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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편 모세 이야기(2) -새 공동체 형성-
       
출 15:4-10, 22-24, 16:1-21,
17:1-6, 18:13-26, 19:1-6,
20:1-17, 21:-31:, 32:1-35,
33:1-29, 34:1-9


출애굽기는 히브리인 노예탈출 이야기(1-14장까지)와 새 공동체형성에 대한 이야기(15-40장)로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첫 이야기는 노예탈출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노예탈출(해방운동)의 어려움은 폭군의 폭력에 대항할 힘이 없는 것이라기보다는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고 어떻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42. 노예의 탈출과 재앙이야기-모세의 체험(5)>

둘 째 이야기는 새 공동체 형성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주는데, 첫 이야기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 이야기에서는 역경이 있어도 결국 노예탈출의 이상이 기적적으로 실현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이야기에서는 새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이상이 기적적으로 실현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이상을 실현시키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상이 그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이상과 현실과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이상이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게 되던가, 또는 이상을 죽이기도 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들로 엮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새 공동체는 어떤 것이냐 하는 그 특징을 말해주면서 동시에 이런 새 공동체형성이 과연 완성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남기고 있습니다.









 
            출 15:4-10, 22-24,
                16:1-21,
                17:1-6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는 질문

1. 노예탈출의 성공을 찬양한 직후 광야에서 어떤 역경에 직면?
2. 이때 백성들이 원망하는 말 속에서 이집트 노예시절을 어떻게 표현?
3. 노예탈출 이전에 백성들이 다 탈출을 찬성했을까? 아니면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4. 성공 후에 부닥친 역경을 보고 백성들이 원망했을 때, 저들은 노예해방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았을까? 아니면 노예해방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판단했을까? 모세의 판단은?
5. 광야에서 물이 없어 백성이 원망할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어떻게 하라고 시키셨다고? 그 뜻은?
6. 하늘에서 내려온 메추라기와 만나이야기의 뜻은? (이집트에서 곡식은 왕의 소유였다는 것과 비교해서 어떤 뜻이 있을까? 새 공동체의 특징으로 어떤 점을 말하고 있을까?)
7.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떠나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가라”는 두 가지가 복의 근원됨의 조건이었는데, 모세 이야기에서 이와 비슷한 점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은?

가. 노예탈출 성공후의 역경 -“선 다음의 넘어짐”-

탈출에 성공한 히브리인 노예들은 폭군의 군대가 “깊은 바다에 돌처럼 잠겼다.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니, 바다가 그들을 덮었고, 그들은 거센 물속에 납덩이처럼 잠겨 버렸습니다”(출15:5,10)하고 기뻐한지 사흘째 되면서부터 역경에 봉착합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 그대로입니다. 바울사도님도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10:12)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서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란 구절만을 따로 떼어서 생각해 본다면, 옳지 못한 일을 하면서 그런 일에 “성공했다”고 잘못 생각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결국 그 잘못의 값을 치르고야 만다는 경고의 뜻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옳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실 이가 없는 것이니, 이런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성공했다고 생각한 사람”이란 옳은 일에 성공한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성공한 다음에 자만심이나 방심하는 것을 경고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님께서는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10:12)는 말씀에 바로 이어서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말고는, 여러분에게 덮친 시련이 없었습니다. ...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시련과 함께 벗어날 길도 마련하여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하십니다” (고전10:13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함께 읽어보면, 자만이나 방심을 경고하시는 뜻이라기보다는, 옳은 일에 성공한 다음에 직면하게 마련인 역경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 분명해 집니다.

이 사실을 더 분명히 밝혀주는 증거로는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을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는 점입니다. 곧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나오는 이야기(고린도전서10:1-11)를 함께 읽어봐야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 까닭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님은 모세의 인도로 노예탈출에 성공한 다음에 직면하게 된 광야의 역경 앞에서 백성들이 불평하고 원망해서 노예해방의 길을 포기했던 일들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옳은 일을 해나가는 도중에서 직면하게 되는 역경을 극복해야 할 시련으로 보지 못하고, 바른 지도자 모세를 버리고, 잘못된 지도자 아론을 추대하고, 금송아지를 섬기는 잘못된 종교에 몸과 마음을 빼앗김으로 노예해방의 길을 포기한 잘못을 두고 선 다음의 넘어짐이라고 한 것입니다. 곧 바울 사도님은 노예탈출에 성공한 이후 이 광야에서 일어난 긴 이야기의 뜻을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한 마디로 요약한 셈입니다.

1) 성공 후의 역경과 원망

탈출한 히브리 노예들이 광야에서 직면한 역경들은 생존자체를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벗어난 다음 사흘 동안 걸어 광야로 들어갔는데, 마실 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마라라는 곳에 이르러 물을 찾았으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자, “우리가 무엇을 마신단 말이오?” 하고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평했습니다(출15: 22-24).

또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던 날 광야에 먹을 양식이 없어,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의 손에 넘겨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하였다. 그런데 너희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다”(출16:1-3)라고 모세 형제에게 원망했습니다.
그 후 광야에서 옮겨 이동하는 중 한 곳에 진을 쳤을 때도, 거기에 마실 물이 없어 목마른 백성은 모세를 원망하며, 왜 이집트에서 데려왔느냐고,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과 그들이 먹이는 집짐승들을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고 하면서 대들었습니다(출17:1-4).

이런 이야기는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을 때, 군중들과 모세가 어떤 마음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 하는 문제로 초점이 옮겨졌습니다. 역경을 만난 군중들은 기대가 어긋났다는 좌절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잘못된 현실에서 탈출한다고 당장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로 들어간다는 잘못된 기대는 아니더라도, 탈출이 옳은 일이었나 하는 회의가 생기고, 회의는 후회를 낳았고, 후회는 누군가에 대한 원망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원망의 대상은 흔히 감사해야 할 사람이기 쉬운 것인데, 군중은 모세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출17:4).

2) 성공 후 역경과 분열

군중들이 이렇게 원망한 것은 광야에서 생존의 위기를 만났을 때 생기는 공포에서 비롯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 노예백성들 중에는 처음부터 이집트의 노예체제 밑에서 사는 것이 광야로 나가는 것보다 더 좋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탈출에 성공하기 직전,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추격해오고 앞에는 물이 가로 막혔을 때, “이집트에 묘 자리가 없어서 이 광야에 끌어내어 죽이려 하느냐? 광야에 나가서 죽는 것보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더 나으니, 우리가 이집트 사람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출14:11 -14)라고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사는 것이 이해타산에 있어서 유익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표현으로 “친 이집트 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있는 것이 좋다는 사람과 노예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상적인 노선에 있어서 내분이 생긴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의 이런 내분은 모세를 버리고 아론을 중심으로 결집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에서 그 절정에 이릅니다(조선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식민주의 체제 하에서 사는 것이 독립되는 것보다 더 유리하다고 본 계층이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또 앞으로의 일을 예로 든다면, 북조선과 남한이 하나로 통일 되는 것보다 분단과 긴장상태의 지속을 더 좋다고 보는 사람이 있게 미련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친일, 친미, 친중, 친소 네 가지 주장 중 하나를 들고 나올 것이고, 주위 4대 인근 국가들은 각각 자기들에게 이로운 주장에 편들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민족이 약자에서 탈피하는 방향은 이 4개 국가들이 다 하나 같이 싫어할 주장이라야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가장 옳은 주장일 것입니다.)

(이런 길을 갈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니어서, 적어도 이 4개 인근 국가들이 묵인할 수 있는 타협적인 길이 차선의 길이 될 것입니다. 차선의 길이라도 민족으로서의 주체됨을 찾는 방향설정만은 시작되는 것일 것입니다.)

(이런 과제 앞에서 한국인의 종교는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만을 주장하는 입장은 언젠가는 잘못이었다는 것이 들어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 날이 반드시 와야 하고요. 그렇지 못하면 잘못된 금송아지 숭배 종교일 뿐일 것입니다).

3) 성공 후 역경과 판단의 착오

탈출성공 후 역경에 직면한 백성들의 원망이 이해타산에서 나왔건, 생존의 위협을 느낀 공포에서 나왔건, 이런 원망에 담긴 판단의 착오가 문제로 되어 있습니다. 노예로 있던 그 때를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로 생각했다는 것은 노예로 살망정 이집트에서 생존했어야 했을 것을 광야로 나온 것이 잘못이다. 지금이라도 되돌아가야 한다는 이론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노예가 되고, 노예로 살고, 노예로 학대받아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노예근성이 주인 되는 길을 막고, 노예근성 때문에 노예탈출의 성공이 하나님의 뜻임을 부인 하게 되었습니다. 탈출에 성공한 저들에게 이런 판단의 착오와 그에 따르는 결과가 “선 다음의 넘어짐”입니다. 광야에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없다는 환경에서 오는 외적인 문제는 노예탈출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보고, 노예해방운동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보는 내적인(사상적인) 문제가 된 것입니다.

나. 역경 극복(1) 
  -바위에서 터져 나온 물 이야기의 뜻-

사람은 누구나 역경을 만나기 마련인데, 이 역경자체가 넘어짐은 아닙니다. 역경 앞에서 설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넘어짐은 다 선 다음에 생기는 것입니다. 서지 못한 사람이 넘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가정의 모든 불행은 결혼이라는 과정에서 성공한 다음의 일들입니다. 인생의 역경 자체가 모두 다 출생이라는 과정에서 성공한 다음의 일들입니다.

바위에서 터져 나온 물 이야기는 성공 다음에 오는 역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서 기본적인 정신과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점을 말해줍니다.
 
1) 역경 이전의 성공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에 대한 바른 판단

역경 이전의 성공이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바른 판단이 역경극복에 중요한 시발점이 됩니다(예를 들면 결혼에 문제가 있을 때, 그 결혼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에 대한 바른 판단이 그 문제해결에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고 결과도 달라질 것입니다).

노예탈출 성공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본 모세는 광야에서 만난 역경을 광야에서 해결하고 노예해방의 길을 지속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반하여, 노예탈출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보고 모세를 원망한 백성들은 노예해방은 물론 광야에서 만난 역경을 극복하려는 구체적인 노력도 관심도 없는 잘못된 종교에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이집트에서의 노예시대를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출16:3)라고 한 것도 잘못된 회고주의에 빠진 것일 뿐, 그렇다고 이집트로 돌아가서 생존문제를 해결하자는 것도 아니고, 금송아지가 모든 역경에서 구원해 준다는 환각에 도취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도, 바른 사회를 바라는 이상도 없이 먹고 마시고 춤추는 광신자의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식(마15:13-15)의 잘못된 종교를 선 다음의 넘어짐이라고 한 것입니다. <잘못된 종교에 대해서는 45. “새공동체 형성의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더 살펴보겠습니다.>

모세가 돌에 맞아 죽게 될 그 순간, 정당방위로서 어떤 반응이 나올 수 있었을까? 폭도로 변한 군중들을 향해서 철퇴로 내리치듯 지팡이로 쳤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돌로 치고 지팡이로 치고. 결과는 군중이 다치든, 모세가 다치든, 결국 노예해방운동은 실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반응은 하나님에게 “이 백성을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요? 그들은 지금이라도 곧 저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출17:4)하고 하나님에게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군중들이 돌로 치려는 행동에 즉각 반사적 행동으로 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모세가 인도자로서 위대한 점이 여기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랬으면 모세도 저들과 같은 자리에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서 가거라. 그리고 나일 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이제 내가 저기 호렙 산 바위 위에서 너의 앞에 서겠으니, 너는 그 바위를 쳐라. 그러면 거기에서 이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라고 일러 주셨고, 모세는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하였다”(출17:5-6)고 했습니다. 

2) “백성들보다 앞서서”
  -바위에서 터져 나온 물 이야기의 뜻 (1)-

역경 앞에서 모세를 원망하며 돌로 치려고 했을 때, 모세가 하나님에게 물어본 바는 “이 백성을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곧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질문이었는데, 사람을 어떻게 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1) 모세자신이 어떻게 할 것과, (2) 바위를 치라는 두 가지 말씀만을 하셨습니다.

여기 바위를 치기에 앞서 해야 할 일로 백성들 앞으로 나서라고 하셨다는 말을 백성들의 내분 및 원망과 관련시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성들 보다 앞서 가라 고 하셨는데, 어느 방향으로 앞서가라는 것일까요? 이집트를 향해서 되돌아가는 길에 앞서라는 것일까요? 탈출의 길을 막았던 나일 강을 쳤던 그 지팡이로 다시 그 강물을 쳐서 되돌아가는 길에 앞장서라는 말일까요?

잘못된 과거로 되돌아가라는 것이 아니고, 과거를 등지고 미래를 향한 방향으로 앞서야 하되, 몇몇 지도자급 인물들도 모세를 따라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때 모세를 따라 나서는 지도자급 인물들이 없었다면, 분열된 군중이 다시 하나 되는 일에 차질이 생겼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의인 열 명만 있으면 소돔성이 망하지 않는다는 경우와 같습니다.<28.의인 열 명을 채울 사람은? -소돔을 위한 아브라함의 기도 이야기>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모세 일행보다 더 앞서 가셔서 한 바위 위에 서실 것이니, 그 방향으로 따라 나서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 둘째 조건인 하나님이 보여주실 길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역경을 해결하는 길은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양식이 없었다는 광야의 역경은 이집트로 되돌아감으로도 해결할 수 있고, 돌아가지 않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노선을 택하느냐 하는 입장에 따라 생존문제 해결책이 달리 나오는 것입니다. 역경을 회피함으로 해결할 수도 있고. 역경을 뚫고 가면서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차이는 역경을 회피하는 길은 잘못된 옛 역사를 그대로 지속하는 데 반하여, 역경을 뚫고 가는 길은 새 역사를 창조함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되돌아가지 않은 길로 인도하셨다는 이 이야기는 역경해결자체보다 어느 길로 가느냐 하는 (사상적인) 방향설정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노예가 됨으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느냐, 역경을 뚫고 노예해방의 길을 그대로 가면서 해결하는 길이냐, 이런 구체적인 문제해결을 도외시하고 잘못된 종교에 빠지느냐는 등 여러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역경이 가로막는다고 노예해방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길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역경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바른 판단을 되찾아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옳은 일에 대한 사상적인 노선을 고수함 없이 역경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경에 부닥치면 쉬운 길을 택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험해서, 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마7:13-14)고 하신 말씀도 이런 판단의 착오를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3) 사람이 아니고 바위를 침
  -바위에서 나온 물 이야기의 뜻 (2)-

“이 백성을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는 질문에 하나님은 모세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하라는 대답은 않으시고 (1) 모세자신이 노예해방의 길에 앞서 나서야 하되 (2) 폭도로 변한 사람들을 치라고 하지 않으시고, 바위를 치라고 하셨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경에 직면할 때 사람은 사람을 원망하고 사람을 치기 쉽습니다. 군중들이 돌로 모세를 치려고 했다는 것도 이런 경우입니다. 쉬운 예를 들면, 부부가 역경에 부닥쳤을 때, 사탄은 부부가 서로를 치게 만듭니다. 말로도 치고 주먹으로도 치게 말입니다. 사람을 치지 말고, 생수가 흐르지 못하게 막는 바위를 치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집트로 돌아가자는 사람이 문제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직면한 문제를 해결함으로 그런 주장을 할 구실을 제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쳐야할 대상은 역경이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쳐야할 대상이 아니고 사랑의 대상이라야 하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순간에 “모르고 하는 저들을 용서해” 주시라고 기도하셨다는 것도 예수님이 사람을 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쳐야 할 바위는 미래를 보지 못하는 백성들의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4) 역경 해결의 구체적인 방법

물을 얻는 방식이 지역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호수나 강이 있는 곳에서는 그 물을 끌어올려 수돗물을 만드는 방식이지만, 호수도 강물도 없는 지역에서는 우물을 파서 식수를 얻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물도 팔수 없는 높은 돌산에서는 거기 생기는 안개를 그물 같은 장치에 부착시키면 물방울이 생기는데 그것을 모아 식수를 얻기도 합니다. 안개도 없는 사막지대에서는 선인장 같은 식물에서 물을 얻기도 하는 것입니다. 바다 속 섬에서는 산에 내린 빗물이 땅 속으로 스며 흘러가다가 멀리 바닷가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이 식수가 됩니다. 바닷물만 있는 곳에서는 짠 물에서 소금 끼를 걸러내고 단물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성경 이야기는 원망하는 백성은 광야에 물도 양식도 보이지 않았으나, 사실은 광야에는 광야의 물이 있고 광야의 양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메마른 광야에는 간혹 소나기가 쏟아질 때 급류가 되어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가 석회암 바위를 뚫고 바위 속에 물웅덩이가 생긴답니다. 석회질이 녹아있는 물이 다시 응고되면서, 물이 흘러들어왔던 입구를 차츰 차츰 좁혀 들어가 결국에는 완전히 봉해버리면, 밖으로 보기에는 그저 바위 덩어리인데, 그 속에는 물이 담긴 저수 바위덩이라는 것입니다. 광야에는 석회암 지면 밑에 물이 있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생존하는 데 익숙한 사람의 눈으로 식별하여 정통을 쳐서 물이 쏟아져 나오게 하는 것이 광야에서 물을 얻는 한 가지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애써서 찾아낸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해 원망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지역에서 자라는 어떤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시면서,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져 그 물이 단물로 변하도록 하셨다(출15:25)고 했고, 또 광야에 먹을 양식이 없다고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내가 하늘에서, 너희가 먹을 것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이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저녁이 되면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빵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출16:4,12)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진 친 곳을 뒤덮었고, 아침에는 안개가 걷히고 나면, 지면에 마치 땅위에 내린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만나라는 양식이 덮여 있었다”(출16:13 -14)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에서 물의 쓴맛을 중화시켜 단물로 변화시킨 것은 그 지역에서 자란 어떤 나뭇가지였고, 마실 물이 쏟아져 나온 바위도 그 광야에 있는 바위였다는 것입니다. 광야 그 지역에 떨어진 메추라기도 그 지역 하늘을 날아가던 철새 떼가 기진맥진 지쳐서 떨어지는 현상이었고, 아침마다 서리처럼 내린 만나도 그 지역에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기적”은 이집트 땅이 아닌 광야의 특정 지역의 특수한 조건하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집트 농업사회에서는 농사를 지어 먹고 살지만, 광야에서는 광야에 맞게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찾는 법을 터득하고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다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특수한 경우에 맞도록 적용시킨다는 뜻에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역경(생존 문제)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경 이야기에서 “이적” 뒤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창조의 법칙이, 과학적인 이치가 숨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 이야기의 핵심은 모세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역경을 해결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역경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역경을 만났을 때 잘못된 금송아지 종교에 빠진 백성들을 (이집트의 노예제도에서만이 아니고) 잘못된 종교에서도 해방시켰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주제인 것입니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바위를 쳐서 물을 얻었다고 했는데, 지금 땅에 묻혀있는 기름을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파내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위를 쳐서 물을 얻었던 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목적은 노예가 해방되는 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땅을 파서 기름을 퍼내는 일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하긴 하지만 그 목적이 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벌기 위한 것입니다.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이 파낸 기름을 가지고 덜 가진 자들을 더 쥐어짜는 것입니다. 기름을 파낼 땅을 얻기 위해서는 없는 구실도 만들어내서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무기까지 팔아 더 많이 갖는 과정에서 희생자들은 언제나 약자들입니다. 결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환경오염을 알면서도, 무공해 에너지 개발을 가진 수단으로 방해 또는 지연시키려듭니다. 모든 전쟁에는 그 시대의 최신 과학적인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인데, 종교인들이 의로운 사회형성이 목적이 아니고 자기 나라의 승리만을 목적으로 삼을 때 최신 과학이라는 금송아지 상을 섬기는 잘못된 종교에 빠지는 셈입니다. 과학적인 방법에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방법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성경이야기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옳지 못한 일을 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나도 끝까지 밀고 나가려고 하는데 반해서, 옳은 일을 하는데 성공했던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나면, 포기해버리는 경향이 있기 쉬운데, 이런 자세는 선 다음의 넘어짐인 것입니다.

다. 하늘에서 내려온 메추라기와 만나 이야기의 뜻

이 성경의 “이적”이야기는 광야에서의 생존방식이 다르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적”이야기는 잘못된 노예사회체제를 온전히 떠나고 새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 중 인간의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먹을 양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양식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고, 양식에 대한 백성의 생각이 고쳐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집트에는 먹을 양식이 왕의 것이었고, 백성이 그것을 먹기 위해서는 자신을 노예로 팔아야 했다는 내용이 창세기 요셉이야기에 있었습니다. 왕의 꿈을 7년 풍년, 다음에 7년 흉년이 온다는 것이라고 해몽하고, 흉년을 대비해서 풍년동안 수확의 5분의 1을 곡창에 쌓아두어야 한다고 제안한 요셉을 총리로 삼고 양곡정책을 실시하도록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온 백성을 기근에서 구했다는 이야기가 되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온 백성을 왕실의 노예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그 경위는 굶주린 백성들이 곡식을 사가노라고 이집트와 가나안 땅의 모든 돈이 요셉에게로 몰렸고, 요셉은 그 돈을 왕에게 바쳤다는 것입니다. 백성에게 돈마저 떨어지자, 요셉은 백성들이 기르는 집짐승을 바치도록 했고, 해가 바뀌면서 백성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알몸뚱이와 밭뙈기뿐이어서, 먹을거리를 위해 저들의 밭을 바치고, 몸을 바쳐 왕의 종이 되겠다고 자청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집트의 모든 밭이 바로의 것이 되고, 농노소작인이 된 백성들에게 씨앗을 나눠줘서 농사를 짓게 하되, 거둔 것에서 오분의 일을 왕에게 바치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오분의 사를 백성들이 가지되, 거기서 밭에 뿌릴 씨앗을 따로 떼어 놓고 남는 것으로 먹고살게 하는 토지법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창47:13-26). <37. 장례식과 유언(창세기이야기 마감) 창49:29-33, 50:12-21> 기근에 대비해서 7년간 쌓아두었던 곡식을 굶주린 백성을 위해 구호미로 나누어준 것이 아니고, 양식을 생산하는 토지도, 농사를 지을 백성도, 저들이 먹을 양식까지도 다 왕의 것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노예탈출을 인도하도록 하실 때, 바로 왕에게 나가 노예에게 자유를 달라는 등의 말을 하도록 하지 않고, “이제 우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려야 하니,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셨다는 것(출3:18,8:20,9:13,10:3)은 인간은 왕을 섬길 왕의 노예가 아니고, 하나님을 섬길 하나님의 백성이고, 왕이, 그리고 그의 폭력이 역사의 주가 될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나가야 한다는 말은 노예제도를 기반으로 한 그 사회체제를 부정하고, 노예제도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새로운 사회체제를 세워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42. 노예의 탈출과 재앙이야기-모세의 체험(5)>

이런 새 공동체형성에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만나 이야기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곧 새 공동체의 기본은 사람이 먹을 양식이 왕의 것이 아니고, 값으로 몸을 팔아 왕에게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값없이 하나님에게 받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출16:15). 먹기 위해서 자유의사 없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하는 경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이집트 노예체제하의 상황에서 할 말입니다. “밥이 하늘입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새 공동체의 이상인 “하늘이 내린 만나”와 뜻이 통하는 말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먹을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으로 그 권리가 누구에게도 어떤 경우에도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이 만나이야기의 본뜻이고, 새 공동체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만나는 각자 자기 식구가 먹을 만큼씩만 거두어야하고 아무도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두는 사람도 있었으나, 양을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남겨 둔 경우에는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풍겼다고 한 것(출16:16-20)은 이집트 왕이 곡식을 독점하여 백성을 노예로 만들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그런 일이 생길 수 없는 새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런 이상적인 공동체형성이 과연 실현되었을까 하는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이점에 대해서 아래서 살펴보겠습니다>.

라. 아브라함 이야기와 모세 이야기의 비교
  -떠나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감과
  탈출해서 새 공동체를 형성함-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서는 떠남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감 두 가지 조건이 다 갖추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떠남” 없이 “새 길을 갈”(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갈) 수 없고, “새 길 감” 없는 “떠남”은 “현실개선”이 되지 못하고 “현실도피”에 불과하다고 했었습니다.< 23. “떠나라”? -복의 근원됨에 필요한 첫 조건-> 모세 이야기에서도 노예탈출(떠남)과 새 공동체형성(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감) 두 가지가 다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이야기에서는 “떠남”은 장소(땅)를 떠나는 것이었기에, “보여주시는 길을 감” 없이도 떠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현실 도피가 되더라도). 그런데 모세 이야기에서는 이집트 땅(장소)을 떠났어도 이집트 노예체제하에서 살던 그 때를 그리워했다는 말은 정신적으로 과거를 떠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세 이야기에서는 노예탈출(떠남) 없이 공동체 형성(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감)이 있을 수 없다는 점보다는, 새 공동체 형성 없이 진정한 떠남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옛 길을 떠남 없이 바른 새 길을 갈 수 없다는 점보다, 바른 새 길을 감 없이 잘못된 옛 길을 떠날 수 없다는 점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빛으로 나감 없이는 어둠에서 떠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빛으로 나가면 어둠에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감 없이 사탄이 원하는 길에서 떠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감 없이 폭군이 원하는 길에서 떠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노예 됨에서 떠나도 다시 노예가 되기도 하고, 다시 노예가 안 된다고 해도, 노예근성에서 떠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주인이 되어야만(주체의식이 세워져야만)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만난 역경을 극복함에 있어서 첫 어려움은 양식과 물이 없다는 외적인 문제보다는 과거 노예시절을 그리워하고 그 때가 더 좋았다고 보는 판단의 착오라는 내적인 문제였습니다. 곧 백성들이 외적으로 이집트 노예사회를 떠나 왔으나 내적으로는 과거를 온전히 떠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노예로 있던 과거를 온전히 떠나지 못한 판단의 착오는 저들의 심성이 노예근성에서 떠나지 못했다는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결국 떠남에 실패했다는 말이 됩니다.

노예탈출과 새 공동체 형성 이 두 이야기는 히브리인 노예들(인간)이 새 공동체의 주체로 진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한 이야기의 연속입니다. 노예탈출과 새 공동체형성 이 두 이야기는 어느 하나만 따로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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