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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품격과 미국의 운명


이라크 전쟁은 끝났다. 부시 대통령은 전쟁 승리를 공식 선언했다. 전쟁을 벌일 의사도 능력도 전혀 없는 상대를 일방적으로 침공해 `전쟁’이라 일컫고, 지구촌의 그 누구도 의심한 적 없는 승리를 공표함으로써 인류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인류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한 오만한 제국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명분과 정당성, 원초적인 도덕성마저 상실한, 오로지 힘에 의존한 제국의 탄생은 동시에 급격한 종말을 예고하는 신호탄임을 인류 5천년 역사는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힘의 팽창과 군사력으로 막강한 국가를 이룩한 경우는 많았다.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와 티무르 제국,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이 그러했다. 강력한 군사력과 지도자의 카리스마에 의해 얻어진 광대한 영토는 그 주인공의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진정으로 제국이란 다양한 문화를 아우르는 포용성과 나와 다른 색깔, 다른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문화용광로가 가동할 때만 유지가 가능하다. 그리고 문화다양성과 사고의 유연성 상태가 바로 제국의 수명을 결정해준다. 인류 최대의 제국 로마와 500년 이상 세계제국을 풍미했던 오스만 터키가 그 좋은 예이다.

따라서 군사공격 못지 않게 전쟁 이후를 다루는 방식에서 그 제국의 진정한 힘과 품격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적장에 대한 정중한 예의, 상대방 문화유산과 정신문명에 대한 존중, 패배한 주민에 대한 보살핌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는 그럼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부상한 병사들을 직접 위문하고, 전쟁에 참여한 멕시코와 필리핀 출신 장병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는 제스처를 보이면서도, 물과 기초 의약품이 없어 이라크 병원에서 죽어가는 어린 생명과 선량한 시민의 처참한 상황에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후세인의 초상화를 탱크로 깔아뭉개고, 그의 조각을 총칼로 난도질하는 참혹한 장면을 수없이 반복하고, 기존의 기반시설과 문화유산을 될 수 있으면 철저히 붕괴시킨 다음, 이라크 석유 판 돈으로 근본부터 뜯어 고쳐 새 판을 짜겠다는 섬뜩한 발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후세인 정권이 몰락한 이라크 전역은 무정부 상태의 약탈, 방화라는 처참함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인류문명의 요람만은 지키자는 유네스코와 지성인들의 간곡한 호소는 비아냥거리는 메아리로 돌아왔다. 특히 박물관을 파괴하고 유물을 약탈해가도록 방치하는 미국의 의도적인 전략은 분명 역사가 기록할 문명범죄다. 그 유물들은 얼마 후 헐값으로 밀거래되어 미국과 서방의 박물관을 장식할 것이다. 환희에 찬 미국의 매스컴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장면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반복해서 방영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후세인 정권에서 이라크 국민이 얼마나 억압받고 굶주렸으면 저런 약탈과 분노가 표출되겠는가’ `치안과 민주주의의 기본의식이 없는 이런 민족에게 어떻게 스스로 자기 정부를 선택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비록 대량실상무기를 찾지는 못했어도(있지도 않았지만) `이라크 국민 해방’이라는 이번 전쟁의 구호가 옳았음을 입증하고 향후 이라크를 직접 군정으로 통치하고 싶은 미국의 속셈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21세기 미국이 세계 초강국으로 리더십을 계속 유지하게 될지 앞으로 인류는 지켜볼 것이다. 이라크 국민에게 국가를 되돌려주고,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이 존중되어야 한다. 시리아건 북한이건 더 이상 가공할 첨단무기를 내세워 전쟁으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겠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미국이 진정한 세계국가로 거듭날 것인가, 아니면 독선과 고립으로 급격한 패망의 길로 들어설 것인지 이 전쟁 이후 미국의 정책방향과 세계인식이 결정해 줄 것이다.

이희수/미 워싱턴대 중근동학과 교환교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http://www.hani.co.kr/section-001000000/2003/04/0010000002003041719130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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