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867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30여년 전을 생각한다- 박노자

서울대 백아무개 강사의 자살 관련 보도를 읽었을 때, 필자는 문득 30여년 전 전태일의 분신자살이 생각났다. 물론 두 사람이 비극적 최후를 택한 동기는 달랐다. 전태일의 자살은 노동자로서 투쟁의 마지막 단계였던 데 반하여, 백아무개 강사의 경우에는 ‘시간강사’로서 부딪히는 암울하고 억압적인 현실에 대한 전반적인 절망의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의 입장에서 보면 두 사건 사이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한 역사적 단계에서 생산수단의 발전에 가장 많이 기여한 한 피억압계층의 대표자가 그 발전에 기생하는 착취자의 오만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기 생을 마감한 것이다.
30여년 전 한국의 ‘굴뚝산업’이 본격적으로 세워졌을 때 공업노동자들은 생산 발전의 ‘주력부대’였다. 그러나 그들이 받았던 대접은 살인적인 저임금에다가 장시간의 고강도 노동, 기업운영권으로부터 소외였다. 노동자가 자본의 소모품에 불과한 현실에 전태일은 분실자살로써 맞선 것이다.

오늘날 굴뚝산업이 사양의 길로 접어드는 한국이 10여년을 허송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식산업 위주의 사회로 재편돼야 한다. 굴뚝산업이 어차피 인접 저임금 지대로 계속 이전되는 지금, 같은 문화권의 중국·베트남 대학생들이 찾아올 수 있는 한국으로서는 고등·전문교육 서비스가 제3의 수출 부문으로서 위치를 점하고 해외 유학생 수가 해마다 15% 이상 오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길이 최적의 선택일 것이다.

한국이 극동지역 문화·교육 서비스 수출의 새 중심으로 떠오르는 이 역사적인 ‘제2산업화’ 시대의 주력부대는 누구인가 시간강사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교육산업의 비정규직 숙련 노동자들이다. 이들 6만여명의 비정규직 교단 노동자들이 대학수업의 절반 이상을 담당할 뿐 아니라 첨단 연구프로젝트의 연구 노동력이 되기도 하고 한국을 구미의 최신 연구서적이 들어오는 ‘번역의 왕국’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들의 노력으로 한국은 인접 국가 학생이 찾아올 만한 참신한 연구와 교육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노고에 돌아오는 것은 무엇인가 수업 준비, 채점, 번역, 연구, 교수의 연구 보조나 논문 대필로 이어지는 그들의 일과는 때론 30여년 전 공업노동자의 일과보다 길다. 강의 배정을 담당하는 교수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불안정한 신분은 노동법이 먼 시절 산업노동자의 신세와 다르지 않다. 30여년 전 하급 공업노동자의 소득이 도시민 평균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쳤듯 시간강사층의 가구소득도 도시민 평균의 50~60% 정도다. 학생들이 학교 당국을 상대로 주장을 펴긴 하지만 강사노조가 있는 학교는 드물고, 강사의 파업은 30여년 전 산업노동자의 파업처럼 하기 힘든 일이다. ‘지식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소장 학자들이 교육자본의 ‘먹이’가 되는 상황은 많은 이들에게서 삶의 희망을 빼앗기도 하고 지식·문화사회로의 전환을 방해하기도 한다. 설령 세계적인 천재적 두뇌와 재능을 가졌다 해도 강의가 없는 방학 때 아이들의 비싼 양육비 걱정으로 잠 이루기 어려운 사람이 창조적이며 세계적인 연구결과를 내기 쉽겠는가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고정급 지정이나 연구비 증액 등의 방안도 의미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신분의 안정화와 결사권, 그리고 나아가서는 학교운영 참여권의 보장이다. 한 번 임용된 이상 ‘비상근 교원’으로서 위치가 부여돼 ‘엿장수 마음대로 해고’가 불가능해야 교수가 강사를 머슴으로 부리는 추태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강사노조가 임단협의 주체로 나서고 교수나 학생, 직원과 함께 학교운영의 떳떳한 주체가 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 ‘수많은 백씨’들을 죽음 아닌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개해갈 수 있을 것이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http://www.hani.co.kr/section-001000000/2003/06/001000000200306222210009.html
?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글쓰기 및 편집 방법 2 file 다중이 2016.06.12 48896
381 More American Schools Stop Textbook Falsifying Korea 운영자 2007.01.23 8646
380 요코이야기에 대한 어느 미국인 교수의 평가 A matter of context 운영자 2007.01.23 13816
379 Torn Between Fiction and Reality 운영자 2007.01.24 16226
378 한국에서의 인종차별: 원어민영어강사의 경우 운영자 2007.01.24 8499
377 안녕하세요 캘거리에 잘 도착했습니다. 구정희 2007.02.02 7958
376 외숙모가 가시며 인사를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구정희 2007.02.14 8822
375 야채스프 만드는 법 구정희 2007.02.18 9589
374 영어공부겸 독서모임 구정희 2007.02.21 8526
373 교우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 Andy 2007.02.24 9327
372 인터넷으로 한국MBC라디오를 청취하실수 있습니다 이종해 2007.03.01 8028
371 씨앤드림에서 온 편지-영어 독서 모임과 관련해서 구정희 2007.04.07 8146
370 ★ 기독교 자료를 찾고 계시나요?★ 이종림 2007.04.24 7929
369 The annual CBC/Calgary Reads Book Sale: May 26 & May 27 로즈마리 2007.05.02 30351
368 [우리학교] 상영회 및 시사회 안내 성기영 2007.05.04 9008
367 항상 즐거운 삶을 살고 싶다면 영심이 2007.05.05 8478
366 바깥세상은 6·25 전쟁 산속은 그림과의 전쟁 로즈마리 2007.05.16 8816
365 교회 이전 구정희 2007.07.16 8657
364 교회 이전 약도입니다. 참고하세요. 최의승 2007.07.20 9067
363 요가, 명상 교실;7월29일 11시 30분 구정희 2007.07.24 8830
362 요가 명상 교실 11시 15분(8월12일) 구정희 2007.08.01 9105
36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 전남양 2007.08.21 8678
360 재미있어서 ^^ 구정희 2007.08.23 8189
359 부탁드립니다 류한필 2007.08.30 7946
358 소중한 당신에게 힘이되어 드리겠습니다 화명당 2007.09.09 9589
357 하나님은 누구인가 구정희 2007.09.22 8188
356 2007 미얀마 민주화시위, 88년과 무엇이 다른가? 로즈마리 2007.10.01 8709
355 버마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로즈마리 2007.10.08 8062
354 캐나다이민도움요청합니다 백종현 2007.10.09 8075
353 만세반석 열리니 로즈마리 2007.10.20 37258
352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 로즈마리 2007.10.30 1086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20 Next
/ 20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