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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제자 교회  -이민자와 신앙(교회)생활-
<출판기년회 전날(2008년 10월 18일 토요일 이동진집사님댁에서 있었던 구역에배 설교인데 이 책의 주제와 연관되는 내용이어서 여기 첨부합니다.>   

성경본문: 신명기8:(7-10)12-18
12.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을 짓고 거기에서 살지라도,
13. 또 너희의 소와 양이 번성하고, 은과 금이 많아져서 너희의 재산이 늘어날지라도,
14. 혹시라도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17. 너희가 마음속으로 '이 재물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18. 그러나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려고, 오  늘 이렇게 재산을 모으도록 너희에게 힘을 주셨음을, 너희는 기억해야 한다.


이민자와 신앙생활, 이민자와 교회 생활, 그리고 어떤 교회를?
“이민자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앙생활”은 “교회 생활”과 관련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 하는 질문을 마음에 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은, 특히 다섯 번째 책인 신명기를 포함한 모세 5경은, 사람이 화의 근원이 아니고, 복의 근원이 되고, 그가 사는 사회도 저주받은 사회가 아니고, 축복받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1. 자유를 찾는 정치적인 문제와,
2. 먹고사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경제적인 문제 두 가지가 다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3. 인간의 욕심이 다스려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곧 남을 해치면서까지 욕심을 성취하려는 마음과 행동을 막는    제동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제동장치라는 것이 자발적인 것으로는 품격을 다스리는 신앙생활이나 윤리 도덕적인 규범이 있고, 욕심의 도가 지나칠 경우 간권을 발동하는 법적인 규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하나로 되어 있는데, 그 것이 십계명을 위시한 율법이었습니다.

잘못된 욕심과 바른 의욕
그런데 “욕심”이라고 할 때,
(1) 잘못된 욕심과, (2) 바른 의욕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이 둘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질은 사람이 사람을 위해 사용할 대상이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하듯, 물질을 섬기거나 사랑하게 될 때, 그 것은 잘못된 욕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데 쓰일 재산을 모으려는 의욕은 좋은 것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재산을 모으도록 너희에게 힘을 주셨음을, 너희는 기억해야 한다.”는 말씀은, 내 힘으로 모은 것이라는 교만을 경고하는 것이긴 해도, 재산을 모으려는 의욕을 품지 않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쓰지 않고 땅에 묻어 두는 잘못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 미국 경제정책의 실패가 전 세계 경제에 위기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려는 끝없는 욕심을 국가가 견제하는 법적인 체제를 갖추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공산주의 체제가 성공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여기에는 더 가진 사람들의 욕심이 아니고, 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욕심이 문제가 될 뿐 아니라, 백성들의 좋은 의욕까지도 죽여 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먹을 것과 말씀
예수님이 40일 금식하셨을 때 사탄은 돌로 떡을 만들어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오늘 본문 신명기 8장에서(3절)을 인용하셔서,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이 말씀의 뜻은 먹을 것이 죄라는 뜻도 아니고.
(2) 재산이 죄라는 뜻도 아닙니다.
(3) 더욱이, 먹을 것이 없어도 말씀만 있으면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풍요로움은 하나님의 축복
성경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풍요로움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데리고 가시는 땅은 좋은 땅이다. 골짜기와 산에서는 지하수가 흐르고, 샘물이 나고, 시냇물이 흐르는 땅이며, 밀과 보리가 자라고,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며, 올리부 기름과 꿀이 생산되는 땅이며, 먹을 것이 모자라지 않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들에서는 쇠를 얻고, 산에서는 구리를 캐낼 수 있는 땅이다.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좋은 땅에서, 너희는 배불리 먹고 주를 찬양할 것이다.“(신 8:7-9)

이민자에 대한 하나님의 걱정
-재산을 모으는 방법과, 재산을 모은 다음의 마음가짐 문제-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의 뜻은, 재산을 모으는 방법에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에서는 재산을 모으는 방법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바른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다음에, 마음가짐과 행동에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마음속으로 '이 재물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걱정된다. 그러나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려고, 오늘 이렇게 재산을 모으도록 너희에게 힘을 주셨음을, 너희는 기억해야 한다.”(신8:17-18)

여기 하나님이 걱정하신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런 걱정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에서 나온 걱정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의 사랑의 걱정과 하나님의 걱정에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보통 부모님들은 주로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걱정합니다. 성공 못하면 어떻게 할까?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공하지 못했을 때를 걱정하시지 않고, 오히려 성공한 다음에 마음가짐과 행동이 잘못될 것을 걱정하신다고 했습니다. 실력과 재산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못되고, 재산에 대한 욕심의 노예가 될 것을 걱정하신다는 말입니다.

이민자 생활에 기독신도가 다른 점?
-이민자와 교회(신앙)생활에 대한 성경의 입장-
지금(2008년)부터 377년 전에(1630) 북미대륙 보스톤 앞 바다에 도착한 배에 탔던 이민들에게 Winthrop 이라는 분이 설교를 하였는데, 이 신명기 말씀을 인용했다고 합니다. 새 땅에서 축복받은 앞날을 내다보며, 이민자는 하나님을 믿고 생을 개척해나가되,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사람의 일생은 주로 경제적 기반을 구축해가는 일에 거의 전 시간을 바치게 됩니다. 먹고 사는 일이 삶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기독신도 이민자들의 삶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재산을 모으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기억하고, 열심히 살되, 잘된 다음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교만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민자의 삶과 신앙생활은 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입장입니다. 이민자의 삶에 신앙생활이 빠지는 것을 하나님은 걱정하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워나갈 교회는?
그런데 이민자의 신앙생활이란 이민자의 교회생활로 이어집니다.
교회생활은 어떤 교회에 나가느냐? 는 문제로 끝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어떤 교회에 동참하느냐? 어떤 교회를 세워나가느냐? 하는 문제까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결단하고, 실천해 나가는 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주일 성경공부시간에 벽에 부쳐있는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우리교회의 좋은 점과 다른 교회의 좋은 점을 함께 찾아본 흔적이었는데, 이런 작업은 어떤 교회에 나가느냐? 하는 문제로 시작해서, 어떤 교회를 세워나가느냐? 하는 둘 째 문제에까지 발걸음을 내디딘 결과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교회에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묻는 새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를 세워나가느냐? 하는 문제는, 정신적으로, 어떤 교회를 헐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못하면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까지도 찬양했던 큰 성전(교회)을 두고, “이 성전을 허물라 내가 3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신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헐어야 할 교회, 세워야 할 교회에 대한 깊은 말은 오늘 생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책 마감 부분 아론의 금송아지이야기와 모세의 둘째 돌판 이야기를 다룬 45장 46장을 꼭 읽어 보시라고 부탁드립니다.  금송아지를 섬긴 아론의 교회는 헐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내 목회 생활과 캘거리 한인 연합교회
여기서, 저와 제 아내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캘거리 한인 연합교회가 저와 제 아내 일생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하는 이야기인데, 어떤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일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일생의 중요한 시기에 혼신을 바쳐 일한 교회가 셋 있었습니다. 독일 Hamburg 한인교회, 캐나다 Edmonton 과, Vancouver 에 있는 한인연합교회입니다. Edmonton 에서는 14년 반, 밴쿠버에서는 8년 남짓하게 바쳤는데, 제가 은퇴한 후, 다른 교역자가 오면서, 두 교회 다 언제 내가 목회했던 교회인가? 싶을 정도로, 돌변해버렸습니다. 이 두 교회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평은 삼가겠습니다만, 제 심정은, 고려가 이씨 조선으로 된 다음, 옛 도읍지를 보며 읊은 시, “500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적은 간곳없네.”라는 서글픔과 무상함에 비할 만합니다.

Edmonton 에서는 이민 1세보다 그 후세를 위한 장기 목회계획을 세웠었습니다. 이민 후세들을 이 땅의 시민으로, 주역을 맡을 수 있는 신앙적 품격을 키우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특유한 기성교인들의 반발이 있었고 교회분열도 있었으나, 2세들의 신앙적 모임과 그 활동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당시 2년 마다 교단 차원에서 큰 예산을 뒷받침해서 열리는 연합교회 전국청년집회(KAIROS)가 있었는데, 한 교회에서 참석한 청년 수가 전 연합교회 중 이 교회가 제일 많았을 정도였습니다. 과거전통의 가치는 보다 나은 미래를 열 때만 그 가치가 있는 것이지, 미래를 죽일 때는 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책 출판을 계획할 때, 캘거리한인연합교회를 위해서, “용도지정헌금”을 부탁하는 편지를(세 교회 중 함부르크 교회는 빼고) 두 교회에 각각, 100 여 명이 넘는, 옛 교인들에게 보냈었습니다. 밴쿠버교회는 은퇴한지 얼마 되지도 안했는데, 겨우 열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사람들만이 우리 책의 가치를 인정하고 용도지정헌금을 해 주셨습니다. 은퇴한지 더 오래된 에드먼튼 교회의 반응은 더 미미 했습니다. 이런 편지를 보낼 때, 말린 이도 있었으나(제 아내도 말렸고요), 저는 남은 생에서 믿음의 동지로 남은 이가 몇이나 되는지를 확인해 보고도 싶었던 것입니다.

Hamburg 교회에는 제가 떠난 후, 4사람의 교역자가 있었는데, 그 중 두 번째 교역자가 시무한 기간에는 완전히 몰라볼 정도의 다른 교회로 돌변했다가, 많은 진통 후에 다른 교역자 두 분이 역임하면서, 제 목회하던 때의 모습과 흔적이 되살아난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지금 그 교회 교역자는 이 교회에서 출간한 우리 책을 선교용으로 판매하기로 결정까지 했다는 소식을 간접으로 들었습니다. 거리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생각하는 바에서는 거리가 좁혀진 것 같고, 믿음의 동지가 남아있다는 감격이 있습니다.

이런 결과도 이 캘거리한인연합교회가 아니었으면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인이 한 사람 남아있는 듯 보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몇 몇 분들이 타 지역의 100여명은 물론, 그중 특별한 성의를 보여준 10여명을 뛰어넘는, 큰 헌금액으로 신앙동지 됨을 보여 주셨습니다.

독후감
책을 받아본 사람들 중, 원근 각지에서, 전화가 걸려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책은 처음 봅니다.” “일반 교회에서 듣는 것과는 정말 다릅니다.”  “먼저, 교역자님들이 읽어야 할 책인 것 같습니다.” “성경공부 교과서로 쓰면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칠순이 되어서도 이런 저작활동을 하신 것은 후배들에게 격려가 됩니다.” “이런 책이 안 나왔으면 어떨 뻔 했나. 캘거리한인연합교회에서 이 책을 출판한 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등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오 박사님의 “추천의 말”이나, 우리 김 목사님의 “이 책을 읽는 분들께”라는 무게 있고 깊이 있는 글이 헛말이 아니라고 공감하는 평들입니다.

이 교회와 “명예목사” 칭호
이 교회는, 제가 긴 세월을 바쳐 정식 교역자로 목회했던 교회가 아닌데도, 제 목회 생애에서의 실망을 그저 실망으로 끝나지 않게 해주었고, 값진 진주를 캐낸 듯한, 희열의 체험을 안겨 주었습니다. 헛되어 보이던 제 목회생애에 고귀한  꽃을 피우도록 해 준 교회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교회가 제안하신 “명에 목사”라는 칭호를 제가 쾌히 받아드린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흔히 전통적인 교회에서처럼, 오랜 목회 “경력”에 부치는 칭호로 여겨졌다면, 저는 첫 말에 거절했을 것입니다. 전에 이런 제안을 받은 일이 있었으나. 미래지향적인 연관을 지을 수 없다고 보여, 거절했습니다. 

무엇을 명예로 생각했느냐? 지난 몇 달 동안에 독특하고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공동체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 교회의 한 지체로 동참하게 됨을 명예로 생각했기에 감사히 받아드리고, 기뻐하는 칭호입니다. “경력”과 같이 떼 묻을 수 있는 과거와 연관 된 칭호가 아니고, 과거를 떠나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려는 모두의 바람과 직결되는 칭호로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과거를 떠나 보여주실 새 길을 가는 공동체에 동참함이 명예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회고해 보면, 우리 김 목사님이 안계셨고, 여러분이 안계셨다면, 제 말년의 목회소감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동해서 선을 이룰 수 있도록, 하시는 마지막 연결 고리를 만들어주신다는 귀한 체험입니다. 이제는, 종전 목회생활의 실망도 감사한 체험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런 실망이 없었다면, 이 책이 쓰일 때 진주를 캐낸 듯싶은 감격도 없었고, 영감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재산을 모으도록 너희에게 힘을 주셨음을, 너희는 기억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대로, 인생이 헛되지 않고, 헛될 번한 체험을 통해서까지, 보다 값진 진주를 캐내도록 하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깨닫고 감사드리게 됩니다.

권위주의적인 “목회경력”과 예수님의 제자 교회
앞에서 에드먼튼교회 목회 이야기를 하는 중 “기성교인들의 반발”이라는 말을 했었는데, 소위 목회경력이 많은 이들의 권위주의적인 목회에서 키워낸 교인의 특성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아는 신앙생활양태만이 정통이라고 보기 때문에, 폐쇄성이 너무 굳어서, 새 시대의 주역을 키우는데 거침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기성교인들이 나간 다음에야 교회가 갈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목회경력이 없는 목회자가 왔기 때문이 아니고, 소위 “경력”이 많은 이들이 왔기 때문에, 교회가 도로 묵이 된 것으로 봐야 옳을 것입니다. 

밴쿠버에서는 이민사와 함께 시작된 교회역사에 계속 소위 한국목회 경력이 많은 이들 밑에서 굳어진 교인들의 사고방식을(특히 잘못 된 성경이해를) 조금이라도 돌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 매달려 고투하다가 밀려난(은퇴) 후, 소위 경력 많은 이가 오면서 순식간에 도로 묵 코스로 치달렸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은 소위 목회경험이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구세주님이 되신 것은 그의 목회경력으로 하신 것이 아닙니다. 목회경험이 많다는 저들의 불의를 비판하실 수 있는 지고지순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보다 못해서 딱하게 여긴 수제자 베드로가 “선생님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경험이 없어서이십니다!”라는 식으로 말리셨을 때, “사탄아 내 뒤로 물러서라!” 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경력”은 세상 떼가 묻은 것을 말하고, 경험 없다는 것은 세상 떼가 묻지 안했다는 뜻이 됩니다. 
 
저는 소위 교역자들의 목회경력의 부정적인 영향을 너무나 똑똑히 알고 체험했기 때문에, 제자들의 공동체인 참된 교회에는 목회자의 “경력”이 아니고, 예수님의 희생의 경력만을 그 구심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성만찬 때 무엇을 기억하라고 합니까?
교역자의 과거 경력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 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죽인 기성 종교인들, 소위 “경험”이 많은 종교지도자들의 불의를 알고, 그런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제자의 품성을 갖추는 일만이 가장 중요한 자격이라는 뜻입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고 하셨겠습니까?

경력이 해가 되는 유일한 곳
경력은 세상 모든 일에 절대로 필요합니다. 메줘링 컾이 없이도, 맛있는 케잌을 구어 낼 수 있는 주방장이나, 등잔불을 끄고도 떡 크기를 똑 같이 쓸 수 있었다는 한석봉 어머니 이야기는 경력의 위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세상 경력이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되는 곳이 딱 한 곳 있다고 예수님이 경고하셨습니다.

어딘지 아십니까?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 . . 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제자공동체, 곧 가장 이상적인 참된 교회만큼은 다르다는 뜻입니다.

소위 “경력”은 의(義)가 아니고 이(利)를 구하는 명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소위 “목회경력”을 필요로 하는 곳은 이런 교회가 아니고, 헌금(금) 금송아지를 만들어내는 공장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야 할 교회는 생명운동을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달라야 합니다. 그 구성원들의 바람도 달라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특수 사명을 맡을 분(교역자)의 자격도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자격은, 진리를 추구하고, 의를 추구함에서 “예”와 “아니오”를 가리는 정렬에서 한 치의 양보도 할 줄 모르는 큰 바보(大愚)됨만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유일한 자격이라는 제 확언이 이번 방문에서 남기고 싶은 말입니다.

여기서 남은 과제 중 한 가지는 여러분이 다 잘 아는 대로, 학자요 교수님으로도 성장하셔야 할, Rev Dr. Kim 목사님이 이곳을 떠나지 안 해도 되는 길이 어떻게 뚫리느냐 하는 커다란 물음표입니다. 앞으로의 과제 중 하나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아무도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마침 이번 기회에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분들 몇 분의 사업현장을 심방할 수 있었던 터여서,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분들 한 사람, 한 사람들에게, 각각 다섯 사람, 또는 열사람 몫을 할 수 있을 만한 그런 재정능력을 허락해 주신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길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렇게 기도하려고 한다는 뜻에서), 제 아내에게 말했더니, 웃으면서 들어 주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함께 있는 오늘과 내일, 그리고 그 다음날을, 마치 김 목사님도 오래 오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일이라고 제 생각을 마무리 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부부가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듣는 그 순간부터, 아들이 없었으나, 마치 아들이 있는 부모처럼 살기 시작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어떤 드라마 대사에 “나는 요행은 믿지 않지만, 기적은 믿습니다. 요행은 소나 말 짐승에게도 오지만, 기적은 사람이 간절해야만 생기는 것이니까요.” 라는 말이 나옵니다.
 
간절함과 정성이 기적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결과가 달라지더라도, 정성을 다 한 사람들에게는 후회할 것이 없는 삶의 보람을 상급으로 받습니다.
..........................................................................................

설교를 마친 후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어진 질문들이 있습니다.

금년 들어서 이 교회는 가장 “연약한” 교회가 아니고, 가장 “이상적”인 교회로, “보이는”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바라는” 공동체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들렸을 때 보던 교회가 아니고, 전연 다른  교회로 탈바꿈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교회가 약한 교회여서 도울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돕는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교회라고 할 만큼 여러 면에서, 특히 평신도들의 의식수준에 있어서, 자리가 바로 잡혔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보이는 교회”이나 “바라는 교회”의 실체를 체험하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묻고 싶은 질문이란;
“이런 교회에 교역자는 어떤 목회경력을 가진 분이라야 할까?”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 교회를 위해 자원 봉사해 오신 김목사님의 지난 7녀 간의 “목회경력”보다 더 적합한 경력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도 김목사님에게는 “목회경력”이 없어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러면서도 또, “목사 티가 나지 안 해서 좋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나가서, 평신도들 각자가 교회의 주체의식을 가지고, 주역을 맡도록 하는 분위기는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요?

“목회경력”이 아니고, 진리탐구의 정렬과 예수님의 제자다운 성품을 연마하려는 신앙동지들에 대한 사랑 이 두 가지가 아닐까요? 

끝으로, 제 목회일생에서 본 세 교회를 회고해 보면서, 이상적인 공동체로 성장하는 길을 방해하는 한 가지 요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폐쇄적인 기성교인들의 아집이 문제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오래된 “터주 대감” 교인들이 일종의 “패”를 이루게 되는 경우가 흔한데, 이럴 경우에는 새로 들어온 교인들과의 대립에서 “패거리” 줄다리가 생기기 쉽고, 결국에는 교회 분열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판국에 이르도록 하는 풍토가 알게 모르게 자라게 마련인데, 언제나 이런 풍토에서 “떠나”, 참으로 바라야 할 이상을 향한 길로(“하나님이 보여주실 길”로) 나가는 순례자의 몸가짐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진리탐구의 정렬과 예수님의 제자다운 성품을 연마하려는 신앙동지들 간의 사랑” 이 두 가지가 구심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보다 큰 것을 보지 못할 때는, 작은 것들에 매인 노예가 되어 인생을 허비하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를 경고하셔서 예수님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기도)
예수님이 바라시는 바를 바로 깨달은 제자들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실망되는 일이 생기는 “보이는 교회”이지만, 주님의 제자들로서 마땅히 바랄 것을 바라는 “바라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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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선악과의 뜻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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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새 원고에 앞서서 (1) - “하나님”? “하느님”? “한님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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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성서읽기 1

    Date2015.07.19 By관리자 Reply0 Views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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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선악과의 뜻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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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이재형 목사의 성서강좌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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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머리말

    Date2011.02.13 By이재형 Reply0 Views2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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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6. "자식" -이미 늦은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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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43. 노예탈출 성공 후의 역경과 그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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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새 공동체 형성의 이상 -노예근성과 주체교육

    Date2011.02.13 By 이재형 Reply0 Views2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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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노예의 탈출과 재앙이야기 -모세의 체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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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캐나다연합교회와 캘거리한인연합교회

    Date2010.11.29 By이재형 Reply0 Views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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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떠나라: -혼돈에서 질서로-”

    Date2010.11.27 By이재형 Reply0 Views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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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48. 제자 교회 -이민자와 신앙(교회)생활-

    Date2008.11.07 By이재형 Reply0 Views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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