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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4 22:37

예수님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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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수난            막 3:20-29, 14:22-26
      선한목자장로교회, 3/14/04

시작하는 말

    요즈음 예수님이 겪으신 고난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영화가 상영되어 영화관은 초만원을 이루고 간 곳마다 사람들의 화제 거리가 되고 있다. 영화 제작 사는 엄청난 수익을 얻어 신나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반 유대인 감정을 부추길가 보아 걱정들을 하고 있다. 예수님의 수난의 장면이 두시간 넘게 비참하게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그 책임이 전적으로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구교의 한 성서학자가 TV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이 영화는 예수님이 고난받는 처절한 장면을 실감나게 그렸으나 예수님이 왜 그런 고난을 받으셔야 하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라고.
    고난 주간을 맞이하는 오늘 이 Passion of Jesus 라는 영화를 중심으로 예수님의 수난의 의미를 생각해보기로 한다.

1. Passion of Jesus 라는 영화

    이 영화는 예수님이 게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장면에서 시작이 된다. 거기에 횃불을 든 무리들이 유다를 앞장세우고 나타난다. 예수를 포박하여 대사제인 가야바에게 끌고 가는 장면 붙어 폭행이 시작이 된다. 가바야의 법정에 선 예수님은 온갖 수모를 당하시면서 심문을 받는다. 예수를 해치려는 무리들은 여러 가지 증언이 하나 그 어느 것 하나도 확증이 되지 않는다. 게세마네 동산에서 그렇게 고민 하셨던 예수님은 결단을 내리신 뒤에는 묵묵 부답이시다.
    이렇게 늠늠하신 예수님에게 가야바는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하고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로 그이요. 당신들은 내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 쪽에 앉아 있는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하고 대답을 하신다.
    그리자 대 사제는 옷을 찢으면서 “이 제 무슨 다른 증언이 필요할 것인가” 하면서
예수를 빌라도의 법정으로 끌고 간다. 그 과정에 베드로가 세 번식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하는 서글픈 장면이 나온다.
    빌라도는 저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것은 질투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예수를 석방하려고 애쓴다. 특히 빌라도의 아내는 밤에 예수가 거룩한 분이라는 꿈을 꾸고 빌라도에게 전갈을 보내어 그의 피에 손을 대지 말라고 권한다. 예수 처형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자 그를 헤롯왕에게 보낸다. 예수를 만나 보고 싶어한 호기심에 찬 헤롯도 예수를 단죄하지 않고 다시 빌라도에 돌려보낸다. 빌라도는 다시 예수를 무리들 앞에 세우고 말한다.
  “헤롯도 죽일 죄를 찾지 못하고 나에게 도로 보냈고 나도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니 나는 그에게 매질이나 하여 석방을 하겠다.“라고 하면서 군인들을 시켜서 그에게 심한 매질을 하게 한다.
    쇠붙이들이 매인 채찍으로 매질을 하는 장면은 정말 무지막지하다.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르는 장면이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가시관을 눌러 씌우고 무리들 앞에 끌고 나온다. 이를 본 무리들은 다시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친다.
    빌라도는 다시 한 번 예수를 석방할 노력을 해본다. 그는 살인강도 바나바를 끌어내어 무대 위에 세우고  “유월절이 되면 여러분이 원하는 죄수 한 사람을 석방하기로 되어 있소. 이제 이 예수를 석방할 것인지 아니면 이 살인강도를 석방할 것인지 말하시오“ 라고 묻는다. 그리자 대사제와 그들의 충동을 받은 무리들은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한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이 예수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빌라도가 묻자 대 사제의 무리는 “우리에게는 가이사 밖에는 왕이 없오” 라고 화답한다. 그리고 저들은 “만일 예수를 석방한다고 하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오”라고 경고한다.
    그들의 뜻을 받아드리지 않으면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아 빌라도는 대야에 담아 온 물에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의 피는 나와 관계가 없다” 라고 선언하면서 그 물을 무리들에게 뿌린다.
    이렇게 사형 언도를 받은 예수님은 무겁기 그지없는 십자가를 끌로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면서 수 없이 넘어지고 꼬꾸라진다. 지나가던 아리 마태 요셉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도저히 사형장까지 올라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손과 발에 커다란 못을 박는 장면, 피투성이가 되어 십자가에 매여 달린 장면 등은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못박은 병사에게 “알지 못하고 하는 일이기에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기원하신다. 바른 편에 있는 강도에게는 “네가 오늘 나와 같이 낙원에 이르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같이 서 있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모시라고 부탁을 하신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엘리 엘리 나마사닥다리”라고 외치시더니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는 머리를 떨어트리고 운명하신다. 그리자 천지가 어두워지고 지진이 일어나 모두 겁에 질리게 된다. 성전 휘장이 둘로 찢어지기도 한다. 이 비참한 장면이 두시간이나 계속된다.

    이 영화는 네 복음서에 있는 기사들을 종합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신빙성이 있는 기사는 주후 70 년경 얘루살렘 성전이 로마 군병들에게 초토화 된 뒤에 쓰여진 마가 복음서의 증언이다. 이 증언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를 석방하려고 노력한 모습은 전연 나타나지 않는다. 대 사제들의 제소를 받은 빌라도는 무리들을 기쁘게 하려고 서슴지 않고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넘겨준다.
    그런데 주 후 90 년 후에 기록이 된 다른 복음서에는 빌라도를 예수를 석방하려고 노력한 인자한 분으로 그려졌다. 빌라도를 미화한 것이다. 이렇게 된 까닭이란 당시 초대 교회와 로마 사이에 있은 긴장관계 때문이다. 당시 초대 교회는 예수를 메시아라고 증언을 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기 전에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려고 했다. 그런데 로마는 유대인들의 독립운동을 몹시 경계하고 있었다. 예수를 왕 중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초대교회는 될 수 있는 대로 로마와의 긴장을 해소하려고 했다. 따라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한 책임이 빌라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는 책임은 대사제들과 빌라도 양쪽에 꼭 같이 있다.
    이제 우리들이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것은 “왜 예수님이 이런 고난을 받으셔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는 누구냐?”하는 것이다.

    2. 예수님의 수난의 의미

    예수님이 왜 이런 고난을 받으셔야 했는가? 이에 대한 전통적인 대답은 ‘그가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들의 죄 때문이다’ 라는 것이다. ‘그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들의 죄가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그러나 그가 흘리신 피 공로로 우리의 죄가 속죄함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보면 예수님의 수난은 이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살펴보자.
    예수님이 하신 선포의 첫 마디는 “회개하라 천국이 문전에 도달했다”이다. 가던 길을 돌아서기만 하면 과거의 죄는 다 용서함 받고 우리는 하느님 나라 시민이 된다는 것이다.     
    마가 복음서 2 장에 있는 들것에 들려서 예수님을 찾아온 중풍병 환자를 지붕을 헤치고 예수님 앞에 드려 내렸을 때 예수님은 그를 보고 “네 죄는 이미 용서함 받았다”라고 선언을 하셨다.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인을 보시고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안는다”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주변이 몰려든 죄인과 세리들을 향해서 에수님은 한 번도 그들의 죄를 추궁하시지 않으셨다. 그를 믿고 그에게 나온 것만으로 그들의 죄는 다 용서되었다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는 가장 좋은 예가 된다. 탕자가 돌아오자 아버지는 그냥 껴안아 주셨다. 그리고 기쁨에 찬 잔치를 버리셨다. 아들의 과오를 추궁하시지 않으셨다. 깨닫고 돌아왔기에 그냥 기쁘시기만 했다. 예수님의 피 공로라는 말이 없다.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에서 포도 잔을 돌리시면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새 언약을 상징하는 피다. 예수님은 이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단하신 것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예수가 악령을 쫓아내는 것은 마귀의 왕 바알제불의 힘으로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유언비어를 유포시키는 것을 보신 다음이다.
    예수님은 갈릴리에 있는 무리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애절하게 느끼셔서 각 가지 병자들을 고치시고 악령을 추방하시고 떡을 때시면서 하늘나라의 잔치를 베푸시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갈 바를 알지 못해서 헤매든 무리들이 예수님 주변에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따뜻한 사랑의 품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에스겔 골짜기의 군대와도 같이 늠늠하게 서게 되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인가.
    그런데 이것을 보고 당황해 한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해롯 당원들이다. 예수님의 영향이 확산이 될수록 저들의 특권에는 손상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잡아죽일 계획을 새우면서 예루살렘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이 소식을 들고 허둥지둥 갈릴리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나사렛 청년 예수의 영향은 이만저만이 아닌 것을 발견했다. 이대로 두었다간 예수님의 영향이 갈릴리는 물론 온 유대 땅에 펴져서 자기들이 설자리가 없어지게 마련이다.
    당황한 저들은 악랄한 유언비어를 유포시켰다. 예수는 마귀왕 바알제불의 힘으로 악령을 쫓는다고 말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억눌렸던 무리들이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것을 축하하지는 못할 망정 어찌 이런 어처구니없는 유언비어로 그들을 짓밟을 수 잇느냐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사탄의 무리들이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유언비어가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까지도 이 말을 믿고 예수를 붙잡아 나사렛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당황해 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한 가정이나 나라도 갈라지면 망한다. 사탄이 악령을 내어쫓는다면 사탄의 왕국이 망할 것이다.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하시는 것을 훼방하면 용서받을 수 없다“라고 깨우치셨던 것이다.
    이렇게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육법학자들의 하는 짓을 본 예수님은 이를 묵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들과 대결하려고 결심하셨다. 이것은 고난을 자초하는 일이다. 그러나 인류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그는 생명 운동을 해치는 그들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신 것이다. 그리고 보면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 아니라 악령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출하시기 위해서이다.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하신 일을 보라. 로마와 손을 잡고 자기 배 채우기에 여념이 없는 성전에 가서 채찍을 드셨다. 그리고 이것이 십자가의 고난을 초래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위한 그의 사랑의 극치다.
    이렇게 고난을 겪으신 결과는 무엇인가?
    첫째로 그 동안 유대인들이 숭배해 왔던 대 사제의 무리와 바리새파 사람들의 가면이 완전히 베끼신 것이다. 그들이 거룩한 하느님의 종들인 줄을 알았는데 자기 배만 생각하는 악당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다시는 그들에게 현혹될 까닭이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마수에서 해방이 된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서 사랑이 폭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사랑으로 나를 줄 때 50 배 100 백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확증해 주셨다. 따라서 모두 대답하게 사랑의 대도를 걷게 되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라. 대 사제들의 공갈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다.

맺는 말

    깁손이 제작한 예수님의 수난이란 영화는 탐욕에 사로 잡흰 자, 힘의 철학에 노예가 된 자들의 포악함을 들어냈을 뿐 예수님의 삶의 의미는 밝혀주지 못했다. 오히려 관람자들에게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만을 조장시켜 주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란 유대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탐욕에 사로잡힌 자, 권력에 도취한 자들이란 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이다. 그리고 2 천 년 전에 유대나라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음의 자리에 몰아넣었다고 해서 덮어놓고 유대인들을 증오해서도 아니 된다. 우리도 탐욕과 권세욕에 사로 잡희면 예수의 손발에 못을 박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예수님의 수난에서 사랑의 계약의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 그 넓으신 하느님의 사랑의 품에 돌아오면 우리들의 죄는 용서함을 받고 하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의 힘이 이 세상의 폭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고 대담하게 나를 주면 50 배 100 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것에 예수님이 자신 전부를 던져 주셔서 우리에게 깨우쳐주신 진리다. 우리는 이 크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격하면서 사랑의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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