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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section-021106000/2007/10/021106000200710040679051.html
버마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내부 운동가들을 통해 들여다본 버마 사태… 예전과 달리 치밀한 준비와 망명단체들의 지원 속에 폭발한 승려 시위


▣ 타이-버마(현 미얀마) 국경지대=정문태 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network@loxinfo@co.th


긴가민가했다. 기대가 영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달리 무슨 긴장감이 들었던 것도 아니고.

“3일 동안 밀선들을 통해 버마 전역의 승려들을 조직해놓았고, 지난 9월9일 우리는 군사정부에 17일을 최종일로 잡아 4개 조건을 요구했다. 만약 군인들이 우리 요구를 무시한다면, 18일부터 전면적 항쟁에 부딪칠 것이다.”


△ 켜켜이 쌓여온 거대한 분노가 함성이 돼 거리를 덮쳤다. 끝없이 이어진 붉은 물결은 군부독재의 탄압을 이겨낸 버마민중의 핏줄기다. 지난 9월24일 버마 최대도시 랑군(현 양곤)에서 벌어진 반정부 집회에는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사진/AFP PHOTO/ MIZZIMA NEWS)


긴가민가 했지만 아찔해졌다


기름값 인상을 철회하라며 9월5일 포코쿠에서 시위를 벌이던 승려들이 군인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인 지난 9월16일, 버마승려동맹(All Burma Monks League) 만달레이 대표인 캐 메인다 스님과 통화한 내용이 그랬다는 말이다.

“첫째 포코쿠 만행을 사과하고, 둘째 기름값을 내리고, 셋째 아웅산 수치를 포함해 모든 정치범들을 석방하고, 넷째 사회 복구를 위해 야당과 대화하라.”

그이가 내건 조건들도 별로 새로운 게 없었다. 어차피 1962년부터 버마를 주물러온 군인이라는 자들이 갑자기 승려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요구 조건을 들어줄 일도 없을 테니.

이건 그동안 버마 승려들에 대한 애증 탓이었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난 20년 가까이 버마 민족해방·민주혁명전선을 쫓아온 기자들 사이에는 승려들을 별로 믿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처음부터 그랬다기보다는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한 경우라고 보는 것이 옳다.

1988년 민주항쟁이 군인들의 유혈 진압으로 끝난 뒤, 버마 사회 내부에서는 그 군인들에 맞설 만한 대중 조직이 전혀 없는 실정이었다. 학생운동 조직은 전설적인 운동가 민코나잉을 비롯한 주축들이 모두 감금된 상태에서 겨우 지하 밀선을 통해 ‘안부’만 주고받는 상태였고, 버마 국경으로 빠져나와 무장투쟁을 벌여온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도 이제 깃발만 겨우 붙들고 있는 상태니. 그나마 정치조직이라고 아웅산 수치로 상징되는 민족민주동맹(NLD)은 정치력과 투쟁력 부재로 계속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꼴이었고.

하여, 불교 사회 속의 버마 민중들은 군인들에 맞설 만한 전국적 조직을 갖춘 유일한 집단인 승려들을 ‘마지막 희망’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기대가 지난 20년 동안 채워지지 않음에 따라 승려들에 대한 존경과 불신이 공존해왔던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승려들에게 꼬인 정치를 풀라고 윽박지르는 이상한 현상이 버마 안팎에 존재했던 셈이다.

△ 랑군 도심에서 지난 9월27일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 병력이 시위대 진압작전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 MANDALAY GAZETTE)

승려들이 내건 최후통첩일인 9월17일, 이번에는 버마승려동맹(ABMU)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스님과 연결됐다. 군인 정부로부터 무슨 대응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공식적인 반응은 없고, 정부 당국자들이 절을 찾아와서 고참 스님들에게 선물을 주면서 시위 자제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통보한 대로 오늘 자정까지 반응이 없으면 내일부터 시위에 돌입한다”고 강조했다. 시위 계획과 참여 규모를 묻는 질문에 “그건 밝힐 수 없다. 분명한 건 최소 6개 도시다. 우린 부처의 가르침을 쫓아 도덕적인 방법을 택할 것이다”며 좀 추상적으로 설명했다. 또 긴가민가였다.

그리고 하루 뒤인 9월18일, 랑군과 만달레이에 쏟아져나온 승려 수가 2만 명을 넘어섰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정신이 아찔해졌다. 다시 급하게 그 스님들을 찾았지만, 이미 통신이 힘든 상태였고, 9월24일부터는 전화가 아예 먹통으로 변했다.


항복이냐 무덤을 파느냐


버마승려동맹(All Burma Monks Alliance)이라는 이름 아래, 비선을 통해 전통적인 투쟁 경력을 지닌 버마청년승려동맹(ABYMU), 랑군을 중심으로 한 랑군청년승려동맹(YMUR), 만달레이를 발판으로 삼은 버마연방승려동맹(ABFMU) 그리고 최근에 조직한 청년학생승려조직(YSMO)이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있지만, 모두 교신이 두절됐다.

승려들과 통신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학생운동가들을 찾았다. 1988년부터 불법 감금돼오다 2004년 석방된 뒤, 2005년에 이어 다시 지난 8월21일 시위로 세 번째 감금된 민코나잉과 함께 ‘88세대학생’이라는 조직을 건설한 테이 치웨(42)와 9월23일 선이 닿았다. 이 88세대학생들은 8월21일 기름값 인상 반대를 외치며 랑군에서 시위를 벌여 9월5일 포코쿠 승려 시위를 간접적으로 추동했던 조직이다.

“승려들이 시민들의 동참을 요구했고, 우리 조직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린 이번 시위가 승려들만의 몫이 아니라 모든 시민과 국가 전체의 몫이라 믿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학생운동가 라 묘 나웅(42)은 “만약 군인들이 무력으로 진압을 시도한다면 우린 더 큰 힘과 방법으로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호락호락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기회를 마지막으로 여긴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14~15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두 학생운동가는 “학생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랑군에서 학생들을 만나보라. 학생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둘은 또 “이미 군인들은 오래전부터 학생들을 폭탄으로 여겼고, 그 폭탄은 이제 터질 시점에 이르렀다”고 현지 시위 상황을 설명했다.


△ 일본인 카메라 기자 나가이 겐지가 버마 군인의 총에 맞아 쓰러진 직후, 진압부대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는 시위대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사진/ 연합/ MANDALAY GAZETTE)


망명단체들의 놀라운 ‘통신혁명’


이런 상황 속에서, 이미 승려를 주축으로 한 시위대 규모가 10만 명을 넘어섰고, 9월26일 군인들의 발포로 1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9월28일 금요일 자정, 현재까지 열하루 동안 벌어진 시위만 놓고 보더라도 이번 상황은 버마 전문가들이나 외신기자들이 예측했던 선을 훨씬 뛰어넘은 셈이다. 오랫동안 버마를 취재해온 버틸 린트너의 말마따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고 보는 견해들이 지배적이다. 불교 사회인 버마에서 승려들이 길바닥으로 뛰쳐나왔고, 군인들이 그 승려들을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살해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타협점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번 시위를 쫓아보면, 처음부터 군인들은 선택의 폭이 전혀 없었다. 오직 극단적인 두 갈래 길, 하나는 승려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승려 시위대를 뭉개버리는 것인데, 전자는 결국 항복 선언을 하는 꼴이 되고 후자는 불교 사회에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되고 마니.

실제로 이번 승려 시위는 제한적 투쟁으로 끝난 ‘1990년 보이콧’과 상당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당시 민족민주동맹이 승리한 총선 결과를 군인들이 뒤엎자 승려들이 군인들의 보시를 거부했고, 그 과정에서 지도부가 모두 체포당한 뒤 우 예 와다 스님 같은 이들이 옥사하기도 했지만, 대중선전이나 대중접촉이라는 면에서 이번 시위와 전혀 달랐다.

말하자면, ‘1990년 보이콧’은 이번처럼 승려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시민들과 접촉하지 못한 결함을 안고 있었다. 사실은 그 보이콧으로 수많은 승려들이 체포·구금·투옥·살해됐지만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지지 않는 일을 놓고 시민들은 별로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는 뜻이다.

또 하나, 이번 승려들 시위는 규모 면에서뿐만 아니라, 조직이나 기획 단계에서부터 매우 치밀한 준비를 해왔고, 그 배경에는 버마 망명단체들의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까지 승려들 시위와 전혀 다른 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승려들 시위나, 앞서 88세대학생들이 주도했던 8월21일 시위는 모두 버마 안팎의 정치단체나 혁명조직들이 직·간접적으로 깊이 개입한 흔적이 보인다. 특히 버마-타이 국경 쪽에서 활동하는 망명 정치단체들이 국제사회와 버마 내부를 잇는 다리 노릇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버마여성동맹(BWU), 민중방위전선(PDF)을 비롯한 7개 정치단체의 연합체인 버마민주포럼(FDB) 서기장 나이옹은 “버마 내부 조직들이 할 수 없는 대언론 관계와 정치선전을 우리 쪽에서 대신하고 있다”며 이번 시위 상황에 관여하고 있음을 밝혔다.


△ 9월27일 서울 버마 대사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버마 어린이가 평화적 시위를 폭력진압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연합/ REUTERS/ LEE JAE-WON)

버마민주포럼의 구성단체 가운데 하나인 민주개발네트워크(NDD) 의장인 오말은 “버마 내부 조직들에 무선전화기와 컴퓨터 같은 장비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버마학생민주전선 사무총장 서니 같은 이들은 “전통적으로 버마학생민주전선은 버마 내부의 학생운동가들과 연결해오면서 학생조직의 재건을 위해 애써왔고, 그런 활동이 이번 시위와 무관하지 않다”고 밝혔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시위가 벌어지고부터 버마민주포럼과 버마학생민주전선을 비롯한 망명 정치단체들은 거의 실시간 이메일을 통해 내부 뉴스와 사진을 내게 보내오고 있다. 그들로부터 이메일을 받고 있는 몇몇 기자들은 저마다 1988년 상황과 비교하며 ‘통신혁명’에 놀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작 그 통신수단보다는 오히려 철저히 차단당한 군인 독재통치 사회를 비집고 들어간 혁명세력들의 조직력이 더 돋보이는 국면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런 상황 속에서 버마-타이 국경 쪽 취재를 해온 옹 나잉(〈BBC〉 라디오 특파원)은 “이번 시위가 그동안 버마 내부 조직들과 국제사회의 연대를 총결산하는 한판 승부처가 될 듯싶다”며 어떤 형태로든 “결과가 나오는 싸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던 바로 그 승려들 투쟁 소식에 버마-타이 국경 전선도 크게 고무되고 있는 분위기다.


버마-타이 국경 전선도 고무되는 분위기


1948년부터 버마 정부에 맞서 해방투쟁을 벌여온 카렌민족연합(KNU)의 사무총장 만 샤르 라판은 “버마 전체를 위해 투쟁하는 승려들을 존경하며, 카렌은 모든 단체들과 연대해서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할 계획”이라며 평화투쟁과 동시에 국경전선의 무장투쟁을 강조했다.

“현재 국경전선에서는 카렌민족해방군(KNLA)이 버마 정부군을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라 승려들의 투쟁에 직·간접적인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민족민주동맹해방구(NLD-LA) 의장인 우 틴옹은 “민족민주동맹은 승려들을 지원할 것이고, 그 승려들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즉각 나서야 한다. 이미 승려를 살해한 그 군인들의 총질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건 국제사회의 압력뿐이다. 이건 마지막 기회다”라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신몬주당(NMSP) 사무총장 나이 한 타르는 “시민을 대신한 그 승려들을 존경하며, 몬주 쪽에서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승려와 시민들 시위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미 시민들의 인내는 한계를 넘었고, 이번 시위는 결코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국경의 민족해방·민주혁명 단체들은 이렇듯 저마다 이번 승려 시위를 군사독재 타도 총력투쟁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어쨌든 1906년 청년불자연합(YMBA)으로 출발해서 대영국 식민투쟁의 깃발을 올렸던 그 승려들의 후예는 이제 새로운 버마 역사를 향해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군인과 승려, 그 둘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은 상황 속에서 버마 역사는 다시 한 번 민중들에게 고단한 투쟁을 명령하고 있는 모양이다.
Gracias a la vida


 
Violeta Par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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