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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4 15:10

[설교요약]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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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님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1.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인가?

크리스마스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날인가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는 한 해의 가장 긴 연휴의 시작이기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산타 할아버지와 사진 찍는 날이기도 하고, 미뤄왔던 쇼핑을 하는 날이기도 하고, 파티를 하는 날이기도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클럽들도 크리스마스 파티를 가장 큰 행사로 준비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인가요? 기독교인에게는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인가요?

원래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예배”라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뜻 자체가 “그리스도의 미사, 그리스도의 예배”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예배라고 하면 예배란 말이 동어반복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자체에 이미 예배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원뜻으로 본다면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을 기리며 예배하는 날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도나투스 파의 논쟁기록을 보면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기 이전부터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지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당시 사람이 해가 가장 짧은 동지를 기념해서 12월 25일날 태양신 축제를 벌렸는데 기독교가 유럽을 점령하면서 태양신 숭배의 날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둔갑했다는 것입니다.

보통 초기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일 보다 수난절기와 부활절을 더욱 의미 있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건이 곧 예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원죄를 대속해 주신 기념비적 사건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활신앙은 인간예수보다 하나님예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하나님 예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다는 뜻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19, 20세기에 와서는 인간 예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습니다. 예수님의 신성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면모가 가려져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 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의 행적과 삶, 말씀 중에서도 자신을 하나님으로 변론하는 구절들 보다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말씀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예수, 역사적 예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부활절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예수든, 인간 예수든 결국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 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기리는 예배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은 언제일까요? 먼저 답을 말씀 드리면 아무도 모릅니다. 몇 가지 정황으로 추론을 해보지만 무엇 하나 강력한 물증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지키고 있지만 정교에서는 1월 7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키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나라들은 두 날 모두 지키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크리스마스를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귀동냥으로나마 이런 사실들을 아는 일부 기독교인들은 “원래 크리스마스는 태양신의 숭배일이야.”, “12월 25일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란 증거가 없어.”라고 말하며 크리스마스를 폄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그 기원이 어떠하든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이 날을 기념하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안식일 논쟁도 비슷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날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날들도 오늘의 기준인 24시간 하루를 적용하기도 어렵습니다. 이후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과 유대인의 안식일인 금요일 사이에 안식일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면 그것을 가지고 따지고 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일주일 중 하루를 하나님께 예배하고 안식하는 날로 여긴다는 의미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크리스마스 또한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오늘의 문제는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크리스마스는 제국의 절기가 되면서 기독교가 승리로 막을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제국주의와 함께 세계에 기독교가 들어가면서 크리스마스도 함께 들어갔습니다. 여전히 기독교의 영향력이 약한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는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아니지만 한국을 비롯해서 많은 나라들이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가 머지 않아 세계를 지배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국주의 적인 전파는 더욱 강력한 자본주의 제국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처음 이야기한 바 있듯이 점점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예수님을 떠올리기 보다는 쇼핑, 산타, 선물, 연휴를 떠올립니다. 산타 할아버지만 하더라도 원래 성 니콜라스에서 차용해 온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몰래 자선을 베풀던 니콜라우스를 기리는 것이었는데 오늘에 와서는 자기 아이들에게 산타를 빙자해 선물을 주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선물은 곧 소비를 뜻하고 자본가들은 뒤에서 웃습니다. 지금 정형화 되어 버린 붉은색 산타 복장도 1931년 코카콜라가 매출이 부진하자 마케팅 차원에서 자신의 상징적인 색인 붉은색의 옷을 입은 산타를 광고에 등장시키면서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서구권 국가들이 다문화, 다종교 국가가 되면서 크리스마스 절기 공공행사에 기독교 색채가 짙은 것들은 점차 배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가 많은 나라를 장악한 것 같지만 정작 크리스마스 자체는 자본주의와 세속주의에 포섭되어 버렸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런 변화들이 큰 의미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런 변화 속에서도 본래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임마누엘

오늘은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본문을 가져왔습니다. 구약에서는 이사야서에서, 신약에서는 마태복음에서 모두 임마누엘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은 오늘 신약 본문인 마태복음 1장 23절 끝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을 가집니다. 이사야가 살던 시기는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눠져 있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앗시리아가 북이스라엘을 침략하던 시기입니다. 남유다는 전성기를 지나 점점 쇠락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당시는 이스라엘 역사의 암흑기가 시작되는 시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 기록들을 보면 나라의 국력은 점점 쇠하고 있는데 빈부격차는 더욱 커져서 서민들의 삶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아와 과부들과 같이 소외된 자들은 더욱 어려운 환경에 내몰리게 됩니다. 그리고 매관매직이 심해지고, 뇌물을 써서 법정에서의 판결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먹고 사는 것도 점점 힘든데 부자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길이 없고 원한만 쌓이는 시기였습니다.

이샤야가 살던 때가 B.C 8 세기였습니다. 그리고 700여년이 지나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B. C 700여년 경에 이사야를 통해 임마누엘에 대한 예언이 시작되고 700여년이 지나서야 임마누엘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 것입니다. 그간의 700여년은 이스라엘의 암흑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시기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유다가 멸망합니다. 페르시아 제국 때 유대인들이 귀국해서 성전을 다시 쌓고 터전을 마련하지만 알렉산더 대왕 이후로 셀류쿠스 왕조 때 큰 전쟁을 치릅니다. 물론 그 전쟁에서 극적으로 승리는 했지만 오래지 않아 로마의 압제에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는 임마누엘의 시기가 아니었을까요? 저는 바로 이 시기가 임마누엘의 시기라 생각합니다.

이사야는 자신의 두 아들 이름을 모두 하나님의 예언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첫째 아들은 스알야숩(남은 자가 돌아오다.)이고, 둘째 아들 이름은 마헬살랄 하스바스(노략이 속히 온다.)입니다. 둘째 아들은 다가올 재난을 의미하고 첫째 아들은 그 고난 중에서도 다시 돌아올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사야서의 정황을 볼 때 첫째 아들인 스알야숩이 임마누엘로 이름이 변경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의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의 아들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나갈 때는 하나님의 도움, 하나님의 은혜라고 쉽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실까 반문하기 쉽습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시절에는 임마누엘을 외치지만 고난 중에는 임마누엘을 노래 부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우리의 고난 중에 더더욱 임마누엘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입니다. 예수를 안다고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이 아닌 사람들도 예수님을 압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종교학적 관점에서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아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인은 아는 사람이 아니라 따르는 사람입니다. 알기만 하는 하나님은 능력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미국 대통령 트럼프를 압니다. 그의 말도 알고, 그의 성향도 압니다. 그렇게 아는 트럼프가 여러분에게 힘이 됩니까? 알기만 하는 것으로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는 하나님이라면 여러분의 삶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힘이 있습니다. 저기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임마누엘,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이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기를 소원합니다. 임마누엘을 고백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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