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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이 없다.

(마태복음 8: 19,20) 율법학자 한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태복음 26: 36~40)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그리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근심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예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픈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놓고

떠나라.

1. 인간이란 독특한 존재

 이 세계에서 인간만큼 독특한 존재도 없습니다. 육신으로만 보면 인간은 참 연약한 동물입니다. 호랑이나 사자처럼 강한 발톱이 있지도 않고, 코끼리나 하마처럼 힘이 센 것도 아닙니다. 다른 동물보다 우수한 것 한 가지가 있다고 한다면 지능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 지능만으로 탁월한 지위를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육체로써 인간은 동물들과 크게 다를 바 없거나 약한 부분이 많습니다. 다른 동물들과 같이 자연에 법칙에 따라 본능적으로 살아가기만 한다면 지금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독특한 부분 중에 하나가 자의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단순히 외부에 대한 반응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반응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유물론적인 과학자들은 이러한 자의식을 인간 뇌의 특수한 기능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자의식은 아무런 쓸 모가 없습니다. 냉혹한 자연의 다양한 현상 속에서 기민하게 반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로 리메이크 해서 나온 영화 로보캅을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이보그가 된 로보캅을 테스트하는데 표적을 처리하는 속도가 예상보다 느린 것입니다. 알고 보니 자의식이 간섭해서 처리속도가 더뎌지는 것이었지요. 영화에서는 약물을 과다투여해서 자의식을 최대한 줄이는 것으로 대처 합니다. 그러나 로보캅의 자의식은 약물로 조종되지 않고 결국 깨어나게 되죠.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자의식을 자기(Self), 그리고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육체의 속성과 달리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자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정신이다. 그런데 정신은 무엇인가? 정신은 자기이다. 그러면 자기는 무엇인가? 자기는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이며 또는 그 관계 안에서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이다. 자기는 관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이다. 인간은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의,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의, 자유와 필연의 종합이며, 간단히 말해서 종합이다. 종합은 그 둘의 관계이며, 이렇게 보건데 인간은 아직 자기가 아니다.”

관계가 자신이 아니라 관계와 관계하는 관계 즉 자의식을 가지고 나와 세계 사이를 조망하고 반성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의식은 의지적 선택과 결단이 가능합니다. 이 자유가 사람을 독립된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것이 필연과 법칙대로 움직인다면 각 개인의 존재 의미는 없습니다. 말 그대로 자연과 운명의 수레바퀴아래 굴러 갈 뿐입니다.

반면 자유는 한 인간 개인의 독자적인 개성과 존재를 가능하게 합니다. 각 사람마다 자의식과 자유가 있기 때문에 고유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유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고독한 존재가 된다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 나를 완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2. 혼자이신 예수님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항상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족, 제자들,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항상 예수님과 함께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혼자 계셨습니다.

먼저는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하고 시험을 받으실 때 혼자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날마다 시간을 정하여 혼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데려갔던 제자들은 모두 잠들고 혼자서 고독하고 외로운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가 잡혀서 심문 받을 때도 그의 사람은 없었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그의 제자들은 달아나고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이 어디 가시든 쫓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들과 함께 가시는 중이신데도 뜻 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실제로 거처 하실 곳이 없어 하신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어야 할 것과 다시 살아날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로마제국과 같은 나라가 아니라 믿음 가운데 세워질 영적 세계라는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이해하는 제자가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 예수님께서 진심을 터놓고 말할 사람, 이해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3. 고독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이해 받고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예수님처럼 숭고하고 높은 사명 때문만은 아닙니다. 저마다 자유가 있고 독특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해는커녕 오해로 인해 마음 고생을 해본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힘들고 괴로울 때는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부모나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이해가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똑같이 경험한 과거의 경험까지도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우자는 어떻습니까? 오늘 시에서처럼 아무리 금슬 좋은 부부라 하더라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자의식이 있는 인간에게 고독과 불안은 모든 사람이 짊어져야 할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4. 고독과 함께 할 수 있는 성숙함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성숙함이다

이와 같이 외로운 영혼들은 사랑을 찾아 방황하기도 합니다. 고독한 영혼을 달래줄 무언가를 찾습니다. 그래서 종교에 빠지기도 합니다. 고독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강력한 사이비 종교에 잘 빠집니다.

아니면 위험한 연애를 하기도 합니다. 불꽃처럼 사랑을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사람의 기준에 맞춥니다. 상대방이 떠나가면 그 상실감을 이기지 못해 베르테르처럼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면 떠난 사람의 배신감 때문에 분노에 사로잡혀 복수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사랑은 시작이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끝이 좋지 않습니다.

참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고독을 짊어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고독은 곧 나의 자의식과 자유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고독이 있다는 것은 내가 온전히 나로서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나’와 ‘너’의 만남입니다. 온전히 자유로운 개체와 개체의 만남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사랑이 아니라 종속관계가 됩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되기 쉽습니다. 고독을 짊어 질 수 있는 주체와 주체가 만날 때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독을 짊어지시면서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했습니다. 여러분도 누군가를 참으로 사랑할 수 있으려면 자신의 고독을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성숙함이 있어야 합니다.

캘거리한인연합교회 성도님들 모두 예수님처럼 자신의 고독을 짊어질 수 있는 성숙함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성숙함으로 자신이 자신으로 빛날 뿐 아니라 이웃을 있는 그대로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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