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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는 1980년대 제 3세계 교육론자로서 한국에 알려졌습니다. 번역된 일리치의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탈(脫)학교사회』(71년)
『에너지와 공평』(74년)
『의료의 한계』(76년)
『그림자 노동』(81년)
『젠더』(82년)

[학교는 죽었다; School is dead : alternatives in education]의 저자 라이머(Everett W. Reimer), [페다고지; Pedagogy of the oppressed ]의 프레이리 (Paulo Freire)와 더불어 한국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학 일-이 학년 때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교육학전공하시는 선생님의 학위논문 주제였고, 같은 교회에서 이것을 주제로 강연을 하셨는데 제가 건방진 질문을 던져 좌중을 당황하게 했던 부끄러운 기억도 나구요. 일리치 선생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Dear friends,

One of my teachers -- one of our great compassionate thinkers --
Ivan Illich, died quietly yesterday (Monday, December 2nd), at 2 pm
German time, in Bremen. Ivan was a great elder brother to many of us, a
tremendous inspiration to all who work on behalf of real community,
conviviality, and the local earth. A rich and radical intelligence with
twinkling eyes and the sly grin of a playful fox -- it's hard to imagine
the world without him.

Thanks so much, Brother! -- and Godspeed! Blessings on your
metamorphosis back into the winds and the waters, into the stars
overhead and the stones underfoot...

In the dark goodness of things,
grief and tears to water the earth --
Dave Abram

카톨릭 사제이면서 교육자로서의 열정을 불태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창한

평화의 근원적 의미를 생각한다 - 이반 일리치
<유리병편지> No. 119. 평화의 근원적 의미를 생각한다 - 이반 일리치(Ivan Illich)
요시카츠 사카모토 교수님. 당신께서 나를 <아시아 평화연구 학회>의 창립에 즈음하여 기조강연의 연사로 초청해주신 데 대해 나는 영예스럽게 생각하는 동시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한 신뢰를 보여주신 데 대해 감사드리면서, 또한 일본적인 것에 대한 나의 무지를 여러분들께서 참아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그 언어에 대하여 완전한 무지 상태에 있는 나라에서 공적인 강연을 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내가 오늘 말하도록 초대받은 주제는 현대영어의 쓰임새로는 붙잡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날 핵심적인 영어단어 속에는 폭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존 F. 케네디는 빈곤에 대한 '전쟁'을 선포할 수 있었고, 지금 평화주의자들은 평화를 위한 '전략'(문자 그대로의 전쟁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이처럼 공격성으로 틀 지어진 언어를 가지고 나는 여러분에게 평화의 진정한 의미의 회복에 관해 말씀드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서 내가 여러분들의 토착어에 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계속 염두에 두면서 말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 내가 말하는 모든 낱말 하나하나는 평화를 말로 드러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나 자신에게 상기시켜주게 될 것입니다. 내게는 한 인간사회가 누리는 평화는 그 사회구성원들이 향유하는 시(詩)만큼 개성적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의미를 번역한다는 것은 시를 번역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인 것입니다.

평화는 각 시대와 각 문화영역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타케시 이시다 교수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처럼, 각 문화영역 내에서도 평화는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중심부에서는 "평화의 유지"가 강조되지만, 주변부 사람들은 "평화로이 내버려두어져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30년간의 이른바 '개발의 시대' 동안에 후자의 의미, 즉 '민중의 평화'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나의 주된 논제입니다. '발전'이라는 외피 밑에서 세계 전역을 통하여 민중의 평화를 깨트리는 전쟁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발전이 이룩된 지역에서는 민중의 평화는 사실상 사라져버렸습니다. 나는 경제발전에 대한 제약 - 풀뿌리에서 시작하는 - 이야말로 민중이 자기의 평화를 회복하는 데 필수조건이라고 믿습니다.

평화의 다양한 의미

문화는 늘 평화에 의미를 부여해왔습니다. 각각의 '에스노스' - 민중, 공동체, 문화 - 는 그 자신의 '에토스' - 신화, 법률, 여신, 이상 - 에 의해 비쳐지고,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강화되어 왔습니다. 평화는 말처럼 토착적인 것입니다. 이시다 교수가 선정한 예들 속에서 에스노스와 에토스 사이의 이러한 교응관계는 극히 명증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유태인의 경우를 보십시다. 유태인의 가장이 팔을 들어 자신의 가족과 양떼들에 축복을 내리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샬롬'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평화로 번역합니다. 그는 '샬롬'을 "먼 조상 아론의 턱수염을 통해서 올리브 기름처럼 뚝뚝 떨어지면서" 하늘로부터 흘러오는 은총으로 여깁니다. 셈족의 아버지에게 평화는 유일하고 진정한 신이 최근에 정착한 양치기들로 된 열두 부족 위에 내려주는 정의의 축복인 것입니다.

유태인에게 천사는 '샬롬'이라고 말하지, '팍스'라는 로마어를 말하지 않습니다. 로마의 평화는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의 총독이 팔레스타인의 땅에서 보병군단의 군기를 치켜들 때, 그의 시선은 하늘로 향하지 않습니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를 봅니다. 그는 그 도시에 법과 질서를 부과합니다. '샬롬'과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같은 장소, 같은 때에 존재하더라도 그 둘 사이에는 아무 것도 공통적인 것이 없습니다.

우리 시대에 그 둘은 이제 모두 퇴색해버렸습니다. '샬롬'은 사사화(私事化)된 종교 영역으로 물러나버렸고, '팍스'는 '평화'라는 말로 세계를 침략해왔습니다. 팍스는 2천년 동안 지배 엘리트들에 의해 사용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용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십자가를 이데올로기로 전환시키는 데 이용했습니다. 카알 대제는 이 용어를 삭슨족의 대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습니다. 이노센트 3세는 칼(劍)을 십자가에 종속시키는 데 '팍스'라는 용어를 동원했습니다. 현대에 와서 정치지도자들은 이 용어를 조작하여 정당으로 하여금 군대를 통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와 클레망소가 다같이 사용했던 말인 '팍스'는 이제 그 의미의 경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이 용어를 체제 쪽에서 사용하든 반체제 쪽에서 사용하든, 그 정통성을 동서 어느 쪽이 주장하든, 그것은 종차적이고 선교적(宣敎的)인 용어가 되어버렸습니다.

'팍스'라는 개념에는 다채로운 역사가 포함되어 있지만, 거기에 대해 별로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역사가들은 전쟁과 그 기술에 관한 논저로 도서관의 서고를 채우는 데 열중해왔을 뿐입니다. 오늘날 중국어 '화평(和平)'과 힌두어 '샨티'는 과거의 것과 다르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 말 사리에는 큰 간극이 있어서 서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중국어 '화평'은 하늘(天)의, 위계질서 속에서의 부드럽고 고요한 조화를 의미하는 것인 반면에 인도의 '샨티'는 친밀하고 개인적이고 우주적이며 비위계적인 깨달음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간단히 말해서, 평화에는 동일화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구체적인 의미에서 평화는 '나'를 그에 대응하는 '우리들' 속에 자리잡게 합니다. 그러나 각 언어영역에 있어서 이 대응 내용은 각각 다릅니다. 평화는 제일인칭 복수의 의미를 고정시킵니다. '배타적인 우리들' - 말레이어의 '카미' - 의 형태를 규정함으로써 평화는 '포괄적인 우리들' - 말레이어에서는 '키타' - 이 대두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이 말레이어의 '카미'와 '키타' 사이의 차이는 태평양권의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이것은 유럽에서는 전혀 낯선 문법적 구문이며, 서구적인 '팍스' 개념에는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습니다. 현대 유럽어의 미분화된 '우리들(we)'은 의미론적으로 공격적인 단어입니다. 따라서, 아시아의 연구자들은, '키타'에 대하여 아무런 존중심이 없는 '팍스'에 대하여 철저한 경계심을 품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여기 극동에서는 평화연구가 서구에서보다는 좀더 쉽게 다음과 같은 자명한 원리에 토대를 두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즉, 전쟁은 문화의 차이를 없애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평화는 각 문화가 독자성을 가지고, 다른 문화와 비교될 수 없는 방식으로 꽃피는 조건이 된다는 기본원리 말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결코 수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평화는 옮겨가면 반드시 타락합니다. 평화의 이전은 전쟁을 의미합니다. 평화연구가 이러한 자명한 인종학적 사실을 무시할 때, 그것은 평화유지를 위한 테크놀러지로 전환됩니다. 즉, 어떤 종류의 도덕 재무장론으로 떨어지거나 아니면 고급장교와 그들의 컴퓨터 게임에 의한 네거티브한 전쟁과학으로 전락해버릴 것입니다.

평화는 인종학적, 인류학적 현실에 입각하지 않는 한, 비현실적인 단순한 하나의 추상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평화의 역사적 차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때도 역시 평화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극히 최근까지, 전쟁은 평화를 완전히 파괴할 수는 없었고, 또한 평화의 모든 수준에 침투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계속되려면 전쟁을 지탱해주는 풀뿌리 민중의 자급의 문화(subsistence culture)가 존속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전쟁은 민중의 평화의 지속에 의존했던 것입니다.

전쟁의 역사를 넘어서

너무도 많은 역사가들이 이 사실을 간과해왔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전쟁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강자들의 흥망성쇠를 기록하려고 하는 고전적인 역사가들에게 명백히 나타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불행하게도, 정복당한 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좀더 최근의 역사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됩니다. 이들 새로운 역사가들도 너무나 빈번히 가난한 사람들의 평화보다도 폭력에 대해서 더 큰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로 저항운동과 노예, 농민, 소수자, 소외된 사람들에 의한 반역과 반란과 폭동에 대해서 보고하고, 좀더 최근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투쟁과 여성해방투쟁을 다루어 왔습니다.

권력의 부침을 주목하는 역사가들에 비해서, 민중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역사가들은 어려운 과제를 갖고 있습니다. 엘리트 문화와 군대가 일으킨 전쟁을 취급하는 역사가들은 문화의 중심부에 관해 기술합니다. 그들은 기념비, 돌에 새겨진 포고문, 상업거래 통신문, 왕들의 자서전, 그리고 진군하는 군대가 남겨놓은 족적들을 자료로 활용합니다. 그러나, 패배한 쪽에 서 있는 역사가들에게는 이런 종류의 증거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지구의 표면에서 소거된 사람들, 그 족적이 적에 의해 말살되거나 바람에 날려가버린 사람들에 대해서 보고를 합니다. 농민과 유목민, 마을문화와 가정생활, 여성과 아이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들에게는 검토할 만한 흔적이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육감으로 과거를 재구축해야 하고, 속담과 수수께끼와 민요에 담겨있는 암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흔히 가난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남겨놓은 기록문은 ‘마녀’와 부랑자들이 고문을 당하면서 보여준 반응, 법정기록으로 남은 진술들입니다. 현대 인류학사(민중문화의 역사, 멘탈리티의 역사)는 이러한 '잡동사니’ 기록들을 해독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테크닉을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역사도 흔히 전쟁을 초점에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약자들이 스스로의 방어를 위해 적들과 싸운 충돌장명들이 주로 역사가들의 시선을 끄는것입니다. 그리하여, 항쟁의 이야기들이 다시 서술되고, 오직 함축적으로만 과거의 평화가 언급될 뿐입니다. 충돌은 적대관계에 있는 쌍방을 비교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과거는 단순한 것으로 취급되고, 과거의 모든 것이 20세기적인 사고로 포착될 수 있다는 착각이 생겨납니다. 그리하여, 여러 문화를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전쟁이 너무도 빈번히 역사가들의 서술의 틀이나 뼈대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평화의 역사입니다. 전쟁의 역사보다도 무한히 더 다양한 것이 평화의 역사입니다.

경제권력들간의 균형으로서의 평화

지금 평화연구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흔히 역사적 시각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의 주제는 문화적, 역사적 내용이 제거된 ‘평화’입니다. 역설적으로, 평화라는 것이 자원의 희소성을 전제로 한 경제적 권력들 사이의 균형으로 환원되었을 때 평화는 하나의 학문적 주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평화연구는 제로섬 게임에 갇힌 경쟁자들 간의 최소한의 폭력휴전에 대한 연구로 제한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희소성이라는 개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희소한 것이 아닌 것의 평화로운 향유, 즉 민중의 평화는 깊은 그림자 속에 가려져 버리는 것입니다.

자원의 희소성이라는 것은 경제학의 근본가정이며, 공식적인 경제학은 이러한 가정 밑에서 제가치(諸價値)들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소성은 - 그리고 공식적인 경제학에서 중시되는 것들은 모두 - 대부분의 역사에 걸쳐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에서 오직 주변적인 중요성밖에 갖지 못하였습니다. 생활의 모든 국면으로 희소성의 개념이 확산된 과정은 역사적으로 기술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중세 이래 유럽문명에서 발생했습니다. 희소성에 대한 가정(假定)이 확산되면서 평화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그 어떤 곳에서도 전례가 없었던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즉, 평화는 이제 ‘팍스 에코노미카’를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공식적인 경제권력들간의 균형을 말합니다.

이 새로운 현실의 역사적 전개는 우리의 주목을 요합니다. ‘팍스 에코노미카’가 평화의 의미를 독점해버린 과정은 특히 중요합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평화의 의미를 처음으로 세계적 규모로 받아들여지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독점은 당연히 크게 염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따라서 나는 이 강연에서 ‘팍스 에코노미카’와 반대편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보완하고 있는 민중의 평화(popular peace)에 비교하여 ‘팍스 에코노미카’를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근대적 ‘팍스 에코노미카’의 출현

유엔 창설 이후 평화는 점진적으로 ‘발전’ 개념과 연결되어 왔습니다. 그 이전에는 이와 같은 연결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새로운 현상인지 40세 이하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기묘한 상황은 1949년 1월 10일에 나와 같이 성인이었던 사람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날은 트루먼 대통령이 ‘4개항 프로그램’을 발표한 날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바로 그날 지금처럼 사용되는 ‘발전’이라는 용어에 처음으로 마주쳤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들은 ‘발전’을 생물종의 발달이나 부동산 개발, 또는 체스게임에서의 상황전개를 말할 때 사용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발전이라는 말은 사람들, 국가, 경제전략 등에 관해 쓸 수 있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 세대가 채 경과하기도 전에 서로 대립하는 발전이론들이 홍수처럼 범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론 대부분은 이제 단지 골동품 수집가의 관심거리가 되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조금 당혹한 심정으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일인당 소득의 향상”, “선진국 따라잡기”, 또는 “의존상태의 극복”이라는 목표를 내건 연속적인 프로그램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끊임없이 희생을 요구받아왔는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성취지향성”이니 “평화를 위한 원자력”, “고용창출”,그리고 오늘날에는 “대안적 라이프 스타일”, 또는 전문가의 조언 밑에서 이루어지는 “셀프 헬프(自助)” 등 한때는 수출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지금 여러분은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각기 물결을 이루어 밀어닥치곤 하였습니다. 한 물결은 기업 활동을 강조하는 실용주의자들을 데려왔고, 다른 물결은 외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도록 민중들에게 설득하는 정치가들을 등장시켰습니다. 두 진영 모두 성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였습니다. 그들은 생산을 높이고, 소비에 대한 의존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진영의 전문가들 - 구세주들 - 은 평화를 향한 발전에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연결시켰습니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평화는 그렇게 발전개념에 연결됨으로써 하나의 당파적인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발전을 통한 평화의 추구는 검증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공리가 되었습니다. 경제성장의 방법이 아니라 경제성장 그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든 평화의 적으로 비난받게 되었습니다. 간디조차도 바보, 낭만주의자이거나 아니면 정신병자로 취급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간디의 가르침은 이른바 발전을 위한 비폭력적 전략으로 왜곡되었습니다. 평화에 관한 간디의 관점도 성장에 연결되었습니다. ‘카디’(물레로 짠 직물로서 간디가 제창한 삶의 자립성의 도구이지 상징 - 옮긴이)는 ‘상품’으로 재정의되고, 비폭력은 하나의 경제적 위기로 간주되었습니다. 희소성이 없는 가치는 보호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근본전제에 의해서 ‘팍스 에코노미카’는 민중의 평화를 근원적으로 위협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발전·개발과 평화

평화가 발전개념에 연결되어버린 결과 ‘발전’에 대해 도전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도전이야말로 이제 평화연구의 주된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전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에 따라서 각기 다른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장애물이 아닙니다. 발전은 다국적기업 중역들, 바르샤바 조약의 각료들, 신국제경제질서의 수립자들에게 각각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발전이 필요한 것이라ㄱ는 데 대한 그들의 일치된 견해는 발전개념에 새로운 지위를 부여해왔습니다. 그 일치된 견해 때문에 발전은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19세기적 이상을 - 희소성이라는 전제 밑에서 제한될 수밖에 없지만 - 추구할 수 있는 조건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차지하느냐”라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 밑에서 모든 발전·개발에 불가피하게 내재된 비용은 은폐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70년대 동안 이러한 비용의 일부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몇몇 명백한 ‘진실’이 돌연히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즉, 에콜로지라는 이름 밑에서 자원의 한계와 감내할 수 있는 오염과 스트레스의 한계가 정치적 이슈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의 유용화 가치에 대해 저질러지고 있는 폭력적인 공격은 지금까지 충분히 해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모든 성장에는 민중의 자급문화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이 함축되어 있지만, 이근은 ‘팍스 에코노미카’에 의해 은폐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 내게는 래디칼한 평화연구의 일차적인 과제로 생각됩니다.

민중의 자급적 생존에 대한 전쟁

이론과 실제 어느 쪽이든 모든 발전·개발은 민중의 자급지향적 문화를 변용시켜, 그것을 경제시스템 속으로 통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발전은 언제나 민중의 자립, 자급적 활동이 희생되고, 공식적인 경제영역이 확대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것은 제로섬 게임의 틀 내에서 교환이 행해지는 영역을 갈수록 확대해 나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확대는 모든 전통적인 교환형태를 희생시키면서 진행됩니다.

이와 같이 발전은 언제나 희소한 것으로 간주되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의존의 확대를 의미합니다. 발전은 상품의 생산과 유통을 편리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민중의 자급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제거해버립니다. 그렇게 하여, 발전은 필연적으로 모든 형태의 민중의 평화를 희생시키면서 ‘팍스 에코노미카’를 강요합니다.

민중의 평화와 ‘팍스 에코노미카’ 사이의 대립을 예시하기 위하여, 유럽의 중세를 돌아보기로 합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과거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내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다만 평화의 두 가지 보완적인 형태 사이의 역동적인 대립을 예시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내가 사회과학의 이론이 아니라 과거를 탐사하는 것은 유토피아적 사고와 ‘계획화 멘탈리티’를 피하고자함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계획이나 이상(理想)과 같이 언젠가 실현될지 모르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내가 사실에 입각해서 현재를 보게 해줍니다. 내가 유럽의 중세로 눈을 돌리는 것은 중세말기에 폭력적인 ‘팍스 에코노미카’가 그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민중의 평화는 ‘팍스 에코노미카’라는 위조된 평화로 대체되었고, 이것은 유럽의 수출품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중세의 평화

12세기에, ‘팍스’는 영주들 사이에 전쟁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회나 황제가 보장하려고 했던 ‘팍스’는 기사(騎士)들 사이에 무장충돌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팍스’ 곧 평화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자급적 생존수단을 전쟁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평화는 농민과 수도승을 보호했습니다. 이것이 ‘신(神)의 평화’, ‘땅의 평화’의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특정의 시간과 장소를 지켜주는 것이었습니다. 영주들 간의 충돌이 아무리 피비린내 나는 것이라 하더라도 평화는 소와 밭의 곡물을 보호했습니다. 그것은 비상용 식량창고와 씨앗과 수확기를 안전하게 지켜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땅의 평화’는 민중이 공유하는 환경의 유용화 가치를 폭력적인 침해로부터 막아주었습니다. 그것은 생존을 영위하기 위해서 달리 의존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 물과 목초지, 숲과 가축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증해주었습니다. 따라서 ‘땅의 평화’는 민중이 공유하는 환경의 유용화 가치를 폭력적인 침해로부터 막아주었습니다. 그것은 생존을 영위하기 위해서 달리 의존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 물과 목초지, 숲과 가축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증해주었습니다. 따라서 ‘땅의 평화’는 전쟁 당사자 사이의 휴전과 구분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무엇보다도 민중의 자급적 생활에 겨냥되어 있던 평화의 의미는 르네상스와 함께 상실되었습니다.

‘팍스 에코노미카’의 폭력

민족국가의 대두와 더불어 전혀 새로운 세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계는 새로운 종류의 평화와 새로운 종류의 폭력을 맞아들였습니다. 그 평화와 폭력은 모두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형태의 평화와 폭력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평화는 영주들 간의 전쟁을 지탱해주는 토대가 되었던 민중의 최소한의 자급생활에 대한 보호를 의미했던 것임에 반해 이제부터는 민중의 자급적 생활 그 자체가 공격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자급의 문화는 재화와 서비스에 있어서 확대되는 시장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종류의 평화가 대두됨으로써 하나의 유토피아가 추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중의 평화는 위태롭기는 하지만 진정한 공동체가 완전히 절멸되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평화는 하나의 추상을 둘러싸고 건설되었습니다. 새로운 평화는, 다른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생산한 상품의 소비에 의존하는 ‘경제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 - 보편적 인간으로 간주된 - 의 척도에 따라 새겨졌습니다. 민중의 평화(pax populi)가 토착적 자율성과 그것이 번창할 수 있는 환경과 그 재생산을 위한 다양한 패턴을 보호해주었던 것에 반해 새로운 ‘팍스 에코노미카’는 생산을 보호합니다. 그것은 민중문화와 공유지(共有地)와 여성에 대한 공격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첫째, ‘팍스 에코노미카’는 민중이 스스로의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가정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엘리트의 힘을 강화하고, 엘리트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교육과 건강관리, 경찰에 의한 보호, 아파트와 슈퍼마켓에 민중의 생존이 의존하게 합니다. 일찍이 예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방식으로, 그것은 생산자를 드높이고, 소비자를 격하시킵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자급적 생존방식을 ‘비생산적’이라고 규정하고, 자율적인 것을 ‘비사회적’이라고 부르며, 전통적인 것을 ‘미개발된’ 것으로 봅니다. 그것은 제로섬 게임에 맞지 않는 모든 지역적 관습에 대한 폭력을 의미합니다.

둘째, ‘팍스 에코노미카’는 환경에 대하여 폭력을 조장합니다. 새로운 평화는 면죄부를 부여합니다. 즉, 환경이 상품의 생산을 위하여 채굴되는 원천으로서, 또 상품의 유통을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서 이용되는 것을 보장합니다. 그것은 공유지의 파괴를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파괴를 장려합니다. 민중의 평화는 공유지를 보호하였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목초지와 숲, 도로와 강을 이용하는 것을 보장하고, 과부와 걸인들에게 환경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예외적인 권리를 확보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팍스 에코노미카’는 환경을 하나의 희소 자원으로 규정하고, 상품생산과 전문적 서비스를 위하여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상물로 여깁니다. 역사적으로, 이것이 발전이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공유지가 영주의 양(羊)으로 채워지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거리라는 공유지가 자동차들에 의해 점유되고, 좋은 일자리는 12년 이상의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것 말입니다. 발전은 언제나 상품이나 전문화된 서비스의 소비에 의존함이 없이, 환경의 유용화 가치를 통하여 생존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배제시키는 것을 의미해왔습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공유지에 대한 전쟁을 말합니다.

남녀 관계와 평화

셋째, 새로운 평화는 양성 간에 새로운 종류의 전쟁을 조장합니다. 지배력을 위한 전통적인 투쟁으로부터 남녀 사이의 이 새로운 전면적인 전쟁으로의 이행(移行)은 경제성장의 부작용 가운데 아마도 가장 검토가 안 된 문제일 것입니다. 이 전쟁 역시 이른바 생산력의 성장이라고 하는, 임금노동이 모든 형태의 일을 완전히 독점해버리는 과정의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폭력적인 공격입니다.

임금에 관계된 일이 독점적인 지위를 갖게 됨으로써 모든 자급문화의 공통된 특징이 심한 공격을 받게 됩니다. 자급사회는 일본, 프랑스, 피지의 자급문화처럼 각기 다를지 모르지만, 한 가지 중심적인 공통성이 있습니다.

자급문화에 관련된 모든 일은 성에 따른 구분, 즉 남자의 일, 여자의 일로 구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인 일의 틀은 사회에 따라 다양합니다. 그러나 각 사회는 다양한 일거리를 남자 또는 여자에 따라 구분해서 분배하고, 그 분배는 저마다의 독특한 패턴에 입각하여 행해집니다. 어떠한 두 문화에서도 사회 내에서 일을 분배하는 패턴은 같지 않습니다. 각 사회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오직 그 사회에서만, 남자 또는 여자로서 갖는 특징적인 활동을 떠맡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업화 이전(以前) 사회에서 한 남자 또는 한 여자라고 하는 것은 무성(無性)의 인간에게 부가된 이차적인 특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있어서도 이차적인 특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있어서도 가장 근본적인 특징입니다. 성장한다는 것은 ‘교육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한 여자 또는 한 남자로서 행동함으로써 삶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녀 사이의 역동적인 평화는 정확히 이러한 구체적인 일의 구분으로 성립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평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호적 억압에 제한을 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친밀한 영역에 있어서조차 민중의 평화는 전쟁과 지배의 범위를 모두 제한합니다. 임금노동은 이러한 패턴을 파괴합니다.

산업노동, 생산적 노동은 중성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또 흔히 그러한 것으로 경험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의 구별이 없는 일이라고 규정됩니다. 이것은 그 일이 금전적인 대가를 받든 않든, 그 작업리듬이 생산에 의해 규정되든 소비에 의해 규정되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일 자체가 성의 구별이 없는 것이라고 간주되더라도 이러한 일에 대한 접근은 철저하게 편향되어 있습니다.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일자리로 생각되고 대가를 받는 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 반해 여자들의 몫은 대개 남자들이 차지하고 남은 일거리들입니다. 원래 여성들은 금전적 대가를 받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에 종사하도록 강요되었습니다. 지금은 남성들에게도 점점 더 많이 그러한 노동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의 중성화의 결과로, 발전은 이제 이론적으로 동등한 존재가 된 남녀간에 새로운 전쟁을 필연적으로 촉발시킵니다. 지금 우리의 희소한 것으로 된 임금노동을 위한 경쟁과 대가도 주어지지 않고, 자립적 생활에도 기여하지 않은 그림자 노동을 피하려는 투쟁을 보고 있습니다.

평화와 발전개념을 분리해야

‘팍스 에코노미카’는 제로섬 게임을 보호하고, 그 게임이 방해를 받지 않고 진보해 나가도록 지켜줍니다. 모든 사람들은 ‘경제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으로서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하면서, 그 규칙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되고 있습니다. 이 지배적인 모델에 적응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평화의 적으로서 추방되거나 아니면 순응할 때까지 교육을 받습니다. 제로섬 게임의 규칙에 의하면, 환경과 인간의 일은 모두 최소한 노름 밑천입니다. 따라서 한 편이 따면 다른 편은 잃게 됩니다.

평화는 지금 두 가지 의미로 축소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경제학에서는, 둘 더하기 둘이 언젠가는 다섯이 될 거라는 신화가 되어있거나, 또는 휴전과 교착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발전은 이 게임의 확대, 즉 좀더 많은 출연자와 그들의 자원을 통합하는 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팍스 에코노미카’의 독점적인 지배는 치명적인 일수밖에 없습니다. 발전개념에 연결되어 있는 평화가 아닌 다른 어떤 평화가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팍스 에코노미카’에 긍정적인 가치가 전혀 없지는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는 예전에 후추 무역이 행해지던 것과는 다른 시장에서 발명되고, 그 부품들이 유통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경제권력들 간의 평화는 적어도 고대의 전쟁영주들 간의 평화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엘리트들의 평화 독점에 대해서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도전을 명확히 하는 것이 내게는 오늘날 평화연구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과제로 생각됩니다.

(출처: <녹색평론>, 2002년 1-2월, 통권 제62호)

이반 일리치(1926-2002) : 1926년 생. 역사가, 문명비평가, 원래 가톨릭 교회의 사제였으나 중남미에서의 반체제적인 활동으로 교회에서 추방당한 이후 '떠돌이' 학자, 현자로서 세계 여러 대학가 지역 사회를 오가며 현대 산업기술사회 체제를 근원적으로 묻는 저술과 강연활동을 계속해 왔다. 여기에 소개하는 글은 1980년 12월 1일 일본 평화연구학회의 초청으로 요코하마에서 행한 강연기록을 옮긴 것인데, 출전은 < In the Mirror of the past(1992년)>이다.

* 그냥 한 번에 쭉 읽어 내리면 다소 어렵지만 맘먹고 찬찬히 묵상하듯 읽어보면 평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글입니다. 이라크 전쟁 파병 문제를 놓고 찬반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런 시점에서 평화란 과연 무엇인지 처음으로 되돌아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할 듯 해서 이렇게 <유리병편지>로 띄웁니다.


바람구두 이반 일리치는 지난해(2002년) 12월 2일 오후 2시 독일 브레멘에서 평화롭게 별세하였습니다.
20세기 사상계의 큰 별이 졌지만 제 기억에 한국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그가 저술한 많은 책들 중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서점에서 구해 읽을 수 있는 책이 거의 없다는 것도 역시 비극이겠죠. 탈학교 논쟁과 같은 교육 문제로부터 근본주의적인 환경론자로서, 또한 평화운동가로서 우리는 이반 일리치를 기억해야 하겠지만 그는 세상을 떠나기 20년 전부터는 거의 잊혀진 인물이었습니다. 나중에 "문화망명지"에서 이반 일리치를 다룰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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