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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건달’님들, 살림살이 확 나아지셨습니까?”




유럽에 있는 동안 저는 조국통일 인사들을 적잖이 만났습니다. 이역만리에서 분단된 조국을 바라보면서 통일 염원을 갖는 것은 민족 구성원으로선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인사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조국 통일을 외치면서 몇 안 되는 사람들이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일이나, 물리적 탄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인지 서로 경쟁하듯 과격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 등은 그들이 그들만의 무대에서 활약하는 ‘통일 건달’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습니다.

그들의 존재 때문은 아닙니다만, 언제부턴가 저에겐 못된 버릇이 하나 생겼습니다. ‘말’의 진정성을 엿보기 위해 ‘말’의 주인공에게 국록(나라에서 주는 녹봉)이나 권력의 자리를 안겨주는 상상을 해보는 것입니다. 제 외할아버님은 제가 소싯적에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를 때 야단치는 대신에 “사람은 노름을 해보면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라는 말씀을 남겨주셨는데, 저는 사람들이 살림살이가 확 달라질만한 국록이나 권력을 쥔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그들의 ‘말’의 진정성을 가늠해 보는 것입니다. 못된 버릇인 게 분명한데, 흥미로운 것은 그런 상상의 모습이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이든, ‘민주’든, ‘좌파’든, ‘진보’든, ‘노동’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처지가 의식을 규정 한다’라는 명제를 적용해 보는 것이지요.

저의 곱지 못한 시선은 오늘 ‘민주건달’들이 득세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면서 노무현 정권이나 열린우리당, 또는 참여정부의 ‘개혁’이란 게 <‘민주건달’들의 일자리 창출>의 의미로 남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알량하나마 권력까지 덤으로 갖게 되었으니 ‘민주건달’로선 주체하기 어려울 지경일 수 있겠습니다. 닳고 달은 관료들에게 포섭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와 같았을 것입니다.

전제할 필요도 없는 말입니다만, 물론 반민주세력이 계속 득세한 것보단 수백 배 낫습니다. 역사 진보의 발자취로 보더라도 ‘민주건달’들도 한 자리 하는 과정을 거쳐야겠지요. 그런데 ‘친절한 금자씨’의 말을 빌려 “‘민주’나 잘 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민주건달’들이 ‘좌파’까지 끌어안으려고 안간힘을 쓰기 때문입니다. 반민주세력이 종종 그들을 ‘좌파’라고 몰아세우는데 ‘민주건달’들은 이를 은근히 즐기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건달’의 미덕으로 보더라도 온당치 않은 일입니다. ‘꿩 먹고 알 막고’도 유분수입니다.

과문의 탓인가요? 저는 ‘민주건달’에게서 노사관계에서 방향키를 반대로 바꾼 것에 대해 옹색하나마 그 이유를 들은 바가 거의 없습니다. 대미관계 또한 그 방향타를 반대 방향으로 틀었는데 궁색하나마 그 이유를 들은 바가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초심을 부정한 사람들이, 그래서 민중을 말했던 과거의 자신을 배반한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좌파’를 들먹이는 행위는, ‘왕의 남자’ 앞에게도, ‘중세의 부퐁’ 앞에게도, 왕후장상에게 예속되었던 예술인들 앞에게도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는 과거에 반민주에 맞섰던 민주의 ‘아우라’까지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의 말을 빌려서 한마디 해봅니다.

“‘민주건달’님들, 살림살이 확 나아지셨습니까?”

http://wnetwork.hani.co.kr/hongsh/contents_view.html?log_no=2202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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