한 뜻을 품고 서로 같은 믿음을 확실하게 가져야 합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악한 상황, 어두운 사회에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작은 교회지만 세 사람 이상만 뜻을 모으고 믿음을 가지고 헌신할 수 있다면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한 믿음을 가진 교회로써 유혹의 피리소리, 탐욕의 북소리를 따르지 않고 생명의 피리소리, 사랑의 북소리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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