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내 기대는 몇 년 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약국 일로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시어머니께서 “네가 시집와서 한 게 뭐가 있냐”고 하셨다. 나는 거의 그 자리서 쓰러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약국에 갇혀 살면서 시누이의 대학 학비를 대고 매달 용돈을 주고, 명절과 생신을 빠짐없이 챙겨 드렸는데 시집와서 지금까지 한 게 뭐가 있냐니!!!
나는 너무나 절망스럽고 억울해서 매일 울며 남편에게 하소연했다. 어떻게 내게 어머님께서 그렇게 말하실 수 있냐고. 내가 정말로 시집와서 한 게 없냐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아무리 남편을 붙들고 따지고 하소연해봐도 내 속은 풀리지 않았고 억울함만 깊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티브이에서 엔 카운터 그룹에 대한 이야기의 끝무렵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 일단 상담이라고 하니 내 고민을 귀담아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위로해주고, 조언을 해 주리라 막연히 기대하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3박 4일 일정의 엔 카운터 그룹에 신청을 하였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12명의 나 같은 신청자를 한방에 모아놓고 감수성 훈련이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훈련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 그룹의 진행자는 각자 별칭을 지어 소개를 하게 한 뒤 "이곳에서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느낌을 말하는 곳입니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느낌을 말해 주십시오" 그러더니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모두 나처럼 당황해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었다. 갑갑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 나는 이렇게 말을 시작하였다.
“나는 정말로 절박한 심정으로 어렵게 시간을 내어 이곳에 왔습니다. 그런데 해주는 것은 없고 느낌만 말하라고 하니 '당황'스럽고 '화'가 납니다.”
그랬더니 진행자는 “지금 일어나는 솔직한 느낌을 말해주니 참 반갑고 시원합니다”라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