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006.07.11 16:38

새로운 계약

조회 수 19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새로운 계약 (요 13: 31-35, 출 24: 1-8)

-문동환 목사    선한목자장로교회, 4/25/04)


시작하는 말
인간은 서로 주고받는 상관관계에 존재한다. 주고받는 상생의 관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부부 사이도 그렇다.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 부모와 자식 관계도 그렇다. 주고받아야 한다. 물론 부모들이 먼저 준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가 하면 자식들이 성장해 가면서 부모들을 돌본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 이것은 친구들 사이에서고 마찬가지다. 서로 주고받는 것에서 우정이 깊어지고 삶의 보람을 느낀다. 이웃 사이도 마찬가지다. 이웃 사촌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삶의 원칙은 나라와 국민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라는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은 나라에 충성을 다한다. 주고받음으로 너도 살고 나도 산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도 그렇다. 자연은 인간을 먹여 살리고 우리 인간은 이 자연을 보호 육성해야 한다. 이와 같은 서로 엉킨 관계는 하느님과 인간 관계에서 붙어 시작이 된다. 하느님이 먼저 인간을 사랑하시어 모든 것을 주셨고 우리 인간은 그의 뜻에 따라 삶으로 그에게 영광과 찬양을 돌려야 한다. 이것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있는 무언의 계약이기도 하다.


1. 인간의 오만과 재계약
그런데 인간은 오만해지면서 이 계약정신을 무시해 버렸다. 힘만 잡으면 모두 자기에게 복종하라고 하면서 약자의 원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스스로 섬기려 하지 않으면서 모두 그에게 복종하라고 한다. 창고에 넘치게 물건을 독점하면서 나누기를 거부한다. 일신의 향락을 위하여 모두 그에게 몸과 시간 바치라고 강요한다. 하느님에게 돌아가야 할 영광까지를 독차지하려고 한다. 빠벨 탑의 오만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 오만이 애굽 바로 왕에게서 상징화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깊은 수렁에서 출구를 찾을 수가 없게 됐을 때 야훼 하느님은 역사 속에 나타나셔서  모진 바람으로 홍해를 가르고 그들을 시내 산에까지 이끌어내셨다. 그리고 오만한 자들 밑에서 짓밟혔던 그들과 계약의 관계를 맺으셨다. 이것은 피조물들이 응당 맺어야 할 하느님과의 계약이기도 하다.

    * 그들을 구출한 야훼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한다.
    * 어떤 우상도 섬기지 못한다.
    * 하느님의 이름을 생명을 살리는 일 외에 오용하지 못한다.
    * 일 주일에 하로는 편히 쉬면서 하느님을 찬양해야 한다.
    *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줄 부모를 곤경 해야 한다.
    * 생명을 죽여서는 아니 된다.
    * 도적질해서도 아니 된다.
    * 간음해서도 아니 된다.
    *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아니 된다.
    * 탐심을 품어서는 아니 된다.

이것들은 다 자기밖에 없다고 호통을 친 오만한 자들의 악랄한 행태에 대한 거부다. 그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애급의 통치자들의 통치에 대한 거부이다. 그러기에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출애굽공동체는 “아멘”하고 하느님과의 계약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그리고 이 “못한다”라는 계약은 얼마동안은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역사가 진전이 되고 인지가 밝아지면서 사람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이것을 회피해 갔다.

저들은 야훼의 이름을 부르면서 실제에 있어서는 야훼의 뜻보다 자기 뜻을 더 소중히 여겼다. 돌과 나무로 우상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권력, 명예, 재물등을 우상으로 섬겼다. 입으로는 야훼의 이름을 찬양하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악법을 만들어서 야훼의 이름에 욕이 돌아가게 했다. 안식일을 어처구니없이 강조함으로 오히려 이것을 지기 어려운 짐이 되게 했다. 칼을 들어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나 시기와 질투로 이웃을 들볶아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이웃의 창고에서 물건을 훔치지는 않으나 그들의 노동을 착취함으로 새로운 형태의 절도행위를 일삼았다. 거짓 증거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강자들의 편리에 따라 언제나 창출이 되었다. 탐욕도 마찬가지다. 오만한 자들 마음속의 탐욕이란 암과도 같아 끊임없이 독소를 내 뿜어 죽음을 창출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기득권자들은 더 말할 것 없고 오늘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너무나 자주 발견한다. 그래서 서로 살리고 사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무시해 버리고 만다.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심지어는 종교집단까지도 서로를 죽이는 만행을 서슴지 않게 되었다. 이런 세상에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에게 새 계약을 주셨다. 사랑의 계약이 그것이다.

2. 사랑의 계약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신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새 계약을 준다. 서로 사랑하라.” 라고 선언하셨다. 이 계약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준 계약과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옛 계약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도 그 계약의 일 점 일획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못한다”, “못한다”하는 옛 계약은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질책하는 능력은 가졌으나 사람들로 그것을 지키게 하는 힘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을 범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어린이들이 하지 말라는 것을 더 하고 싶어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사람들은 교묘한 술수를 써서 이 계약을 어김으로 죽음을 자초했다. 바울이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다.  누가 나를 이 죽음의 몸에서 건져줄 것인가?“ 하고 외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못한다” “못한다” 라고 하시지 않고 “서로 사랑하라”라는 적극적인 계명을 주셨다. 미숙해도 좋으니 사랑하라는 것이다. 일시 손해보는 것 같아도 좋으니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에게서 사랑의 샘구멍이 터지게 된다는 것이다. 봄 동산의 새싹처럼 사랑의 생명력이 자란다는 것이다. 창조주 하느님은 본래 붙어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우리들의 본능 가운데 사랑하고 싶은 본능이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다. 모두 중심에서는 사랑하고 싶어한다. 강아지들이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노는 것을 보라. 어린이들이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노는 것을 보라. 젊은이들이 사랑할 대상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보라.

그런데 문제는 너무나 오랫동안 시기와 질투의 차디찬 엄동설한에 시달려서 사랑의 샘구멍이 얼어붙어 버렸다. 장미꽃 가지에 솟아야 하는 새 싹이 솟아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3. 내가 너희들 사랑한 것처럼.
이런 우리더러 사랑하라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가 아닌가? 폐병 3 기에 있는 사람을 치열한 경기장에 내 보내는 것은 아닌가? 너무나 오랫동안 짓밟히고 쪼들린 우리들이 무슨 힘으로 사랑하라는 말인가. 사랑이 무엇인지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 보라는 말인가?  사실 많은 사람은 사랑이라는 말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인간의 이와 같은 현실을 너무나 잘 아신 예수님은 그러기에 그냥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새 계약이란 예수님이 친히 보여주신 사랑의 삶을 토대로 이룩된다. 예수님이 사랑해 주심으로 우리 속에서도 사랑의 샘구멍이 터지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대로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그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가를 생각해 보자.

그는 길 잃은 양과도 같은 우리를 찾아와 주셨다.  허물 투성인 우리들을 탓하시지 않으시고 그대로 껴안아 주셨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이를 제공해 주셨다. 먹을 것을 주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인정공동체를 이룩해 주셨다. 그는 인내력을 가지고 우리를 깨우치셔서 진리의 길로 가게 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해치려는 무리들에게서 몸을 던져 도전하셨다.

그는 말로만 사랑을 하신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삶의 행동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러기에 우리도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삶으로 사랑해야 한다.  우리도 사랑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찾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개의치 않고 그들을 껴안아야 한다.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을 헤아려 돕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내력을 가지고 서로 깨우치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해치려는 악의 세력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과 맺은 우리들의 새 계약이다. 이렇게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계약의 백성으로 보람찬 삶을 살 것이다.

Dr. Allen Kelley라는 의사는 이와 같은 새 계약을 성실하게 지킨 예수님의 제자이다. 그는 뉴욕에 있는 뻴뷰 병원의 정형의과 의사로 고문 등으로 병든 환자들을 돌보는 푸로그람의 책임자이다. 그가 이와 같은 일에 몸을 바치게 된 것은 그가 의학도였을 때 캄보디아에서 전쟁으로 부상당한 자들을 도와주면서였다. 부녀자, 어린이들까지를 포함해서 수많은 무죄한 민중들이 억울하게 희생을 당하는 것을 보고 폭력으로 의지할 곳이 없게된 불구자들의 재출발을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을 했다. 그리고 정형의과 의사가 되어 뻴뷰 병원에서 고문 등으로 병신이 된 자들을 재생시키는 푸로그람을 시작했다. 그 후 그는 약 70 여 개국에서 몰려든 천 여 명의 고문당한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다.

취재 기자의 말에 의하면 Dr. Kelley 는 퍽 명랑한 분으로 그가 사는 뉴져지에서 어린이 야구단의 코치까지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변호사로 구박받는 아내들을 돕는 일에 전념을 하고 있다. 두 분이 이런 전문직을 가졌기에 생활이 넉넉할 터인데 그의 집 지하실에 물이 새는 등 아주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수입의 거이 전부를 고문으로 병든 사람들의 치료비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문의 잔혹함을 이야기하던 그는 감정 어린 음성으로 한 과부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Kelley 에게서 치료를 받은 칠리에서 온 피난민이었는데 뜻 밖에 반 년 전에 자취를 감춘 그녀의 남편이 그 병원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 두 내외의 재회야말로 눈물겨운 것이었으나 얼마 지나 그 남편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 그녀는 다시 외로운 과부의 신세가 되었다.

그 후 2001 년 9 11 일 세계무역센터가 폭파되어 Dr. Kelley와 그의 동료 의사들이 미친 듯이 일하고 있었을 때 그 홀로된 과부는 금방 칠리에서 도착한 두 어린 딸에게 주일날에 입히는 깨끗한 옷을 입혀 가지고 Dr. Kelley에게 인사하려 왔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Dr. Kelley 의 눈에서는 감격에 찬 눈물이 흘러 내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새 계약에 성실하게 하는 종에게서 볼 수 있는 감격의 눈물이다.

Title
  1. Theology of wanderers (떠돌이의 신학)

    Date2008.02.12 By운영자 Reply0 Views274
    Read More
  2. 21 세기 평화와 교회-출판기념 특별강연

    Date2008.02.10 By이동진 Reply0 Views235
    Read More
  3. 문동환 목사님의 다음 까페

    Date2006.09.25 By운영자 Reply0 Views212
    Read More
  4. 새로운 계약

    Date2006.07.11 By운영자 Reply0 Views191
    Read More
  5. 生命 나무의 뿌리 세 줄기

    Date2006.07.11 By운영자 Reply0 Views191
    Read More
  6. 생명에 이르는 길

    Date2006.05.05 By운영자 Reply0 Views207
    Read More
  7. 세족자(洗足者)를 기다리는 세상

    Date2006.05.05 By운영자 Reply0 Views161
    Read More
  8.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Date2006.05.05 By운영자 Reply0 Views204
    Read More
  9. 이 이야기를 땅 끝까지 전하라

    Date2006.05.05 By운영자 Reply0 Views191
    Read More
  10. 예수님의 수난

    Date2004.03.14 By문영환 Reply0 Views186
    Read More
  11. 악마의 발악과 신앙

    Date2004.03.14 By문영환 Reply0 Views176
    Read More
  12. 심오한 하느님의 사랑

    Date2004.03.14 By문영환 Reply0 Views179
    Read More
  13. 사람의 원천

    Date2004.03.14 By문영환 Reply0 Views165
    Read More
  14. 예수님은 선한 목자

    Date2004.03.14 By문영환 Reply0 Views177
    Read More
  15. 악마의 도전을 이기는 신앙

    Date2004.03.14 By문영환 Reply0 Views166
    Read More
  16. 봄맞이 청소

    Date2004.03.14 By 문영환 Reply0 Views173
    Read More
  17. 옛계명과새계명신

    Date2004.01.13 By문영환 Reply0 Views189
    Read More
  18. 내가모든것을새롭게한다

    Date2004.01.08 By문영환 Reply0 Views191
    Read More
  19. 평화의 왕

    Date2003.12.30 By문영환 Reply0 Views185
    Read More
  20. 예수님은 세상의 빛-1

    Date2003.12.30 By문영환 Reply0 Views175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