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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인 사람은 없다

 

(에베소서 4: 16~25) 온 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몸에 갖추어져 있는 각 마디를 통하여 연결되고 결합됩니다. 각 지체가 그 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 안에서 몸이 건설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 안에서 간곡히 권고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 사람들이 허망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이 살아가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기들 속에 있는 무지와 자기들의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지각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그들은 수치의 감각을 잃고, 자기들의 몸을 방탕에 내맡기고, 탐욕을 부리며, 모든 더러운 일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 관해서 듣고, 또 그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면,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말을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1. 지난 주 이야기

지난 주에는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존재들인 인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이유는 자유 때문입니다.

자유는 한 개인의 고유한 개성과 실존을 가능하게 합니다. 각 사람마다 자의식과 자유가 있기 때문에 고유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유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고독한 존재가 된다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 나를 완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유를 감당한다는 것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고독을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을 지는 성숙함을 말합니다. 자유를 감당할 수 있는 성숙함이 있을 때 성숙한 사랑이 가능합니다.

2. 두 가지의 고독

오늘은 그 성숙한 사랑 안에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주 읽었던 시의 제목처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로 끝나버리면 인생은 얼마나 적적할까요? 그래서 오늘 본문 에베소서는 성도의 연합을 이야기 합니다. 몇 번이나 강조 했지만 고독으로부터의 회피가 아닙니다. 고독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성숙한 연합을 말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에베소서 4장에 앞서 3장 후반부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7~21)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에게, 교회 안에서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인간의 고독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저번 주에 이야기 한 바 있듯이 자유로운 존재, 개별 존재로서 오는 고독입니다. 다른 하나는 죄로 말미암아 생긴 단절을 통해 오는 고독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사망은 육의 사망만이 아니라 영의 사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떨어지면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죽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경에서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 아담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신과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고립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 고독은 우리가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두 번째 고독은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고독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고독이라면, 두 번째 고독은 우리를 죽이는 고독입니다.

이런 고독은 이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면서 사라집니다. 예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으면서 황량한 죄의 고독이 물러갑니다. 그분의 사랑이 황량한 광야에 뿌려지면 금새 녹음이 우거지고, 물길이 나며, 그 숲에 동물들이 찾아와 깃듭니다. 그분의 사랑은 겨자씨와 같아서 작은 것 하나만 뿌려져도 크고 무성하게 자랍니다. 그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 높이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서 우리 모두를 감싸 안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3. 평화의 띠로 묶인 공동체

(3~6)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 부르심의 목표인 소망도 하나였습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시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고독의 문제를 해결한 성도들은 성령께서 주시는 평화의 띠로 연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가 되는 것을 강조 합니다.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우리도 한 몸을 이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연합은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또한 하나입니다. 진리와 사랑 안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가 된다고 해서 전체주의로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선물의 분량을 따라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7절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각 사람을 지체라고 부릅니다. 각각의 지체는 모양도 다르고 개성도 다릅니다. 지난 주에 말했듯이 첫 번째 고독의 이유인 개성과 자유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도 각각의 장기와 지체의 역할이 다르고 생김도 다릅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조화롭게 연합되어서 한 몸을 이룹니다.

미국과 캐나다를 비교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다인종 사회를 멜팅팟(Melting Pot)이라 부릅니다. 다양한 인종들이 미국이라는 국가의 용광로 속에서 녹아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멜팅팟에는 개별자가 없습니다. 각각의 개성보다 나라가 우선됩니다.

반면 캐나다는 모자이크(Mosaic) 사회라고 말합니다. 모자이크는 각각의 조각들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자신의 생긴 모양과 색깔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과 어울리는 자리에 위치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개별자들이 모여서 캐나다라는 하나의 국가가 됩니다. 이런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각각의 개성과 자유를 존중하고 살리지만 하나의 뜻으로 모일 수 있는 것이 교회 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저마다 개성은 다르고 생김도 다르고 능력이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아는 일에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각기 다양한 개성과 능력이 어떻게 하나로 연합된 교회가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2장에는 잘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 11~27)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이 하시며, 그는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십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그들이 모두 한 몸이듯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몸은 하나의 지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귀가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온몸이 다 눈이라면, 어떻게 듣겠습니까? 또 온몸이 다 귀라면, 어떻게 냄새를 맡겠습니까?

그런데 실은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우리 몸에다가 각각 다른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

전체가 하나의 지체로 되어 있다고 하면,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실은 지체는 여럿이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 할 수가 없고, 머리가 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 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몸의 지체 가운데서 비교적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덜 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지체들에게 더욱 풍성한 명예를 덧입히고, 볼품 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골고루 짜 맞추셔서 모자라는 지체에게 더 풍성한 명예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이와 같이 각 지체들이 한 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가 됩니다. 개성과 재능은 각자 다르며, 각각의 일이 다르지만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16) 온 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몸에 갖추어져 있는 각 마디를 통하여 연결되고 결합됩니다. 각 지체가 그 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 안에서 몸이 건설됩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모인 교회 입니다.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바 대로 서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서로에게 상황이다.

이렇게 각각 다른 지체들과 함께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관용의 정신일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사람마다 약하고 모난 부분을 서로가 감싸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네소타대 심리학과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전화데이트 실험인데요. 전화 데이트에 참가한 남성들을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눠서 전화 데이트를 하기 전 A그룹에는 예쁜 여자 사진을 보여 줬습니다. 반면 B그룹에는 못생긴 여자 사진을 보여 줬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화데이트를 하게 합니다. 물론 전화 데이트를 하는 여성들은 사진과 무관합니다. 그렇게 전화 데이트를 하고 나서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앞의 실험에서 전화 데이트 때 녹음한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 줬습니다. 그리고 A그룹과 통화한 여성들의 대화와 B그룹과 통화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어느 쪽이 더 다정다감한지, 사교성이 좋은지 등을 평가하게 했습니다. 물론 이 여성들에 대한 사전 정보는 일절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전화 녹음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A그룹과 통화한 여성들이 더욱 매력적이고 상냥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예쁜 여자 사진을 본 사람들은 전화 데이트 때 상대 여성에 대한 우호도가 이미 높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자는 처음부터 여성에게 매우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친절한 남성과 대화하는 여성은 자연스럽게 본인도 친절해 집니다. 그래서 이 전화 내용을 들은 사람들도 A그룹 남성과 통화한 여성들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낀 것입니다.

이 실험은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이 매력적이냐 매력적이지 않느냐는 개인의 자질보다 주위에서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2008년 영국의학저널에 실린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 교수와 제임스 파울러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개인의 행복이 주변 사람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행복도, 불행도 전염된다는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내가 행복하면 내 친구가 행복할 확률이 15%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런 전염성은 내 친구뿐만 아니라 내 친구의 친구에게 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실험결과에서도 말해 주듯이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이웃과 가족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됩니다. 자신이 행복해야 이웃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이웃에게 행복한 환경,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타인에게 받는 영향력 이상으로 내가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좋은 말과 친절한 행동이 상대방을 더욱 친절하고 아름답게 만듭니다.

 

(32)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오늘 에베소서 4장 마지막 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서로에게 친절하고,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관용과 사랑으로 한 몸이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습니다. 참 자유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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